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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동방박사 트립을!우리 삶에 있는 예수를 찾는 모험을
이이소 | 승인 2018.12.29 18:44

올해는 그 친근한 구세군의 자선냄비 소리, 그 명랑한 캐롤송 하나 듣지도 못하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즐거워지는 거리의 성탄 장식도 보지 못한 채 잿빛 성탄절을 보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 한 마디 듣지 못하고, “메리 크리스마스” 라는 말이 사라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탄절을 지내는 마음이 아팠다. 그 동안 타성에 젖어 아무런 의식 없이 반복했던 “메리 크리스마스” 그 자체가 위대한 신앙고백이고 희망의 선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심 어둠에 잠긴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외치며 하나님의 자비와 평화를 간구한다.

성탄 무드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이 곳의 사정 그리고 인도 희망공동체에서 계속 날아오는 성탄 준비 소식을 들으면서 옛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받았다. 특별히 성탄절 전 나흘이나 닷새 정도 기간에 데칸고원 오지마을들을 돌면서 만났던 사랑스러운 아이들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나를 울게 만들었다.

남인도에 도착한 초창기, 데칸고원의 소읍인 잠말라마두구에서 인근 마을들을 돌아볼 때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다녔다. 통역 한 명과 가까운 마을을 찾아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일일이 문안을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큰 마당이나 교회에 모이면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고 약과 사탕을 나누어 먹으면서 놀았다. 특별히 아픈 사람이 있으면 안수기도를 하였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치료를 도와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눈동자를 바라보며 꿈 이야기며 자녀들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종종 나누었다.

그러나 순회하면서 2,3년 세월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방문을 요청하는 주문이 들어왔고 나는 그들의 요청에 따라 근원 각지를 다니느라 분주해졌다. 나의 방문이 널리 알려지면서 작은 마을 하나도 미리 스케줄을 잡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원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방문할 때 마다 그 지역 목회자와 유지,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둘러싸이게 되면서 어려운 달리트 교우들과 한 자리에서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한담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그리고 나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서 교회가 준비한 놀이와 게임과 모임에 참여하는 시간 때문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교회의 정성스런 영접을 뿌리치지 않으면서 어려운 교우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머리를 짜냈다.

말씀 선포 시간보다는 자유로운 인사 시간을 이용하여 교우 전체를 한 자리에서 만나면서도 개별적으로 만나는 방법을 생각했다. 예전보다 미약하기는 하였지만, 교우 개개인에게 희망과 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예배나 모임이 끝나기 전에 병든 자를 위해서 안수기도를 하였고 특별한 경우 교우들과 함께 중보기도를 하였다.

이런 나의 원시적인 스타일이 우리 달리트들에게 딱 맞아떨어졌다고나 할까?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나는 많은 대중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행복에 비명을 질러야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대중 순회 전도사가 되었다.

ⓒGetty Image

한 번은 압둘라뿌람이라는 오지에 있는 교회를 소리 소문 없이 찾아갔는데 교회 옆 커다란 님트리 아래에 손발이 거미처럼 긴 갸날퍼 보이는 소년이 외롭게 앉아 있었다. 소년이 나를 보고 하얗게 웃었다. 그 소년은 그 동안 여러 번 나를 보았으나 자기는 힘이 없고 약해서 늘 멀리서 바라보았다고 하였다. 근 2,3년 동안 계속 순회한 마을이었는데 나 자신이 아픈 소년의 존재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미안한 마음으로 어디가 아픈지를 물었다. 그때 나의 도착 소식을 듣고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한 교우들이 “백혈병”이라고 말을 해주었다. 백혈병이라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얼결에 소년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다.

