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자본주의, 위태로운 개신교, 그 공동 운명에 관하여

주문도 하지 않는 책이 내게로 왔다. 자자는 물론 역자, 출판사도 모두 낯선 책 『위험한 자본주의』가 강원도 횡성 주소로 보내진 것이다. 평소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삶의 방식으론 인류 미래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때마침 적합한 책을 만나 단숨에 읽었다.

저자 아키히로는 자국 일본에서 마르크스 연구자로 손꼽히는 사람이라 한다. 마르크스 『자본론』을 가장 깊이 읽게 독해한 학자란 평가도 받았다. 사회주의 실험이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고 여기며 자본주의 종말이 점쳐지는 현실에서 마르크스 부활을 조심스럽게 예견하고 있다. 이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치열한 비판을 통한 제언이기에 귀담아 들을 부분이 많다.

본 책에서 저자는 자본주의가 개신교적 에토스에서 생겨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혀주었다. 상식이 된 M. 베버의 시각을 전유하여 양자 간의 공속(共屬)관계를 흥미롭게 밝혀 준 것이다. 특히 아시아적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저자는 향후 개신교와 자본주의가 함께 역사 배후로 사라질 것을 진단했다. 신학자로서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적지 않으나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 개신교 의 재구성을 도모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다음 말로 책을 시작했다. “항아리 속에선 항아리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볼 수 없고, 게신교 아에서 개신교를 볼 수 없다는 말이겠다. 이점에서 아시아적 마르크스주의자의 시각이 많이 궁금하다.

서구 근대 시기 성립된 자본주의는 봉건 지주들이 자본가로 탈바꿈하면서 시작되었다. 지주가 자본가로 옷 바꿔 입은 세상이 근대의 일면이다. 현물로부터 화폐로 교환수단도 급격하게 달라졌다. 봉건시대 지주들은 재산을 소비할 줄 알았다. 값비싼 예술품을 구입하여 예술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근대 자본가들은 검소를 미덕(?)삼아 돈을 모으는 데만 치중했다. ‘소비하지 않고 투자만 하는’ 자본가를 멜서스(1766-1834)라 경제학자는 문제 삼을 정도였다. 여기에는 이동(移動)이 쉬운 화폐 탓이 컸다. 화폐로 바꾸면 얼마든지 축적이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화폐경제는 애초부터 세계화와 분리되기 어려웠다. ‘본원적 축적’, 이것이 마르크스가 본 자본주의의 근원적 병폐라 하겠다. 주지하듯 16세기에 접어들며 서구는 대륙 각지에서 엄청난 돈을 착취했다. ‘본원적 축적’을 위해 남의 것 착취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최초의 자본가는 남의 것을 빼앗는 도둑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자본 증식을 위한 또 다른 요소는 노동력이었다. 땅을 빼앗긴 농민들이 도시의 값싼 노동자로 전락시켰다. ‘자유’라는 미명하에 노동력이 상품화된 것이다. 이를 위해 근대서구가 내건 이념이 ‘개인주의’였다.

저자는 개인으로서의 ‘자유’가 자본주의의 토대이념이란 것을 강조했다. 자본, 노동, 자유 이 셋이 자본주의를 본격화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는 사실이다. 자유를 앞세운 근대 개인주의가 자본주의 지탱 원리였다는 것은 충격이다. 자본주의와 짝한 서구 개인주의의 폐해는 후술할 신자유주의 체제 비판 속에서 여실히 밝혀질 것이다.

초기 자본주의는 국가체제 속에 존재했다. 대략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엽까지는 그리했다. 저자는 유독 유럽대륙에서 자본의 고도집적이 가능했던 이유를 물었다. 작은 규모로 나눠진 국가들이 상호 경쟁하며 성장한 탓이라 했다.

하지만 이후 자본주의는 세계화된다. 미국형 세계화라고 불리기도 한다. 본래 자본주의 테두리 밖에 있던 러시아와 중국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가치를 증식치 못한 활동은 결코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화폐(자본)만을 좆는 경제체제가 세계적으로 구축된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소위 무산(無産)계급인 중류층, ‘화이트칼라’, ‘프티 부르주아’로 불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이들 새로운 노동자들, 무산계급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울까?

