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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박봉랑 교수의 신학적 스승 1개혁신학자 박봉랑 교수의 생애와 신학 2
오영석 명예교수(한신대) | 승인 2018.11.04 21:30

박봉랑 교수님의 신학과 칼 바르트(Karl Barth)의 신학은 불가분리하게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박봉랑 교수님은 한국 신학계에서 가장 본격적으로 깊이 철저하게 바르트의 놀라운 개혁신학을 연구한 학자이이다. 그러므로 박봉랑 교수님의 신학에 대하여 언급하기 전에 바르트의 신학이 태동한 배경과 그 내용과 그것의 의미를 주마등 격으로 살펴보면 박봉랑 교수님의 신학의 내용을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 바르트 신학의 출발 배경

19세기의 유럽의 신학계를 거의 100년 동안 풍미하던 자유주의 문화개신교 신학의 내용과 방향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갈아엎고 20세기 초기에 본래적인 개혁신학의 새로운 장을 연 신학자가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였다. 당시 자유개신교 문화신학의 주창자들은 슐라이에르마허(F. Schleieramacher, 1768-1834), 헤르만(W. Herrmann, 1846-1922), 하르낙(A. Harnck, 1851-1930), 리출(A. Ritschl 1882-1889), 트뢸취(E. Troeltsch, 1865-1923) 등이었다. 이들이 유럽의 신학계를 완전히 장악하고 자유주의 프로테스탄트 문화신학자들이다.

그들은 당시에 사상적으로 유럽의 학문계를 지배한 계몽주주의, 합리주의, 낭만주의와 자유주의의 대 흐름과 기독교신학과 신앙과의 연대, 통합,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기독교를 일반 학문들과 역사철학과 종교들과 예술과 문화 속에서 한 학문의 자리를 얻고자 시도하였다. 이 학문이 자유주의 신학이다.

그들은 이 목적을 위하여 19세기에서 신앙과 지식을, 지식과 신앙을, 계시와 이성을 화해시키고 연결시키려고 하였다. 종교적인 경험과 성령의 역사에 의한 신앙을 화해시키고 연결시켰다. 이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모든 시대에 현재한 영원한 이념이 복음에서 특별히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주장하였다.

▲ 자유개신교 문화신학의 주창자로 불리는 독일의 신학자 프리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F. Schleieramacher, 1768-1834) ⓒGetty Image

계몽주의적인 학자들은 역사의 발전을 통하여 도래할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를 보았다. 신약은 역사적으로 발전할 하나님 나라의 역사적인 운동의 시작으로 보았다. 예수는 그의 유일한 인격 안에서 인류의 미래 상태를 하나님 나라로 인식하게 한 모범자로 보였다.(미주 1)

칸트에게서 예수의 산상설교에서 인류의 윤리가 가장 절정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그에게서 예수는 신성을 지닌 하나님이 아들도 하나님도 아니고 탁월한 윤리의 모범자이다.

주체적인 자의식으로 이해된 이성은 하나님의 영에 참여하고 하나님과 존재적으로 나란한 위치를 가졌다. 그 이성의 깊은 하나님의 계시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존재와 동일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인간의 직접적인 자의식은 하나님의 자의식에 참여한다.

이 가장 심오한 것은 신적인 영과 인간의 영의 접촉점으로서 이해되었다.(미주 2) 자의식은 이성, 감정, 느낌, 예감, 양심만 아니라, 종교적인 체험, 주체성의 차원, 실존의 자원을 포함하였다. 종교는 경건한 자의식으로 집중하는 것이고, 그것을 내면적으로 심심화화고 확대하는 것이다.(미주 3)

바르트에 의하면 자유주의 문화개신교 신학에서 성서에서 “주로서” 그 자신을 계시한 하나님의 존재와 주권은 상실되었다.

“하나님을 안다고 여기고 하나님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들이 하나님의 관계에서 주인이 된다. 그들이 하나님을 처리하고 대신한다. 그가 하나님의 후원자 친구노릇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와 요구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왕좌에 앉히면서 그들이 앉는다. 그는 자신을 믿으면서 자신을 의롭게 하고 숭배한다. 여기서 하나님으로 불리는 것은 그들 자신이다. 하나님은 그들 자신 이상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탈취하고 진리를 무익하고 무용한 것으로 만들고 진리를 비진리로 바꾼다.”(1922년 로마서 2판, 173-174).

이러한 인간중심적인 내재적인 철학과 신학사고에서 하나님의 자유로운 주권, 신적인 인격에 대한 인식은 사라졌다. 하나님은 세계의 원리로서 인식되었다. 역사는 하나님의 진보적인 자기실현으로 이해되어서, 이 세계관 안에서 구원사(Heilsgeschichte)를 말할 수 없었다.

