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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은 없음에서 생겨나는데” - 有生於無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40
이병일 | 승인 2018.10.08 21:36
“되돌아가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고, 약한 것은 도의 쓰임이다. 천하의 만물은 있음으로부터 생겨나고, 있음은 없음으로부터 생겨난다.”
- 노자, 『도덕경』, 40장
反者, 道之動, 弱者, 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되돌아가는 것은 근본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출발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되돌아가야 합니다.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모든 생명이 자기의 명을 다하면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계절입니다. 나무의 꽃과 잎이 떨어져 다시 거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생명이 싹틀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의식이 굳어져 있으면 다른 것을 배울 수 없습니다. 약한 듯이 열려 있어야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자기 것을 고집하지 않아야 클 수 있습니다. 도의 쓰임은 이러한 것입니다.

ⓒGetty Image

만물은 무엇엔가 있음에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물을 구분하기 전에 사물들이 아무런 구분도 없이 스스로 있는 상태가 무입니다. 무는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이 서로의 차별성을 가지지 않고 구별되어 있지 않은 것이 바로 무입니다. 유라는 것은 고정된 형체인데, 고정된 형체가 있기 위해서는 고정되지 않는 무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비어 있음에 의지해서 만물은 생성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길은 / 어디론가 통하는 모양이다
사랑은 미움으로 / 기쁨은 슬픔으로
생명은 죽음으로 / 그 죽음은 다시 한 줌의 흙이 되어 / 새 생명의 분신(分身)으로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 가만히 머무르지 말라고
길 위에 멈추어 서는 생은 / 이미 생이 아니라고
작은 몸뚱이로 / 혼신의 날갯짓을 하여
허공을 가르며 나는 / 저 가벼운 새들
​- 정연복의 “길 위에 서다”

가을의 낙엽을 보면서 다시 돌아감을 생각합니다. 봄의 희망과 여름의 융성함을 뒤로하고 다시 누군가를 기르는 거름이 되기 위해 돌아가는 낙엽의 모습은 끝없이 치닫기만 하는 인간들의 욕망을 비웃는 듯합니다. 한 개체로서의 인간은 천 년 도 아니고 길어야 백 년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물러나 다른 생명과 후손에게 길을 열어주면 그는 영원할 수 있습니다. 하릴없이 죽을진대 왜 그리 아둥 거리고 바둥 거리는지. 기왕 살고 죽을 바에는 너와 내가, 더불어 함께, 기쁘고 즐겁게, 행복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더 좋지 아니한가?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한 긴 여정을 시작하면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그를 따르지 않던 서기관들에게 자기를 돌아보라고 가르칩니다. “아, 믿지 않는 세대여!”라고 한탄 하면서 근본으로 돌아가 자기를 살피라고 합니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자기를 성찰하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에겐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는다는 말 속에는 현존하는 위기의 근원인 죽임의 세력을 내쫓기 위한 노력, 생명을 살리고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한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의 능력은 단순히 예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죽임의 세력을 내쫓기 위한 자기자신의 몸과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은 몸과 마음이 갈가리 찢겨서 파탄 지경에 놓여 있습니다. 이는 당대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의 세대를 위태롭게 하는 문제였습니다. 현재적인 위협과 미래 세대를 죽이려는 악령을 누가 어떻게 축출하느냐 하는 문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무리, 그리고 서기관들에게 논쟁의 꺼리를 제공하였습니다. 제자들과 서기관들의 논쟁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왜, 못하느냐?’ 하는 비난과 조롱이었고, ‘너희는 그 동안에 뭐했느냐?’ 하는 비판이었습니다. 그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보다는 서로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면서 자기의 능력 없음을 숨기고 있습니다.
한 공동체에 실재하는 위기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논쟁하는 것보다는 위기가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점검하고, 위험한 상태라면 그 위기의 상황을 궁극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함께 애쓰는 것이 더 건전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현존하는 문제와 위기의 책임을 누가 감당할지를 두고 논쟁하는 사이에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의 고통은 계속됩니다. 무리들은 악령에 사로잡힌 세대의 아픔을 하소연하면서 예수님께 구원(해방)을을 위한 처방전을 원합니다.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아, 믿지 않는 세대여!” 하고 한탄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소년의 아버지를 비롯한 무리나 서기관들(바리새파 사람들) 모두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논쟁의 축입니다. 논쟁이라 하면 죽임의 세력이 판치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어야 하는데, 어느새 핵심을 벗어나 있습니다.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서로를 비난하고 서로에게 실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현실적 상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세대여” 하고 말하면서 그들 모두에게 다시 자기를 보라고 합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무엇을 논쟁하느냐?” 중에서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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