저자는 『21세기 자본』의 저자 피케티의 분석에 근거, 이들에게 돌아갈 파이 크기의 왜소함을 적시했다.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이익 환원율이 점차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자본을 투입해 환원되는 이익률이 작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한계를 예시한다. 이익률이 제로에 근접하면 자본주의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한계에 직면한 자본주의는 자기 생존을 위해 비용절감을 꾀했고 그 일환으로 노동자 임금체계를 바꿨다. 비정규직 체제를 도입했고 값싼 노동력을 찾아 세계 곳곳을 누볐으며 헐값의 외국인 노동자를 유입시켰다. 그렇기에 전 세계적으로 임금이 하향 조정되는 중이다.

중산층 환상을 지녔던 노동자들 또한 지금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노동자의 노력만으로 잘 살 수 있는 시대가 지난 것이다. 지금껏 소유가 자유였고 개성을 들어냈으나 소유가 줄어들며 민주주의도 위협을 받게 되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의 확대에 근거한 서구 민주주의의 붕괴가 우리들 현실인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위기와 함께 노동도 그 가치를 잃었다. 자본주의 한계는 오로지 노동 가치를 가로채 자본을 축적한 자본가들 탓이다. 문제는 이런 자본이 상속된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 자본가들 85명의 총자산이 35억 만 명의 자산과 등가라니 자본주의 병폐는 해결될 여지가 없다. 부와 가난의 대물림, 이것이 존속되는 한 인류 미래는 없다.

자본주의의 멸망을 막기 위해 저자는 상속제도, 즉 ‘사적 소유권의 제한’을 강력히 촉구했다. 자본 상속 제한으로 불평등한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를 살리는 길이란 것이다. 이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유효하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이런 힘이 있을지 회의한다. 더구나 기독교란 종교가 자본주의적 애토스를 뒷받침하고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자본이 추구하는 것은 이익뿐일 것이다. 이미 국가를 초월했기에 자본(주의)은 나라 살림에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 삼성 주식의 상당량이 외국 자본인 것을 여실히 깨달을 때이다. 국가와도 인연을 끊고 독자적 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자본임을 명심하면 좋겠다.

향후 금융자본이 대세란 말도 이/저곳에서 들리곤 한다. 그간 축적된 자본이 금융이자를 산출하기에 기업은 여전히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이자율이 높아지면 자본은 주저 없이 몰려들게 되어 있다.

그러나 금융 산업도 결국 세계 경제가 성장해야 지속될 수 있을 뿐이다. 화폐 양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방식도 이제 끝났다. 세계가 인플레 되었기 때문이다. 이젠 실물경제도 주택산업도 더 이상 자본주의를 존속시킬 수 없다. 지금껏 전속력을 다해 질주하던 자본주의가 지금 고사 직전에 있다.

서구 근대는 상술한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 교육제도를 만들었다. 자본주의 질서 구축을 위해 교육이 도구가 된 것이다. 유능한 노동자가 유능한 소비자가 되어 자본 증식에 일조하기에 길들여진 인간이 필요했다. 대학교육은 자본주의에 합당한 인재양성을 위한 마지막 공정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경제가치 없는 학과를 폐쇄하는 대학들이 생겨났다. 삼성이나 두산 같은 대기업들이 대학을 인수하여 행한 짓거리이다. 반면 자본 부족한 영세대학들은 스스로 취업에 몰두하는 전문대학으로 영락해갔다. 이 과정에서 민주화란 명목 하에 교육을 균질화시켰고 자본주의 체제를 뒷받침했다. 소위 ‘어른의 사고력’을 이 사회가 원치 않았던 것이다. 오로지 평균적 대중들을 양산하여 그들의 불안과 욕망을 부추기면서 자신들 이익을 추구하면 그뿐이었다.

이런 현실에서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면 체제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일하며 소비하는 기계 이상의 삶을 살려면 생각해야 한다. 자기 시간을 재생산을 위해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가능한대로 적게 일하고 적게 소비하는 삶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일신교 중에서 유대교와 이슬람은 자본주의를 만들 수 없었다. 오로지 기독교만이 그를 출현시켰다. 저자는 베버를 전유하여 기독교적 ‘개인’ 발견을 원인이라 말했다. 종교개혁 시기가 강조한 세 개의 ‘오직’(Only) 교리가 그 실상이다.

본 장에서는 자본주의와 기독교(개신교)의 관계가 핵심이다. 하지만 이 주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관계를 경유한다. 주지하듯 자본주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가능타고 여겨졌다. 민주주의가 개인 자유를 보장했던 탓이다.