이러한 내주주의적인 철학사조와 연결된 자유주의 신학에서 구원사와 세계사, 하나님의 백성과 인류, 하나님의 나라는 역사의 내재주의적인 발전의 미래와 동일시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적인 메시지는 신화라고 하여 거부되었다. 종말론적인 기대는 역사인 진보와 융합하였다.(미주 4)

낭만주의와 스피노자와 셸링의 자연철학과 스피노자의 범심론과 플라톤 철학에 심취한 슐라이에르마허에게서 기독교 종교는 성서에서 그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고백하고 믿는 것이 아니라, 절대의존의 감정이었다. 그것의 그의 종교론과 그리스도교적인 신앙 론에서 잘 표현되었다. 그에게서 모든 현실적인 것은 전체적인 것이다.

전체적인 것은 신적은 전능의 표현이고 하나님 안에 혹은 우주 안에 있다. 그는 하나님과 우주를 동일시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내적인 신의식이 있다.(미주 5) 그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여 인간의 신의식이 순수하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예수에게서 신의식이 가장 순수하게 최고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우리의 모범자이다. 죄는 종교개혁자들이 천명한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의지적인 반항과 불순종이 아니고, 인간 안에서 영과 육의 싸움에서 낮은 자의식이 높은 자의식을 저항하는 것이다. 구속은 이 저항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감각본성에 대한 영의 완전한 지배이다. 종교는 절대의식의 자의식이다.(미주 6)

바르트는 그의 설교학에서 슐라이에르마허의 설교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설교는 우주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 회중의 바다에서 상하로 요동치는 한 파고이다. 이 감정을 공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설교는 보편적 감정에서 나오고, 설교자는 자신의 우주에 관한 직관과 신관을 설명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자신의 감정을 회중에게 주입시킨다. 그래서 회중이 들뜬 기분으로 설교자와 동일한 감정의 무대에 선 것을 알게 된다. 설교자는 공동의 감정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회중의 찬송은 설교자의 설교에 대한 위대한 아멘이고 소용돌이 대한 역소용돌이다. 설교자의 음성에 대한 메아리이다.
설교는 청중의 내면에 있던 것을 밖으로 표현한 것이고 그것을 축제적으로 표현한 것이 회중의 찬송이다. 설교자는 회중의 오르간이다. 모든 것은 목사의 내적인 것에서 흘러나와야 한다. 내적인 삶의 주고받음, 침체와 충만이 설교의 궁극적 언어이고 최고의 원리이다.”(미주 7)

여기에서 인간을 심판하고 구원하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없다. 설교는 인간의 종교 감정을 출발점으로 하고 청정의 종교적인 감장을 표현하는 것이다.

칼 바르트의 각성

바르트는 그의 자유주의 신학자 스승들에게서 이러한 내재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전복시키고, 절대 타자로서 계시와 복음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그의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것을 신학사에서는 코페르니크적인 전환이라고 한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인식의 지적 구테타가 일어난 것이다.

▲ 20세기 초기 종교개혁 신학을 이어 본래적인 개혁신학의 새로운 장을 연 신학자로 불리는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Getty Image

그것이 그가 1916년 발견한 “성서 안에 새로운 세계”이고, 1919년과 1922년에 출판된 로마서 주석들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지금까지 그의 지적세계를 지탱한 자유주의신학의 대원칙을 폐기하고 새로운 원칙으로 그의 신학의 지적세계를 새롭게 구성했다. 그것은 그 자신이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선언할 만큼 그의 신학의 대 전환을 이루었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이 지닌 학문의 확고한 전통의 권위와 모든 특권을 폐기했다. 그는 성서에 증거 된 하나님이 계시 사건에서 그가 나갈 신학방향과 내용을 발견했다. 자유주의신학의 권위를 가차 없이 대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는 로마서를 집중 연구하고 묵상하고 사색하면서 신학방향의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을 그의 복음적인 신학의 광명을 깨닫고 인식하고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초월적으로 저 위에서 인간의 낡은 현실 속으로 번개처럼 떨어지는 하나님의 계시의 본질과 대면했다. 성서적인 계시는 무엇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며, 성서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복음의 본질을 발견하였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말이 인간에게 온다고 한다. 그의  표현대로 하면 복음의 빛이 바르트에게 비친 것이다.

미주

(미주 1) F. Flücker, Die Protestantische Theologie, Vandenhoeck in  Götingen, 1975, 2.
(미주 2) 위의 책, 3.
(미주 3) 위의 책, 3.
(미주 4) 위의 책, 4.
(미주 5) 위의 책, 5.
(미주 6) 그의 신앙론에서 자세히 기술된다.
(미주 7) K. Barth, Homiltik, 『Wesen und Vorbereitung der Predigt』, ZTV: 1986,  정한교 역, 『칼 바르트의 설교학』(서울: 한들출판사, 1999), 7 이하. F. W. Kantzenbach, 『Program der Theologie, Von Schleiermacher bis Moltmann』, Claudius: 1984, 34.

오영석 명예교수(한신대)  ofre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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