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칼럼
오늘에 핀 꽃 어제와 내일을 추억하다두 번째 수필집을 세상에 내보며
이이소 | 승인 2018.10.27 19:06

내 안에 거대한 흐름이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섞여서 흐르고 있다. 과거는 끝난 시간이 아니고 미래는 오고 있는 시간이 아니다. 현재는 과거이고 미래이다. 흐름은 시간의 끝을 향하지 아니하고 생명을 향해 간다. 생명을 향한 줄기찬 흐름이 나를 추동한다.

거대한 흐름 속에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밤하늘의 별만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함께 흐른다. 흐름 속에서 십자가는 과거의 사건이며 오늘의 사건이고 미래의 사건이며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고난당하는 자, 아픈 자, 잊혀진 자, 버림받은 자, 억울한 자, 가난한 자, 작고 힘없는 자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장, 우주적인 에너지다. 흐름은 어제와 내일을 반추하며 생명을 향해 오늘도 낮은 곳을 향하여 말없이 조용히 스며든다.

인도 어느 농촌에서의 일이다

밭가는 농부가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소를 채찍으로 갈겼다. 순간 내 몸이 나도 모르게 바르르 떨렸고 등짝이 아파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소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내 눈에서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우주에 가득 찬 피조물의 신음 소리가 메아리 쳐왔다. 인간이란 동물의 생존을 위해 고통당하는 짐승의 신음 소리, 피조물의 소리 없는 소리, 말 없는 말이 들려 왔다. 옷깃을 여미며 묵묵히 들었다. 천지 사방을 향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향해 절하며 한 없이 용서를 빌었다. 그들의 자리에서 인간의 나라, 인간의 전쟁, 인간의 문명, 인간의 문화는 얼마나 괴이하며 난폭할 것인가!

또한 인도에서의 일이다

이른 아침에 무디츄르 집에서 탐바람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어느 청년이 철사로 얼금얼금 만들어진 닭 상자를 식당 입구에 마구 던졌다. 놀란 닭들이 소리치며 울었다. 조금 후면 잡혀서 사람들이 먹이가 될 닭들의 불안과 고통이 나를 지그시 눌렀다. 마음껏 날개를 치지도 못하고 꼬꼬댁 거리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노예로 잡혀서 미국으로 팔려가는 흑인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베들레헴에서 본 거대한 분리장벽이 보였다.

줄줄이 이어서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때 끌려가서 사고 팔린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 보였다. 강자가 약자를 가두고 잡고 죽이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세상에서 닭이 인간의 먹이가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인데 나는 그 순간 어처구니없게도 닭에 대한 연민으로 울고 또 울었다.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 생명의 순환 속에 있는 존재, 동물과 식물에게 빚을 지며 사는 존재로서 우주만물에 대한 감사와 경외감을 잃은 인간의 삶이 너무 천박해 보였고,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야할 자연생태를 끊임없이 파괴하고 혼자 독점하는 인간의 문명과 과학이 재앙과 저주처럼 느껴졌다.

첸나이 무디츄르에 희망발전소를 지을 때의 일이다

손바닥 크기 정도의 땅을 사서 건물을 짓기로 하였는데 오랫동안 빈터였던 까닭에 풀이 우거졌고 작은 님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뿐 만 아니라 개미와 개구리, 두더지와 뱀을 비롯한 크고 작은 벌레들이 가득하였다. 아무리 내가 산 땅이라고 하지만 그 동안 그 땅을 터 잡아 살았던 원주인들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풀을 헤치고 들어가서 기도를 마치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무야, 풀들아, 그 동안 땅을 지켜주어서 고맙다. 그런데 이제 건물을 짓기 위해서 너희들을 베어야 하니 이해해다오.”
“개미야, 벌레들아, 그 동안 여기서 집을 짓고 살아온 너희들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전한다. 미안하다. 내가 곧 집을 지어야겠으니 수고스럽겠지만 이사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방문할 때 마다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였다. 드디어 건축허가를 받고 집을 짓게 되어 나무와 풀을 벨 때, 단번에 베지 못하고 세 차례에 걸쳐 제초 작업을 하였다. 얼추 풀을 베면 큰 것들이 이사를 가고, 그 다음에 조금 더 베면 작은 것들이 이사를 가고, 그 다음 뿌리 채 뽑을 때 개미까지 떠나가도록 배려를 하였다. 물론 건자재 준비와 기타 등등의 일로 시간이 들어서 건축을 빨리 시작할 수 도 없었지만 마음 한 편에서 그 동안 몸 붙여 살았던 것들에 대한 배려를 하고 싶었다.