그러나 정말 자본주의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일까? 경제와 정치의 분리는 근대국가의 핵심 중 하나이다. 하지만 본 체제에서 정치적 평등은 경제적 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이런 불평등의 근원을 개인 자유에 근거한 상속권에서 찾았다. 상속권이 보장되는 한 부(富)의 재분배가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탓이다.

프랑스 혁명은 종교개혁 정신에 입각해 정교분리는 이뤘으나 부자가 부자로 머물 자유도 보장했다. 하지만 축적된 부(자본가)는 정치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정치 이면에서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자본가 집단이 탄생한 것이다. 이로써 정치와 경제는 한 배를 타고 말았다.

기업경제에 유리한 방향으로 뭇 법이 개정 중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조차 삼성 같은 대기업에게 은행을 세울 수 있도록 (銀産분리)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인권만큼 소중한 개념이 없다. 하지만 자본이 좌지우지 하는 한 민주주의는 인권을 책임질 수 없다. 경제적 불평등이 항존 하는 까닭이다. 굶주린 배속에 들어가는 음식이 무엇보다 인권의 핵심이자 본질일 수밖에 없다. 결국 개인의 자유(민주주의)를 근거로 자본주의가 태동되었으나 자본은 인권을 보장하지 못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개인, 자유란 개념이다. 유일신을 표방하는 종교개혁 전통에서 神/人의 분리는 아주 철저했다. 신과 마주한 인간, 그런 존재가 개인이고 그 속성이 자유이다.

반면 아시아의 경우 神/人 사이의 간격이 부재한다. 일상에 神이 존재하기에 개인이란 개념이 발전되지 못했다. 오히려 상호적 공동체성을 각인시켰다. 神/人 분리를 전제한 기독교의 경우 특별한 시공간에서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자신들 종교성을 표현했다. 하지만 아시아적 종교인들의 경우 신앙의 일상적 실천이 중요했고 그를 으뜸가치로 여겼다.

이렇듯 神과 분리된 존재로서 인간의 독립성(개체성)에 무게를 둔 기독교는 실천보다 이론을 중시했다. 소위 경전종교로 발전된 것이다. 영성이 아니라 神에 대한 토론과 의견이 신앙의 표현이 된 것이다. 저자는 이를 서구 합리주의가 발전한 토양으로 이해했다. 이론화될 수 없는 것을 학문, 신앙으로 수용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이런 기독교는 공동체를 혐오했다. 기독교에게 공동채는 봉건적 가치로 여겨졌다. 개인의 해방과 개인으로서의 정치조직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런 공동체적 가치를 고도로 시스템화 한 것을 공산주의라 했다. 기독교가 자본주의를 옹호하면서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근원적 이유도 저자는 여기서 찾았다.

기독교가 공산주의를 끝까지 인정치 못한 것은 ‘사적 소유’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개인 및 자유의 인정은 사적 소유의 인정과 다를 수 없었다. 공동체 사회가 되면 개인 간 대립이 사라질 것이고 나아가 개인 이란 개념도 실종될 것인바, 그에게서 비롯된 자본주의, 그리고 神/人 대립에 터한 교회의 존재도 결국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세계가 이처럼 공동체성을 선호할 경우 기독교의 권력기반은 졸지에 허물어질 수 있겠다.

하지만 기독교를 공동체와 적대적으로 보는 저자의 시각에 적극 동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아시아인 비(非)기독교인으로서 마르크스주의자인 저자의 시각에서 기독교가 이렇게 보여 진다면 깊이 숙고할 일이다.

이처럼 사적 소유는 처음부터 기독교 사회와 나뉠 수 없는 개념이었다. 신학적으로 뒷받침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듯싶다. 기독교가 神과도 분리된 ‘철저한 개인’을 상정한 탓에 자본주의가 정착했기 때문이다. 토지로부터 개인을 이탈시켜 노동자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유를 빌미로 개인주의가 철저히 요구되었다. 횡적인 유대(무리)로부터 분리시켜 집단화 못하도록, 오직 노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독교가 도운 것이다. 이점에서 저자는 기독교와 자본주의가 근대 이후 놀랍도록 공조체제하에 있었음을 적시해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떠받치는 기독교 세계를 부정하기 쉽지 않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민주주의 제도, 인권 나아가 우리들 대상 자체를 포기하는 일로 이어진 탓이다. 사적소유를 공동체(국가)를 위해 포기하는 일까지 감당해야만 할 것이다. 유산상속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이를 실행하는 것은 야만이자 퇴행으로 비춰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철저히 개인화시키는 것이 진보일수는 없다. 중세 봉건사회를 암흑시기로 보는 것은 근대에 생겨난 직선제 사관의 편견일 뿐이다. 이 때만해도 부(富)를 재분배하는 합리적 시스템이 존재했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여겼기에 축적된 富가 교회로 기부된 것이다. 부자의 기부로 교회도 부자 되었으나 중세의 뭇 예술품들이 세워졌다. 가난한 이들도 얼마든지 도울 수 있었다. 이로써 돈은 소비되었고 축적되지 않았다.

