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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 복음서, 그루밍 성범죄의 원흉?인식의 전환(눅 2:27-30)
이성훈 | 승인 2018.11.18 20:21

지난 주에 목회자들에 의한 범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 중에 최근에 불거진 문제였던, 사실은 반년 전에 이미 알려졌지만, 공중파 언론에는 최근에 등장한  인천 김 모 목사의 그루밍 성범죄를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주에 제가 말씀드린 내용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 목회를 했고, 그렇기에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성도님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벌을 받지 않았기에 목회자는 범죄를 저질러도 이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할 수 있었고, 성도님들은 이를 믿고 오히려 범죄자인 목회자의 편에 선다는 이야기도 드렸습니다.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그런데 이것이 단순하게 목회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즉각적인 심판을 받지 않았으니까 성도님들도 믿고 따랐다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오히려 그 이면에 성도님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 더 나아가서 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인식이 있지는 않는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독교에 속한 사람으로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려고 하고, 그 인식이 지금 시대에 맞는가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루밍 성범죄의 원형

인천의 김 모 목사가 저지른 범죄는 그루밍 성범죄라고 불립니다. 가해자가 먼저 피해자들에게 호감을 얻어 가까운 사이가 된 이후에 성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때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향한 연심이라던지 존경심이라던지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성폭행을 당한다고 인식하지 못했다가 나중에야 이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시간이 지난 후이기 때문에 고발이나 처벌이 어려운 범죄이기도 합니다.

그루밍 성범죄는 일종의 권력에 의한 성범죄입니다만, 권력으로 짓눌러서 폭력을 행하는 일이 아니라 권력을 가지고 상대를 회유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하는 게 당연하다고, 혹은 맞다고 여기게 만드는 범죄입니다. 이러한 범죄는 사실 성범죄의 영역을 넘어갈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금은 성범죄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성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하려고 합니다. 

이런 모습, 이런 성적 범죄를 어디에서 많이 봤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로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최고신 제우스였습니다. 제우스는 천둥의 신이라고 알려져 있고, 올림푸스의 최고신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제우스하면 유명한 점이 바람둥이였다는 사실입니다. 

제우스를 바람둥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제우스를 좋게 평가하기 위한 언어 선택입니다. 오히려 제우스는 성범죄자에 가깝습니다. 난봉꾼 제우스에 대한 내용은 인터넷만 찾아봐도 쉽게 알 수 있고, 수많은 서양화가들이 이런 제우스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았기에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우스의 성범죄와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자면, 제우스에게는 정실부인이 세 명 있습니다. 이 부인 이외에 제우스가 관계를 맺은 여성은 여신 14명, 요정 19명, 인간 21명으로 전해지는 신화에서만 부인을 포함해 총 57명과 관계를 맺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36명, 여신 8명, 요정 14명, 인간 14명과는 일반적인 방식, 연애를 한다거나 서로 사랑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은 게 아니라, 거의 겁탈에 가까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성을 임신시킨 후에 “난 최고신이니까 괜찮아”로 끝납니다. 제우스에게 성범죄를 당한 여성들은 당하기 전이나 후나 이 사건 자체로 인해 괴로워하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제우스가 최고신이기 때문에 이 사건을 인정해버립니다. 어찌보면 제우스는 그루밍 성범죄의 원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우스의 이러한 모습을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는 경우를 보면,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은 인간화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적인 모습을 신들에게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사실 제우스의 성범죄는 인간의 모습을 따왔다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신적 역할에 따른 행위입니다. 제우스는 천둥의 신이고 최고신이면서 만물의 아버지입니다. 그리스 철학에서 제우스는 우라노스(공간)와 크로노스(시간)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 시공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이기에 만물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제우스가 만물의 아버지라는 이런 생각은 그의 성적 행위가 창조의 원형이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고, 제우스에 의한 창조행위는 그의 신적 역할로 인정됩니다. 그래서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도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는 제우스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제우스와 관계 맺은 여성들이나 그 자식들을 괴롭히는 일로 끝내게 됩니다.