나도 나로서 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보이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겨자씨처럼 작은 것, 힘없는 것, 못난 것, 초라한 것, 숨겨진 일, 왜곡된 일, 억울한 일, 가려진 일, 잊혀진 일이 보이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들리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듣지 않으려 해도 피조물의 탄식 소리, 고통당하는 자들의 신음소리, 외면당하고 거절당한 자들의 울음소리, 버림받은 자들의 원망소리, 헐벗고 목마른 자연의 아우성, 고아와 과부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보고 들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우는 것뿐이다. 거기에 하나를 더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보고 느낀 사실에 대하여 글로 써서 몇 몇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뿐이다. 금번에 출판한 3번째 저서, 『오늘에 핀 꽃 어제와 내일을 추억하다』 또한 작은 것에 대한 관심과 사랑, 감사와 찬양이며, 잊혀진 것과 버려진 것, 숨겨진 것들에 대한 발견과 탄식, 감사이고, 작은 것을 무시하며 핍박하는 사람들과 교회에 대한 비판이다.

나는 꿈을 버린 지 오래다

당시 꿈의 무게에 눌려서 분노와 좌절에 시달리는 자신의 초라함과 불행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불가피하였지만 꿈을 버리니 살 이유가 없어졌다. 방향성도 사라지고 인생의 목적도 의미도 사라져 버렸다. 전신이 무력감에 눌려 지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절규하며 울부짖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말씀하였다.

“나의 꿈이 너의 꿈이다.”
“예 감히 어떻게요? 하나님의 꿈이 저의 꿈이라고요?”
“나의 꿈이 너를 인도한다.”
“하나님의 꿈이 저를 인도한다고요?”

바라고 원하는 응답은커녕 수수께끼처럼 종잡을 수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거북하게 만들었다. 나는 얍복강에서 천사와 밤새워 씨름한 야곱처럼 많은 고뇌와 몸부림으로 탈진하였다. 그러나 나 자신으로서는 아무런 길도 방법도 없음을 알기에 조용히 손을 들었다. “순종하겠습니다.”

그 후로 나는 감히 하나님의 꿈을 내 꿈으로 삼는 가난한 마음과 치열한 의지를 가지고 나 자신을 내려놓고 비우며 종의 삶을 다졌다. 하나님의 꿈은 나에게 하나님의 나라로 왔고 십자가로 다가왔다. 인간을 포함한 피조세계가 함께 생육하며 번성하며 땅에 충만한 아름다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난한 자와 눈 먼 자, 포로 된 자와 소외 된 자, 약한 자와 추한 자,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낙오자들에게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삶의 길이 열려졌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나는 길이 열리는 대로 살아왔다.

내 뜻이 아닌 주인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 종으로서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에 대한 묵상과 고민이 치열하였다. 주의 뜻이 이 땅위에 임하여 지이다! 하고 외치면서 한 때는 사회복지가 잘된 나라를 하나님 나라로 생각하고 추구하였다. 한 때는 민주화와 인간의 권리가 잘 보장되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생각에 푹 빠졌다. 한 때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구현되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라는 생각으로 잠 못 이루기도 하였다. 구호로 너무 쉽게 외치며 사랑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에 목말라하면서 마라나타! 주여 오시옵소서! 하고 간구하였다.

