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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연합함(골로새서 2:1-3)
이성훈 | 승인 2018.11.04 22:08

지난 3/4분기에 일본에서 방영했던 애니메이션 중에 ‘일하는 세포(はたらく細胞)’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우리 몸속에 있는 세포들을 의인화하여, 세포들이 우리의 몸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수많은 세포 중에 적혈구와 백혈구였고, 이들의 역할이 주된 내용입니다.

열심히 하지만 결국 모두를 망치는 것들

이 애니메이션 마지막 회의 내용은 사람의 몸에 큰 상처가 났을 때, 제 기억에 두부 손상에 의한 출혈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사람이 거의 죽음에 이를 정도의 출혈이 일어났을 때, 몸속은 어떤 상태가 되는지가 주제였습니다.

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세포들이 의인화되어 있기 때문에 약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경향도 있지만, 세포들은 그 순간에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우리 몸에 큰 출혈이 일어났을 때, 세포들이 열심히 일한다고 살아날 수 있습니까? 그 상태로 가만히 놔두면 사람은 결국 죽게 됩니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회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세포들이 열심히 일해도 큰 상처 앞에선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세포들이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간단한 점들만 이야기하자면, 출혈이 일어나게 되면 몸 안에 있던 적혈구가 대량으로 유출됩니다. 적혈구가 유출되면서 몸의 각 기관에 산소와 영양분을 전달할 적혈구의 양이 줄어들게 됩니다. 적혈구의 양이 줄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적혈구들은 열심히 몸의 각 기관에 산소와 영양분을 나르기 위해 노력하지만, 개체 수 자체가 줄었기 때문에 일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때 뇌는 적혈구의 활동을 돕기 위해서 혈액의 순환을 더욱 빠르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혈압이 상승하게 됩니다. 혈압이 상승하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출혈은 더욱 가속화됩니다. 출혈이 심해지면 역시 당연하게도 적혈구의 양은 더 줄어들게 되고, 이런 악순환은 계속됩니다.

결과적으로 몸의 각 기관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 때문에 사람은 과다출혈로 죽게 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 때문에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몸을 죽게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약간의 인체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실제와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신체에 대한 의학적 지식을 조금만 찾아봐도 인체의 각 부분이 열심히 일하는 바람에 서로가 충돌을 일으켜 우리를 힘들게 한다는 점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저는 지금 이 세상도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각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고 또한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다지 좋아지고 있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오히려 최선의 노력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가 충돌하면서 세상의 다양한 문제들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고민도 됩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일에 있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최선의 노력이 이 세상이라는 큰 바탕에서 보았을 때, 모든 사람에게 최선의 결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TV에서 종종 보게 되는 부동산 투기에 대해서도, 투기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투기를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투기합니다. 요즘에는 자기 지역에만 앉아서 부동산 투기하는 일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제대로 투기를 하려면 전국을 뛰어다니며 전국구로 활동해야 돈을 법니다.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투기를 합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은 단시간에 큰 돈을 번다는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행동이 우리나라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최선의 결과를 낳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서 우리나라가 안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그들의 노력은 최선의 노력이었다고, 좋게 평가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혼자만의 최선이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모두에게 최선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이런 함께함에 대해서 오늘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연합함

오늘 골로새서를 읽은 이유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연합한다’는 단어가 다른 본문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가 실제 바울이 쓴 편지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지금 우리의 말씀에서 중요한 점은 아닙니다. 바울이 썼다고 하면 그 자체로 권위를 인정받을테니 문제가 없을 것이고 바울이 쓰지 않았다고 해도 그 당시 교회를 위해서 기록된 편지이기 때문에 당시의 신앙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으며, 지금 이 책이 우리 손에 경전으로 놓여 있다면 그 또한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SBS

골로새서의 이야기는 약간 뒤로 하고 우리가 연합한다는 표현을 쓸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시편 133편 1절일 것입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여기에서 ‘연합’은 히브리어 ‘야하드(יַחַד)’로 집회, 모임의 뜻을 갖습니다. 이런 비슷한 뜻이 ‘모으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아사프(אָסַף)’가 있습니다. 보통 히브리어에서는 ‘모인다’. ‘연합한다’라는 뜻으로 이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이 두 단어에 상응하는 헬라어는 ‘쉬나고(συνάγω)’입니다. 여기에서 상응한다는 말은 헬라어 성경인 70인역 성경은 히브리어 ‘야하드’와 ‘아사프’를 헬라어 ‘쉬나고’로 번역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유대인 회당이라는 의미로 자주 들어본 단어인 ‘시나고그(Synagogue)’가 헬라어 ‘쉬나고게(συναγωγή)’에서 나온 말이고, 집회를 의미하는 ‘쉬나고게’는 ‘모인다’는 의미의 ‘쉬나고’에서 나온 말입니다.

모임을 의미하는 몇몇 단어들이 더 있지만, 이런 모임을 뜻하는 말들은 그냥 ‘모여있음’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물을 모으셔서 물이 하나로 모였다고 할 때 ‘쉬나고게’가 사용된 것처럼 이 말은 그저 한 데 묶여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골로새서에서 사용된 연합이라는 말은 헬라어 ‘쉼비바조(συμβιβάζω)’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17번 밖에 사용되지 않은 단어이고, ‘연합한다’는 뜻으로는 신약성경에서도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두 책에서만 사용됩니다. 이 두 책에서 세 번 사용되고, 나머지 14번은 전부 ‘가르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번역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연합’이라는 말을 ‘가르친다’로 바꿔도 문맥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사랑 안에서 가르쳐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런데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성경을 번역하신 분들은 ‘쉼비바조’의 본래 의미, 언어의 기원으로부터 의미를 가져와서 ‘연합하다’로 번역하신 것 같습니다.

