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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창조 이야기구약성서에 대한 문학적 이해 4
이정훈 | 승인 2018.11.11 21:38

구약성서에는 두 개의 창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창세기 1장 1절에서 2장 4절 상반절까지이고, 또 다른 하나는 2장 4절 후반절에서부터 3장 24절까지이다. 구약성서 학자들은 전자의 출처를 P라고 부르고, 후자는 J라고 부른다. 염격한 의미에서 이것은 저자라기보다는 그 이야기가 담긴 자료층을 의미한다. “제사장 문서”(Priestly Document)라는 말의 첫 글자를 따서 P라고 부르지만 저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하여간 독자가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술하는 방대한 계획의 일환으로 이 창조 이야기가 문서화되었다는 것뿐이다. J는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신의 이름을 “야훼”로 쓰는 자료층이다. 오경(창세기~신명기)에는 P와 J의 자료가 많고, 그밖에 신의 이름을 “엘로힘”(Elohim)으로 쓰는 E기자와 신명기(Deuteronomy)의 자료라고 생각되는 D가 있다.

창조기사의 단순성과 장엄성

우선 P기자의 창조 이야기부터 훑어보자. 먼저 독자의 눈을 끄는 것은 그 문체가 굉장히 단순하다는 점이다. 1절에 개역성서에는 “태초에”라는 말 한 마디가 간결하게 세상 창조의 신비의 막을 울리는 은은한 소리로 들려온다. 그러나 “태초”라는 우리 말이나 영어 “In the beginning”은 추상적인 용어이지만, 히브리 bereshith는 be라는 전치사와 reshith라는 여성명서가 결합된 단어로, 뜻은 “머리”(rosh)란 말에서 온 것이다.

또한 창조 기사의 대부분 동사들이 단음절로 되어 있다. bara(창조하다), haya(존재하다), amar(말하다), ra’a(보다), badal(나누다), kara(부르다) 등이다. 여기에서 사용된 형용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tob(좋았더라).

ⓒGetty Image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런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사람은 어떤 장엄한 광경을 보게 되면 긴 설명보다는 외마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낼 뿐이다. 즉 창조 사건 자체가 너무나 장엄하기 때문에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긴 설명이 불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료층에는 몇 개의 문구를 반복함으로써 마치 시의 후렴구와 같이 또는 산의 메아리처럼 창조 사건 하나 하나의 여운을 길게 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반복은 독일어 성서 번역본인 Luther Bibel에서 더 뚜렷이 찾아볼 수 있다.

Und Gott sprach, Es werde …, und es ward …, und Gott nannte …, und Gott machte …, und Gott sah, daß es gut war. Da ward aus Abend und Morgen der X Tag.

P기자가 그리는 신의 모습은 특이한 면이 존재한다.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여기저기 놓아두고 혼자 즐거워하는 것처럼, 하나님 역시 하늘에 두 개의 빛을 만들어 하나는 낮을 다르시고 또 하나는 밤을 다스리게 하는 자신의 계획을 마음껏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그려 놓았다. 그리고 하늘에는 별을 만들고, 바다에는 고래(큰 물고기)를 만들면서 “새끼를 많이 낳아 바닷물 속에 가득히 번성하여라”(창 1:22)고 말하는 장면에서 아기자기 하며 익살스러운 면도 보인다.

이 같은 신의 모습은 구약성서 후기 작품에서 신이 높은 산 위에서 천둥 번개를 치며 위엄을 과시하는 모습과는 굉장히 대조적이다. 그러므로 P가 그린 신의 첫 모습은 창조자로서 자신의 과업을 즐거워하며, 만들어놓은 세상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신이다.

그러나 일면 그 표현 방법에 있어서 P기자는 무척 조직적이며 형식적이고 정확한 면도 보여준다. 신은 세상 창조를 직접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멀리 앉아 단추를 누르듯 그의 말씀으로 창조한다. 그리고 창조 역사에 인간적인 요소가 개입되지 않음으로 신의 초월성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낸다.

창조 기간은 모두 6일이며, 이것도 3일씩 두 부분으로 조직적으로 구별된다. 제3일에는 마른 땅과 채소, 제6일에는 땅의 동물과 사람, 각기 두 가지 것을 창조하신다. 그리고 그 방법에 있어서도 논리적인 계단을 밟아간다. 최초에는 공허한 대지로부터 시작해 낮과 밤을 가르고, 땅과 하늘, 바다와 육지를 가른 다음, 육지의 동물과 식물, 공중의 날짐승 등의 창조에 이어, 끝으로 인간의 창조가 절정을 이룬다.

혼돈과 악의 세력마저 다스리시는 이스라엘의 창조주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고대 근동에 흩어져 있는 창조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인 악의 세력과 투쟁하는 면이 없다. 메소포타미아 창조 신화에는 혼돈의 물이 괴물로 나타나 태풍의 신과 격투 끝에 그 괴물을 죽여 두 쪽으로 가른 다음, 그 하나로 천상의 물, 다른 하나로는 지상의 물을 만든다. 원시 세계관에 의하면 지구는 평평하고 물바다 위에 떠 있으며 기둥으로 하늘을 떠 받치고 또 천상 위에도 물바다가 있다고 그려 놓는다.

고대 근동의 창조 신화들은 창조 이전의 혼돈 상태는 이 두 개의 물바다가 서로 합쳐서 무질서한 상태가 된 것을 말하며, 창조의 역사는 이 두 물을 갈라놓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구약성서의 창조 신화에는 혼돈신의 이름인 tehom(water-chaos), “깊은 물”만이 언급되었을 뿐 창조주 신과 혼돈의 신이 격투했다는 기사는 없다. 결국 P기자는 이스라엘의 신은 혼돈과 악의 세계까지 다스리고 초월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이 첫 번째 창조 이야기에 사용된 신의 이름은 엘로힘(Elohim)인데, “El”은 팔레스타인이나 고대 근동에서 사용된 신의 일반적인 호칭으로 성서의 지명과 인명에도 많이 사용된다. 예를 들면 땅 이름으로 Bethel(벧엘), 사람 이름으로는 El-kanah(엘가나) 등이 있다. Elohim은 El의 복수형인데, P기자는 인간 창조의 장면에서 신이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Laßt uns Menschen machen, ein Bild, das uns gleich sei, 창 1:26)라고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장면은 창조주 하나님이 하늘에 있는 천군천사들과 회의를 하면서 인간을 신의 형상대로 만들자고 제안하는 듯하다. 이같은 생각은 신의 이름이 복수이고 또 만든다는 동사 자체가 1인칭 복수 형태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시편 29편, 욥기 1장, 다니엘 7장 9절, 열왕기상 22장 19절, 이사야 6장 8절에 하늘 회의(Der göttliche Rat)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 인간이 신의 형상(Imago Dei)을 닮았다는 것은 깊은 신학적인 문제이지만, 여하간 인간 창조가 곧 하나님 자신의 속성을 연장시키는 창조 역사의 최대 과업이라는 점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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