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분들 대부분은 성서를 신화라는 단어를 사용해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신화라는 말 자체에서 풍기는 “가짜” 혹은 “지어낸 이야기”라는 느낌이 그렇다. 신화라는 말 속에 실제로 그런 뜻을 담고 있는가 하면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던 고대인들의 노력, 신화

세계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그 민족의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가 있다. 이와 같은 신화는 비록 민족의 기원뿐만 아니라 우주 생성과 자연 현상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신화로서 그 민족의 초창기인 고대 사회에서 연유되었다. 고대인은 어린아이처럼 자신들의 주위 사물 만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다. 어린아이가 자기가 보고 만지는 사물의 의미를 알기 위해 “엄마, 이게 뭐에요?” 혹은 “왜 그래요?” 하고 질문을 하듯, 고대인들 역시 자신들의 주위 우주 창조의 신비에 대해 어떤 물체가 왜 거기에 그렇게 있게 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신화의 형태로 전해진 것이다.

고대인의 초기 시(詩)나 이야기는 굉장히 운율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다. 그들은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마치 어린아이들의 이야기에서처럼 여기에는 실제와 가상의 구별도 없고, 문자적 진리와 상징의 구별 또한 없다. 고대인들에게 추상적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우주 창조의 질서와 생명의 신비까지도 심오한 철학적인 사고(思考)나 논리적인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구체적인 그림으로 단순하게 묘사했다.

대부분의 신화는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으며, 천체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는 자연 현상에 대해 놀라움을 풀어주는 창조적(cosmological) 이야기들이다. 그밖에 부족과 종족의 기원이 무엇인가를 설명해 주는 민족적(ethnological) 이야기도 있다. 또한 어떤 물체의 특이한 모습이나 사회적 관습 또는 이름의 원인을 설명해 주는 원인론적(aetiological) 이야기들도 있다.

세계의 각종 신화들

창조에 관한 신화에는 인간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인간을 세상에 보내기 위해서 하늘나라 신의 세계에서 인간을 창조하도록 책임을 맡은 어떤 신이 처음에 돌로 인간을 만들었으나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신들에게 거절당하고, 둘째로 철로 만들었으나 마찬가지였지만, 셋째로 진흙으로 만들었을 때 비로소 말을 하기 시작해 계속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신은 진흙으로 어린아이를 다 만든 다음 신들 앞에 가져갔다. 그때 신들은 그 어린아이에게 무엇을 가지고 놀고 싶으냐고 물어서 “칼”이라고 대답하면 즉석에서 그 아이를 남자라고 명명하여 지상에 보내고, “물레”라고 대답하면 여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밖에 달과 별의 창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다. 동물들이 밤만 되면 모두 춥고 무서워 떨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숲속의 동물들은 회의를 열고, 해에게 가서 빛을 밤에도 조금 나누어 달라고 간청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해가 마주 보이는 땅 위의 제일 높은 언덕 위에, 맨 먼저 산양이 올라가 해에게 호소를 하지만 그의 청은 거절되었다. 그 다음 곰이 가서 큰 소리로 호령하지만 해를 당해낼 수 없고, 또 간교한 뱀이 살살 달래도 해는 말을 듣지 않았다. 모든 동물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조그만 토끼가 자원하고 나섰다. 토끼는 거기서 청이 거절된 것을 알고 난 다음 갑자기 껑충 뛰어 해의 한 부분을 물어뜯어 자기 입 속에 물고 줄달음쳤다. 거의 동물들이 사는 숲속 가까이 왔을 때 토끼는 너무 지쳐 언덕 위로 굴러 떨어지면서 입에 문 해 조각이 산산이 깨지게 된 것이다. 토끼가 그 깨어진 조각 중 가장 큰 것을 집어 공중에 던지니 그것이 달이 되었고 나머지 조그만 조각들은 별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민족적 신화에는 왜 어떤 민족은 얼굴이 까맣고 혹은 하얗고 또 노랗냐 하는 의문의 대답으로, 황색인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나온 것이 있다. 신이 처음에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그가 만든 진흙을 화덕 속에 넣어 놓고 기다리다가 너무 불이 뜨거워 잠시 바람을 쏘이고 돌아와 꺼내보니 새까맣게 탔고, 그 다음에는 실수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시간이 되기도 전에 꺼내보니 아직 덜 구워져 하얗게 되었고 마지막엔 정말 정신을 잘 차려 공을 들여 구원 것이 결국은 황색인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구스타브 도레, “빛의 창조” ⓒGetty Image

