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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평화, 하나는 거짓이었다말구유와 로마제국(사 11:1-9; 눅 2:1-7)
조헌정 | 승인 2018.12.22 19:10

지난 2천년의 인간 역사 속에서 성서의 말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고 구원에 이르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성서의 말씀 때문에 엄청난 폭력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중세 때로부터 히틀러 독재정권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을 미워하고 학살했으며 마녀사냥의 이름으로 종교성이 깊은 여성들을 불에 태워 죽였고, 동성애자들과 어린아이들을 구타하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로 잡아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성서의 말씀에 근거하여 여성을 남성보다 하위 존재로 여겨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법적 지위를 주지 않았고, 인디언 원주민과 동물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정당시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독립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영국의 자유주의 사상가 토마스 페인은 성경을 혹평하여 말하기를 “성서의 절반을 차지하는 음탕한 이야기, 방탕한 삶, 잔인하고 사악한 율법 집행, 무자비한 복수 등을 읽을 때마다 그것이 신의 말이기보다는 악마의 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서의 역사는 인간을 타락시키고 잔인하게 만든 사악함의 역사이다.”(<이성의 시대>) 이는 너무 지나친 악평이지만, 당시 17,8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종교전쟁으로 인한 폐해와 신의 이름으로 인간의 이성적 판단과 오성적 자유를 억누르던 사회상황을 이해한다면 그의 지적은 타당하기도 합니다.

성서의 사회정치적 해석의 중요성

제1성서(구약)는 히브리인들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애굽의 고통스런 노예상태로부터의 벗어나는 해방의 투쟁사입니다. 노예해방의 투쟁사 속에 하느님이 개입하니까 우리는 이를 종교적 사건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만, 이는 분명히 사회정치군사적인 사건입니다. 제2성서(신약)의 시작은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의 삶이 요즘 우리가 이해하듯이 종교적인 영역에만 머문 사건이라면 예수님의 죽음에 로마당국이나 헤롯당원들이 연루될 이유가 없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분명 로마에 지배에 항거하는 정치범을 처형하는 사형법이었지, 일반 범죄인을 처형하는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 가운데 오늘날의 테러리스트와 다름없는 젤롯당원 출신들은 당연히 배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단순한 종교적 가르침을 전하는 스승이었다면 산이나 들로 다니면서 진리의 말씀들을 가르쳤으면 되었지, 따르는 사람들과 더불어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가 성전을 헤집고 권력자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성전을 허물라는 과격한 발언을 하여 저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분명 사회정치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우리를 향해 교회의 빛과 소금이 아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서 이야기는 단순히 종교의 영역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인간 사회의 전 부분에서 일어나는 삶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의 예수탄생의 얘기 또한 그러한 폭넓은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누가가 이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는 예수님 사후 5,60년이 지나서 기록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로마의 지배에 항거하여 전쟁을 일으켜 그 결과 예루살렘 성이 로마군에 의해 초토화가 된 이후,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서 유대 동족들과 로마당국부터 박해를 받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누가복음 21장에 예수님의 예언을 빌어 그런 시대를 표현하였지만, 실상 그런 시대 속에 있었습니다. “너희는 잡혀서 박해를 당하고 회당에 끌려가 마침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며 나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 때야 말로 너희가 나의 복음을 증언할 때이다.” 루가는 그런 박해와 핍박을 보면서 예수님과 사도들의 복음 활동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한적한 시골에 앉아 평화롭고 한가로운 상태에서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체는 평화롭게 보이고 단어들은 평범하게 들려 로마 안기부의 불온문서 목록 지정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그러나 진정 눈과 귀가 열려있는 사람이라면 능히 알아챌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탄생 ‘그 무렵’의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오늘 본문 말씀 2장 1절 첫마디는 ‘그 무렵에’라고 시작합니다. 어떤 무렵입니까? 앞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나요? 양적 시간인 크로노스의 관점에서 보면 헤롯이 유대의 왕으로 있었을 때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태어난 ‘그 무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질적 시간인 카이로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무렵'에는 두 개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노래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부른 노래로 그 핵심적인 가사는 이렇습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1장 51-53절)

ⓒGetty Image

두 번째의 노래는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스가랴의 노래로 그 핵심적인 가사는 이렇습니다. “아가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예언자 되어 주님보다 앞서 와서 그의 길을 닦으며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길을 주의 백성들에게 알려라. (그분은) 하늘 높은 곳에 구원의 태양을 뜨게 하시어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 사는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 예수께서 태어나던 ‘그 무렵’이란 바로 이러한 혁명의 노래가 하나는 갈릴리의 한 이름 없는 여인에 의해 또 하나는 의로운 사람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사제 스가랴에 의해 예루살렘 성안에서 각각 불리어지던 ‘그 무렵’인 것입니다.

