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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소의 기록과 기억과천현대미술관 관람후기1
이원표 목사 | 승인 2018.11.26 19:56

혼밥혼술 못 하는 사람도, 혼자 미술관 가는 건 어렵지 않다. 가보면 알겠지만, 혼자 오신 분들이 많기도 하지만, 그 보다 미술품을 감상하다가 나도 모르게 작품 속으로 들어가 작품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작가의 생각을 상상하며 나만의 세계에 빠지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일 것 같다.

과천 현대미술관은 기본 관람은 무료이고 특별 전시 3가지만 유료인데, 각 전시 당 2천원의 관람료가 있지만 3천원을 내면 전부 관람할 수 있습니다.

1전시 박이소의 기록과 기억, 
2전시 김중업의 다이얼로그, 
3전시 문명 :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그 외 2,3층은 무료 전시 중입니다.

오늘은 제1전시, 박이소의 기록과 기억을 소개할까 한다.

▲ World Wide Web을 풍자한 <드넓은 세상>이란 세계지도. ⓒ이원표

사실 이 작품의 묘미는 저 지도 안에 붙여진 이름표였다. 세계지도니까 나라이름이나 수도의 이름이 써있겠거니 하고 다가가서 봤더니 전혀 모르는 이름 투성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 아주 작은 마을의 이름을 써놓은 것이다.

작은 소도시와 마을의 이름... 어쩌면 세계지도에는 저렇게 작은 마을들이 훨씬 많고 다양한 모습의 즐거움을 주듯이 우리네 인생도 굵직굵직한 사건 보다 매일매일 기억되지도 않는 작은 일들과 사건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의 전시는 작가노트와 드로잉, 도큐먼트 그리고 독특하게 재즈 라이브러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노래와 재즈를 좋아해서 그가 직접 녹음한 재즈 tape 수백개도 전시되어 있었다. 재밌는 건, 전시회장 안에 빌리 조엘의 honesty를 ‘정직성’이라고 한국어로 번안해 작가가 직접 부른 어설픈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고 김근태씨의 고문일기도 작품 안에 써 있긴 하지만,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을 쭉 나열하면 어디서부터 어떤 경계가 나눠어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참 어려운 주제다.

▲ 박이소의 난해한 작품, 인간적과 비인간적 ⓒ이원표

법륜 스님이 한 방송에서 자기를 고문한 형사가 갑자기 측은해지기 시작했다는 말을 했다. 고문을 당하는 동안 너무 힘들었는데, 그 형사의 대화를 우연히 듣고는 다 이해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슨 대화였길래... 역시 스님이라 내공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법륜 스님이 자신을 고문했던 형사를 진짜로 이해하게 된 그들의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형사1 : 자네, 아들 대학 붙었다며? 축하해!
형사2 : 축하는... 이제 등록금을 어찌 마련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 짧은 대사를 통해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처럼, 법륜은 자신을 고문하는 사람이 그저 평범한 이 시대의 가장일 뿐이구나, 내가 그들을 미워할 필요가 없구나는 물론, 그들이 측은해졌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우리가 인간적과 비인간적이라는 스펙트럼을 쫙 늘여놓고 하나의 경계를 그어보라고 한다면 난 어디서 나의 칼을 들이댈까?

여기부터는 나쁜 놈, 여기부터는 좋은 놈... 그렇게 경계를 그어댈 수 있을까? 그래서 인간적 비인간적 작품은 참 어렵다. 그래서인가 작품에서도 경계가 보이질 않는다.

자본이 창의력인 시대를 살았던 박이소의 저 두 단어는 수학기호인 = 이 좌우를 바꾸어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창의력이 자본인 시대가 아닌가?

잡초도 자란다. 잡초도라는 단어에 ‘도’는 너만 아닌 나도로 봐도 좋고, 나만 아니 너도로 보아도 좋겠다. 그리고 인싸, 주류가 아닌 아싸, 비주류도 있다는 말일까?

‘나는 그림그릴때 마다 이 그림이 다른 사람들 맘에 들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요즘 세상에 가만히 벽에 붙은 그림이 뭘 할 수 있을까 하며 자꾸 한심해 한다.’

박이소의 저 글귀를 보면서 순간 숨이 막혔다. 세상이란 게 뭐 대단한 사람들이 엄청난 일을 벌여야 움직일 것 같지만, 사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늘 제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처럼, 이제 우리 세상은 그만 대단해졌으면 좋겠다. 대단한 게 뭐 대단한가? 벽에 붙은 그림 하나가 내 마음을 이리 요동치게 하는데...

개념미술을 한 비운의 작가 박이소... 그의 전시 ‘기록과 기억’이란 제목이 퍽이나 의미깊다. 사람이란 그렇다고 한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지난 추억을 재구성 한다고.

그가 거짓말을 즐겨해서가 아니라, 기억에는 추억에는 자기의 소망도 있고 감정이 있으니까. 그래서 그 기억이 힘을 내기 위해서 글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영상이든 우린 기록을 하며 살아간다.

역사학자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던진 유명한 화두, ‘역사는 선택된 사실이다’란 말처럼, 우리는 어떤 기억과 추억을 선택하며 사실로 남겨서 다시 추억할 것인가. 이 질문을 내게로 향하면 너무 분명하다.

‘난, 내 인생의 어떤 기록들을 남기며 기억하고 그 기억이 추억이 되어 살아갈 것인가?’

덧글) 박이소가 번역한,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읽어보면 미술이 좀더 가까울 것 같다.

이원표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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