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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어느 멋진 날: 응답하라 1987 시즌2홍승표 박사와 함께 하는 민주화 운동 역사 산책
이혜영(미국장로교[PCUSA] 선교동역자) | 승인 2018.11.22 15:18
이 글은 '고난함께'에서 진행하는 <홍승표 박사와 함께 하는 민주화 운동 역사 산책>에 참여하신 미국장로교 선교동역자로 활동하고 계시는 이혜영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 글은 '고난함께' 소식지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역사를 되짚어 본다는 것은 지금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은 암흑의 일제강점기, 혼돈의 미군정시대, 참혹한 한국전쟁, 그리고 지독한 독재체제를 겪어왔다. 한 시대를 짤막한 형용사로 표현한다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나 한국인이라면 각 시대에 붙여진 이 수식어들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에도 희망의 불꽃이 사그라지지 않았던 이유는 억압에 대한 저항과 자유를 열망하는 민주화를 위해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한반도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과 북의 정상들의 만남을 시작으로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직면하면서 기독교인으로서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하고, 무엇을 더 기억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우리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와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과 희생을 아끼지 않으셨던 앞서가신 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산책을 떠났다.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하 고난함께)과 교회 2.0 목회자 운동에서 주최한 “응답하라 1987 시즌 2”로 구성된 이 역사 기행은 지난봄 남산과 명동 일대를 거닐며 1987년 6월 항쟁의 발자취를 따라간 것의 후속 편으로 한국 교회사를 전공하신 홍승표 박사와 종로 5가 일대, 동대문, 후암동과 남영동을 직접 발로 걸으며 골목 골목에서 역사의 체취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교회와 사회를 잇던 곳, 종로5가

개인적으로 미국북장로교회의 선교 스테이션이었던 종로5가는 거의 제 집 드나들며 다니는 곳이었기에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들과 조형물에 역사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기독교 동네’로 알려진 종로5가는 20세기 초에 미국북장로교 선교사들의 거주지이자 정신 여학교, 경신학교, 연동교회 등이 위치한 한국 초기 선교 중심지의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보는 것이 한국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는데 특히 정신 여학교에서 3.1 운동을 전후해 한국 기독 여성들이 독립운동의 역할을 감당했다는 후일담이 기억이 남는다.

▲ 수령 500년이 넘는 큰 회화나무 한 그루. 어쩌면 한국 현대사를 빠짐없이 지켜 본 산 증인일지도 모른다. ⓒ이혜영

그때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그것을 증명해 내고 있었다. 수령 500년이 넘는 큰 회화나무 한 그루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나무이지만 엄청난 사연이 숨겨져 있었다. 여성 독립운동조직인 ‘애국부인회’의 비밀본부였던 정신 여학교를 경찰이 수색할 때 교사와 학생들이 독립운동 관련 비밀 문건과 태극기, 한국사 책 등을 모두 이 나무의 큰 옹이구멍에 숨겨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길가에 무심히 서 있는 이 나무를 보면서, 우리는 지금 옹이구멍에 무엇을 간직하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암동, 식민지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산책의 경로는 한국인 자신들의 주체적인 신앙 결단으로 출발한 서울복음교회 탐방과 감리교 선교의 역사를 지닌 동대문을 거쳐 후암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암동은 서울 용산구에 속한 동으로 서울역을 지나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지나가 본 동네일 것이다. 동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니 스쳐 지나갈 때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광경이 눈앞에 있었다.

▲ 일제 식민지 시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후암동. 사진 제일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인 이혜영 선생. ⓒ고난함께 제공

후암동은 일제 강점기 때 부유한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한옥이 아닌 다른 형태의 집을 짓고 살고 있었는데 그것을 문화주택이라고 한단다. 개발의 그림자 속에 숨어있어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곳으로 그때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집들이 여전히 그 형태를 유지한 채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해 주시던 홍승표 박사는 대문 아래의 벽돌이 마름모로 되어 있는 것은 일본인의 손으로 지은 집이고 벽돌이 정사각형으로 지어진 것은 한국인이 지은 집이라고 소개하셨다.

그때부터 우리 일행은 벽돌의 형태를 주시하게 되었는데 확실히 정사각형으로 지어진 집이 많이 보였다. 누구의 피와 땀으로 이 집들이 지어졌고 그 지어진 집에 누가 살고 있었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단지 벽돌 하나일 뿐인데 그 당시의 시대상을 상상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허투루 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영동,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산책의 마지막 경로는 남영동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잔상을 볼 수 있는 남영 아케이드를 지나 남영동 대공분실로 향했다. 이곳은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및 축소 은폐 사건’이 있었던 현장이다. 밖에서 바라보는 이 건물은 뭔가 특이한 구조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7층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의 5층이 모두 좁은 창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진 2). 이유인즉 5층이 고문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탈출 혹은 자살을 막기 위하여 작은 창문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이다.

이 건물의 역할과 특징을 느끼기 위해서 건물 뒤쪽의 쪽문을 통해 들어가 보았다. 쪽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반지름이 채 1m도 안 되는 나선형 계단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고문실로 가는 입구이다. 이렇게 건물을 디자인한 이유는 어디로 끌려 온지 모르게 하기 위해 피조사자들의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나선형 계단을 오르며 방향감각을 잃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계단을 오르며 나도 스르르 눈을 감아 봤는데 그 당시 어디로 끌려오는 지도 모르고 얼굴이 가려진 채 계단을 올랐을 젊은이들을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 짐을 느꼈다.

▲ 남영동 대공분실. 이곳에서 1987년 민주화혁명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 고문 살인 사건이 있었다. ⓒ이혜영

계단을 올라가니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았던 509호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고문의 장소였나 싶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내 눈에 들어온 작고 깊은 욕조와 책상, 딱딱한 침대 등을 바라보니 고문의 고통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남영동 대공분실 답사를 마친 후 관계자분과 잠깐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하시지 않는 그분은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잊지 않기 위해서 그 509호실을 그대로 지켜내기 위한 위험한 선택의 순간에 관해서 설명하셨다. 많은 이들이 그 사실을 은폐하고자 5층을 없애려고 했지만 몇몇의 힘으로 그것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그들의 절실한 선택이 우리가 오늘날 그날을 기억할 수 있는 기억의 공간을 제공해 준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역사는 그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기행을 통해서 길가에 무심히 서 있는 500년 된 나무, 골목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집을 받쳐 주는 벽돌, 건물 속에 숨겨진 나선형의 계단을 만났다. 그 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쳐야 했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용기와 희생이요, 그 벽돌은 무심히 볼 벽돌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때 강제로 동원되었던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요, 그 숨겨진 계단은 이제 더 이상 숨기지 말아야 할 민주화를 향한 젊은이들의 열정과 목숨이다. 어쩌면 이름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가게 될 그것들에 의미를 붙여주고 기억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더불어 지금 이 시대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나무’, ‘벽돌’, ‘계단’은 무엇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며 행동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10월에 어느 멋진 날에 의미 있는 역사기행을 기획해 주신 고난함께와 교회 2.0 목회자 운동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고난함께 제공

이혜영(미국장로교[PCUSA] 선교동역자)  gonanwit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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