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력이 없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희망이 없을 때입니다. 내일 하루 더 굶는 것이 두렵지 않고, 내일 하루 더 굶어도 변하지 않는 현실이 힘든 것입니다. 그런 제 마음을 이토록 알아주지 못하는 것인가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도 마음편지라며 일어나지도 않은 기적을 운운하는 총장과 민주주의를 운운하며 뒤로는 신임평가를 무마할 생각에만 골몰해 있는 학교 당국에게 하는 말입니다.

저번주 저희 부모님이 학교에 다녀갔습니다. 제 얼굴을 볼 겸 학교에 항의방문을 하려 오셨습니다. 그 때 스텝진이 제 부모님께 “건수가 민주한신의 횃불을 들었다고 생각한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아, 솔직히 말하면 웃겼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화가 납니다. 그것이 무엇이기에 왜 저만 이리도 외롭게 민주한신의 횃불을 들어야 하나요. 왜 우리 학생들만 민주한신의 횃불을 들어야 하나요. 왜 아무도 민주한신의 횃불을 들지 못하면서 학생들에게 목숨을 걸라고, 절벽으로 떨어지라고 강요하나요. 결국 당신들의 기만에 전 단식 17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언제 쇼크로 쓰러질지 모르는 17일에 몰리고, 또 몰렸습니다. 자, 아직도 제가 든 횃불이 고맙고, 소중하신가요.

성질 같아선 확 이 횃불을 꺼버리고 싶습니다. 누군가 목숨을 걸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부정과 부패를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당신들의 한신을 위해 횃불을 든 것이 너무도 후회되는 것입니다. 불쌍한 학생 한 명의 목숨값으로 겨우 생명력을 연명해가는 ‘당신들의 천국’에 치를 떠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낱같은 희망, 우리 학생들 사이에 솟아 나오는 작은 불꽃들이 모이는 것을 보며 아직도 이 횃불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분명히 말합니다. 전 총장의 기적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연규홍 총장의 그늘 아래 있는 한신의 발전을 위해 17일 동안 곡기를 끊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당신 없는 한신, 기만과 부정과 거짓 없는 한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17일 동안 항거하고 있습니다. 당신과 내가 함께하기 위해선 당신도 횃불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여전히 당신의 정반대편에 서서 당신이 떠나길 옥상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내일 4자 협의회가 열립니다. 어려운 난관을 파헤치기 위해 각 주체가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학교 당국은 기적을 운운하며 10월 신임평가만은 피하자는 마음을 먹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절 이곳에서 내려보낼 생각이 없으신 당신들이 듣기 좋은 말 한마디 전합니다. 당신들의 바램처럼, 전 내려갈 생각이 없습니다. 10월 내 신임평가, 원칙적인 현 사태의 해결 없이는 내려가지도, 목구멍에 음식을 넣지도 않겠습니다.

추석까지 단식할 것을 벌써부터 대비하는 모양입니다. 이제야 그러십니까? 전 올라올 때부터 죽음을 각오한 사람입니다. 늦어도 너무 늦은 학교당국, 그렇게 저희 뒤꽁무니만 쫓아오십시오. 그렇게 뒤처진 채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십시오.

총장을 비롯한 학교 당국에게 시 한 편 올립니다.

“그래도 그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 각성의 불꽃은 점점 커져
함께 모여 있으면 그들은
봉홧불처럼 거대하게 보였다
그들의 눈은 여물어갔고
캄캄한 공장 안에 갇혀서도
희망의 소리와 해방의 빛을 보았다
그건은 전선을 타고 오지도
녹슨 상수도관을 타고 오지도 않았다
그것은 오직 그들 마음속
한 점 각정의 빛으로 타올랐다
너희들은 아직도
무엇이 우리를 단결케 하는지
투쟁하게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전사
이윤밖에 모르는 너희의 부패한 머리에
새로운 삶의 가치관을 심는 희망의 전령들
거짓 민주주의의 역사를
거리에서 새로 쓰는 역사의 새 페이지들
닮아진 사랑과 연대의 다른 이름”
- 송경동, “너희들은 고립되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투쟁에 부쳐” 中에서

▲ 저 멀리 학교 채플실이 보이네요. 저곳에서 드려졌던 예배와 설교는 무엇이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김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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