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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게 시련을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영화묵상 | <리바이어던>(Leviathan)
두더지(평화교회연구소 연구원/다큐인) | 승인 2018.11.16 21:39
“평화교회연구소는 평화로운 세상, 올바른 믿음의 교회를 꿈꾸며 부흥과 성장보다 평화, 생명, 정의의 가치가 실현되는 21세기 새로운 한국교회를 상상합니다!” 모토 아래 건강한 한국교회를 상상하는 평화교회연구소가 매달 발행하는 “웹진 평:상”의 글들을 에큐메니안에 게재합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평화교회연구소 소장님과 연구소 소속 모든 연구원들과 웹진 기고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리바이어던)을 낚을 수 있으며, 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느냐? 리워야단을 보는 사람은, 쳐다보기만 해도 기가 꺾이고, 땅에 고꾸라진다. - 욥기 41:1,9

▲ 영화 <리바이어던>(Leviathan) / 안드레이 즈비아진세프 감독 작품, 140분, 러시아, 2014년

한적하다 못해 쓸쓸한 느낌이 드는 러시아의 하얀 바닷가. 그림 같은 풍경 속에 바다를 벗 삼아 우두커니 자리한 오래된 이층집에는 영화의 주인공 콜랴와 그의 가족이 살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긴장감 가득한 음악과 카메라의 음침한 시선으로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제목처럼 ‘리바이어던’(성서에 나오는 괴물의 이름)이 사방 어딘가에서 성큼 성큼 기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공포스런 시공간이 펼쳐진다. 과연 러시아의 시크한 바닷가와 황량하리만치 새하얀 들판이 숨기고 있는 괴물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영화에는 ‘괴생물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괴물’보다 더욱 잔인한 현실의 이야기가 우리네 일상과 오버랩 되면서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숨 막히는 답답함과 공포감을 선사한다.

▲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한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는 시장 바딤(로만 마드야노프 분)

영화 <리바이어던>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바닷가를 개발하려는 작은 도시의 시장 바딤과 이 개발에 맞서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평범한 가장 콜랴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물론 영화 속의 내용을 ‘대결’이라는 단어로 일축하는 것은 자칫 무자비하게 느껴질 정도로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표현일지 모른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모든 철거의 현장이 그렇듯 이 과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폭력적이며,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빼앗는 자는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상대방을 유린하지만, 빼앗기는 자는 삶의 터전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권’과 ‘인간성’마저 남김없이 수탈당한다. 마치 컨베이어벨트 위의 닭 한 마리가 주어진 공정에 따라 죽임을 당하고 발가벗겨져 결국에 투명한 포장지 속의 식재료로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이 영화는 잔인하게도 우리에게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한 가족의 파멸과 절망의 절차를 묵묵히 지켜볼 것을 요구한다.

▲ 주인공 콜랴(알렉세이 세레브리아코프분) 부패한 권력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기는 기구한 운명에 처한다.

마초적인 성격에 큰 키와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주인공 콜랴는 상당히 강인한 인상을 갖고 있다. 아마도 1:1의 싸움에서 져본 일이 없어 보이는 이 러시아 사내는 모든 일에 자신만만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불의한 불행 앞에서 콜랴는 속수무책이다.

공권력을 동원하여 합법과 불법 사이를 교묘하게 넘나들며 자신과 가족을 압박하는 도시의 시장 바딤 앞에서 그의 강인한 신체도, 지칠 줄 모르는 끈기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저 악다구니를 물고 온몸으로 저항해보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무력함을 확인할 뿐이다. 결국 삶의 터전도, 가족의 생명도, 자신의 남은 인생마저도 다 빼앗기고 나서 절망감에 휩싸인 채 주저 앉아있던 콜랴는 그 자신이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던 정교회 사제를 붙잡고 절규한다.