‘그 무렵’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온 천하에 호구조사령을 내렸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로마황제 아우구스토라는 단어와 호구조사라는 단어가 던지는 의미를 보다 자세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로마의 반쪽을 지배하고 있던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전투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물리치고 100년간에 걸친 전쟁과 내분을 종결시키고 로마의 평화를 가져온 사람입니다. 그래 그는 당시 구원자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래 그는 더 이상 ‘가이사’라는 칭호만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 로마의 지배자들도 ‘가이사’라고 불리었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는 이제 가이사라는 칭호 외에 또 다른 칭호를 얻게 되는데 그 칭호가 바로 아우구스토입니다. 신전들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온 세상의 구주'(Ara pacis augustae).

지금도 남아 있는 비문에는 “아우구스투스 시저는 아버지 제우스, 온 인류의 구원자, 신의 섭리를 이루는 존재, 나아가 모든 인간의 기도보다 위대한 존재” 그리고 그의 생일은 온 세상의 구원의 복음을 가져다준 날로 기억됩니다. “우리는 그분이 모든 사물의 시초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무질서에 빠지고 혼돈으로 치닫고 있을 때 그분은 다시금 그 모든 것을 회복하셨으며, 전 세계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하셨다. 우리 모두의 선한 운명이여, 생명과 활력의 시작이니, 모든 도시가 만장일치로 신성한 그분의 탄신일을 한 해의 첫 날로 책정하노라.”(리차드 호슬리, 크리스마스의 해방, 62쪽)

예수 탄생 이야기의 역사적 모순

옥타비아누스 그는 ‘아우구스토’라 불리는 신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신의 자리에 올라섰음을 세상에 알리고 보다 효율적인 통치와 보다 많은 세금징수를 위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에 가서 등록을 하라는 호구조사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실상 이 구절은 많은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아우구스토의 시대에 호구조사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고향에 가서 등록을 하라는 것은 몇 달씩 생업을 전폐하고 여행을 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골(Gaul)이라는 로마 황제 때에 호구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무려 40년이나 걸리는 대과업이었습니다. 만에 하나 그렇다 하더라도 호주 한사람만 가면 되었지, 온 가족이 가야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만삭의 여인을 데리고 말입니다.

누가의 이야기는 역사 기록으로는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께서 태어나던 때는 1장 5절에 의하면 유대의 헤롯대왕이 다스리던 때였는데, 2장 2절에서는 예수께서 태어나던 때에 시리아에는 총독 퀴리노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퀴리노는 기원후 6-7년에 재임했던 사람이고 헤롯대왕은 그 보다 10년 전에 기원전 4년에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을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설명하는 누가의 얘기는 모순입니다. 그렇다면 누가가 거짓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지금 누가가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면 이것은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평화의 대칭

지금 저자 누가의 마음속에는 로마의 황제 곧 신이라 추앙받는 아우구스토스와 아기 예수를 서로 대칭하여 설명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모두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는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황제 아우구스토스는 로마의 평화는 영원하리라고 선포합니다. 여기 아기 예수 또한 평화를 약속합니다. 스가랴가 예언한 것처럼 “예수는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 사는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 하늘의 천사들은 이렇게 찬양합니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여기 두 개의 평화가 있습니다. 하나는 로마인들이 구세주라고 찬양하는 아우구스토가 말하는 위로부터의 평화, 그리고 당시 누가를 비롯한 수많은 피식민지인들이 바라는 밑으로부터의 평화.