이런 사상은 고대 히타이트 신화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합니다만, 우리 성경에서도 이런 존재에 대한 신화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땅에 비를 내려서 창조를 행하는 존재, 바알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끔 예언서에서 볼 수 있듯이 바알과 아세라 제의는 성관계와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제우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점은 과거 이 신화를 믿었던 사람들, 고대 그리스-로마 사람들과 그들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창조신이라면 그래도 된다는 그들의 인식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수태고지

이제 우리 성경으로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우리 성경에도 하나님은 창조신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역할을 수행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른 신화 속 신들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행위로 창조를 행하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창조를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 만드신 창조 질서를 굳이 깨뜨리시는 일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수태고지 ⓒGetty Image

그런데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 질서를 깨뜨리는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서 임신은 남성과 여성이 관계할 때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남성과 관계를 맺은 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아들을 임신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한 번 살펴봅시다. 천사 가브리엘이 다윗 가문의 후손 요셉과 약혼한 여성 마리아의 앞에 나타납니다. 앞에 나타났다기보다 집 앞에 나타난 다음에 집으로 들어가서 마리아 앞에 섭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기뻐하여라! 은총을 받은 자여! 주께서 너와 함께하신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평안할지어다’라고 번역되었습니다만, 본래는 ‘기뻐하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카이로(χαίρω)’의 명령형 ‘카이레(χαῖρε)’입니다. ‘기뻐해라’가 맞습니다.

가브리엘의 말을 들은 마리아는 당황합니다. 헬라어 ‘디아타라쏘(διαταράσσω)’가 사용되었는데, 성경에서는 오직 여기에서만 딱 한 번 사용됩니다. ‘혼란스럽다, 문제가 생기다’라는 의미의 ‘타라쏘(ταράσσω)’에 ‘~을 통하여’란 의미의 접두사 ‘디아(δια)’를 붙인 단어인데, 학자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서 ‘디아’를 붙였다고 판단합니다.

가브리엘의 말을 들은 마리아는 완전히 혼란스럽습니다. 가브리엘이 별로 한 말도 없지만 혼란스럽습니다. 뭘 기뻐하라는건지, 무슨 은총을 받았다는건지, 혼란스럽습니다. 그나마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는 표현이 마리아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이 마지막 말만은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지만, 마리아는 이 인사가 무슨 의미인지 고민합니다.

그러자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가 수태고지라고 말하는 내용을 쭉 이야기합니다. 가브리엘과 마리아의 이 대화에서 눈여겨 볼만한 점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임신을 하게 되는가?”라는 마리아가 던진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서 가브리엘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말씀’, 우리가 잘 아는 헬라어 ‘레마(ῥῆμα)’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과 다른 신들, 제우스나 바알의 차이점은 행위에 의한 풍요나 창조가 아니라 말씀에 의한 창조입니다. 즉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창조 능력으로 인해 마리아가 임신하게 되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방 신화의 차용

이제부터는 사도신경을 부정하는 불경스러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감히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 이야기는 초대교회 교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상당히 어려운 본문입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교회는 분명 과거 예언자들의 소명설화와 수태고지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글자 그대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만도 없고, 호세아에 나타난 ‘음란한 여인’으로 표현된 이스라엘의 개념까지 연결시키자면 상당히 복잡합니다만, 이 이야기의 내면에 담겨져 있는 인식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그리스-로마 문화에 젖어있던 초대교인들에게 있어서 신에 의해 여성이 임신하게 된다는 사실은 이상할 게 없습니다. 오히려 창조신이라면, 제우스가 창조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신이라면, 제우스와 동격 혹은 올림푸스 모든 신들을 대체하는 신이라면, 당연히 이런 창조 행위를 하리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렇기에 초대 교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식의 신화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신화에 대해서 복음서 기자들은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에게는 제우스나 바알이 행하는 행위는 존재하지 않고, 이 모든 일이 ‘말씀’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누가복음의 이런 생각은 결국 요한복음과 동일합니다.