특별히 인도에서 달리트를 만나면서 마라나타! 기도가 시작되었다. 식민지로 철저하게 수탈당한 아시아와 동부 아프리카를 돌면서 지금 여기 오시옵소서! 하는 기도를 무시로 바쳤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학대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분리 장벽 앞에서 오열을 터뜨렸고, 이란에 가까운 터어키 국경에서 쿠르드족 청년을 만나서 시린 가슴으로 울었다. 인종 분쟁으로 수난을 겪은 르완다와 스리랑카에서 분노와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세계를 돌아보면 볼수록,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뼈에 저리게 박혀 왔다. 내면에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조차도 흔들렸다. 정신세계가 아닌 인간과 인간, 사회와 사회,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인종과 인종 사이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약육강식과 진화론의 논리, 힘의 논리, 승자의 논리와 법과 언론과 교육으로 적당히 포장되고 조율되고 조종되는 시민의식이라는 것과 국제기구와 NGO단체들의 적당히 그럴듯한 양심의 제스처만이 세상에 가득하였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닌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적당히 동의하고 적당히 호응하며 적당히 협력하며 적당히 흉내 내며 따라가면서 그 것으로 감사하며 족해야지.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쉼 없이 탄식하셔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탄식이 기도와 글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인도를 언론의 자유가 발달된 나라라고 말할 때 마다 나는 경악하였다. 인도의 가장 큰 문제요, 구조악인 카스트 문제에 대해 TV, 라디오, 신문, 잡지, 교육이 일체 침묵하고 있는데, 그런 나라를 언론의 자유가 발달된 나라라고 하다니! 인도를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기가 막혔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이 지금 당장 먹을 밥이 없는데 행복하겠느냐고 반문하곤 하였다.

인도가 세상에서 가장 영혼이 자유로운 나라요, 금욕과 초월의 나라요, 인류의 영혼의 고향이라는 말을 들으면 유럽의 인도학파가 만든 인도 허상에 속는 인간의 상식의 얄팍함에 혀가 차졌다. 3억에 가까운 달리트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업과 윤회로 무장된 종교의 이름으로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세상을 자유로운 나라라니!

나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거대한 종교적인 속임과 선입관, 거짓 이미지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인도와 싸울 능력도,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다. 그냥 무시로 시골마을과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고 틈틈이 달리트와 달리트 생활에 대하여 글을 쓰며 현장과 나의 생각을 기록, 정리하였다. 원고가 책으로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 적이 없다. 다만 글을 쓰면서 종교가 만든 카스트라는 운명의 굴레와 인간차별과 무관심이 주는 인도사회에 대한 분노와 흥분, 증오와 저주하고 싶은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결과적으로 인도에서 거주하는 동안 시집과 수필집을 각기 1권씩 출판하였다.

인도에서 나온 이후로 3권의 시집과 2권의 수필집을 냈다

인도에서 나온 첫 해 1년은 너무 억울해서 증인의 심정으로 달리트를 잊지 않기 위하여, 나 자신을 절망과 분노에서 추스르기 위하여 달리트의 비참과 고통을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글을 썼다. 특별히 내 마음 속에 숨겨두었던 달리트를 향한 나의 비밀 아닌 비밀,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비밀, 나의 사랑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 몸으로 밥 짓고 국을 끓여 밥상이 되고 싶었던 마음, 내 몸을 팔아서 달리트 교회 건물을 지어주고 싶었던 마음을 기도로 바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했노라고! 그런 마음으로 마을을 순회하였고 그런 마음으로 당신들을 만났노라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노라고!

그 후로 아프리카 방문에서부터는 현장에서 바치는 기도가 그대로 시가 되었고, 현장에서 터져 나온 절규와 비명이 그대로 글이 되었다. 운명적인 빈곤과 폭력에 시달리는 아프리카는 나의 영혼에 견딜 수 없는 상처와 폭력이었다. 그런 아프리카의 질곡과 불의한 구조를 못박아준 식민지 제국들, 소위 말하는 백인 선진국들과 그 제국주의를 축복한 서구 교회를 향해 저주의 기도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괴로움이 극하면 기도가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터져 나왔다. 아프리카 후유증이 너무 커서 질풍노도의 기도가 평상으로 돌아오는데 까지 2년 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시가 기도가 되고 기도가 시가 되는 일, 기도가 글이 되고 글이 기도가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면서 나의 아프리카 병이 치유되었다.