이 소년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내 생명의 일부를 이 소년에게 나누어 주시라고! 이 소년이 살아 있는 동안 삶을 아름다운 곳이고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달라고! 이 소년이 자기는 사랑받는 사랑스런 아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해달라고! 이 소년이 살아있는 동안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하게 해주시라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라고! 기적을 보게 해주시라고!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기도를 마친 후에 나는 소년을 품에 안았다. 10세 소년의 무게가 낙엽한 이파리처럼 가벼웠다. 그 때 머리에 전광석화처럼 떠오른 생각이 소년이 살날이 길지 않다는 것이었다. 길어야 2,3개월 정도라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아릿아릿 아파왔다. 10세 소년이 혼자 질병의 고통, 굶주림의 고통 그리고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친구와 어울려 지내지도 못하며 혼자 지내는 고독을 감당해왔다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졌다. 어린 소년이 겪고 있는 고통, 고난, 고독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항의 기도를 많이 드렸다.

나는 자나 깨나 소년을 생각하면서 만나러 갈 준비를 하였고 살아 있으라고 살아만 있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소년을 만나러 갔는데 소년이 보이지 않았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키쇼르 어디 있니?” 라는 나의 물음에 아이들 모두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었다. 나는 아이들이 내 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을 해서 다시 큰 소리로 “키쇼르 어디에 있니?”라고 물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시 하늘을 가리키면서 “키쇼르 죽었어요.”라고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 서있을 수가 없어서 자리를 떴다.

골목길에서 한참 서성거리다가 좀 구석진 우물가에 서서 하나님께 원망을 터뜨렸다. 너무 가혹하시다고. 너무 잔인하시다고. 키쇼르를 왜 세상에 내려 보내셨냐고? 키쇼르를 왜 그렇게 빨리 데려가셔야 했냐고? 왜 한 번 더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으셨냐고?

키쇼르를 보여주시라고 말씀 드리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짙어진 하늘에 별들이 총총하였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마음에 큰 울림을 주셨다. 세상에는 키쇼르가 많다고. 그들을 보살피라고. 그들을 사랑하라고. 그들을 품으라고.

그 날 저녁 집회를 마치기도 전에 어느 손이 와서 불쑥 나를 잡아갔다. 가서보니 말기 암 환자네 집이었다. 집안 가득 썩은 냄새가 진동했지만 눈물로 안수하고 아픈 마음을 가까스로 부여안고 나왔다. 또 다른 손이 나를 끌고 어떤 움막으로 갔다. 이틀 전에 아들이 중병으로 죽은 집이었다. 망연자실하고 있는 부모들 또한 환자들이었다. 모두가 제 2, 제 3의 키쇼르 였다.

키쇼르의 죽음, 짧은 삶의 의미를 묵상할 때, 키쇼르가 내게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힘이 없어서 친구들과 부딪히며 선생님 앞에 가지 못해요. 몸이 아파서 오래 앉아 있지도 못해서 멀리서 선생님을 보기만 해요.”

순회할 때, 전체 대중을 보면서도 개개인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나의 생각은 영적 교만이며,나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키쇼르의 말은 예수님 당시 주님 앞에 나오지 못했던 맹인들, 문둥병자들, 혈루증의 여인처럼, 오늘날에도 하나님 앞에, 교회에, 말씀 앞에, 예배 자리에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찾아서 1년에 며칠만이라도 직접 찾아다니는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눈멀고, 귀먹고, 말 못하는 사람들, 전신마비 아이들 등등. 부모님들이 그 자녀가 태어난 것을 저주로 생각하는 부모님의 아이들과 부모나 가족들이 빨리 죽기를 바라는 아이들을 찾아다니기로 하였고 그 여행을 성탄 전 주간에 실시하였다. 그리고 그 여행을 주님을 찾아가는 동방박사 트립이라고 불렀다.