아우구스토스가 말하는 평화는 폭력과 살인이 전제된 전쟁의 승리와 점령지에서의 약탈과 억압에 기초한 평화입니다. 그건 지배자 소수의 평화를 말할 따름입니다. 왜 누가는 분명하지도 않는 시리아에는 퀴리노라는 총독이 있었다는 설명을 덧붙이는 것일까? 자신의 얘기가 역사적으로 옳다고 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퀴리노 또한 전쟁의 승리자로 기억되는 군 사령관 출신이었습니다. 헤롯대왕, 아우구스토스, 퀴리노 그들의 통치는 피의 대가로 얻어진 평화였고 이 평화는 또 다른 폭력과 피를 부르는 악순환의 평화였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누가는 새로운 평화의 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평화의 왕은 이들과는 출생에서부터 달라야 했습니다. 로마의 변방 중의 변방 이름 없는 곳부터 시작합니다. ‘갈릴리 나사렛 동네’ 지금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익숙한 이름이지만, 당시에는 지도상에 표시조차 할 필요가 없는 무명의 땅이었습니다. 더구나 ‘갈릴리’는 예전부터 예루살렘의 중앙권력에 불만을 품고 하느님의 직접 통치를 꿈꾸는 사상가, 혁명가들이 모여 살았던 불온한 지역입니다. 그 안에 있는 나사렛 동네. 말이 좋아 동네이지 예수님 당시에는 삼 사십여 채의 집들이 띄엄띄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신학자도 있습니다.(James Robinson, The Sayings Gospel Q.) 나사렛. 그러나 이 이름은 구약성서에서는 야훼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히 간택되어지고 그의 일생은 하느님만의 영광을 위해 살았다고 하는 나실인 삼손을 떠올리게 하는 지명입니다.

폭력과 제국의 지배자, 그러나 신이라 추앙받는 황제 아우구스토스의 명령에 의해 갈릴리 나사렛 동네의 한 이름 없는 한 부부가 살던 곳을 떠나 본래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힘든 여행을 떠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따라 움직이니 통치자는 권력의 짜릿한 맛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 배후에 계시는 하느님의 계획안에 있었습니다. 아참!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으니 부부라고 말하기는 힘들겠군요. 약혼관계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배가 부어올라 만삭이 되었으니 사람들을 만나면 약혼자가 아닌 결혼한 아내라고 소개해야지요.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손가락질에 야유에 지나치면 속도위반을 했다고 돌에 맞을 위험도 있었으니까요.

▲ Augustus ⓒGetty Image

당시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마태오에게 있어서는 요셉과 마리아가 처음부터 베들레헴에 살고 있었으니 굳이 이런 얘기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었으나 누가는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에 살고 있었으니 약간의 역사 수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 역사 기록이 없는 로마 황제의 호구조사령이 등장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금 강조하여 말씀드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누가가 역사를 왜곡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2천 년 전 그 옛날에 누가가 도서관도 인터넷도 없는 상황에서 거의 백년이 지난 역사 사실을 확인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10년 20년의 차이정도는 누가에게 있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정작 그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 사실로서의 Historie가 아닌 역사 해석으로서의 Geschichte가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말구유에 담긴 저자 누가의 의도

황제 아우구스토스가 말하는 평화와 예수가 말하는 평화를 대조하여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면서 동시에 대조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필요했는데, 그래서 선택한 단어가 바로 ‘말구유’입니다. 저는 이 단어의 선택이야 말로 성령의 역사라고 믿습니다. 구유는 잘 쓰는 말이 아닙니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잘 쓰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공동번역에서만은 말구유 대신에 ‘말 밥통’ 아니면 최소한 ‘말 여물통’이라고 번역했어야 옳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 또한 번역자들 사이에 의견 조정이 쉽지 않았겠지요.

그런데 구유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말구유’라고 번역한 것만은 매우 탁월한 번역이라고 칭찬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희랍어 본문에는 말이라는 단어가 분명하게 나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희랍어 단어 Φaτνη란 단어가 마구간이나 여물통 양쪽으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영어나 독일어 성서는 모두 manger 혹은 Krippe라고 번역하여 그냥 동물들의 ‘여물통’으로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의 동물이 어떤 동물일까요? 우리는 흔히 소나 양을 떠올리지만, 소는 거의 없었고, 양은 한두 마리가 아니기에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들판에서 길렀습니다. 나귀 정도 있었습니다. 나귀는 말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저는 누가가 여기서 말하는 밥통은 말 밥통이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말 밥통에 아기 예수가 누였다는 것과 그냥 여물통에 아기 예수가 누였다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말은 유대 동물이 아닙니다. 나귀는 생활에 보탬이 되지만, 말은 군사용입니다. 긴 창을 들고 돌진하는 로마의 기병대는 핵심 군사력이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권력을 대변합니다. 옛날부터 ‘떡의 집’이라고 불리는 베들레헴 주변에는 목초지가 넓어 로마기병대가 주둔했습니다. 그러면 아기 예수가 이런 로마의 군사력의 상징인 말의 밥통에 누였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사야의 평화선언과 말밥통

