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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교회에서 행복하지 못했을까행복한 설교를 위한 성서 읽기 (1)
김성란 목사(캐나다 토론토대학 설교학 박사과정) | 승인 2018.12.06 00:53

기독교는 인간 구원의 종교로 사랑과 정의의 가르침을 삶으로 따르는 영성을 그 정체성으로 가지고 있고 나는 그 가르침과 영성의 삶을 신앙 공동체가 실현하도록 돕는 목회자, 설교자, 신학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좀 쉽게 다시 말하면 나는 예수를 사랑해서 내 주변의 그 모든 만류를 무릅쓰고 예수를 따르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의 길을 가는 것을 소명으로 믿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런데 나에게는 고백하기 힘든 비밀이 있는 데 바로 교회 안에서 난 별로 행복한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거다.

성서, 생명의 말씀인가? 억압의 주술인가?

무엇이 나를 교회 안에서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지 단정해서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성서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그 이유는 기독교 경전인 성서가 나에게 생명과 사랑과 정의, 해방의 기쁨을 주는 동시에 억압과 부조리, 침묵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성서는 왜 나에게 이렇게 극단의 다른 의미를 주는지, 나는 도대체 성서를 어떻게 읽고 받아드려야 하는 건지 기독교 경전 성서와 신학을 전공으로 공부한 지 30년이 되어도 여전히 명쾌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나의 이런 성서에 대한 질문들은 설교학을 공부하면서 더 치열해졌다. 내 설교학 박사과정 전체 공부시간 중 적어도 삼분의 일은 도대체 설교를 위해 어떻게 성서를 읽어야 하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보낸 것 같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으니 성서학 교수님은 나에게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 (Elisabeth Schüssler Fiorenza)의 성서 해석학 책 한권을 읽도록 권유하셨다.

▲ 루마니아 태생의 독일 여성신학자인 엘리자벳 쉬슬러 피오렌자. 현재 하버드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Getty Image

피오렌자는 1964년부터 2013년까지 스물 두 권의 성서 해석에 관한 책을 출판했는데 초기에 해당하는 1970년 중반 까지 두 권은 독일어로 나머지 스무 권은 영어로 써서 출판했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책은 1999년에 영어로 출판된 열 다섯 번 째 책이고 책 제목은 ‘수사학과 윤리: 성서학의 정치(Rhetoric and Ethic : The Politics of Biblical Studies)’이다. 이 책은 내가 피오렌자의 스물 두 권의 저서 중 여섯 번째로 읽은 책이다.

피오렌자는 이 책에서 성서 해석의 대표적인 패러다임들을 1. 교리중심의 근본주의 패러다임(The Doctrinal-Fundamental Paradigm), 2. 과학적 실증주의 패러다임(The “Scientific” Positivist Paradigm), 그리고 3. (후기) 현대 문화 패러다임(The (Post)Modern Cultural Paradig)과  4. “수사학과 해방을 위한 패러다임(The Rhetorical-Emancipatory Paradigm)”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피오렌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성서의 해석은 인간 사회의 관계를 규정하는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서를 읽고 해석할 땐 그 부분을 반드시 유념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서의 원문이 쓰인 상황에 대한 수사학적 의미를 이해하면서 성서를 읽고 해석해야 하고 읽는 이의 자리에서 사회·정치적 정의라는 윤리적 원칙에 의거해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성서의 해석이 더이상 착취와 억압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담론으로, 즉 노예제를 허용하고 여성 차별과 여성 억압을 공인하고, 식민화를 옹호하는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 지배 담론을 형성하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피오렌자가 주장하는 “수사학-해방의 패러다임 The Rhetorical-Emancipatory Paradigm” 의 패러다임이 대한 이야기는 좀 자세히 할 필요가 있어서 다음 번에 이어서 하고 오늘은 피오렌자가 이야기한 교리 중심의 근본주의 성서 해석의 패러다임이 의미하는 것과 그 성서 해석의 패러다임이 가져오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면 좋겠다.

교리 중심의 근본주의 성서해석의 문제

피오렌자가 설명하는 교리 중심의 근본주의 성서해석의 패러다임에서 교리는 교회의 가르침을 뜻한다. 이 패러다임에서는 성서를 하나님께서 당신을 스스로 드러내어 계시하신 것을 성서의 기록자들이 성령의 감동 즉 영감을 받아 기록한 책으로 가르쳐 왔다. 이 교리 중심의 근본주의 패러다임은 성서에 기록된 사건들을 문자적 사실로  주장하고 믿는다. 그리고 성서가 문자적으로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여긴다. 바로 성서의 문자적 사실의 증명이 이 패러다임의 성서 연구와 해석의 목적인 것이다.

피오렌자는 이 패러다임에서는 유럽의 계몽주의가 전 지구를 식민지배 하는 사상이 된 후 생겨난 사회 구조의 불평등의 문제와 불의, 전 지구의 경제적 빈곤화, 고용 불안의 문제, 차별, 전쟁과 굶주림, 피난민의 문제를 영적인 문제와 개인의 화와 복의 문제로 인식하고 심리적, 영적 안전감과 확실성을 제공함으로 해결하려고 한다고 설명한다. 이 교리 중심의 근본주의 성서 해석 패러다임에서는 성서의 문자들은 전적으로 이 세상보다 휠씬 우월한 영적인 세상에서오는 권위를 받은 것으로 믿는다. 성서에 문자적 내용은 곧 영적인 하나님의 법으로 해석되고 이해하고 적용한다.

