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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에스겔 37:1-10)장일선, 『구약성서와 설교』 11
편집부 | 승인 2018.11.28 17:44
지난 시간에는 고 장일선 한신대 구약학 교수님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개혁자도 신비주의도 아닌 “과거 전승의 충실한 보유자”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예언자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되새기며 그들이 저한 역사적 상황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여 그 메시지를 선포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장일선 교수님은 예언자들이 바랐던 것은 소수의 사람이라도 야훼의 말을 듣고 그들의 행동을 바꾸어 야훼가 시작하시는 새로운 공동체의 핵심이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시대에 예언자가 되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탄생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의 예언서를 읽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와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언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원래 제사장의 아들이었고, 또 어려서 예루살렘 성전 예배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제의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바빌론에서 예언 활동을 하면서도 예루살렘 성전 예배에 대한 환상도 많이 보았다. 그는 자나 깨나 언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겠는가 하고 고대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발 강변의 포로 수용소에 살고 있는 동족들은 그에게 너무나 실망을 주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야훼 예배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매일같이 중노동에 시달려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었다. 그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 보아도 별 반응이 없었다.

에스겔은 어느 날 들판에 나가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동족들의 운명을 골똘히 생각하며 명상에 잠겼다. 내일에 대한 희망없이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겠는가 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그의 가슴을 꽉 죄었다. 그의 눈 앞에 들어온 전쟁이 스쳐 간 자리, 흩어진 군인들의 시체가 마치 현재의 자신들의 처지와 같이 여겨졌다. 조국 유다는 패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버리고, 많은 동족은들은 살상되고, 그나마 포로로 잡혀 온 소수의 엘리트들은 의기소침해서 기를 펴지 못하고 지내는 형편이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37:3) 에스겔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할 말을 잊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제 뼈만 남은 이 시체들이 다시 살아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고, 그렇다고 차마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주께서 아시나이다”(37:3)라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그 답변 속에는 문자 그대로 에스겔이 느끼는 절망감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숨막힐 듯한 현재의 삶에 어떤 탈출구가 있을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 도시의 화려한 불빛들이 마치 에스겔서의 마른뼈들의 골짜기를 연상시킨다. ⓒGetty Image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37:5)고 확언하셨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우리에게 들어올 때에 진흙으로 빚어진 우리는 생령이 될 수 있는 것이다(창 2:7). 에스겔은 그의 다른 환상에서 하나님 전에서 흐르는 생수의 강이 광야로 흘러 낙원을 만드는 것도 보았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서 활동하시면 우리는 살아나서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살다”와 관련된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다. 하나님의 성령은 마른 뼈들을 일으켜 세워 큰 군대를 만드시는 것이다.

에스겔은 그의 환상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70년의 포로 기간이 그에게는 너무 길었는지도 모른다. 고국에 다시 돌아간 사람들의 명단 속에 그의 이름은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꿈은 먼 훗날에 실현되어,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새 성전을 짓고 야훼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다. 에스겔의 환상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너희 몸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 곳에 내가 살고 나의 가정이 살고 나의 민족이 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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