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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과 구원의 임마누엘예수님의 탄생(마 1:21)
이성훈 | 승인 2018.12.09 21:11

오늘은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저희는 지난 주일부터 마태복음 1장과 2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탄생 전후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오늘 저희가 살펴볼 말씀은 이른바 수태고지라 불리는 사건입니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수태고지에 대해서는 이미 얼마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맥락의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그래도 혹시 말씀의 흐름상 필요한 내용이 있다면 다시금 이야기 드리려고 합니다.

다윗 왕조 정통성

우선 지난 주에 저희는 예수님의 족보를 살펴봤고 이를 통하여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과 불순종을 살펴보았습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40이라는 숫자와 삭제되고 추가된 명단을 통해서 이러한 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주에는 말씀의 중심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생략했던 이야기가 있는데, 오늘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윗 왕조의 족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그저, ‘예수님은 왕족의 후예였다’라는 식으로 생각하거나, ‘그 위대한 다윗 왕의 후손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족보를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 탄생 당시에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던 헤롯왕입니다. 구체적으로 헤롯 대왕이라고 말하겠습니다. 헤롯 대왕의 아들들도 헤롯이라는 이름을 쓰고, 성경에서도 그냥 다 헤롯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약간 헷갈릴 수 있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부시 대통령 얘기 할 때, 꼭 아버지 부시, 아들 부시, 이렇게 구분하는 것처럼 아버지 헤롯은 헤롯 대왕, 아들 헤롯은 그냥 헤롯이라고 부르겠습니다.

ⓒGetty Image

헤롯 대왕은 이 족보를 왜 단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는 본래 유대인도 아니고, 당연하게 다윗 왕조의 핏줄이 흐르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에게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정통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신구약중간기라고 불리는 시대에 대한 간단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 유대인들은 포로기를 끝내고 이스라엘로 돌아옵니다. 우리가 에스라, 느헤미야를 통해 읽었듯이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다시 짓고 이스라엘을 재건합니다. 

그런데 이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을 세우지 않습니다. 저희가 신명기 역사를 읽어가면서 봤던, 왕들의 문제, 왕을 세우는 일이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이었음을 포로기를 통해 깨달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스라엘은 왕이 없는 상태로 있게 됩니다.

그 와중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또다시 서방세계를 점령했고, 그의 사후에 마케도니아의 유력한 장군들이 서방세계를 분할해서 통치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그 중 하나인 셀류쿠스 왕조가 다스리게 되는데, 셀류쿠스 왕조 초반에는 유대교를 인정하고 그대로 놔뒀지만, 점차적으로 유대교를 핍박하고, 유대인들의 신앙을 무너뜨리려고 이스라엘을 헬라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때 유대인 제사장이었던 ‘마타디아’가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그의 셋째 아들인 ‘유다’, 다섯째 아들인 ‘요나단’이 반란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 중에 ‘유다’라는 사람이 우리가 가끔 들어본 이름인 ‘마카비’ 혹은 ‘마카베오’라고 불리는 사람이고, 이들의 반란기가 담긴 책이 외경 중 하나인 ‘마카비1서’와 ‘마카비2서’입니다. 

사실 ‘마따디아’에서 ‘요나단’까지도 자신을 왕으로 칭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단지 식민지배 시기에 해방을 위해 싸웠던 민족 지도자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요나단까지 죽은 이후에 그의 형제, ‘마따디아’의 둘째 아들인 ‘시몬’이 그 뒤를 잇게 되는데, 사람들이 ‘시몬’을 “유대인의 제사장이고 사령관이며 지도자인 시몬”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마카비1서 13:41-42)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하스몬 왕조’가 다스리게 됩니다. ‘하스몬’이라는 이름은 이들의 선조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로마의 세력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고, 하스몬 왕조도 쇠락해가고 있던 상황에서 신약성경에서 종종 이두메인이라고 불리는 에돔 사람 안티파스가 등장합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당시 정책에 의해서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이었습니다. 이 안티파스의 둘째 아들이 그 유명한 헤롯 대왕입니다.