전 여기서 예언자 이사야가 꿈꾸었던 평화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습니다.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난다.(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이고 예수는 다윗의 먼 후손입니다.) 야훼의 영이 그 위에 내린다. 그는 가난한 자들의 재판을 정당하게 해주고 흙에 묻혀 사는 천민의 시비를 바로 가려 주리라.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이고 성실로 띠를 띠리라.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수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사자와 송아지가,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리라.” 늑대는 새끼 양을 먹고 표범은 수염소를 먹고 자라고 사자는 송아지를 먹고 자라고 곰은 암소를 먹고 자라는 육식동물입니다. 이들이 함께 뒹굴라면 무슨 일이 먼저 있어야 합니까?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이들의 식성이 육식에서 초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함께 뒹굴 수 있지. 배가 부를 때에 함께 뒹굴며 놀다가 배가 고프면 잡아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육식이 초식으로 바뀌어야 가능합니다. 그래 이사야는 이어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젖먹이가 살모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 뗀 어린 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넣으리라. 나의 거룩한 땅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고 노래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육식동물의 위가 초식동물의 위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까? 위와 창자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구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위를 바꾸어야 합니다. 혁명적인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여기서 누가가 제시하는 그 혁명적인 방법이 바로 아기 예수가 로마 기병대인 말의 먹이로 나서는 일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이들의 먹이가 되어 저들의 위장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내부구조 곧 전쟁과 살인과 약탈로 점철된 그 폭력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저는 누가가 제시하는 아기예수가 말밥통에 누인 이 그림 속에 그리스도인들이 찾아가야 할 평화의 길이 제시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말하면 누가가 꿈꾸었던 이 혁명은 이백년이 지나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교회가 국가 권력을 감시하는 기능을 넘어 권력 자체를 탐냄으로 인해 국가는 물론 교회마저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늑대·표범·사자·곰은 모두 약소민족들을 잡아먹는 애굽과 바빌론과 페르시아와 그리스와 로마의 제국을 말합니다. 오늘도 돈과 경쟁에 기초한 시장자본주의 제국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미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과 한통속이 되어 함께 움직이는 세계 12위의 경제대국 남한도 포함됩니다. 아프리카나 남미 동남아시아의 제3세계의 눈으로 보면 남한은 사자나 표범은 아닐지언정 그들이 사냥하고 먹고 지나간 먹이를 재차 공격하는 삵쾡이의 제국입니다.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 것인가요? 어떻게 사는 것이 말밥통에 누워있는 삶이 될까요?

말밥통은 역사를 뒤집어 없는 혁명의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동시에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입니다. 이보다 더 낮은 자리는 없습니다. 야훼 하느님은 사람이 되어 낮아지셨고 그리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말밥통에 누이심으로 가장 낮아졌습니다. 낮아짐 그것은 비임입니다. 사회학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평등의 시작입니다.