성탄송에 나오는 노래처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제 2, 제 3의 키쇼르를 찾아서 다녔다. 하루 종일 데칸고원의 광야 길을 차로 달려서 1명 또는 2명을 만났다. 아이들을 예수님인 것처럼 바라보고 동방박사처럼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발을 들면서 눈물과 한숨의 세월을 보내는 부모님들에게 감사의 큰 절을 드렸다. 여행 끝에는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의 집인 “샨띠홈”이나 “믿음의 집”에 들려서 우리를 대신해서 아파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퀴즈게임도 하고, 매니큐어도 칠해주고, 선물 교환도 하고 기도하며 놀았다. 3박 4일이나 4박 5일의 동방박사 여정을 마치고 첸나이로 돌아오면 몸은 노곤하지만 정신은 쇄락하였고 천군천사의 찬미 소리가 들렸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2012년에 여러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차, 로칼 버스, 오토릭샤, 렌트카를 이용하며 데칸고원 오지를 누비고 다녔다. 앞서 사흘 동안, 하반신 불수인 마니, 전신마비인 죠띠, 귀 먹은 페드로, 아무데서나 전신마비 증세가 오는 아난, 다리가 불구인 키쇼르의 아버지, 반 미친어머니와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이즈레이얼, “샨띠홈”의 에이즈 피해 아동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아도니에 있는 “믿음의 집” 에이즈 피해아동들을 보기 위해서 1박 2일로 시간을 잡아서 방문하였다. 딱하게도 잠 잘 곳이 부족해서 우리 일행은 남녀를 불문하고 한 방에 모여서 지저분한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하였다. 도중에 잠이 깨서 밖으로 나갔는데 아뿔싸! 우리에게 방을 양보한 아이들이 토방에서 자리를 펴고 자고 있었다. 민망한 마음에 누웠던 곳으로 돌아와서 건물 증축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개가 요란하게 짖어대고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개가 코브라가 잠자고 있는 아이들 곁으로 가는 것을 발견하고 컹컹 짖었던 것이다. “코브라”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때 주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애야, 아직도 나는 이 아이들과 함께 외양간에 있다. 너는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면서 왜 가만히 있느냐.”

주님의 슬픈 음성에 나도 모르게 “예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교만하고 게으른 종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라고 대답하며 엎드렸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본의 아니게 동방박사 트립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3명의 아동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들의 소천은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코끝이 찡해지면서도 안도의 한 숨이 나왔다. 그들이 더 이상 외롭지 않고, 아프지 않고, 멸시 천대를 당하지 않으며 거지 나사로처럼 하나님 품에 안겨 있을 것이기에.

올해 인도에 있으면 동방박사 트립을 하고 있을 기간에 난달 희망공동체에서 유난히 아픈 소식들이 많이 들려왔다. 공부방의 초등학생인 따바슘의 아버지 소천, 10살인 산토스의 어머니 소천 그리고 키가 자라지 않는 8세 소녀 지티카 소식 등등이다.

어머니를 잃은 산토스는 앞을 보지 못하는 병든 할머니를 봉양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방을 더 이상 다닐 수 없다고 하였다. 학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탄 나눔 중에 만난 지티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지만 두 어르신이 장애 또는 중병에 걸려 있어서 어린 그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해서 구걸하고 있다고 하였다. 소식을 듣는 순간, 3세 아이보다 작은 난장이 지티카가 거리에서 어정어정 구걸하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너무 슬프고 외롭고 추워보였다. 나는 표정 없는 지티카의 사진을 보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속삭이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지티카! 사랑스러운 아이야. 너 참 힘들구나.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자?”

부모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크고 아름다운 꿈을 꾸면서 건강하고 행복해야할 어린 나이에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지티카와 산토스가 무척이나 보고 싶다. 그냥 안아주고 놀아주고 군것질하고 밥도 먹고 예쁜 옷도 사주고 싶다. 노래와 기도도 가르쳐 주며 위로와 격려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단 하루 만이라도 운명적인 고난과 고통을 겪고 있는 그들 곁에서 가만히 함께 있어주고 싶다.

인도에서 갑자기 나오게 되는 바람에 아이들에게 “안녕!”이라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나왔다. 인사를 하지 못하고 나와서 더욱 잊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가끔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아이들이 내가 자기들을 잊었다고 생각하며 슬퍼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안녕 지티카!” 하면서 산 넘고 물 건너 그들을 만나러 갈 날을 기다린다.

이이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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