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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이전의 ‘사랑’이야기영화묵상 | <언어의 정원>(The Garden of Words)
두더지(평화교회연구소 연구원/다큐인) | 승인 2018.10.26 20:52
“평화교회연구소는 평화로운 세상, 올바른 믿음의 교회를 꿈꾸며 부흥과 성장보다 평화, 생명, 정의의 가치가 실현되는 21세기 새로운 한국교회를 상상합니다!” 모토 아래 건강한 한국교회를 상상하는 평화교회연구소가 매달 발행하는 “웹진 평:상”의 글들을 에큐메니안에 게재합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평화교회연구소 소장님과 연구소 소속 모든 연구원들과 웹진 기고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거대한 도심 속에 마치 오아시스처럼 위치한 초록빛 공원, 그 곳의 작은 정자에는 말없이 서로의

존재를 탐색하듯 어색하게 자리한 두 남녀가 있다. 그리고 마치 그들을 감싸듯 영화 내내 쉴 새 없이 흩뿌려지는 빗줄기. 청량하게 쏟아지는 빗줄기는 주인공들의 말 못할 사연만큼이나 다양한 감정을 품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까지 촉촉하게 매만지는 촉매제가 된다.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고 그 빗방울이 떨어진 자리에 생긴 작은 동심원이 점점 퍼져갈 때마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그만큼 가까워지고, 동시에 관객의 마음도 싱그러워진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영화, 초록빛 공원의 풍광과 촉촉한 빗소리가 너무나 매력적인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은 우리로 하여금 그동안 현실에 매몰되어 무뎌져버린 ‘생의 감각들’을 찾아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것은 쳇바퀴 돌듯 규정된 삶의 양식과 어쩌면 너무나 진부해져버린 우리들의 언어 속에서 메말라 버린 생기를 찾는 일이며, 규정되고 정형화된 언어 이전의 감정을 마주하는 일이다.

<비>

구두 장인을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타카오. 그는 비 내리는 날이면 ‘비가 오는 날에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학교에 가지 않고 대신 오전 내내 공원에 앉아 구두 스케치를 한다. 여느 날처럼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구두를 그리고 있던 타카오는 초콜렛을 안주삼아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유키노라는 여성을 만난다.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려주지 않을까. 그러면 그대를 붙잡을 수 있을 텐데. (鳴る神の少し響とよみてさし曇り雨も降らぬかきみを留めむ.)”

유키노는 타카오와의 첫 만남에서 일본 고전문학인 ‘단가’의 한 소절을 읊는다. 그녀는 사실 고등학교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는 교사다.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교사 중 하나였지만, 일부 학생들이 그녀에게 앙심을 품고 나쁜 소문을 퍼트리게 되고 이 내용이 학부모의 귀에까지 들어가면서 유키노는 출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었어.” 유키노는 걷는 법을, 발걸음을 떼는 용기를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매일 정장을 차려입고 학교로 출근하려 했지만 도저히 발걸음을 옮길 수 없어 도망치듯 온 공원에서 타카오를 만난 것이다.

그 날 이후 그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같은 장소에서 만남을 거듭한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때는 장마가 시작되는 6월이다. 장마. 빗줄기의 끝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하염없이 비가 쏟아지는 시기. 그러나 장마도 쏟아지는 비도 결국 끝이 있는 법. 비를 매개로 만났던 그들의 만남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상처로 인해 삶의 걸음을 걸을 수 없었던 유키노. 비가 그치고 맑아져 낯설게까지 느껴지는 공원에 여전히 앉아있는 그녀는, 과연 자신의 걸음을 시작할 수 있을까.

<구두>

“장마가 계속되길 바랐다. 하지만 맑은 날이 계속 되었고, 난 그 곳에 갈 구실을 찾지 못했다.” 타카오는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다. 아니, 만드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그는 구두 장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지만 언제나 스케치에서 머물 뿐 실제로 구두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친구와 가족 그 누구에게도 구두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타카오의 꿈을 처음으로 듣게 된 사람은 공원에 앉아 있던 유키노다. 꿈을 향해 걸어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발걸음을 뗄 용기가 없는 것은 타카오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공원에서 만나 나누는 대화는 특별할 것이 없고 어찌 보면 단출하기까지 하다.  공원 정자에 앉아 내리는 빗속에 머물러 있듯, 서로가 있는 공간 속에서 자신을 가만히 응시할 뿐이다. 서로가 곁에 있음으로써 그 공간은 의미를 갖게 되고, 그 공간과 시간에 머무르는 것만으로 두 사람은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나는 그녀를 다시 걷게 만들 구두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비가 오지 않아도 구두를 그릴 수 있을까. 장마가 그쳐도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상황이 주어지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었던 타카오는 이제 스스로 발걸음을 뗄 이유를 만들어낸다.

영화를 만든 신카이 마코토는 <너의 이름은>, <초속 5센티미터> 등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감독이다. 그의 작품은 감수성 짙은 주제와 아름다운 영상미가 특징인데,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실제하는 배경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자세히 묘사하는 걸로 유명하다. <언어의 정원> 역시 도쿄의 중심에 있는 신주쿠 공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실사영화보다도 더 디테일하게 표현되었을 만큼 압도적인 영상미를 자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주제를 극대화 하는 것은 영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리’라 할 수 있다. 사실 영화는 제목과 달리 수다스럽지가 않다. 주인공들의 대화는 과하지 않고, 감독의 설명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 사람의 대화보다는 오히려 빗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가 더욱 귀를 사로잡는다. (실제로 감독은 빗소리를 더 잘 구현하기 위해 음향감독을 교체했다고 한다.) 마치 언어가 존재하기 이전의 원초적 공간인 것 마냥, 이 모든 비언어적 소리들이 움직이는 공간에서 사람의 언어는 비로소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속에 머물며 작은 대화를 주고받던 이들의 삶은 시나브로 변화되고 살아난다.

이 영화의 부제는 ‘사랑, 그 이전의 사랑 이야기’다. ‘사랑’이라고 규정되기 그 이전의 사랑(살아있는 감정), 언어로 존재하기 이전의 언어가 모든 것의 시작임을, 우리는 때때로 그 시작점으로 돌아가 머무를 필요가 있음을 영화는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침묵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비언어적인 소리에 반응하며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영혼은 이미 걸어 잠궜던 빗장을 서서히 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의 삶도, 우리의 사랑도, 우리의 신앙도 그렇다. ‘신앙’이 언어로써 규정될 될 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생략되거나 오독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신앙의 신비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신앙의 언어가 마치 전부인 듯 착각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Credo’ 이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의 순간이 존재함을. 그것이 나의 신앙 여정의 시작점이 되었음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때때로 ‘신앙 이전의 신앙’, 비록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지라도 은혜가 충만했던 그 순간. 성령이 살아 숨 쉬는 그 시작점으로 돌아가 머무를 필요가 있다.

빗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를 통하여 내게 사랑을 고백하는 존재의 목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부해져버린 우리들의 언어 속에서 메말라 버린 생기를 찾을 수 있는 고요한 정원. 과연 당신이 머무를 싱그럽고 촉촉한 언어의 정원은 어디에 있을까?

두더지(평화교회연구소 연구원/다큐인)  peacechurch20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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