하지만 루터에 이르러 상황이 달라졌다. 돈에 대한 개인 권리를 인정해 준 것이다. 교회에 바치지 않고 개인적으로 사용해도 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돈을 쌓아 둔 채로 천국갈 수 있는 길을 보장해 준 것이다. 이렇게 프로테스탄티즘은 자본주의를 만들어 냈다.

이점에서 저자는 루터를 오히려 이단자로 여겼다. 상속을 합법(종교)적으로 인정한 근대적 민주주의, 그것은 참된 민주주의일 수 없다. 정치와 경제의 완전한 평등을 이룰 수 없었던 탓이다. 이후 사회주의(운동)가 생겨날 토양을 제공했다. 사람들은 초기 마르크스주의를 이런 선상에서 이해했다. 마르크스주의를 자본주의의 대체물로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마르크스를 서양이 아닌 동양적으로 독해할 것을 주문했다. 아시아적 공동체의 필터를 통해 마르크스를 재사유하란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를 서양 형 민주주의와 영합시켜 세계화를 추동한 서구 사회당세력과 단절키 위함이었다.

본 책 후반부에서 저자는 세계화를 주제 삼았다. 이를 세계 일체화, 혹은 세계 규모화의 줄인 말이라 하였다.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틀거지 하에서 움직인다는 뜻이겠다. 마르크스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시스템을 다룬 책으로서 세계화의 주제를 다뤘다. 자본의 자기 증식문제와 이에 수반되는 두 계급간의 갈등 및 투쟁을 다룬 것이다.

『공산당 선언』 또한 세계가 단일 시장화되는 필연적 상황을 언급했다. 세계화 없는 자본주의를 생각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였다. 자기 증식 및 확대를 위해 자본주의는 세계화와 필히 표리일체가 될 수밖에 없다. 거대한 세계시장을 자본주의가 놓칠리 없는 까닭이다.

이를 위해 원자재를 비롯한 노동력, 심지어 소비까지 해외에서 조달하고 해결했다. 자유무역체제(FTO)로 인해 자본주의의 세계화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여기서의 자유는 일부 자본가에 해당되는 개념일 뿐이다. 노동력 착취는 노동자의 삶의 질을 망가트릴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는 이런 자본주의 체제가 끝까지 지속되어 망할 것을 기대했다. 두 계급간의 투쟁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동서 냉전 체제 붕괴 후 세계화로 인해 계급 간은 물론 국가 간 소득차가 확대, 재생산되었다. 선진자본주의국가들 숫자가 G7에서 G8 지금은 G20개까지 늘었다. 이는 빈국(貧國)의 숫자도 함께 증가함을 뜻한다. 세계화 과정에서 다국적 기업은 인수합병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富를 약탈하기 때문이다.

이 땅의 쌍용 자동차, 외환은행이 그렇게 수탈당해 왔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돈을 좆는 이들로 인해 초토화된 개발도상국 숫자가 적지 않다. 동시에 미국 리만 브러더스 사태, 최근 한국의 GM 자동차 사태에서 보듯 자기 손실을 국가에 떠넘기는 몰염치함이 이들 다국적 기업의 실상이다. 자본주의의 세계화로 인해 세계에 드리운 어둠이 이처럼 너무 짙다.

목하 세계는 새로운 ‘제국’의 시대에 돌입했다. 앞서 말한 G7이 다스리는 세계질서를 일컫는다. 세상은 지금 선진자본주의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로 양분되었고, 전자가 후자를 자본의 힘을 비러 지배하고 있다. 이때의 제국은 의당 이전의 제국주의와 크게 다르다. 다수의 제국이 있고 그들 간의 패권전쟁을 야기한 제국주의시대와 달리 세상은 지금 자본주의 체제라는 하나의 제국에 편입되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이 ‘제국’적 이익의 상호연계성을 흩어놓았다. 세계 경찰을 자임하며 중동을 비롯한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킨 탓에 자국 내 재정 및 무역적자를 초래한 탓이다. ‘제국’적 중심을 되찾기 위해 미국은 러시아, 중국을 비롯해 신흥국 시장에 과한 눈독을 들였다.

