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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화 되고 학문의 일이 되어 버린 사회주의 타락라가츠의 현실 사회주의 비판 3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 승인 2018.10.11 20:10

라가츠의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은 본질적으로 물질주의적 또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에서 기인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강조와 대립하는 올바른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이다. 그의 비판은 마르크스주의의 오류와 진리를 동시에 찾는다. 그는 마르크스주의가 간과했고 파괴했던 것들을 의도적으로 강조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의 판단은 라가츠에게 있어서 이중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부르주아화된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의 종교 비판, 유물론, 자연과학적 사고 방법과 역사의 발전론은 우선적으로 정당화되어지며, 필요하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근본 오류는 그의 기독교에 대한 투쟁이 하나님에 대한 부인과 인간의 정신적 숙명으로 이끌고, 그의 유물론이 정신을 버리고, 정신을 파괴하는 단순한 물질에 대한 신앙이 되었고, 그의 자연과학적 사고 방법이 세상과 삶의 모든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정신의 창조적 본질과 자유와 가치를 질식시키는 사고방식이 되었고, 그의 발전 신앙이 인간의 창조적 태도를 무시한다는 데에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근본 특징들을 형성하는 무신론, 유물론, 기계론, 다윈주의, 회의적 상대주의, 주지주의, 잘못된 낙관주의와 잘못된 비관주의는 라가츠에 의하면 부르주아적-자본주의적 세계관의 특징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의 물질주의적 세계관은 논리적으로 부르주아적-자본주의적 세계관과 일치되어진다.(미주 73)

부르주아적-자본주의적 세계관과의 결합은 사회주의의 비극적 오류일 뿐만이 아니라 세 가지 부정적 결과들을 가져왔다. 첫째. 사회주의는 이러한 방식으로 그의 적대자인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둘째. 사회주의는 이러한 방법으로 새 시대의 선구자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며, 정신적 퇴보자가 된다.(미주 74) 셋째. 사회주의적 전술은 사회주의적 세계관에 상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볼셰비즘에서, 폭력과 결합된 사회주의적 전술로 발전했다. 이 사회주의의 비극적 발전은 결과적으로 사회주의적 군국주의와 부르주아화된 사회주의가 되는 사회주의의 정신적 재난이다.(미주 75)

학문의 일로서 사회주의

사회주의는 라가츠에 의하면 이론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적 이상을 대표하는 운동이다. 사회주의 운동은 그것에 상응하게 이론이 아니라 선포자들의 모범적 삶을 통해서 영향을 미친다. 사회주의는 이렇게 그의 추종자들의 삶에 의해서 정당화되고 판단되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사회주의적 삶을 실천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부르주아적 자본주의적 세계관과의 결합을 통해서 학문의 일이 되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를 성향이 아니라 학문으로 이해한다. 그는 사회주의의 도래에 관한 신념을 도덕적 신앙이 아니라 사적 유물론의 이론에 기인하도록 만들었다.(미주 76)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적 사회주의와 대시민적 사회주의가 되었고, 또한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과학적 사회주의는 개인의 긍정을 사회주의의 극단적 이해와 윤리적 또는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로 간주한다. 따라서 과학적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를 개인적인 생활 태도의 이상이 아니라 사회의 변혁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미주 77) 사회주의는 결국 대중을 우매하게 만드는 지도자들에게 종속되었다.(미주 78)

그러나 사회주의는 라가츠에 의하면 인간적 삶의 새로운 이상과 성향이다. 그로부터 사회주의적 실천에 대한 요구가 나온다.