안티파스는 간단하게 말해서 로마와 결탁한 후에 하스몬 왕조를 몰아내버리고 주변 소국들을 물리친 후,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사실 실제 왕이 된 건 아니고 왕의 권력을 갖게 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대로 왕이 된 건, 그의 아들 헤롯 대왕이었습니다.

헤롯 대왕도 초기에는 형인 파사엘과의 다툼도 있었고, 다시금 반란을 일으킨 하스몬 왕조의 후손에 의해 위기를 겪긴 했지만, 위기의 상황 속에서 아버지인 안티파스의 경험을 따라, 강자의 편에 붙어서 위기를 모면합니다. 당시 가장 핫한 사람, 시저를 암살하고 그 유명한 대사 ‘브루투스, 너마저’를 들었던 장본인인 브루투스를 황제 암살범으로 진압해버린 그 ‘안토니우스’ 편에 붙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을 로마에 통째로 바쳐버린 채, 자신은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언뜻 지루할 수 있는 역사이야기이고 대부분 생략해 버려서 정확하게 이해하긴 어려우시겠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가진 분이면서 비범한 탄생을 하신 분이라면, 이를 가장 경계할 인물은 헤롯이라는 점만 아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앞으로 보게 될 2장의 내용들이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약 학자인 ‘톰 라이트’는 성경공부 책자에서 ‘예수님의 족보 자체는 헤롯을 향한 선전포고’라고 말할 정도로 다윗 왕조 정통성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점만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마태복음의 수태고지는 마리아가 아닌 왕조 정통성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에게 나타납니다.

천사의 현몽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8절에서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은 했지만, 아직 함께 살고(συνέρχομαι 쉬네르코마이) 있지는 않습니다. 함께 살지 않는다는 말은 아직 동침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포함하는 듯 합니다. 25절에서 ‘동침하지 않았다’라고 할 때는 ‘안다’라는 의미인 ‘기노스코(γινώσκω)’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임신하게 되었고, 이 임신이 성령으로 인한 일임을 알게 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성령으로 임신했다는 사실은 마리아 혼자만 알고 있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서 요셉은 이를 모르고 있고, 단순하게 임신했다고만 알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임신하게 되었다는 내용에 대한 해석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기 때문에 넘어가겠습니다.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비밀리에 약혼을 파기하려고 합니다. 19절은 요셉이 의로운 사람(δίκαιος 디카이오스)이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일을 드러내지 않고 비밀리에 파혼하려 했다고 전합니다. 사실 요셉의 약혼 파기가 그의 의로움과 연결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신명기 22장 23-26절에는 약혼한 여인의 간음에 관한 법이 있습니다.

약혼한 여성이 간음했을 경우에 여성과 간음한 남성 모두를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일이 강간이었다 할지라도 성 안에서 벌어진 강간일 경우에는, 사실 말도 안 되는 법이긴 하지만, 여성이 소리 지르지 않아서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남녀를 모두 죽이게 되어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없는 들판이었다면, 여성이 소리 질러도 도우러 올 사람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남성만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요셉의 약혼 파기는 이러한 처벌을 당장에는 막아줄 수 있기에 그를 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중을 생각해보면, 마리아가 임신 사실을 끝까지 숨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리아는 결국 어떠한 법적 처벌을 받게 될 텐데, 이를 방치하고 자신은 빠져버리는 행위가 의로운 행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수님 시대에 유대교 법이 어떤 식으로 적용되고 있었는지를 더 연구해봐야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무튼 요셉이 약혼을 파기하려고 했을 때, 주의 사자가 그의 꿈속에 나타납니다. 누가복음의 경우에는 천사 가브리엘이 직접 현현해서 무언가를 고지하지만, 마태복음은 모든 경우에 꿈속에 천사가 나타나 이야기합니다. 이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현몽과 현현이라는 하나님의 계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서 발생된 차이점 같습니다.

요셉의 꿈에 나타난 천사는 요셉에게 크게 네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첫째,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했기에 그녀를 아내로 받아들이라는 점, 둘째,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는 점, 셋째, 이 아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존재라는 점, 넷째, 이 모든 일은 이사야 7장 14절을 이루기 위하심이라는 점입니다.