그리고 원인론적 신화로는 이런 것이 있다. 동네 어구의 높은 언덕이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느냐 하는 질문의 대답으로, 예전에 심술궂은 어느 거인이 동네 사람들을 다 몰살하기 위해 부삽으로 큰 흙을 한 줌 떠서 동네로 들고 오다가 그 동네 입구에 왔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벌이 날라와 쏘는 바람에 한쪽 손으로 벌을 잡으려다가 그만 그곳에 흙이 다 쏟아져 큰 언덕이 되었다고 한다.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 역시 왜 이 세상에 그와 같은 많은 언어가 생기게 되었는가 하는 원인을 설명해 주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구약성서의 신화들과 그 신학

이와 같은 신화적 성격의 이야기들이 성서에도 많이 있다. 성서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는 이름 그대로 세상 창조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 실려 있는 아담과 하와의 창조 이야기, 가인과 아벨의 살인 사건, 노아 홍수 이야기, 바벨탑 이야기 등을 성서학자들은 원역사(原歷史, Urgeschichte)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이 부분이 역사 이전의 신화적인 성격의 이야기들이라는 것을 뜻한다.

실재로 원역사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처음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그 당시 고대 근동에서 가장 먼저 문명을 발전시키고 강대했던 메소포타미아에서 빌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말을 뒷받침 하는 성서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감사제 때 드리던 신앙고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아브라함 종족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서부 팔레스틴 쪽으로 이주해 올 때 가져 온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이어져 여러 세대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역사가 정립될 무렵 이와 같은 원역사가 이스라엘 야웨 신앙의 영향을 입어 결국 이스라엘 신학으로 변화된 셈이다. 다시 말해 이전까지는 고대 근동의 다신론적 배경 하에서 창작되고 전승되던 이야기들이 이스라엘의 유일신적 사상에 편입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학체계를 구축한 이들을 성서학자들은 야웨 기자라고 불렀다. 야웨 기자란 용어는 영어로 Yahwist라고 표기하는대, 이것은 구약성서, 특히 창세기의 어느 부분에서 신의 이름을 야웨(Yahweh)라고 쓰기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구약성서학자들은 야웨 기자가 쓴 문서를 J문서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독일에서도 그러하거니와 중세 영어성서에서 신의 이름을 Jehovah라고 한 말의 그 첫 자를 따라 부른 것이다.

야웨 기자는 일반적으로 다윗과 솔로몬 왕국시대 국가가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고, 또 문화적으로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주체성을 인식할 무렵 자기 민족의 기원을 더듬어 보는 역사 정비 작업을 시작할 때 활동했던 사람들이라고 학계에서 보고 있다.(미주 1) 또한 구약성서학계에서는 이 야웨 기자가 출애굽 사건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은 하나의 신앙공동체로서 이룩된 민족이라고 여기고 그 출애굽 사건에서 주된 역할을 했던 야곱과 또 그의 조부 아브라함에게까지 소급해 하나의 질서정연한 이스라엘 민족사를 정리한 사람들로 정의한다. 그러나 야웨 기자는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자기 역사를 세상 창조에까지 소급시켜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세상 창조의 하나님과 동일시함으로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적인 이념을 우주적인 차원으로 연결시켰다고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여기에 야웨 기자가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끌어들였다는 것으로 본다. 야웨 기자는 창조와 에덴동산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최초의 사람들(원시조,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과 그로 인한 형제 살인, 그리고 인간에게 지워진 저주에서 끝내는 홍수로 인한 인류의 전멸과 비록 노아의 가족들이 구원을 받기는 하지만 또 다시 노아의 아들 가나안의 저주로 인간의 죄악은 다시 온 땅에 만연하고 결국 바벨탑의 혼돈에 이르는 것으로 정리했다. 바벨탑 사건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 혼돈을 일으키는 모습은 세상 창조 때 땅을 뒤덮은 혼돈과도 방불한 무질서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어둠의 연속은 드디어 아브라함에게 와서야 참 빛을 보게 되는 것으로 야웨 기자는 정리한다.

야웨 기자는 여기에서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축복을 이제까지의 모든 저주를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한 것으로 기술한다. 모든 인류의 구원이라는 커다란 주제가 온 우주적인 시간으로부터 시작했지만 그 길이 점점 좁혀져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 이르고 그로 인해 다시 온 인류에게까지 뻗어나가는 것으로 등장한다. 원역사는 인류 구원이 택함 받은 민족인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과 관련된 것으로 정리한 것이 야웨 기자이다.

이제 이와 같은 신학적인 입장에서 그려지고 색칠된 구약성서의 신화를 일정한 문학양식을 가지고 있는 문학작품으로 보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찾아보는 구약성서의 독서는 즐거운 일일 것이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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