‘쉼비바조’는 ‘~과 함께’라는 의미를 가진 전치사 ‘쉰(σύν)’에 ‘발(foot)’, ‘한 걸음’이라는 의미를 가진 ‘바시스(βάσις)’의 합성어입니다. 헬라어 ‘바시스’는 영어 ‘basis’의 뿌리가 되는 단어인데, ‘한 걸음’이라는 의미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기초’라는 의미까지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70인역에서는 ‘받침대’라는 단어를 전부 ‘바시스’로 번역해놓았습니다.

아무튼 ‘쉼비바조’라는 단어의 어원적 의미는 ‘함께 걸음을 내딛는다’입니다. 그렇기에 알고 있는 지식을 가르친다는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이때도 그냥 무언가 지식을 전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함께하며 지식을 나누어준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출애굽기 4장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집트로 보내시면서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함께 하면서 가르치겠다고 하신 이 단어가 ‘쉼비바조’입니다. 이는 분명 일반적인 가르침과는 다른 의미이고, 연합의 의미로 보았을 때에도 그저 단순히 모여있기만한 상태와는 다른 상태를 말합니다.

가장 단순한 예로 2인3각 달리기 경기를 할 때, 두 사람이 서로의 최선을 다해서 달린다면, 서로의 최선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이 엉킬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최선을 다해야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저희 아내가 미술 교사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협동화 그리기 과제를 자주 내주곤 합니다.

학생들이 협동화를 그릴 때, 모두가 각자의 최선을 다하면 그림은 망합니다. 오히려 미술 실력이 뛰어난 한 학생이 모두를 이끄는 편이 훨씬 좋은 그림이 나옵니다. 하지만 정말로 좋은 협동화는 서로가 힘을 모으고, 서로가 맞추기 위해서 노력하며 작업했을 때에 나옵니다. 이것이 ‘쉽비바조’가 담고 있는 ‘연합’의 의미입니다.

골로새서의 저자는 사랑 안에서 연합할 때,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라는 말은 반드시 필요한 말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상대방과 맞춘다는 일은, 함께 한다는 일은 정말 어려우며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 예로 말씀드렸다시피 부동산 투기하는 사람이 투기로 인해서 돈을 벌었다고 할 때, 분명 누군가는 그 투기의 피해를 보게 됩니다. 요즘 언론에서 말하는 어떤 이들은 집값이 오르면 모든 국민이 윈윈하는 것처럼 자꾸 포장해서 말하지만, ‘투기’라는 말이 사용된다는 점은 분명 누군가가 피해를 본다는 의미입니다. 투기하는 사람과 피해를 본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나 사랑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투기하는 사람은 피해를 본 사람이 얼마의 피해를 입었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에게 최선의 결과가 있으면 그만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아니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모신 사람들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조금이나마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요한 1서가 이야기하는 바대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품어야 하며, 이를 세상에서 드러내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을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며, 그 사랑 안에서 연합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합 속에서 그리스도의 풍성하심이 나타나게 됩니다.

함께함

함께한다는 말은 말 자체는 쉽습니다. 하지만 그저 함께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쉬나고그’로 그칩니다. 모임에 그칩니다. 참된 연합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함께한다는 일은 상대방과 나를 맞춰나가는 일입니다.

간략한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일전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가운데 한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자기 팀장이 요즘 아들 고입 문제 때문에 연차, 반차를 쓰면서 바쁘게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아들이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고등학교로 끝내겠다고 선언한대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이 팀장도 지금 시대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이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학교 교육이 그렇게까지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 공감은 하고 있고 평소에도 그런 이야기를 해왔지만, 막상 자기 아들이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하니까 평소에 이야기와는 다르게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겠더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회사 동료들끼리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지금 시대에 있어서 대학교육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아들은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를 나와서 평범한 직장에 취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부모의 마음이야 다들 그럴 것입니다. 이 팀장님의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제가 느낀 점은, 부모가 대입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아이의 입장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의 입장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걸어온 길이 중요했고, 그 길에서 얻은 지식이 중요했기에 아이의 대입 포기 선언은 정해진 루트에서 벗어난 잘못된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할 때, 자신은 대학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부모는 아이와 온전히 연합되어 있는가? 이 가정은 온전히 연합한 가정인가 하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꼭 교회 안에서 성도님들 간에 연합하시라는 말씀만을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연합이라는 말이 꼭 사회의 어떤 단체들 간에 사용되는 단어이고, 교회에서나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기에 약간 거리감이 드신다면, ‘함께함’ 또는 ‘동행’이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다고 봅니다. ‘쉼비바조’의 어원적 의미는 ‘동행’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 여러분께서 편하신대로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먼저 각자의 가정에서 식구들과 연합하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께서 생활하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들, 여러분이 속해있는 모든 모임들 속에서 그 구성원들과 연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가지고 연합하기 위해, 함께 하기 위해, 맞춰나가고 노력하신다면 그곳에서 분명 하나님을 이해하는 모든 풍성함과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연합하심이 점차 널리 퍼져나가 이 땅이 연합하여 하나가 되고, 온 세상이 연합하게 되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평안과 행복이 커져 갈 줄 믿습니다. 함께 하심으로, 맞춰가심으로, 연합하심으로 선을 이루시고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받으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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