세계 자본이 중국과 러시아에 과도하게 집중, 투자됨으로써 세계는 지금 비정상적인 경제 성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비대해진 중국과 러시아 경제력에 세계가 목줄을 건 상황이 된 것이다. 이들 두 나라도 ‘성장(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서 내려올 수 없어 자본주의를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이것이 보호주의로 돌아선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세계의 현실이다. 목하 세상은 미국이란 제국과 두 개의 신흥 제국간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점에서 저자는 네그리의 『제국』이 낡은 이념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주목할 바는 이들 두 신흥 제국이 과거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했었다는 사실이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였던 이들 두 나라는 소비, 노동 시장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좋은 먹잇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 나라의 문화는 미국적 서구에 동화될 만큼 결코 약하지 않았다. 문화적으로 서구와 동화될 수 없는 국가였던 것이다. 자본주의에 유연, 적절하게 응할 수 있음에도 기독교 문명을 대신할 힘 역시 소유했다. 이점에서 저자는 마르크스 사유에서 오리엔탈리즘 성격을 벗기는 일에 관심한다. 서구 기독교와 거리를 둔 아시아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시작한 것이다.

주지하듯 세상에는 서구적 민주주의와 인권 사상이 만연해 있다. 앞서 보았듯이 이 두 개념은 자본주의와 짝을 이뤘다. 하지만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자본주의가 한 몸을 이뤄 세계 곳곳에 자리를 펼칠 경우, 그 때가 세상의 종말이겠다. 이 시기까지 자본주의는 살아남을 것이다.

지금껏 서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앞세워 동양을 정복했다. 물론 자본주의와 더불어서 말이다. 이로써 서양은 동양을 정의했고 서양적으로 이해된 동양이 탄생되었다. 세계가 마르크스주의와는 반대방향으로 진척된 듯싶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종교와 주의(主義)를 초월한 거대한 흐름, 즉 오리엔트 문화가 다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이점을 파악했다. 세계화 과정에서 서양가치관이 동양을 지배하겠고 서양(유럽)화한 러시아가 생겨날 것이나 러시아는 본래 몽골(아시아)적 유산을 받은 국가였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의 다음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 양식은 서양에 한정된다. 나(마르크스)는 서양의 농업문제, 서양의 공업문제를 연구해왔으므로 그 이외의 나라들, 즉 러시아나 다른 아시아 나라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직은 한시적 이론이라 보는 것이 옳다.”

러시아에는 서구 자본주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붕괴치 않은 농민공동체(미르, mir)가 있었음을 마르크스는 늦게 자각한 것이다. 공동체가 살아 있다면 그를 근거로 새로운 사회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공동체를 중심하여 자본주의 없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가능타고 본 것이다. 그가 50을 넘긴 나이에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이런 선상에서 이해할 일이다.

하지만 소련 사회주의는 러시아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었다. 서구(영국)를 좆아 인위적 자본주의, 즉 국가가 자본주의 방식을 사회주의 체제 속에 적응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에 반해 모택동은 아시아적 요소와 마르크스 요소 간 융합을 꾀했다. 공업보다 농업을 앞세워 아시아적 체질에 기반 한 공산주의를 지향한 것이다. 이 경우 공산주의는 사회주의를 철저화시켰다. 평등의 원칙하에 사적소유의 불허, 토지의 공동 소유화, 자본/자본가의 불인정 등이 그 실상이다.

주지하듯 유럽의 사회주의는 붕괴했으나 중국의 경우 그 체제가 여전히 견고하다. 물론 중국도 세계를 뒤덮은 자본주의 물결과 옳게 맞설 수 없었다. 그럼에도 중국은 자신들 심층에서 자본주의를 병존시키는 방향을 취했다. 마르크스를 아시아적 시각에서 읽고자 애쓴 결과이겠다. 자본주의와의 친화성을 위해 마르크스주의를 이용한 소련과 크게 다른 점이다. EU 공동체의 실험도 저자는 실체가 없는 것이라 비판했다. 결국 저자는 이를 근거로 만사를 자본주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누(累)를 벗을 것을 고언했다.

10.

소련 멸망 이전까지 세계는 소위 자본주의/사회주의 대립 구도 하에 있었다. 이를 냉전체제라 일컬었다. 소련의 멸망과 함께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 역시 끝났다는 것이 통설이다.

