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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정말 망했나?나는 기뻐하리라(합 3:17-18)
이성훈 | 승인 2018.09.30 20:57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오늘은 가볍게 라이트노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라이트노벨은 흔히 라노벨이라고 부르는데, 일반 소설보다는 가벼운 느낌의 소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90년대에 일본에서 활성화되기 시작해서 지금은 우리나라 서점에도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을만큼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은 거의 대부분이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젊은 사람들의 문화나 생각을 이해하려면 라이트노벨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냥 머리 식힐 때 읽고 있는 편입니다.

라이트노벨 소설 내용들을 보면, 최근에 유행하는 내용들은, 주인공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 이른바 이세계(異世界)에 가서 살게 되는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죽었다가 이세계에 그대로 떨어지기도 하고, 이세계에서 전생하기도 하고, 이세계에서 소환이 되기도 합니다. 가끔은 신이 실수로 이세계에 보내거나 신이 일부러 이세계에 보내기도 합니다.

일부 소설들에서는 다른 세계에 가게 된 주인공이 다시금 자신이 살았던 지구로 혹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이세계는 아니지만 게임 세계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드 아트 온라인』은 주인공이 본래 세계로 돌아오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런 소설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소드 아트 온라인』과 거의 동일한 소재를 사용한 『로그 호라이즌』은 본 세계와 게임 세계를 언제나 오갈 수 있게 만들려는 노력을 합니다만 대부분의 소설은 주인공이 그 세계에 만족하면서 그 세계에서 얻은 능력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저도 예전에 무협지 읽으면서 이런 무협의 세계에 가서 내공도 얻고 무공을 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지금 소설들에서 이야기하는 바는 그저 어린 시절의 꿈같은 바람이 이루어졌다는 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소설의 내용을 말씀드리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2012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발간되었고 2014년에 애니메이션으로 나와서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인기를 얻었던 『노 게임 노 라이프』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다른 세계의 신이 주인공을 자신의 세계로 데려가기 전에 주인공에게 물어봅니다. “너희는 그 세계를 어떻게 생각해? 즐거워? 살아가기는 편해?” 이 질문에 대해서 주인공이 대답합니다.

“이 세계는 망한 게임이다. 규칙도 목적도 뚜렷하지 않은 재미없는 게임. 70억이나 되는 플레이어가 제멋대로 턴을 진행하며, 지나치게 이기면 페널티를 받고, 지나치게 져도 페널티를 받는다. 패스할 권리는 없으며,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너무 파고든다고 경원시된다. 목적도 알 수 없고, 패러미터도 존재하지 않으며, 장르조차도 불분명. 정해진 규칙을 따라도 패널티를 받으며, 무엇보다, 규칙을 무시한 놈이 으스대며 남의 위에 
선다.”

소설 1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책 10권이 최근에 발매되었고 우리나라 라이트노벨 판매순위 2위입니다. 현재 1위인 책은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이라는 책인데,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세계에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지게 된 주인공이 ‘그 멋진 세계’에서 즐겁게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설마 다 그런 내용들일까 싶지만 많은 책들이 그런 내용입니다. 그냥 뭐 이런 책들이 다 있나 하는 생각으로 읽어보시라고 몇 개만 책 제목을 열거해 드리자면, 『곰 곰 곰 베어』, 『데스마치에서 시작하는 이세계 광상곡』, 『무직전생』, 『전생했더니 검이었다』,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 『거미입니다만 뭔가』, 『현실주의 용사의 왕국재건기』, 『다나카 나이=여친없는 역사의 마법사』, 『오버로드』, 『유녀전기』 등등 대략 중고등학교 남학생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책들만 썼습니다.

혹시 남자들만 읽는 책 아니냐? 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만, 여성을 1차 대상으로 삼는 라이트노벨들도 있습니다. 『성녀의 마력은 만능입니다』, 『공작영애의 소양』, 『악역 영애이므로 라스트 보스를 키워보았습니다』, 『성녀 두 사람의 정처 없는 이세계 여행』, 등등이 있습니다. 대략 남성은 이세계에 가면 용사가 되고 여성은 성녀가 되던 귀족이 되던 하는 식입니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게 아니니까 성차별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이 책들의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생각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최악의 세계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비단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기에 이 책들이 잘 팔릴 수 있는 근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이런 말이 유행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생은 망했다”

행복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이 퍼져있다면, 그 이유는 사회적인 환경과 분위기,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들을 찾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의 삶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 전에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프로그램에서 ‘행복연구센터’ 설립자인 최인철 교수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체를 다 본 게 아니고 부분부분 봐서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본 부분에서는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 해법 네트워크(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 SDSN이 발표한 세계 행복지수와 그 순위를 이야기했습니다.