성경의 해석은 흐름을 따라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지난주의 말씀과 연결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이라는 명령은 마리아와 파혼하려는 요셉의 행동을 막기 위한 지침이기 때문에 가볍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라는 점부터는 지난주의 말씀과 이어집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모두 아시겠지만, 여호수아의 헬라어식 표기입니다. ‘구원’이라는 의미에서 ‘여호수아보다는 모세가 어울리 않을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여호수아는 광야시절을 끝내고 가나안 시절을 시작한 인물입니다. 이 점에서 앞선 족보와 연결됩니다.

이 아이가 이스라엘을 죄에서 구원한다는 선포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기,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가 불신앙과 불순종의 역사였다면, 이는 죄의 역사이고, 예수님의 오심으로 인해 이 죄의 역사가 끝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사자는 이사야 7장 14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마태복음은 이 말씀을 헬라어 성경인 70인역에서 그대로 따옵니다. 물론 딱 한 단어, ‘부르다(καλέω)’가 이사야에서는 2인칭 단수이고 마태복음은 3인칭 복수로 적힌 점은 다릅니다만, 이는 선포 대상의 차이 때문에 바뀔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말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도 예전에 하나님의 법을 말씀드리면서 이야기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사야 7장 13절 이후는 남왕국 유다의 왕 아하스에게 선포된 심판의 선언입니다. 그렇기에 심판 선언의 중간에 들어가 있는 ‘임마누엘’의 의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도와주신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네 옆에 계시면서 너의 악을 심판하시리라”는 선포입니다. 즉 하나님의 법이 살아있음을 선포한 표현이 ‘임마누엘’입니다.

그런데 보통 신약성경에 대한 신학 서적들이나 꼭 신학 서적이 아니더라도 마태복음의 ‘임마누엘’에 대한 해석들을 보면, 마치 마태복음의 저자 또는 저작 집단이 이사야의 의미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사야는 심판을 선포했지만, 마태는 이를 구원의 이미지로 바꿔놓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마태복음이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선교하면서 구약성경의 말씀을 적당히 인용했다거나, 그럴싸한 구절을 대충 따와서 인용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히브리어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임마누엘’의 의미를 헬라어로 풀어주는 노력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성경의 의미를 왜곡하려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우리가 ‘임마누엘’을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봅니다. ‘임마누엘’에는 언제나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존재하게 됩니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의 법에는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죄를 범한 사람은 당연히 심판 받게 되고, 죄인에 의해 핍박당하던 ‘의인’들은 당연히 구원을 얻게 됩니다. 물론 핍박당하지 않았더라도 의인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기에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 ‘임마누엘’은 두려운 심판의 선고이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던 이들에게 ‘임마누엘’은 구원의 소식입니다.

회개를 가르치러 오신 분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지만, 마태복음은 이스라엘에 의인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 복음서를 기록했을까요? 구원받을 의인들은 존재하기에, 예수님은 그 의인들을 위한 구세주로 오셨다고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걸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마태복음의 역사 이해는 죄의 역사, 즉 불순종과 불신앙의 역사였습니다. 이 역사 속에는 당시를 살아가던 이스라엘 사람들, 또한 마태복음의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 있던 이방인들의 삶도 포함됩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닥쳐올 운명은 임마누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기억할 점은, 마태복음이 예수님의 오심으로, 예수님의 탄생만으로 인간의 죄가 모두 깨끗해지고 구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마태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른 법을 가르치시고(5-7장),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이유로 죄인이 되어버린 사람들, 병 걸린 사람들과 귀신들린 사람들과 소외된 자들을 치유하고 안아주어 그들이 죄인 상태가 아닐 수 있도록 만드신(8-9장), 죄에서 벗어나는 법과 행동을 보여주고 가르치신 분이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 바로 이어지는 3장 2절은 세례요한의 선포로 시작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이 잡힌 후에 동일한 선포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4장 17절에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하는 방식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임마누엘이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아가야만 합니다. 이것이 마태복음이 전하는 예수님 탄생의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이 대림절에 우리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라고, 혹시나 아직도 예수님의 말씀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예수님의 행동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회개하여’ 구원의 길로 들어서시게 되길 바랍니다. 구원의 ‘임마누엘’을 여러분의 삶에서 체험하게 되시길 바라고 믿으며 축원합니다.

이성훈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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