선과 악도 성서의 문자적 해석을 통해 결정된다. 이 패러다임에서는 전통적인 가치를 질문하지 않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성서가 문자적으로 말하는 가치 외의 모든 가치는 도덕적 질서의 적, 악, 죄로 간주된다. 이 패러다임에서 성 소수자, 여성의 권리, 인문주의, 자유주의 등등 성서의 문자적 해석을 반대하는 어떤 해석도 악과 죄, 적으로 간주된다.

문자주의에 기반한 근본주의는 종교적 관용과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고 성서에서 선택하여 추출한 문구를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와 보편적 진리로 주장한다. 이 성서해석의 패러다임은 성서의 문자적 해석의 보편적 진리성을 주장하기 위해 성서의 원어와 성서의 문자적 사건 연구를 역사적 근거로 제시한다. 이 연구 근거를 통해 교회는 성서는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친다.

이 패러다임에서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과 성서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이 동일시 되거나 성서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이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된다. 곧 이 패러다임에서 기독교는 성서를 문자적으로 숭배하는 성서 문자 숭배교로 전환 전락된다. 이 교리 중심의 근본주의 패러다임은 때에 따라선 적대적이고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방법을 통해서 성서의 진리성과 적법성을 주장한다.

▲ 엘리자벳 쉬슬러 피오렌자가 저술한 <Rhetoric and Ethic>(수사학과 윤리) ⓒGetty Image

따라서 이 교리 중심의 근본주의 패러다임에서는 다양한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교리들을 존중하지 않는다. 이 패러다임의 성서 문자 숭배주의는 현대 이성 중심의 과학주의와 세속주의에 흡수되는 것에 비판적으로 저항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 정신의 한 부분으로  흡수되어 수용되고 마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여기까지가 피오렌자가 설명한 교리중심의 근본주의 성서 해석의  패러다임이 가지는 내용과 그 한계이다.

성서를 통해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 한다

이 교리 중심의 근본주의 성서 해석 패러다임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는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차별하고 착취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회라는 것이다. 이 패러다임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학대하고 여성의 차별과 억압을 용인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악으로 죄로 적으로 가정한다. 정의의 이름으로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를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리 중심의 근본주의 패러다임은 내가 유치원 때부터 교회에서 배운 성서 해석학이다. 난 한국 전쟁 때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을 오신 기독교인들이 세운 서울 변두리의 유명한 여고를 80년대 후반에 다녔는데 그 학교에서는 생물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불만이셨던 생물선생님은 우리 반 생물시간에 그런 학교를 비아냥거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 엄마에게서 태어났으니 아마 유전자가 12개 밖에 없지 않을까?”

난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비아냥거린 선생님이 싫었고 그때부터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비교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물시간에 진화론에 대한 반론을 차트로 만들어서 발표했다. 선생님은 그동안 생물 시험 100점이었던 내가 준비해서 발표한 진화론 비판을 들으시며 너무 놀라 하셨다.

수업시간에 그 놀란 얼굴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교리 중심의 근본주의 패러다임으로 성서 해석학을 교육받은 내가 고등학교에서 한 행동이었다. 난 이후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학과 과학의 수사학적 패러다임을 구분해서 가르쳐 주지 않은 한국 기독교의 교리 중심의 근본주의 패러다임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중학교 때 집에서 성서를 읽는 데 신명기 34장에 모세가 죽어서 묻힌 이야기가 나와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교회에서 모세 오경은 모세가 썼다고 배웠는데 어떻게 모세는 자신의 죽음을 기록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에 교회에 가서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내 질문에 대답을 못하셨고 오히려 질문을 하는 나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셨다. 그 때 난 내가 스스로 답을 찾으러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유치부에서부터 대학을 가기 전까지 다녔던 그 교회는 43년의 역사와 대성전과 교육관을 자랑하며 아직도 지역의 대형 교회로 건재하고 있다.

그런 해석이 정당화된 교회인가?

그리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다음 번 과학적 실증주의 성서 해석패러다임을 이야기 하면서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교리 중심의 근본주의 패러다임을 통해 지금 우리가 다니는 교회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다른 것은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 이단으로 정죄한 이들에 대한 폭력과 학대와 차별과 억압을 자행하는 것을 허용하고 용인하고 있다면 그 교회에 다니고 있는 우리는 교리 중심적 근본주의 성서 해석의 패러다임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아닌 성서의 문자에 대한 우상을 섬기기 있음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반성과 성찰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나 역시 이 과정을 통과하는 것이 정말 너무 많이 괴롭고 아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서를 어떻게 읽고 해석해야 우리는 해방과 구원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다음 편 글에서 논의할 과학적 실증주의 성서 해석의 패러다임을 비판적으로 논의하는 동안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 궁금한 마음으로 다음 편 글을 기다릴 수 있으면 조금은 행복할 것 같다.

김성란 목사(캐나다 토론토대학 설교학 박사과정)  ad71ran@iclou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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