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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투명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들
박철 | 승인 2018.10.05 22:02

시나브로 계절은 가을의 절정에 들어섰습니다. 창문을 열면 찬바람이 들어옵니다. 하늘은 파랗게 높아만 가고 먼 산도 확 트여 이마 앞으로 다가옵니다. 맑고 삽상한 바람을 피부가 먼저 알아 사람과 사연들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나는 그리움을 마음에 품고 산을 오릅니다. 부산은 어디에서나 산을 오를 수 있어 좋습니다. 내가 단골로 올라가는 산은 우리 동네 봉오리산과 이기대 둘레길입니다. 야트막한 산입니다. 산속 나무숲에 들어가 있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숲 속에 나를 맡기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세속의 모든 욕망이 사라집니다. 숲 속에 들어가 있으면 가장 솔직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의 실체를 거울 들여다 볼 수 있듯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각자들이 산으로 들어갔는가 봅니다. 숲에 들어가 자연을 통해 숲의 음성을 들으려면 침묵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욕망의 모든 찌꺼기가 내 속에서 떨어져 나가면, 자연의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 들꽃들의 인사소리를 듣습니다.

'노영희'이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운동이란 것이 끝내 허무와 환멸을 그에게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 뒤로 사람 만나는 것을 포기하고 혼자 운둔하며 살았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가량 산을 오르면 혼자 생각에 잠겼습니다. 3년쯤 된 어느 날, 그는 너무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분명 말을 건 것은 꽃이었습니다. 그때의 희열을 그는 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새와 대화를 했지요. 나는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듣고 그냥 혼자 소리거니 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실제적인 대화입니다. 우리는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다른 피조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 덮어져 있는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린다면 이 자연은 바로 하느님의 모습이며 우리들의 친구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생명의 세계입니다. 그 깨달음은 바로 신비이며 경외감입니다. 이 깨달음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내 속의 죄(罪)이며, 세속적인 욕심입니다. 세속적인 지식들이 우리를 덮어씌우면 우리는 장님이 되고 말지요. 지금 우리는 말과 글의 포화 상태에서 살아갑니다. 짐짓 나의 글과 말이 또 하나의 공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산과 바다와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자연인입니다.

아름다운 아침의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푸른 저 하늘, 황홀한 노을, 그리고 고요한 안식의 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즐거움과 안식을 주는 감사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들이마시고 있는 공기 한 모금 한 모금이 나의 생명력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한다면 진정 숨 쉬는 것조차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매일 10km를 묵상하며 걸으니 살이 빠졌다고들 합니다. ⓒ박철 목사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자연을 통해 배웁니다. 모름지기 자연은 삶의 교과서입니다. 교과서만 가지고도 공부는 충분합니다. 나는 산과 숲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에서도 하느님의 생명의 신비와 숨결을 느낍니다. 모두가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새벽녘 영롱한 이슬을 달고 있는 풀잎을 보십시오. 나뭇잎에 빗방울 떨어지는 것을 보며 살아 있음에 전율해 보십시오. 곱게 지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삶의 겸허함을 배워봅시다. 때로는 시멘트 구조물 속의 인공조명 아래서 나와 하늘에 걸린 달을 바라보기도 합시다.

아아, 너무도 오래 계절을 잊고 살았구나 하는 참회의 감정과 함께 풀벌레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봅시다. 무엇보다 저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내 생명의 빛을 함께 느끼고 바라봅시다.

가을 한복판, 하늘은 무한히 푸른빛으로 깊어지고 싱그러운 황금빛, 투명한 햇살 속에 산하(山河)의 얼굴은 씻은 듯 새롭습니다. 시인 김현승은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고 노래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그는 눈부신 가을 햇살 속에 드러나는 투명한 산하와 같이 그 내면에 자신의 실재성을 예리한 눈으로 보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박철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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