기도이며 탄식이고 절망의 끝에서 외치는 마라나타의 희망

『오늘에 핀 꽃 어제와 내일을 추억하다』를 쓰는 동안도 아프리카 후유증 속에 있었기 때문에 무시로 기도를 바쳤다.

하나님, 평화롭게 살고 싶습니다. 먼저 마음의 평화를 주시옵소서. 날마다 우리 삶 속에 하늘 평화가 가득하게 하소서. 자연과 이웃, 나라와 민족 속에서 평화의 지킴이로 살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세상을 절망과 고통으로 몰아넣는 크고 작은 전쟁, 폭력, 테러를 반대합니다.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는 살인, 약탈, 방화를 반대합니다. 강대국의 군수산업, 국방산업, 무기산업, 전쟁산업, 파괴산업을 반대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바뀌어서 평화산업, 생명산업, 공존산업, 사랑산업이 되게 하여 주소서.

이 모든 것들이 바뀌어서 나눔과 섬김, 배려와 용서, 회개와 축복이 되게 하소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 노예 살이 했던 나라와 민족들의 고통과 절망을 아시오니 저들을 위로하시고 축복하여서 새 하늘 새 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소서. 식민지 제국주의 국가들과 그 후손들을 심판하시고 징계하여 하나님 두려운 줄 알게 하소서.

특별히 우리 한반도의 평화 문제를 주님께 아룁니다. 강대국에게 휘둘리며 전쟁 위기와 폭력 앞에서 불안에 떨며 산 세월이 벌써 70여 년이 넘었습니다.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사 한 마음 한 뜻으로 종전협정을 이루고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우리를 강대국 군사폭력의 굴레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삼아주소서.

하나님, 한 밥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살고 싶습니다. 날마다 고아와 과부, 가난한 아이들을 불러서 한 밥상에 앉아서 밥 먹고 싶습니다. 전쟁 난민, 기후 난민, 기아 난민, 무직 난민들에게도 밥상을 차려주소서. 우리로 하여금 서로가 서로의 밥상을 차리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우리가 주님의 몸을 밥으로 먹었듯이 우리 또한 이웃에게 밥이 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주님! 기아가 없는 세상, 굶주림으로 아기들이 죽지 않는 세상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영양실조가 없고 아이들이 노동으로 팔려가지 않는 세상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주님!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을 우주적인 식사의 날을 기다립니다. 마라나타! 오시옵소서.

하나님, 한 동산에서 함께 일하며 섬기며 살고 싶습니다. 일이 노동이 아니고 은혜임을 알게 하여 주소서. 일이 사랑이며 몸으로 드리는 기도임을 알게 하여 주소서.  일이 축복이며 존재의 예술임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당신의 동산에는 귀하고 천한 일도, 좋고 나쁜 일도, 높고 낮은 일도 없으며 진심으로 하는 모든 일이 거룩한 일임을 알게 하여 주소서. 쉽고 편한 일을 찾아서 헤매는 청년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돈 많이 받는 재벌 기업을 찾아 잠 못 이루는 청년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세상이 3D 직종이 하나님 동산의 귀한 일임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주님, 우리 모두가 한 동산에서 일하며 서로 섬기는 청지기가 되게 하여주소서. 주님, 한 데나리온의 품값을 받으며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 세상 모두와 한 가족으로 살고 싶습니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예수의 가족으로 살게 하소서. 만나는 사람들을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 자매, 친구로 대하게 하소서. 나라와 민족, 사상과 이념으로 이웃을 차별하거나 소외시키지 않게 하여주소서. 종교와 문화의 편견으로 비난하거나 배타하지 않게 하시고 품을 수 있게 하여주소서.