“주님이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영화 <리바이어던>은 ‘욥기’의 내용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사제를 향한 콜랴의 탄식어린 질문은 욥기의 주제인 ‘고난의 문제’와 연결된다. ‘과연 선하고 성실한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콜랴의 질문은 곧 알 수 없는 고난 가운데 내몰린 욥의 질문이며 이는 이해할 수 없는 ‘불의한 고난’을 겪으며 절망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같은 모습으로 터져 나왔던 탄식이자 기도소리이다.

하지만 수없이 하늘을 향해 던져지는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성서 속에서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42장에 걸쳐 기록된 ‘욥기’를 꼼꼼히 살펴보아도 선하고 성실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명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나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다만 성서 속의 욥은 답을 구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직접 조우하면서 점차 상황이 반전되고, 질문 자체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성서도 명확히 답해줄 수 없는 이 어려운 물음에 대해 지나가던 사제가 제대로 대답했을리 만무하다. 사제는 성서 속에 등장하는 욥의 친구들과 같이 하나마나한 ‘진리’ 타령으로 신을 대변하고, 자신의 직위를 방어함으로 콜랴에게 더욱 큰 절망감을 안겨줄 뿐이다.

▲ 시장 바딤은 정기적으로 신부를 찾아가 자신의 고민을 논의한다. 문제는 그 고민이라는 것이 무고한 사람의 삶을 짓밟는 일이라는데 있다.

콜랴가 절규하는 이 장면을 통해 영화는 단지 종교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실은 영화 속에서 종교와 정치는 철저하게 결탁되어 있다. 콜랴의 삶을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인 시장 바딤은 매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열렬한 신자이며 정교회의 지도자를 만나 정기적인 신앙상담과 더불어 콜랴의 집을 빼앗는 일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를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종교가 절망에 빠진 불쌍한 이웃을 돌보기보다는 파렴치한 시장의 행위에 오히려 정당성을 부여하고 한 가족을 사지로 내모는데 공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타락과 이중적인 신앙인이 즐비하게 등장하는 이 영화의 절정부분에서 무신론자인 콜랴가 지나가던 사제에게 최후의 기대를 걸고 던진 질문이 얼마나 허망한지. 과연 콜랴의 이 비통한 외침에 누가 답할 수 있을 것인가.

2시간여의 러닝타임이 지나고 자본가와 성직자, 경찰, 판사, 그리고 행정관료 등 온 사회가 공모하여 한 가족을 파멸로 몰아넣는 이야기가 한바탕 끝났지만 세상은 그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파란바다와 파란하늘, 그리고 하얀 들판은 영화의 시작과 같은 모습으로 서글프리만큼 아름다울 뿐.

토마스 홉스가 1651년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을 저술할 때도, 안드레이 즈비아진세프 감독이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든 지금도, 우리의 현실을 장악하고 있는 리워야단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궁중족발을 비롯한 상가세입자들의 서글픈 현실을 보라. 수백 일을 굴뚝 위에 올라 온몸으로 소리치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란 말이다. 여전히 우리는 하루 하루 리워야단을 마주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살아간다.

▲ 뼈만 남은 고래의 사체가 마치 바다에서 기어나온 리워야단의 느낌을 자아낸다.

욥기에 기록된 대로 쳐다보기만 해도 기가 꺾이고 땅에 고꾸라질 것만 같은 고난의 상황이 순간순간 엄습하는 세상 속에서 절망에 빠진 누군가가 당신에게 “주님이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라고 질문한다면 과연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 우리를 향한 그 질문이 허망하지 않게 그의 곁에 있어 주는 것. 또 식상한 답변일 수 있지만 “제가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믿는 주님은 분명히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라고 응답하며,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있음을 작게나마 증명하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까. 최소한 신앙인으로써 내 친구와 이웃을 향한 야만적인 약탈 앞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괴물 같은 세상을 바꿔가는 가장 빠른 길은 아마도 우리 스스로 먼저 괴물이 되지 않는 일일 테니까. 

 갑작스레 엄습해온 리워야단 앞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모든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두더지(평화교회연구소 연구원/다큐인)  peacechurch20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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