▲ 이정배(顯藏 아카데미)

하지만 저자는 이런 시각에 동의치 않는다. 마르크스는 한 번도 사회주의를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해부했고 그 선상에서 공산주의를 언급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자들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간 차(差)를 애매하게 만들어 소멸시켰고 결국 자신들 승리를 선포해 버렸다. 베를린 장벽 붕괴를 인권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악한 사회주의 체제로부터의 자유와 등가로 이해한 것이다.

하지만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로도 아주 불완전했다. 당시 자본주의도 미국식 자본주의였을 뿐 그것 역시 온전치 못했다. 하여 저자는 앞선 대립구도를 불완전한 사회주의/불완전한 자본주의간 대별로 수정하여 이해했다. 그간 세계는 불완전한 자본주의가 독주하는 형세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잔인한 자본주의로 인해 자본주의 스스로가 끝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는 소련이 사회주의 모델이 되지 못한 책임도 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사회주의 요소들이 종말을 고하게 되었던 까닭이다. 국가기업의 민영화 추세로 노동조합 활동이 약화되었고 비정규직, 계약직 노동자를 양산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유럽 내 사회주의 정당 역시 자본주의에 영합하고 말았다. 자국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국적불문 자본가에게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자국 노동자들, 노동조합의 임금투쟁 역시 타국 노동자에 대한 착취 구조 속에서만 성립하게 되었으니 선진자본국의 노동자는 어느덧 자본가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서구 사회주의 정당들은 ‘급속한 세계화’를 주장했고 ‘EU 확대’를 통해 착취할 상대를 늘려나가고 있다. 이로써 만국의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희박해 지고 말았다. 이런 과정에서 결국 전 세계 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하향평준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1.

아시아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저자는 국제화, 세계화 틀거지 하에서 비(非)서양의 소수의견이 코스모폴리턴 사고방식, 서양 사고방식으로 집약, 수렵되는 현실을 크게 염려했다. 이는 기독교적 진리관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다른 것은 이단이 되는 문화의 다른 양상이다. 설령 자본주의가 사라지는 경우라도 절대 하나를 강조하는 기독교 문명의 독선은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저자는 봤다. 기독교가 추구하는 ‘코스모폴리턴’과 자본주의의 ‘글로벌리제이션’은 도전의 양면처럼 늘상 함께 작동해 왔던 탓이다. 서구 지배자들 생각 속에 이런 식의 오리엔탈리즘이 가득 차있다.

하지만 이런 세계화로 노동자들이 더없이 가난해졌다. 이 땅에도 고공투쟁을 결심한 노동자들이 거듭 생겨나는 중이다. 그럴수록 자본가들은 좌파 노동자들 속에 생김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이주 노동자를 쫒아내라’, ‘외국서 값싼 상품을 들여와라’ 외치며 결국 난민 수용마저 반대하는 노동자들을 부추겨 실제로 우파 정치의 하수인을 만들고 있다. 좌파에서 떨어져 나간 노동자는 모두 보수주의에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2.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라 할지라도 누구나 서구식 민주주의와 인권 사상에 물들어 있다. 그간 북한을 평가하는 잣대로 바로 이런 틀이었다. 모두가 세계화 옹호론자, 예찬론자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도 말했듯이 세계화는 역사의 필연일 수 있다.

하지만 수동적으로 그리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객관적 역사를 주체적 지혜로 성찰하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필연 이상의 우연도 발생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세계는 저항해야 할 대상이 혼미하다. 미래도 너무나 불투명하다. 기후붕괴 속도도 너무 빠르다. 이것이 마르크스 시대와 크게 다른 점들이다. 역사를 이론화시킬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 저자는 본래적 마르크스의 부활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살아있는 인간 세계는 끊임없는 변화를 자신의 필연성으로 삼아왔다. 자본주의를 숙명이라 여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24시간 하루로 볼 때 11시 59분 47초에 생긴 자본주의 틀에 스스로 종 될 이유가 없다. 역사의 필연에 우연의 틈을 주기 위해 ‘쓸모없는 저항’이란 있을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이상을 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목하 자본주의는 위험하다. 그를 지탱하는 기독교는 너무 위태롭다. 이제는 이들을 함께 바꿔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것이 저자가 본 책 『위험한 자본주의』를 집필한 목적일 것이다.

이정배(顯藏 아카데미) ljbae@mtu.ac.kr

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