특별히 이주민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을 버리게 하소서. 백인에 대한 열등감과 다른 인종에 대한 우월감으로 사람을 선호하지 않게 하소서.
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형제와 자매로 살고 싶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 하라는 말씀 받잡고 삽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받들어 삽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우정우애하며 친밀하며 다정다감하게 살고 싶습니다. 주님,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축복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하나님, 십자가를 지며 살고 싶습니다. 주께서 저의 십자가를 져주셨듯이 저도 누군가의 십자가를 지고 싶습니다. 주께서 저의 밥이 되었듯이 저도 누군가의 밥이 되고 싶습니다.

십자가를 지며 가장 행복한 자로 살고 싶습니다.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고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십자가를 집니다.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고 누군가의 평화를 위해 십자가를 집니다.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고 누군가의 희망을 위해 십자가를 집니다. 영광을 탐해서가 아니고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집니다. 거룩을 탐해서가 아니고 누군가의 회개를 위해 십자가를 집니다. 영생을 탐해서가 아니고 주님 따라 기쁨으로 십자가를 집니다.

그냥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주님, 날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나의 모든 글들은 기도의 연속이다

『오늘에 핀 꽃 어제와 내일을 추억하다』는 기도처럼 내 안에서 흐르고 있는 몇 개의 지류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이다. 각 장의 소제목이 그대로 책의 내용을 보여준다.

1장 세상과 다른 사랑
2장 인생, 오늘이 된 어제와 내일을 추억하며
3장 평화를 비는 예수
4장 만주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다시 생각한다

소제목처럼 각 장마다 선택된 소재와 내용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잡지처럼 산만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1장은 지금도 나눔과 섬김이 계속되는 인도 현장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 그리고 에피소드를 묶었다. 2장은 고향과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오늘날 까지 나를 나 되게 만든 것들에 대한 감사와 묵상, 영혼의 보물로 바꾸어진 젊은 날의 상처와 아픔을 정리하였다. 3장은 개독교로 조롱당하는 한국교회와 교회에 대한 반성과 성찰, 정형화된 성경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 시도와 피로 얼룩진 미국 교회 역사 이야기를 담았다. 4장은 최근에 부쩍 관심을 가지게 된 만주에서 있었던 조선독립운동과 운동가들, 특별히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과소평가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인물에 대하여 고찰하였으며 현재 중국조선족이 직면하고 있는 동화와 해체의 문제를 무겁게 정리해 보았다.

책의 내용이 일관성, 통일성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3장과 4장의 경우는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도 쉽지 않다. 각 장 마다 독자들과 전문가들의 눈에는 에세이도 아니고 논문도 아니고, 역사서적도 아니고 종교서적도 아닌 어설픈 책일 거다. 그런 면에서 “제목은 멋이 있지만, 소재가 다양하고 문장 호흡이 길고 간혹 어려운 내용이 있어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는 친구의 지적을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4개의 장은 생명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통합된다. 하나님의 시각과 시선, 하나님의 마음과 관심, 하나님의 아픔과 십자가로 보는 생명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요 관심이다. 육순종 목사는 그의 추천사 끝 부분에서 아래와 같이 이 책을 평가, 정리하였다.

“이 책은 여러 개의 지류들이 흐르고 있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시선은 하나다. 바로 그가 만난 하나님의 시선이다. 세상의 숨어있고 감추어진 것들을 주목하는 하나님의 시선이다. 그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인도의 불가촉천민들을 주목했고, 역사가 주목하지 않았던 용정의 수전민들을 주목하고, 해체되어 가는 조선족들의 이면을 주목하고, 독립운동사의 잊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목한다. 그리고 그들을 역사의 전면으로 복귀시키려고 한다. 그들이 진정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존재라는 그의 믿음 때문이다. 매우 도발적인 시도다. 그러나 그 도발 속에 어미의 가슴이 있고, 예수(耶蘇)의 마음이 있기에 그의 도발은 매우 촉촉한 도발이다.”

나그네살이 20여 년 동안 나를 추동해주었던 거대한 생명의 흐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시선이었고 심장이었고 갈보리 언덕에 있었던 피에 젖은 외롭고 초라한 십자가였다. 나의 글은 초라한 십자가의 초라한 그림자이다.

이이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4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