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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집 <진달래꽃>[내 인생의 책 1] 말의 아름다움
이수호 | 승인 2018.12.30 20:29

내 고등학교 시절은 모든 게 가난했고 성정은 거칠 수밖에 없었다. 주고받는 말은 절반이 욕이었고 으슥한 곳에 서너 명씩 모여 꼬치담배를 돌려가며 피우기도 했다. 키 큰 놈들은 교실 뒤 구석에 모여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잡곤 했는데, 거기 못 끼는 놈들은 괜히 기가 죽어 알아서 기곤했다.

나는 키가 큰 편이었는데도 그놈들 무리에 끼지도 못하고 비리비리했다. 기를 못 펴고 주눅 들어 살았는데 누구는 나보고 착하다고 했지만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나는 혼자 책을 읽거나 공책에 뭘 베껴 쓰기를 좋아했다. 특히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이 좋아 따로 공책에 교과서의 시와 새로 만나는 좋은 시도 옮겨서, 나만의 시집을 만들어 가지고 다니며 혼자 읽곤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큰소리로 읽으며 외우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헌 책방에서 진짜 시집 한 권을 만났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었다. 김소월의 시는 ‘진달래꽃’ 등이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 낯설지는 않았으나, 허름한 헌책방 구석에서 주인을 힐끗힐끗 돌아보며 읽는 맛이 정말 대단했다. 편을 더할수록 저절로 생기는 가락도 좋았지만 너무도 쉽게 쓴 내용이 그대로 여린 가슴에 와 박혔다.

너무 갖고 싶어서 그 당시 나로서는 거금을 지불하고 내 것으로 만들었다. 그 내용이 대부분 애절한 사랑이거나 당시 일제 강점기 현실 속에서의 진솔한 삶의 얘기여서 그냥 가슴에 품고 싶었다. 가끔 혼자일 때는 가락을 붙여 큰소리로 읽곤 했는데, 마음이 따뜻해지고 마치 노래를 부를 때 느끼는 시원함을 느끼곤 했다. 아 말의 아름다움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그때부터 나는 시에 휩싸여 살았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이수호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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