세계인권선언과 남한사회의 현실

12월 10일은 세계인권의 날이었습니다. 어제는 국회 앞에서 전국민중대회가 열렸습니다. 민중공동행동은 민주노총·민주노점상전국연합·전국철거민연합 등 50여개 시민단체가 지난 5월 결성한 단체로 3년 전 당시 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던 민중총궐기투쟁본부의 후신이다. “말로만 노동을 존중한다고 하면서 공약조차 지키지 않는 문재인 정부를 규탄한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역주행을 멈춰 세우고 민중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된 사회 대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문정부가 스스로 촛불 정부이기를 포기하고서는 그 생명을 연장할 수 없고 국회가 민의를 대변하지 않고서는 엄중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문정부가 잘하고 있습니다만, 이제는 적어도 전교조 정도는 합법화를 시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새로운 일이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 불법적으로 불법화시켰던 것은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 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세계 제1의 자살률국가이다. 국민소득 3만불을 넘나보는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왜 이러한 수치스러운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건 못 먹고 못 입어서가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 때문입니다. 빈부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구멍 난 항아리에 물붓기에 불과합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외칩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70년 전 유엔은 “우리는 모든 인류가족이 태어날 때부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똑같은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의 밑거름임을” 선언했다. 미국은 인권국가라고 자처합니다. 수천만의 인디언 원주민을 살해하고 흑인들을 노예로 데리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250년 전에는 그럴 수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사우디아라비아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인 쟈말 카슈코지가 터키 내의 영사관에 들어갔다고 그 안에서 고문을 받고 그 몸이 잘게 잘라져서 어딘가로 버려졌습니다. 여기에 대해 미국정보는 테이프를 비롯한 명백한 증거물들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우디는 석유를 수입하는 주요 국가일뿐더러 무기를 수출하는 최고의 고객이었습니다. 트럼프는 사우디가 사들이는 무기 수입이 더 중요하다고 이 살해 사건을 덮어버렸습니다. 미국은 인권보다 돈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임을 세계에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자 사우디는 이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더 많은 무기를 수입하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미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면모를 저버렸습니다. 지금 캘리포니아 남부 멕시코 티와나라는 국경도시에는 수개월을 걸어서 그곳까지 온 엘살바도르 농민 6천여명이 있습니다. 자기 나라에서는 도저히 먹고 살수가 없어 무작정 고향을 떠나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국경선을 넘으려고 하자 미국 군대가 최루탄을 발사했습니다. 트럼프는 총을 쏴서 살해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400년 전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유럽에서 오는 백인들을 애당초 미국 땅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습니다.

인권에 관련하여 할 말은 많지만, 오늘 우리 남한 사회에서 가장 큰 인권사각지대에 놓인 계층은 이주노동자와 이주민들입니다. 얼마 전에는 아빠는 한국인 어머니가 러시아인 중학생 한 명이 혼혈인이라고 놀림을 받아 오다 4명의 친구들에게 테러를 당하자 이를 피하다 15층 아파트에서 추락사를 당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만약 러시아에서 러시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 이런 일을 겪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전 이 뉴스를 들으면서 만약 러시아에서 이 일이 알려져 반한운동이 일어난다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습니다. 전 민족통일을 외칠 때마다 이곳에서 태어난 이주민 가정의 아들딸이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하곤 합니다. 남북이 분명 화해하고 통일을 해야 함은 지상과제이지만, 민족을 말할 때에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운명공동체를 뜻하는 겨레라는 순수 우리말을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님은 이 땅의 폭력적 구조를 끊고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시기 위해 말밥통 안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과 죄인이라고 따돌림을 당했던 사회적 소수자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 운동을 펼치셨습니다. 그러다가 세상 권력자들에 의해 살해를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를 부활토록 하셨고, 그 부활은 제자들의 복음 활동을 통해 계속 증언되어져 왔습니다. 어제 세월호 어머님들 8명이 진행하는 연극이 있었습니다. 세월호 어머니가 이웃들로부터 당하는 아픔을 코믹하게 풀어낸 훌륭한 연극이었습니다. 전국을 순회하는 59번째 마지막 연극이었습니다. 그래 연극이 끝나고 8명의 어머님들이 무대에 앉아 자신들의 얘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모두가 눈물을 흘리는 공감의 자리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분명 국가가 개입한 국가 폭력 사건으로 이는 참사가 아닌 학살이었습니다.

12월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롤이 울려 퍼집니다. 우리 마음도 덩달아 흥겨워집니다. 그러나 성탄절이 본래 갖고 있는 신앙의 메시지를 잃어버려서는 안되겠습니다. 아기 예수를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12월 25일을 기다린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탄축하예배를 기다린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차를 기다리고 애인을 기다리는 그 기다림이 아닙니다. 이 기다림은 우리들 자신을 말밥통에 누이는 행동의 기다림입니다. 우리가 갈릴리 나사렛의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걸어가신 평화의 길을 따라가는 것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조헌정  choshal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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