“사회주의는 사실 인간적 삶의 새로운 이상이다. 그의 모든 개인적 요구들은 이 이상으로 말미암아 그 권리를 가진다. 만일 이 권리가 없다면, 그 요구들은 모든 의미와 모든 힘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전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사회주의는 성향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없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성향은 실천 속에서 증명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향은 아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없는 것만 못하다.”(미주 79)

마르크스주의는 개인적인 양심을 저평가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개인성의 원사실을 위한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마르크스주의는 그 때문에 개인의 권리와 가치에 대한 깊은 확신에 근거한 민주주의를 위해 올바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마르크스주의는 오히려 자유의 심각한 위협이 되어진다.(미주 80)

라가츠는 사회주의적 질서가 발전의 변증법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행동에 의해서 자본주의의 단 한번 붕괴로 건설될 수 있다는 “과학적 유토피아주의자”들의 주장을 거절한다. 우리가 사회주의적 이상과 상응한 성향이 없이 사회주의적 질서를 건설할 수 있고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이상은 성향 속에 살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나 성향은 단순히 발전의 일이 아니라 의지의 일이다. 성향은 개인적인 감정과 양심의 일이다. 그는 삶 속에서 표현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없는 것만 못하다.”(미주 81)

라가츠의 성향으로서 사회주의에 관한 사상은 본질적으로 창조적 정신과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인간의 창조력에 대한 신뢰에 근거한다.(미주 82) 사회주의적 생활 태도의 강조는 그 당시에 사회주의자들의 사회주의적 삶과 관련이 있다. 사회주의는 부르주아적-자본주의적 세계관과의 결합을 통해서 “부르주아의 자가용”에 착석했다. 사회주의적 삶은 부르주아적-자본주의적인 문화적 이상들을 받아들임으로서 변질되었다.(미주 83) 라가츠는 이러한 근본 특징을 특별히 볼셰비즘에서 보았다. 볼셰비즘의 문화적 이상들은 대부분이 가장 나쁜 방식의 부르주아적 저질 문화이다. 볼셰비즘은 문화적 임무를 새로운 사회주의적 또는 프롤레타리아트적 생활 양식의 창조가 아니라 부르주아의 자가용에 착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미주 84)

미주

(미주 73) L. Ragaz, 『Von Christus zu Marx, von Marx zu Christus』, Hamburg: Furche, 1972, S. 29 ff. 또한 S. 35. 115를 참조하라.
(미주 74) A.a.O., S. 34 f.
(미주 75) A.a.O., S. 36 ff.
(미주 76) A.a.O., S. 119.  “그러므로 사회주의는 이 해석에 의하면 양심이 아니라 학문의 일이다.”
(미주 77) A.a.O., S. 108.
(미주 78) Weltreich Bd. 2, S. 22.
(미주 79) Von Christus zu Marx, S. 109-110.
(미주 80) L. Ragaz, “Zur Kritik des Marxismus”, S. 57-58.
(미주 81) Von Christus zu Marx, S. 110.
(미주 82) 북한의 주체사상(사회주의 또는 이데올로기)도 성향으로서의 사회주의라고 생각한다. 주체사상의 출발점은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와는 다르게 인간의 창조력과 자주성이다. 역사는 물질적 관계를 통해서 발전할 뿐만 아니라, 우선적으로 인간의 창조적 정신을 통해서 발전한다. 그러나 인간의 창조력과 자주성의 일방적이고 극단적 강조는 특별히 수령론과 관련해서 영웅주의적 역사관에 빠질 위험이 있다. 주체사상은 마침내 가족 사회주의(Familie-Sozialismus)로 전락했다.(vgl. Kim, Il-Sung, Ausgewälte Werke, Bde 1.2.4. (Hrsg.) von dem Verl. der Partei der Arbeit Koreas, Pyongyang 1974-1978; ders., Selected Works, Bde. 3.5.7. Pyongyang 1972-1979; ders., Über Dschutsche in unserer Revolution, 3Bde, Pyongyang, 1979)
(미주 83) Von Christus zu Marx, S. 109. 라가츠는 여기서 헨드릭 데 만(Hendrick de Mann)의 “사회주의의 심리학에 관하여”라는 책을 인용한다.
(미주 84) A.a.O., S. 115. 또한 S. 112 도 참조하라.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jena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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