마태복음의 경우에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요셉에게 나타난 천사가 마리아는 ‘성령으로 임신했다’고 말하는데, 이 말도 ‘성령이 임신시켰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겠지만, ‘임신하고 성령이 임했다’, 혹은 ‘성령이 임한 가운데 임신했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 15절에서 가브리엘이 사가랴에게 예언하길 “세례요한은 어머니의 배 속에서 성령이 충만하리라” 말합니다. 이도 결국 ‘성령으로 잉태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자면 마태복음은 분명 마리아의 혼외임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다만 이에 대해서 문제 삼지 말라는 천사의 경고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자들의 이런 조심스러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의 성도들 사이에서 이런 전설이 만들어지고 전파되는 일은 막지 못한 듯 보입니다. 지금 우리의 손에 놓인 성경에 이러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은, 복음서의 저자들이 잘못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이방 신앙과의 융합을 막지 못했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성경은 분명 신적 권위를 가진 존재들과 인간 사이에 자식이 태어나는 일을 ‘악’이라고 규정합니다. 이는 창세기를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창세기 6장 1-4절을 보면 네피림 전설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아름다운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용사들의 전설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창세기 6장 5절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입니다. 네피림의 존재 역시도 ‘죄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죄악’을 하나님께서 직접 마리아를 통해 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의 부분 부분을 따로 읽는다면, 성경은 우리의 경전이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말씀이 다 맞는 이야기, 올바른 말씀이 됩니다. 하지만 성경을 창세기로부터 쭉 이어서 읽어간다면, 우리는 성경 안에서 잘못된 말씀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성경이 잘못 기록된 것이 아니라 성경 스스로가 잘못, 죄악을 가르쳐주는 부분입니다. 성경을 기록하던 시대와 기록한 사람들의 잘못을 성경 스스로가 드러내주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쭉 읽어 오신 분들이라면 성경 안에 나타난 잘못들을 파악해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말할 수 있습니다. 이건 분명히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인식입니다. ‘신이니까 괜찮아’, ‘처녀를 임신시키는 일은 창조신의 당연한 역할이야’ 이런 인식은 분명히 잘못되었습니다. 이미 구약에서 악으로 규정한 행동이며 인식입니다.

역사 속에서 문화의 융합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인식의 전환, 종교적 인식의 전환은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렇기에 구약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방신을 섬기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신이니까’라는 인식은 지금 시대에 와서 ‘하나님의 일꾼이니까’, ‘하나님의 종이니까’, ‘목사님이니까’라는 인식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는 단지 성적 범죄의 영역을 떠나서 수많은 교회의 문제에도 적용됩니다. 너무 과도한 결론 도출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방 신화와 성경의 융합이 결국 잘못된 인식을 만들었고, 이는 지금의 범죄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안 되는 건 안 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대단하신 이유는 처녀를 임신시키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가 인간들과 동일하게 율법 속에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법칙을 스스로가 먼저 지키시기에 대단하신 분이신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적적인 창조 행위, 기적적인 역사를 통해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속에서 현실 그대로의 모습과 방식으로 우리를 도우시기에 대단하신 분이신겁니다. 그런데 지금의 수많은 교회들은 현실 속에 살아 숨 쉬고 계신 하나님을 외면한 채, 기적적인 하나님만을 추구하고 쫓고 있지는 않나 안타까움이 듭니다.

나가는 말

저는 우리가 이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녀가 잉태했다는 이야기는 지금 시대에 맞지도 않는 신에 의한 강제 임신 사건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초대교회 시대에도 맞지 않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법칙 속에서 맞지 않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버리는 이런 신앙은, 현실을 변화시키시고 현실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전부 외면해버리는 일입니다.

현실 속에서 살아 숨 쉬고 계신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라고, 오직 그 기적, 지금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나를 도우신다는 기적만을 바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돈을 달라고 기도할 때, 하늘에서 돈을 뚝 떨어뜨려주시는 분이 아니시라, 우리가 조금이라도 힘내서 일할 수 있도록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게 하시는 분이시고, 일의 스트레스로 인해 괴로워할 때, 우리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그런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살아 숨 쉬고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며 오늘도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가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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