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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의 정체는 무엇일까?영화묵상 | <어느가족>
두더지(평화교회연구소 연구원 / 다큐인) | 승인 2018.09.28 21:09
“평화교회연구소는 평화로운 세상, 올바른 믿음의 교회를 꿈꾸며 부흥과 성장보다 평화, 생명, 정의의 가치가 실현되는 21세기 새로운 한국교회를 상상합니다!” 모토 아래 건강한 한국교회를 상상하는 평화교회연구소가 매달 발행하는 “웹진 평:상”의 글들을 에큐메니안에 게재합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평화교회연구소 소장님과 연구소 소속 모든 연구원들과 웹진 기고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영화 <어느 가족>(Shoplifters)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 121분, 일본, 2018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가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물질세계의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는 현상을 기록하고 포착하고 증명함으로써 그것이 일상사 가운데 잊혀지고, 사라지고, 무심히 침묵 당하지 않도록 구해내는 것이 영화의 능력이다.”

필자는 크라카우어가 언급한 영화의 능력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동시대 감독 중 한 사람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꼽고자 한다. 그의 영화는 따뜻한 감수성으로 수놓아져 있으면서도 냉혹하고 어두우며 때론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의 문제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초기에 연출한 여러 작품들이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다큐멘터리였다는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의 문제에 갇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인물들의 삶을 직접 기록하며 쉽게 해결 할 수 없는 복잡다단하고 지난한 실존의 한계와 사회구조적인 모순을 몸소 절절하게 경험했기 때문일까. 그의 영화들은 다소 동화적일 정도로 아름답지만, 그 중심에는 구체적인 현실을 향한 냉소적인 시선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특별히 히로카즈 감독은 그 동안 <환상의 빛>,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여러 작품을 통하여 “가족”을 주된 소재로 삼아왔고, 그와 더불어 “빈곤의 현상”에도 주목해 왔다. 얼마 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그의 최신작 <어느 가족>은 그 동안 천착했던 이 주제에 관한 히로카즈 감독의 고민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두 시간 동안의 러닝타임 속에 등장하는 모든 시퀀스와 씬 하나하나에는 ‘가족’이라는 환상 속에 뭉뜬 그려진 서글픈 우리네 자화상이 펼쳐진다. 나아가 영화는 폭력적인 시선과 전형적인 차별방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세상 밖으로 밀어내려는 모순투성이의 사회를 적나라하게 규탄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이 함께 마트에서 눈짓으로 사인을 주고받고 있다. 진열되어 있는 생활용품 몇 개를 자신의 가방에 넣는 아들, 그 순간에 맞춰 정확하게 점원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아버지. 잠시 후 두둑한 가방을 들고 마트 밖으로 나오는 두 사람은 환한 얼굴로 손뼉을 마주치며 함께 집으로 향한다.

예사롭지 않은 도둑질 장면으로 오프닝 시퀀스가 시작되는 영화 <어느 가족>은 곧 이어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도둑질 해온 물건들을 천진하게 나눠 갖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마치 <오션스일레븐>이나 <도둑들> 등의 캐이퍼 무비(범죄오락물)를 보는 것 같이, 디테일 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지는 오프닝에서 우리는 영화의 전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인물들을 향한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과연 이 가족의 정체는 무엇일까?

할머니 ‘하츠에’, 아버지 ‘오사무’, 어머니 ‘노부요’, 이모 ‘아키’, 아들 ‘쇼타’ 등 기존의 가족 구성원에 새롭게 딸 ‘유리’가 합류하는 시점부터 영화는 시작하는데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들은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가족이 아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자신의 가족으로 부터, 또 사회로부터 버려지고, 쫓겨났으며,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다. 감독은 가족 영화의 결을 놓치지 않으면서, 이 가족의 정체에 관한 단서를 조금씩 풀어놓는 방식으로 영화를 구성하고 있다.

