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을 펴낸 문영미 씨. ⓒ 이정훈

통일 할아버지로 잘 알려진 문익환 목사를 문익환 목사 되게 했던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면 누구라고 할까? 아마 문익환 목사가 말한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준하 선생님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문영금(문익환 목사의 자녀), 문영미(문동환 목사의 자녀) 두 사촌이 힘을 합쳐 내놓은 책,『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은 이러한 대답에 의문을 가지게 할 것 같다. 문익환 목사를 통일 할아버지로 만든 그 밑바닥에는 문익환 목사의 아버지 문재린 목사와 김신묵 권사가 있음을 있는 그대로 그려주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한 가족의 역사를 넘어 한국 초대 교회 역사에 속하는 만주 지방의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기독교를 수용하고 신앙생활을 해왔는지 많은 자료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책의 저자 중의 한 명인 문영미 씨는 이 책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이 부분을 이렇게 말한다. “20세기 초의 만주의 여성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문영미 씨는 이 책이 문재린 목사와 김신묵 권사가 이미 기록해 놓은 회고록을 바탕으로 문익환 목사가 두 분을 모시고 풀어낸 구술 테이프를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구술 테이프를 듣고 있노라면, “웃음소리도 들리고 수유리 엿장수 가위소리도 들리고 참 정겹다”며 입가의 미소를 지어 보인다.

처음에는 할아버지 문재린 목사의 회고록과 구술 테이프를 풀어낼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 김신묵 권사가 임종하시며 “영미야, 건강하고... 교회 열심히 다녀라”는 말이 계기가 되어 신앙생활도 다시 하게 되고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해 공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기독교 초창기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문영미 씨는 대학원에 진학해서 여성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결국 그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이름을 얻게 되는 모습 등을 담아 할머니 김신묵 권사의 삶을 이야기 신학으로 풀어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문영미 씨는 이 책에서 “‘함경도의 실학정신과 기독교 정신이 만나서 사회 변혁적 기독교를 만들어낸 역사’를 보아주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도 실학을 강조하셨고 두 분도 직접 열심히 노동하셨다”고 하는 문 씨의 말에서 힘을 잃어가는 한국 기독교의 위상 회복이 어디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것 같았다.

▲ 구술 테이프를 듣고 있노라면, "세 분의 웃음소리도 들리고 수유리 엿장수 가위소리도 들리고 참 정겹다"며 입가의 미소를 지어 보인다. ⓒ 이정훈

▲ 책을 출판하고 요즘 근황은 어떤가?
우리교육 출판사에서 지난해 ‘어린이 책 작가상’을 수상했다. 동화책을 한 권 펴내려고 한다. 가제는 ‘우리 마당으로 놀러와’이다. 한 잡지에 기고했던 글이 기초가 되었다. 70년대에 새벽의 집을 했던 방학동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썼다. 이 집은 마당이 무척 넓었고 뒤에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그 마당에서 아이들과 할 수 있는 요리나 놀이, 계절의 변화, 새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 이번에 출판한 문재린 목사님과 김신묵 권사님의 회고록은 두 분이 이미 써 놓으신 회고록을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맞다. 1970년대 캐나다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작업한 것이다. 그것을 기초로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더 첨가한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남겨 놓으신 그 회고록은 초고 형식이고 글씨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이런 자료들을 보관만하고 있다가 문동환 목사님이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이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모 종교 잡지에서 할아버지 회고록을 투고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한신대 김경재 교수님에게 의논을 했었다. 그런데 김 교수님이 그 잡지에는 투고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당연히 한신대에서 내야 한다고 하셨다. 그것이 2004년 5월 즈음의 일이었다.

그보다 10년전 94년에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졸업 논문을 쓰면서 듣고 자란 것이 많아서 그런지 만주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할머니의 삶을 바탕으로 만주 지역의 초기 기독교 역사에 대해 논문을 쓰게 되었다. 할머니 이야기를 삼인출판사가 책으로 출판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사정이 생겨서 출판하지 못했다.

김경재 교수님께서 할아버지의 회고록이나 자료들이 방치되는 것이 안타까우셨던지 출판위원회를 조직해 책을 만들어갔고 출판사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나의 논문에 관심을 보이던 삼인출판사가 책의 출판을 맡아서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 문재린 목사님이 쓰신 회고록과 이번에 나온 책은 어느 정도의 분량의 차이가 있는가?
적어도 7-8배는 분량이 많아진 것이다. 두 분이 작성해 놓으신 회고록에 구술 테이프로 담겨져 있던 육성으로 된 내용들을 모두 풀어낸 것이다. 거기에 할아버지의 일기와 자료 등을 더 더한 것이다.

