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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없으므로 고요하니” - 無欲以靜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37
이병일 | 승인 2018.09.17 21:23
“도는 늘 無爲이니 無不爲이다. (도는 항상 이름(벼슬)이 없다.) 제후나 왕이 만약 그것을 능히 지키면 만물은 장차 스스로 그렇게 된다. 되는데 욕망이 일어나면 나는 장차 통나무(소박함)의 이름 없음으로 그것을 누를 것이다. 통나무(소박함)의 이름 없음(으로 그것을 누르는 것)은 또한 장차 욕됨(욕심)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욕됨이 일어나지 않음으로써 고요하니, 천하(천지)가 장차 스스로 바르게 되리라.”
- 노자, 『도덕경』, 37장
道常無爲而無不爲(道恒無名). 候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鎭之以)無名之樸, 夫亦將無欲(辱), 無欲(辱)以靜, 天下(地)將自正(定)

노자는 참다운 도는 만물을 낳고 기르는 자연의 도라고 말하며 도덕경을 시작했고, 소박한 자연의 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릴 때, 천하가 바르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도경을 마치고 있습니다.

無爲自然. 도의 작용이 무위를 근거로 한다면, 도의 현상은 자연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니, 무위와 자연은 도의 상이한 표현일 뿐입니다. 무위는 인위적인 作爲가 없는 행위이고, 작위가 없다는 것은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법칙이나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Getty Image

작위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제도와 법률 등의 온갖 문명화된 장치들도 그 범주에 속합니다. 만물이 자라 저절로 된다는 것이나 천하가 장차 저절로 안정될 것이라는 표현은 무위자연의 궁극적인 이상을 담은 것입니다. 국가의 정치적 이상이나 개인의 삶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無爲而無不爲’, 作爲하지 않으나 하지 않는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인위적인 의지가 작동하지 않으면 道가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인위적인 것을 훨씬 초월하는 道가 작용하는 정치가 되어야 이상적인 정치가 됩니다. 그러나 이미 제도적인 정치와 인위적인 법률이 만연한 가운데 그것을 내려 놓기 위해서는 혁명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흐르는 물이 산 아래로 내려감은
무슨 뜻이 있어서가 아니요,
한 조각 구름이 마을에 드리움은
본디 무슨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 살아가는 일이 구름과 물 같다면
쇠나무(鐵樹)에 꽃이 피어 온 누리 가득 봄이리.
- 송나라 선승인 차암수정의 시

우리는 도의 진면목을 깊이 경험하거나 잘 알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노자가 말한 무위자연의 도의 경지를 그저 조금씩만 맛보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맛을 보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으로부터 도의 깊은 경지에 들어갈 수 있는 시작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천하다고 그냥 주저앉을 필요는 없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마음을 열고 오감을 크게 열어서 자연의 도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면 언젠가는 나와 세상이 바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눈먼 사람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보다”라는 동사가 4개나 사용됩니다. βλέπω(보다, 알다), ἀναβλέπω(쳐다보다, 올려다 보다, 우러러 보다, 시력을 회복하다, 다시 보다, 눈을 뜨다), διαβλέπω(눈여겨 보다, 꿰뚫어 보다, 간파하다, 명료하게 보다), ἐμβλέπω(관찰하다, 바라보다, 주목하다, 눈여겨보다, 밝히 보다, 생각하다, 숙고하다). 우리가 보기는 보지만 몸의 한 기능으로써 보기도 하고, 어떤 대상을 존경하듯이 우러러 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기도 하고, 보이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숙고하여 밝히 보기도 합니다.

눈 먼 사람이 치유되는 과정을 통하여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하여(혹은 사물과 현실에 대하여) 점점 확실하게 깨닫고 바르게 보게 되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완전한 깨달음은 단지 경험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숙고하는 과정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마다 어떤 일(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보고 알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깨달음의 부분과 정도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어떤 사람은 저것을, 어떤 사람은 이 정도를 어떤 사람은 저 정도를 보고 깨닫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온전하게 알지 못하고, 또 그럴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눈을 뜨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보게 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습니다. 또한 불완전하고 어설픈 지식이나 깨달음이 자기성찰을 잊어버린다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걸어다니는 나무토막으로 보는 희미한 각성에는 깊은 숙고가 필요합니다. 깊은 숙고는 익숙해져 있는 것과의 단절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눈 먼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서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고, 치유 후에는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고 말한 것은 이미 익숙한 관계와 관습적인 삶을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길과 정체성에 관한 것이든 오늘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현실에 관한 것이든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기까지 스스로 삼가고 노력합시다. 사회적으로는 역사와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도록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둡시다. 모든 것을 분명히 보고 듣고 알 때까지 나를 돌아보고 역사와 현실을 숙고합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갑시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모든 것을 분명히 보기까지” 중에서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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