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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하나님 나라와 이상적 사회 형태 (1)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 승인 2019.01.03 18:11

종교적 사회주의는 사회 개혁으로 고갈될 수 없다. 그는 사회주의 즉 현 사회에 대하여 원칙적이고 본질적으로 다르고 새롭게 지향하는 사회의 약속과 요구이다. 그는 약속과 요구 그리고 안전한 전환, 세상 및 개인의 회심이다. 그는 현 세상의 우상의 통치에 대한 하나님의 혁명의 선포이다.(Was ist religiöser Sozialismus, S. 74-75)

라가츠의 예언자적 사상은 이상적 사회 형태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가족 공동체”에서(1) 첨예화 되어진다. 그것은 광의의 의미에서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 나라의 사회학적 적용이다. 또한 협의의 의미에서 사회적 복음의 내용과 본질을 형성하는 하나님의 아버지됨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됨과 인간의 형제됨의 사회학적 적용이다.

하나님의 자녀됨과 인간의 형제됨

라가츠는 그의 신학적 핵심 개념인 하나님의 아버지됨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됨(또는 하나님의 아들됨)과 인간의 형제됨을 사회적 복음의 개인적 그리고 공동체적 의미와 관련해서 이해한다. 인간의 하나님의 자녀됨은 복음의 개인주의를, 인간의 형제됨은 정치적 정당과 정치 강령이 아니라고 보았다. 라가츠에게는 공동체의 의무와 공동체의 감정으로서 복음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의미한다.(2)

라가츠의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형태로서(3) 이상적 사회 형태에 대한 생각은 철저히 하나님의 아버지됨에 기초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버지됨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됨과 인간의 형제됨의 유기체적 결합, 다르게 표현하면, 사회적 복음의 개인주의와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의 기계론적 일치가 아니라 유기체적 결합이다.(미주 4) 라가츠는 이상적 사회 형태를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라고 부른다.

“인간 세계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과 형제로서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가족 또는,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의 가족이 되어진다.”(5)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의 근본 원리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사회학적 원형”과, 사회학적 의미에서, “자유로운 공동체로서 조합”이다.(6) 우리가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를 교의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종교적 사회주의의 근본 원리, 근본 형태와 내용이다.

“종교적 사회주의는, 이미 말한 것처럼, 특별한 형태들을 창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종교적 사회주의가 하나님의 자녀됨과 형제됨에 원칙적으로 가장 근접한, 사회학적으로 표현하면, 그의 최상의 원리인 자유로운 공동체, 자유로운 결합에 근거한 공동체를 구체화하는 이러한 사회주의적 형태들에 대한 편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는 그의 본질에 의하면 조합이다. 그 안에서 종교적 사회주의는 각 시대에 실제로 그의 내용에 알맞은 그릇을 인정한다. 그러나 조합은 참으로 (독일어로 “조합주의”라고 부리는) 모든 사회주의의 근본 형태이며, 조합은 사회주의에게 있어서 형태, 또 하나의 특별한 형태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형태들 중에 형태이다. 그의 모든 형태들은 이러한 원형을 취하여야만 한다.”(7)

라가츠는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의 근본적인 원리로서 “종교적 무정부주의”와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의 정치적(또는 사회적) 경제적 근본 형태로서 “연방주의”를 가정한다.(8) 종교적 무정부주의는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됨과 종교적 메시지와 관계가 있다.

그러나 연방주의는 특별히 정치적·경제적 영역에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관계를 규정하며, 인간의 형제됨과 사회적 메시지와 관계가 있다. 연방주의는 본질적으로 종교적 무정부주의에서 생겨난 정치적·경제적 공동체 형태이다. 종교적 무정부주의(또는 하나님의 무정부주의)는 신학, 교회 그리고 국가가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방해한다면 그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리고 연방주의는 세계 공동체의 토대이다.(9) 종교적 무정부주의와 연방주의는 조합적 공동체의 형태로서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의 실현

라가츠의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에 대한 생각은 한편 그가 어린 시절에 경험한 마을 공산주의와 관계가 있으며, 다른 한편 그의 직접적인 아버지 하나님의 체험 및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 그리고 성서의 재발견의 산물이다.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는 살아 있는 하나님과 일치의 성례전으로서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된다고 라가츠는 보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완전성과 일치성 안에서 실현되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치는 하나님이지, 더욱이 우리의 영감을 받은 자아가 아니다. 하나님은 결합한다. 왜냐하면 그는 연결하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진리와 모든 선을 연결한다.”(10)

또한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한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 안에서 사역과 결합되어 있고, 인간과 결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는 맘몬에서 하나님에게로의 사회적 혁명과 공동체의 혁명을 통해서 완성되어진다.

하나님의 동역자와 전우로서 인간의 임무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주

(미주 1) L. Ragaz, Die Geschichte der Sache Christi. Ein Versuch, Bern 1945, S. 50.
(미주 2) L. Ragaz, Die Bibel. Eine Deutung, 5 Bd, Zürich, S. 131-132. Vgl. L. Ragaz, Der neue Weg der religiösen Bildung, S. 109.
(미주 3) L. Ragaz, Weltreich, Religion und Gottesherrschaft, Bd. 2, Erlenbach-Zürich; Müchen; Leipzig 1922, S. 97.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개인화와 사적인 것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실현한다”(EKU, Reich-Gottes-Erwartung, S. 61).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완전한 공동생활”과 “참된 공동체”이다(vgl. Martin Buber, Der heilige Weg 1919, in: Reden über das Judentum, Berlin 1932, S. 164).
(미주 4) Bibel 5, S. 132. 이러한 결합은 논리적으로 이율배반적이다. 그러나 그 이율배반은, 실천적 의미에서, 생명과 부를 창조하는 하나의 양극성이다. 이율배반은 라가츠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의 근본 요소”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근본 특징이다. 라가츠의 이율배반적 사고방식은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이율배반적 양극성에서 유래한다(a.a.O., S. 133).
(미주 5) A.a.O., S. 135. 가족은 라가츠에 의하면 “공동체의 형태 속에서 하나님의 사역의 담지자”, “모든 공동체의 원형태” 그리고 우선적으로 “공동체의 상징”이다(vgl. Bibel 1, S. 207-208).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의 오이코노미아”(oikonomia tou theou)이다. “외코노미”(Ökonomie)는 oikos(집, 가정)와 “nomos” (법률, 법칙)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외코노미는 단어적으로 “가정의 법칙”이다. 이러한 옛 의미에 의하면 외코노미에서는 한 가정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가 중요하다. 또한 외코노미가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하여 존재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vgl. M. Douglas Meeks, Gott und Ökonomie, S. 14 f).
(미주 6) A.a.O., S. 133.
(미주 7) L. Ragaz, Was ist religiöser Sozialismus?, in: Der Glaube der religiösen Sozialisten Ausgewählte Texts, hrsg. von Wolfgang Deresch, Hamburg 1972, S. 76.
(미주 8) Weltreich Bd. 2, S. 97. 마트뮐러와 헤르켄라트는 연방주의를 공동체의 원리로 이해한다(vgl. M. Mattmüller, Bd. 2, S. 463. Silvia Herkenrath, Politik und Gottesreich, S. 48).
(미주 9) A.a.O., S. 113 f.
(미주 10) L. Ragaz, Das Reich und die Nachfolge. Andachten, Bern 1938, S. 579.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jena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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