▲ 구술 테이프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인가?
원래 큰 아버지께서(문익환 목사) 할아버지의 회고록과 만주교회사를 정리하실 생각을 가지고 3분이서 한 상에 둘러앉아서 공동 작업을 하신 것이다. 웃음소리도 들리고 수유리 엿장수 가위소리도 들리고 참 정겹다.

어떤 때는 3분이서 공동으로 하신 부분도 있고 어떤 부분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 혼자서 독백으로 하신 부분도 있다. 큰 아버지가 감옥에 가셨을 때는 문호근 손자에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셨고, 호근 오빠마저 돌아가셔서 (문)성근 오빠에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가 워낙 방대하고 복잡하다. 중복되는 부분도 있었다. 큰 아버지와 처음으로 작업을 시작하신 것은 70년대 후반 그러니까 78년도 후반이라고 알고 있다.

▲ 논문은 어떻게 해서 김신묵 권사님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가?

▲ 문영미 씨는 이 책에서 “‘함경도의 실학정신과 기독교 정신이 만나서 사회 변혁적 기독교를 만들어낸 역사’를 보아주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 이정훈

할머니의 돌아가시는 그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유언으로 할머니께서 내게 “영미야, 건강하고... 교회 열심히 다녀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 때 나도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의 말씀도 그렇고 임종 모습에서 큰 감동을 얻어서 결국 한신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때가 94년이었고 큰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해였다. 수유리 캠퍼스에서 큰 아버지 장례식이 있었던 해였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여성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기독교 초창기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었다. 그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이름을 얻게 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내 논문에서는 겨우 할머니의 20살 정도까지밖에 다루지 못했다.

▲ 책을 준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20세기 초의 만주의 여성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특히 초기 명동촌의 기독교 수용의 모습이었다. 할머니께서 글을 배우고 싶어서 아버지 몰래 배우는 장면이나 호박씨 모아서 성경책 산 이야기 등이 참 감동적이었다. 재미있었던 장면은 할머니께서 그렇게 구입하신 성경책에 예수 이름이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알고 보니 그 성경책은 잠언이었다고 했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할머니께서 시집오시고 결혼 8일 만에 학교로 글을 배우게 보내신 것이나 마을 여성들이 모두 ‘신’자 돌림으로 이름을 얻은 이야기는 참 기억에 남는다.

▲ 할아버지, 할머니를 직접 대하고 생활도 하셨을 텐데, 그 때의 느낌과 책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느낌은 어떤가?
나는 할머니께서 70이 되던 해에 태어났다. 아버지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지난 시절에 대해서는 간간히 들었다. 특히 만주에서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을 들으면 막연한 관심과 호기심을 가졌었다. 그러다가 책을 위해 구체적으로 회고록도 보고 구술 테이프를 들으면서 북에서의 활약은 대단했었다. 그러나 남쪽에 내려와서는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이 고생이 많으셨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또 쉼 없이 일하시는 모습이 참 존경스러웠다. 두 분 다 다정다감하신 분들은 아니셨다. 자녀들에게도 그러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구술 테이프를 듣고 있노라면 자식에 대한 애정은 숨길 수 없고 애정이 많이 묻어나온다. 특히 1921년 대토벌 때 아버지(문동환 목사)를 임신하고 계셨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겠나 싶다.

▲ 책을 출판해 놓고 아쉬운 부분은 없나?
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지만 나보다는 영금 언니가 더 아쉬운 것이 많은 것이다. 워낙 꼼꼼한 언니다. 책도 기념회가 열리는 당일에 나왔다.

세세한 디테일들이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라 그 당시 만주와 간 역사의 한 부분이다. 그래서 생략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서 기록한 것이다. 너무 급하게 작업하느라고 교정을 조금 더 봤으면 하는 생각은 들지만 부족한 상태로나마 완성되었다는 것이 뿌듯하다. 너무나 오래 미뤄왔던 숙제를 끝낸 듯한 기분이랄까?

▲ 이 책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기장의 뿌리, 또는 한국 초창기 기독교의 역사이다. 함경도의 실학정신과 기독교 정신이 만나서 사회 변혁적 기독교를 만들어낸 역사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도 실학을 강조하셨다. 민중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학문의 실학이다. 두 분도 직접 열심히 노동하셨다. 그렇게 민중들을 위해 삶을 살다 가신 두 분의 삶은 단순히 개인의 삶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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