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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되 소유하지 않고” - 生而不有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51
이병일 | 승인 2018.12.24 19:59
“도는 그것을 낳고, 덕은 그것을 기르고, 물은 그것을 형성하고, 세는 그것을 이룬다. 이럼으로써 만물은 도를 따르고 덕을 숭상하지 않을 수 없다. 도를 따르고 덕을 숭상하는 것은 대저 명하지 않아도 늘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는 그것을 낳고, 덕은 그것을 기르니, 그것을 생장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고, 고르게 하고, 해치고, 봉양하고, 되돌아가게 한다. 낳되 소유하지 않고, 하되 의지하지 않고, 기르되 주관하지 않으니 이를 일러 현덕(검은 덕)이라고 한다.”
- 노자, 『도덕경』, 51장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器)成之, 是以萬物莫不尊道而貴德.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遂) 之亨之毒之, 養之覆(復)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정치가 인위적으로 일을 만들지 않아도 도는 스스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도덕을 따를 때 만물이 서로 덕을 나눌 수 있다.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그것을 기른다.

이어서 물질력(氣)은 형태를 지어주고, 고유한 세력이 만물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수명을 다하면 다시 천지로 돌아간다. 자연의 덕이 이렇게 조화롭게 활동하므로 만물은 고유한 한계를 갖추고 있으며 인간의 활동에는 자연적 질서가 있다. 만물은 스스로 제 형태를 지키려는 생명의 힘이 있으니 아무도 이 힘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그 힘에는 한계가 있으니 사람에게는 수명이 있다. 노자는 이것을 만물의 세력이라고 한다.

ⓒGetty Image

노자는 道·德·物·勢를 근거로 생명이 나서 자라고 형태가 이루어지며 일정 기한이 지나 다시 천지로 돌아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의 玄德(현덕)은 만물을 낳되 소유하지 않고, 일하되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기르되 주관하거나 다스리지 않는다. 자연의 덕은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자기를 드러내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다. 그러한 자연의 도를 현덕이라고 하는데, 욕망에 끌려 다니는 사람들은 그 깊고 오묘하고 고요하고 아득하고 심오한 뜻을 몰라서 현덕(玄德)이라고 한다.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하게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 포기나 뜯자.
- 윤동주, “흰 그림자”

자본주의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의해서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청년이 죽임을 당했다. 태안화력발전소 9·10호 발전기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벨트에서 죽임당한 비정규직노동자 24세의 청년 김용균 씨의 남겨진 가방에도 여전히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자본의 이윤을 실현하기 위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음의 환경으로 내몰리는 '위험의 외주화'가 만연한 현실을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남이야 죽든 말든 욕망의 노예가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은 오늘 노자의 가르침을 죽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애써 들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바로 잡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희망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자본주의적 생활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앞을 못 보던 바디매오가 보게 되었을 때에 예수님의 길을 따라간 이야기가 있다. 바디매오는 눈이 멀었을 때에는 길 가에 앉아 있었다. 제대로 볼 수 없었을 때에는 길 가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길에 있으면서도 함께 걷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것으로 생명을 연장해야 했다. 그러나 다시 보게 됨으로써, 똑똑히 보게 됨으로써 바디매오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서 함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다시 보게 됨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모든 활동을 제약하던 육체적 굴레에서 해방되었을 때에 바디매오는 예수님의 길에 동참하였다. 우리는 욕망을 내려놓음으로써 낳되 소유하지 않고, 일하되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기르되 주관하거나 다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욕망을 극도로 자극하는 세력인 자본과 권력에 의해 당하는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보게 되었을 때에는 예수님이 가시는 그 길을 따라 나섰다. 따름은 예수님의 외적인 삶을 본뜨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충 흉내나 내는 모방이 아닙니다. 형식적으로 예수님을 따른다면 모두가 결혼도 하지 말고, 서른 셋의 나이에 십자가에 달려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기억한다는 의미에서의 구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기억된 실재는 과거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난도 과거의 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의 고통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 있어서 과거에 있었던 예수님의 고난은 오늘 나의 평안을 위한 주술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따름은 예수님의 삶을 현재에 생생하게 구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운동에 동참함으로써 우리의 삶의 내용이 전적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따름은 예수님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했던 것을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썩어질 경건성을 보관하는 냉장고가 아닙니다. 교회는 그의 능력으로 인간의 의지를 변화시키는 발전기입니다. 교회는 게으른 사람에게 흔들의자를 제공해 주는 상점이 아닙니다. 교회는 인생의 짐을 끌어당겨 줄, 잘 맞는 멍에를 매어주는 집입니다. 교회는 인생의 난관을 살짝 피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교회는 삶의 장애물에 직면할 힘과 용기를 제공해 주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한 사람만 부른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 우리를 불렀습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눈을 뜨고, 따라 갑시다!” 중에서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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