흐릿하지만 마치 퍼즐처럼 펼쳐놓은 가족의 정체를 조금씩 끼워 맞추게 될수록, 우리는 그들이 가진 아픔의 구체적인 실체와 점점 마주하게 된다. 혼자서는 단 하루도 쉽사리 살아갈 수 없는 동시대의 그늘진 이들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 퍼즐이 거의 완성 될 무렵에는 그들이 생존하고 싶어서, 다만 숨을 쉬고 싶어서 함께 손을 맞잡고 이룬 공동체마저 이 사회가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현실에서와 마찬가지고 숨죽이며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만 한다.

영화 <어느 가족>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평소 생존을 위해서 최소한의 법과 기본적인 윤리성조차 안중에 없던 이들 가족이 생면부지인 ‘유리’를 위하여 유괴범으로 몰릴 수도 있는 위험을 적극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결국 진짜 가족은 ‘혈연’이 아니라 ‘동질감’으로 구성된다. 이 사회에서 버려졌다는 동질감 그리고 서로가 없으면 결코 생존 할 수 없다는 동질감은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하게 하는 '사랑'의 다른 말이며, 이들을 가족으로 묶는 소중한 울타리가 된다.

실상 ‘정상가족’이라면서 자랑스레 가문의 영광을 뽐내는 이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핏줄이니, 가문이니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의 정체성과 정당성을 내세우지만 결국 생존과 정서적 유대로 인한 동질감이 가족 공동체의 핵임일테니 말이다. 이미 우리는 1997년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며 무수히 해체되고 쓰러져간 이 힘없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서글픈 풍경을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는가.

세상의 법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들 가족의 숨통을 조여 오지만, 동질감으로 묶여있는 이들은 그 어느 가족보다도 안정감 있고 낭만적이며 따뜻한 공동체(가족)를 이루어 간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안타깝게도 가족이 위기를 겪을수록 동시에 ‘동질감’도 흐려진다. 가족의 존재가 세상에 발각되면서, 유괴범, 절도범, 심지어 시신유기범이라는 이름으로 희대의 괴물취급을 받게 되면서, 이 외부사회의 개입은 또 다시 이들 가족을 ‘혼자’로 만들어 버린다.

한번 버려지고, 배신당한 기억을 트라우마로 갖고 있어서인지 가족 구성원들은 이 과정에서 저마다 자기방어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고,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를 떠나며, 유일한 끈이었던 ‘동질감’마저 그렇게 사라진다. 결국 버려진 채 홀로 남겨졌기 때문에 함께 가족이 될 수 있었던 이들은 결국 그렇게 또 다시 혼자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떠나버린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파국에서 어머니 ‘노부요’만은 흔들리지 않고 모든 책임을 홀로 뒤집어 쓴 채 자신을 취조하는 경찰에게 이런 이야기를 남긴다.

“우린 훔친 게 아니라 누군가가 버린 것을 주웠을 뿐이다.”

가족을 괴물 취급하며 호들갑을 떠는 그들에게 노부요는 지금 되려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왜 너희들이 그렇게 정상적이라고 얘기하는 가족은 사람을 함부로 버리느냐고. 그리고 왜 이 사회는 버려진 사람을 보듬지 않느냐고. 우리는 훔친 게 아니라 누군가가 버린 것을 주었을 뿐이라고. 버려진 사람들을, 버려진 물건을 주웠을 뿐이라고.

영화 <어느 가족>의 영어제목은 <Shoplifters>이다. 이는 ‘훔치는 사람들’, ‘슬쩍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가벼운 표현이지만 이 제목에는 일종의 ‘시선’이 들어가 있다. 영화에서 이 가족을 괴물취급하며 냉혹하게 바라보았던 그 시선, 이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 시선 말이다. 과연 진짜 괴물은 누구이고, 진짜 사람들의 삶을 강탈해가는 존재는 누구인가?

두더지(평화교회연구소 연구원 / 다큐인)  peacechurch20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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