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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츠 혹은 종교적 사회주의가 말하는 인간과 영라가츠의 종교적 사회주의란 3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 승인 2018.11.08 20:40

자본주의는 폭력을 통해서 일어나는 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이다. 그것은 저주받은 생명 없는 문화 체제이다.(미주 1) 인간은 자본주의적 체제에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물질로, 상품으로, 기계로, 노예로 이해된다. 물질주의적 인생관과 세계관이 완전히 이러한 인간 이해에 속한다.

인간의 거룩성

종교적 사회주의는 그와는 반대로 인간의 절대적 거룩성을 정열적으로 강조한다. 인간이 자본주의적 체제에서 착취의 대상이라면 인간의 거룩성을 증대시키는 것은 종교적-사회적 운동의 목적이다.

“인간은 돈과 기계보다 더 중요하다. 인간만이 가치들 중에 가치이다. 인간은 거룩하다. 그는 경외의 대상이지 착취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은 가치들 중에 가치이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을 노예화하는 대신에 인간에게 봉사해야만 한다. 인간은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미주 2)

그것이 라가츠에 의하면 사회주의의 근본 진리이다. 사회주의적 희망과 요구는 인간의 거룩성이 없으면 그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그래서 라가츠는 사회주의를 “인간에 대한 인간의 책임성과 그의 존재와 소유의 모든 것을 가지고 행하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봉사”로 정의한다.(미주 3)

인간에 대한 경외는 다른 사람의 내적 자유에 대한 존중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 때문에 사회주의적 운동은 자유의 운동이 되어진다.

“사회주의는 참으로 인간의, 더욱이 모든 인간의, 또한 비천한 자의, 참으로 그의 가치와 거룩성에 대한 근본 감정에 근거한다. 그의 영혼은 인간에 대한 깊은 경외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동일한 사건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그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경외 속에서 살며 호흡한다. … 사회주의는 이 근본 감정으로부터 모든 노예의 죽음의 원수이다. 그는 이 근본 감정으로부터 전쟁에 반대한다. … 그러므로 사회주의는 자유 운동이며, 인간의 인간됨의 길이다. 그는 모든 생활에서처럼 경제적 생활에서도 인간을 상품 또는 노예로부터 인간으로 만들기를 원한다.”(미주 4)

사회주의적 혁명은 인간의 거룩성을 전제한다. 왜냐하면 인간에 대한 경외는 본질적으로 모든 폭력행위, 모든 인간의 압제에 모순되기 때문이다. 라가츠의 반군국주의적 태도는 바로 이러한 인간에 대한 경외에서 유래한다. 그는 사회주의에서 인류의 해방과 최고 형상의 길을 보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사회주의자임을 승인한다.

ⓒGetty Image

이러한 라가츠의 인간 이해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계시의 계속성 안에서 그의 하나님 이해와 인식에, 더 좋게 말하면, 그의 신정론적 인식에 기초한다. 인간의 거룩성은 원초적으로 하나님의 아버지됨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됨과 하나님의 완전성과 일치 안에서 인간의 형제됨에서 유래한다.

“또한 인간은 이제 참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가치를 얻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그의 무한성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영원한 가치를 지각하는 것처럼, 이웃에게서 하나님을 이해한다는 관점으로, 그가 이웃에게 행한 것을 하나님이 행한다는 의미에서 이웃을 고찰해야만 한다. 인간은 그것을 통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들어 올리워진다.”(미주 5)

라가츠는 모든 외보(外堡)와 모든 우연적인 것을 인간의 절대적 가치에 종속시킨다.

“신분, 세상적 권력, 재능, 인종은 더 이상 인간과 인간 사이에 경계를 형성할 수 없다.”(미주 6)

인간의 인격은 모든 사물 즉 맘몬 또는 근심, 세상의 쾌락, 문화, 도덕, 종교적 율법을 능가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신하로서 세상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거룩성은 모든 민주주의와 모든 진정한 사회주의의 근본 감정이며, 진정한 사회주의로의 길을 위한 척도이다. 라가츠는 이러한 관점에서 특별히 볼셰비즘의 사회주의적 군국주의에서 첨예하게 나타나는 폭력을 통한 사회주의적 혁명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영의 힘에 대한 신앙

도덕적 세계관에 기초한 종교적 사회주의는 영의 권리, 힘, 존엄에 대한 신앙이다. 인간의 절대적 거룩성과 무조건적 가치는 정신적 가치의 세계에 대한 신앙을 전제하며, 그 신앙에 기초한다. 이 신앙이 없는 인간의 거룩성은 절대로 없다.

도덕적 세계관의 두 근본 특징은 함께 하나의 짝을 이룬다. 그들은 우선 자유를 전제한다. 자유가 그들의 토대이다. 영의 힘에 대한 신앙은 자유로부터 자유와 함께 산다. 왜냐하면 자유가 없는 영은 실제로 영이 아니며, 자유가 없는 인간은 도덕적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미주 7)

영의 강조는 당시의 시대사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라가츠는 수학적 기계론의 세계상과 기계론적 발전론 속에서 영혼, 정신 그리고 자유의 완전한 몰락을 보았다. 영의 강조는 살아 있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일 뿐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물질주의적 기계론적 사고방식과 세계관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므로 기계론은 결코 궁극적 가치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도구로서 매우 필요로 한다. 도구는 당연히 기술자에게, 기계론은 자유에게 봉사해야 한다. 물질도 또한 마지막 단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모든 물질주의는 오직 영의 존엄, 힘 그리고 지배를 증가시킬 때에 만 가치를 가진다.”(미주 8)

그러므로 역사의 마지막 추진력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물질적 관계가 아니라 영이다.

라가츠의 영의 힘에 대한 신앙은 물질주의적 기계론적 세계관과 일치하는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한 반대일 뿐만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의 잘못된 물질주의와 기독교의 잘못된 관념론 또는 영성주의의 완전한 극복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양극성 안에서 정신과 물질, 관념론과 유물론의 진정한 결합을 의미한다. 사회주의와 관념론은 그것을 통해서 비로소 진정한 현실주의가 된다. 이 결합의 출발점은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인간되심이다.

미주

(미주 1) L. Ragaz, Sozialismus und Gewalt, Olten: Trösch, 1920, S. 7. 또한 Weltreich Bd. 2, S. 19. 폭력의 수단은 우선적으로 돈(자본)이며, 또한 국가의 폭력, 정신적 폭력-돈과 지배적 권력에 종속되어 있는 언론, 학교, 교회, 종교-애국심과 정치적 절대주의이다.
(미주 2) L. Ragaz, 『Von Christus zu Marx, von Marx zu Christus』, Hamburg: Furche, 1972, S. 38. Vgl. Sozialismus und Gewalt, S.  125.
(미주 3) A.a.O., S. 130.
(미주 4) Sozialismus und Gewalt, S. 5.
(미주 5) Weltreich, Bd. 1, S. 308.
(미주 6) A.a.O.
(미주 7) Von Christus zu Marx, S. 38-39.
(미주 8) A.a.O., S. 39. Vgl. Bibel 1, S. 133.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jena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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