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슬픔이나 절망은 뒤로 하고 시신을 담보로 하여 병원비를 깍으려 하는 나의 모습 속에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병원비문제로 인해 이주노동자를 수술받도록 보증을 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모습 속에서, 점점 부채가 늘어만 가고 있는 센터의 재정 운영에 무기력한 모습 속에서, 그리고 아무리 외쳐도 응답하지 않는 정부의 안일한 이주노동자 정책에 좌절하는 모습 속에서, 나는 이주노동자의 생명을 존귀하게 생각하고 그리고 그들을 진정 사랑하는가 묻게 된다.

온가족이 모여 함께 즐거운 잔치를 준비하고 있는 한가위에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고국에 가지 못하고 더 외로워하고 있다.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한가위에 네팔가수 7명을 초청하여 대규모 위로공연을 하고 바다를 그리워하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동해안을 다녀오도록 기획하고 있지만, 나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가정 살림의 어려움으로 인해 후원자가 자꾸 줄어들고 있어 이미 1천 3백만 원이나 되는 부채는 앞으로 점점 더 늘어갈 것 같은데 근본적인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것보다는 어느새 이주노동자를 사랑하기 보다는 사업과 실적에 연연하는 자신의 모습에 더 절망하게 된다.

압둘 마지도씨가 심근경색과 그에 따른 폐부종 및 합병증으로 지난 8월 30일 사망하였다. 납부해야할 진료비를 마련하지 못해 시신을 방글라데시로 보내지 못하고 시신안치실에 보관된 지 13일째가 지났다. 병원비를 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이주노동자를 낫게도 하지 못하면서 결국 시신을 담보로 병원비를 받으려는 병원직원이 한없이 미웠다.

사람이 죽었는데 방글라데시 가족에게 치료비를 보태라고 할 수도 없어서, 의료공제회,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공동체, 방글라데시 대사관 등등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병원비는 쉽게 모이지 않았다. 결국 나 자신도 시신을 담보로 병원측이 답답하면 병원비를 깍아주겠지 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되었다.

치료비 때문에 시신이 담보로 병원에 잡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어느 한국인이 돈을 추후에 갚는다는 조건으로 자기의 카드로 대신 납부하여 시신을 인도받았다.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를 잃은, 방글라데시에서 시신을 기다리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나도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했다.

나의 가족이 그런 경우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서 치료를 한 병원에서 책임지고 병원비를 더 깍아줘야 한다고 기다릴까? 아니 시신을 담보로 하는 병원측을 미워하면서도 나도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 너무 부끄러워졌다. 자신도 돈이 없어서 카드로 대신 납부해준 그 분에게 한없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그와 비슷한 일이 또 발생하였다. 로빈씨는 지난 3월에 심근경색 및 심장질환으로 의정부 성모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아 5월에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으나 지난 8월 17일 같은 증세로 이 병원에 다시 입원하게 되었다.

압둘 마지드씨처럼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주치의 권고로 지난 9월 9일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하게 되었다. 이 때 병원측에서는 우리에게 보증을 요구하였다. 가뜩이나 어려운데 또 보증을 서라고 하니 참 난감하였다.

피하고 싶어서 그냥 직원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였다. 엄청나게 많이 들 병원비를 마련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하루 밤을 지내면서 결국 보증을 서도록 하였다. 살아있는 사람을 돈이 없어 그냥 죽이도록 보증을 서지 않는다는 것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서울대 병원측에서는 우리를 믿고 수술을 했다. 현재 수술까지 계산한 병원비가 총 2천 20만원이고 앞으로 중환자실에 나와서 퇴원할 때까지 얼마나 더 많은 병원비가 나올 지 알 수가 없다.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후원행사도 벌이고 모금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진정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이웃에게 따듯한 마음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다. 그리하여 생명을 살리고 사랑하는 내 자신이 되고 싶다. 추석 한가위의 넉넉함이 나에게 넘치기를 기원해본다.

최정의팔  SMCW@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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