▲ “노 게임 노 라이프”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Getty Image

과거에는 돈 없는 국가도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것은 표본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나왔던 것이고, 실제 최근의 조사 결과 GDP가 높은 나라일수록 행복지수가 높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국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런 결과가 맘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엔 SDSN이 발표한 세계 행복지수 보고서를 찾아봤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http://worldhappiness.report”로 들어가 보시면 됩니다. 이 보고서에서 통계를 어떻게 측정했는지 찾아봤는데, SDSN이 행복도를 측정하는 방법은 6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집니다. 1인당 GDP, 사회적 지지, 건강한 삶에 대한 기대, 사회적 자유, 관대함, 부패의 부재, 이렇게 6가지 항목에 따라 2005년부터 2017년까지의 자료를 가지고 점수를 매긴 겁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이 조사는 돈이 없는 나라가 행복하지 않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사회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국가는 행복할 수 없는 조사 방법입니다. 이 조사 방식을 따르면 전후 우리나라에 살던 사람들은 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나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 살던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행복에 대한 수치화나, 이런 순위 매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결국 행복을 비교 가능한 가치로 여기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측정이 가능하고 다른 이와 비교할 수 있다는 생각이 기반 되어 있어야 이런 측정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그 시절을 겪으시면서 행복한 순간이 없었습니까? 요즘 언론 기사들을 보면 우리나라는 완전 위기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서 집을 가졌건 가지지 않았건 모든 국민들은 집값 상승으로 인한 불행에 빠졌고, 집이 있는 사람은 세금 폭탄까지 떠안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거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해서 우리의 삶은 이제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2017년에 최저임금을 주고 직원을 고용했던 사람이 2017년 기준 1,035,200원을 월급으로 지급하다가 2018년에 1,204,800원(하루 8시간 20일 기준)을 지급한다고 해서, 최저임금을 받던 사람에게 16만 9천 6백원의 월급을 더 주게 되었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좀 이해가 안 되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언론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보면 우리는 거의 망하기 직전의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너무나 불행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여기저기에서 이야기들 합니다.

비교되는 행복

앞서서 저는 행복에 대해서 수치화 하는 것, 순위를 매기는 방식에 대해서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행복을 비교할 수 있다는 바탕에서 조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시대는 누가 행복하고 누구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수치를 통해서 비교합니다.

그런데 정말 행복은 비교할 수 있는 가치입니까?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행복이라는 것이 정의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단어라면, 그것은 결국 개인에게 달려있는 감정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아무리 복잡하다고 말해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집 없는 사람들은 다들 불행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해도, 우리는 때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행복할 때가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아무리 격동의 시대라고 불리는 때를 살아오신 분들일지라도 나름대로의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오셨을 것입니다. 행복은 개인이 느끼는 가치이기 때문에 남이 그것을 뭐라 말할 수 없는 것이고 사회가 아무리 형편없고 어려울지라도 개인은 그 순간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사회는 행복을 자꾸 비교합니다. 행복을 남들과 비교 가능한 가치인 것처럼 꾸밉니다. 그러면 결국 돈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도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돈을 벌어야겠다고, 사회의 톱니바퀴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게 됩니다. 저는 그런 행복은 지금의 이 사회가 만들어내고 있는 허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라는 체계가 끊임없이 자신을 증식시키기 위해서 만들어가고 있는 허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박국의 행복

성경 말씀으로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너무 잘 아시는 본문입니다. 하박국 3장 17절의 말씀을 보면, 다른 예언자들이 했던 말들이 떠오릅니다. 이사야는 34장에서 열국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면서 말합니다.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예레미야도 8장에서 악한 예루살렘을 향해서 외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대상은 다릅니다만,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너희가 행한 죄의 대가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리라는 의미에서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마르게 되리라는 예언을 합니다. 예레미야의 방식으로 이해하자면, 그 고통을 감내하고 받아들인 후에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예레미야는 벌이 없는 구원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지은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맥락에서 70년 포로기를 말합니다. 그렇기에 무화과나무가 마르고 포도나무가 마른 그 순간에 죄인들은 당연히 고통스러워해야 합니다.

이런 고통의 순간에 하박국은 말합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원어를 직역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기뻐 뛸 것이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그는 왜 고통 받아야 할 그 순간에, 불행에 몸서리쳐야 할 그 순간에 기뻐하리라고 말하고 즐거워하리라고 말합니까?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지금 내 곁에 계시기에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이기에 그 희망으로 기뻐합니다.

19절까지 보면 하박국이 기뻐하는 이유는 더 분명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시기에 나에게 능력을 주시고, 나를 이끌어 주시는 분이시기에 그는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바꿔 말해서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비교는 이제 그만

앞서 말씀드렸던 최인철 교수의 이야기에서 행복의 요건은 세 가지라고 말합니다. 기분 좋음, 만족감, 삶의 의미나 가치,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에 저는 감히 행복은 하나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를 기분 좋게 하거나 만족시켜주는 일은 돈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갖고 싶던 것을 사거나 하고 싶던 것을 하거나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 기분 좋고 만족감도 높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경기가 불황이니 시대가 어렵니해도 가계별 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하는 앵겔지수는 점차 상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민소득, GDP가 증가할수록 앵겔지수는 낮아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2010년 이후로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에서라도 기쁨과 만족을 누리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돈이 해줄 수 없는 일은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내가 내 삶을 가치 있는 삶이라고 여기게 해주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 우리 삶에 가치를 부여해줍니다. 성경의 말씀은 이 땅을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어 가도록 우리의 삶에 어떠한 형태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면 분명 이 땅은 평화와 풍요가 넘치는 곳이 되리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살아간 우리는 분명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고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넌 살아있는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기 어렵습니다. 그런 이야기 자체를 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서 살아가는 너희의 삶은 분명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박국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을지라도 하나님을 통해서 기쁨을 느꼈고 만족을 느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삶의 가치를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죄인들에게 고통의 시간이 닥쳐왔음에도 그는 의연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았던 선한 사람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해주신 삶의 가치를 굳게 붙들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이 사회가 자꾸 우리에게 강요하는 “비교되는 행복”을 얻으려 하지 않으시고, “비교할 수 있는 행복”을 쫓아가지 마시고 그저 하나님으로부터 힘과 능력을 얻으셔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인해서 기뻐하며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느끼시고 하나님이 구원하심을 아시기에 기쁨을 누리시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인정하시기에 만족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따라 살아감으로 이 땅을 변화시켜 나가시기에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행복을 느끼시게 될 줄 믿습니다.

이성훈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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