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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수밖에 없는 꿈(삶)들에 대하여영화묵상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 싶었다
이관택(평화교회연구소 연구원 / 다큐인) | 승인 2019.01.04 18:58
“평화교회연구소는 평화로운 세상, 올바른 믿음의 교회를 꿈꾸며 부흥과 성장보다 평화, 생명, 정의의 가치가 실현되는 21세기 새로운 한국교회를 상상합니다!” 모토 아래 건강한 한국교회를 상상하는 평화교회연구소가 매달 발행하는 “웹진 평:상”의 글들을 에큐메니안에 게재합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해 주신 평화교회연구소 소장님과 연구소 소속 모든 연구원들과 웹진 기고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영화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 싶었다>(I wanted to be a documentarian), 이은아 감독 작품, 72분, 한국, 2000년

최근 종로구의 한 고시원에 화재가 발생했고, 7명의 투숙객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고시원. 그 곳은 어떤 곳인가. 이름과 같이 미래를 향한 부푼 꿈을 안고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이 모여 있는 꿈의 공간이 아니다. 더 이상 밀려날 곳도 없는 부박한 이들이 하루하루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몸을 뉘였던 한 평짜리 잠자리. 열악했지만 그 나마도 가난한 이들을 받아 주었던 유일한 공간이었다. 꿈보다는 생존이, 희망보다는 절망의 열기로 더욱 치열했던 이 열악한 터전은 밤새 내리던 가을비가 그친 새벽 무렵 화마에 휩싸였다. 스프링클러는커녕 흔한 화재경보기조차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았던 무력한 공간에서 그렇게 7명의 가난한 생명은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이 지면을 통하여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다큐멘터리와 비주류영화를 주로 다루었다. 때론 낯선 언어들을 동원하며 읽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지면의 목적은 생각보다 분명하다. 그것은 영화 속에서 생동하는 다양한 삶과 상황을 통하여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의 무력한 공간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변화의 단초’를 찾고자 했다는 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안타깝게 눈 감을 수밖에 없는 이 무력한 세상에서 예수의 제자 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화마를 진압할 수 있는 스프링클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화재경보기의 역할은 감당해야 할 텐데 말이다.

서글픈 분노의 마음을 안고 가난한 사람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찾다가 번뜩 떠오른 것이 바로 이은아 감독의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 싶었다>였다. 십여 년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7분짜리 편집본을 지나가듯 봤던 기억이 있다. 젊은 여성 감독이 거리 노숙인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사실 자체가 흔치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홈리스와 전혀 상관없는 제목 때문이었을까. 채 몇 분이 안 되는 장면들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기억 속에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 영화전편을 보고 싶었지만 구할 길이 없어 포기했었는데, 얼마 전 다큐 작업실 한 구석에 쌓여 있는 CD더미에서 우연히 그 반가운 제목과 다시 재회 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 싶었다>는 대학을 막 졸업한 듯 보이는 젊은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부산 영도다리 밑에 거주하고 있는 홈리스들의 일상을 촬영하면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온갖 욕과 폭력이 난무하는 삭막하고 남루한 현실 사이에서 감독은 특유의 천진함과 열정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시에 다리 밑 사람들의 곁을 파고든다. 영화의 제작 연도로 보아 IMF 외환위기 직후, 새천년의 소망과는 하등 무관해 보이는 시대적 절망을 한가득 떠안고 이 곳에 모인사람들. 그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 할 수 없다고, 배가 고파도 먹을 수 없다고, 잠자고 싶어도 잘 곳이 없다고 절규한다. 누구는  두 발로 이 다리 밑을 떠나고, 누구는 죽어서 이 곳을 떠난다. 누구는 이 곳을 벗어나는 듯 싶다가도 진절머리 나게 또 다시 떠밀려왔으며, 이런 상황은 무한 반복된다. 피터지게 서로를 힐난하는 무력한 소음이 시도 때도 없이 다리 밑을 메아리 치고 있는 와중에 그들의 삶을 보듬고 관리해야 할 공권력은 무엇을 했을까. 경찰과 공무원들은 다리 밑 삶의 터전을 오로지 청소의 대상으로만 치부하며 수차례 무차별적인 철거를 시도할 뿐이다.

영화는 홈리스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보여 준다. 하지만 단순히 홈리스의 일상을 보여주기만 하지 않는다. 감독은 자신의 꿈을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는 사실을 그 곳에서 만난 아저씨와 언니들에게(감독이 이들을 부르는 호칭) 이야기 했고, 그들은 자신의 삶을 (카메라에게) 내어줌으로 동생 같고 딸 같은 감독의 소원을 들어준다. 감독은 그들에게 ’딸래미’, ‘이쁘니’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영화의 말미에는 한 아저씨에게 “난 포기했지만 넌 포기하지 말라”는 충고와 응원의 말을 듣는다. 홈리스를 다룬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 싶었다>일까 하는 궁금증은 그 즈음에 해소된다. 자신의 꿈을 영화의 전면에 내세웠던 감독이 진짜 하고 싶었던 속말은 영도다리 밑에 살 수 밖에 없는 아저씨, 언니들의 꿈에 관한 것이었다. 그 포기 할 수밖에 없는 ‘꿈’에 대해 공감하고, 애 닳아하는 마음이 화면 밖으로 흘러나오며 먹먹함과 답답함을 불러일으킨다.

▲ 영화의 한 장면

유아사 마코토가 쓴 <빈곤에 맞서다>에는 ‘다메’라는 단어가 나온다. 일본어 ‘다메이케’(저수지)에서 파생된 말로써 한 인간이 사는데 있어서 필요한 자원을 지칭한다. 여기에는 자산과 교육정도 뿐 아니라, 인간관계 등도 포함되는데, 우리 개념으로 하면 ‘비빌 언덕’ 쯤 될 것 같다. 빈곤은 모든 잠재능력과 ‘다메’가 상실된 상태, 즉 선택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은 ‘꿈(삶)의 포기’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꿈의 포기’를 강요당하는 것이다. 감독이 어버이날에 다리 밑 아저씨와 언니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가슴마다 붉은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장면은 사뭇 감동적이다. 하지만 그들의 작은 ’다메’가 되어 주기 위한 감독의 애씀도, 이미 황폐하고 말라버린 세상의 가뭄을 해갈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공권력은 또 다시 찾아와서 다리 밑 사람들의 꿈을 철거하고, 삶을 강탈해 가며, 세상은 이들의 비참함을 회피하거나 관상하기 때문이다.

10년 전 이 영화의 편집본을 보았던 시기의 필자 역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그 꿈을 조금씩 실천해가고 있는 지금도 간절함은 여전하다. 영화제작 당시 23세였던 이은아 감독은 현재 42세가 되었을 텐데 그녀는 여전히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영도다리 밑 아저씨와 언니들이 응원했던 꿈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 꿈을 살고 있든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든, 여전히 필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진심어린 응원이다. 서로의 ‘다메’가 되어주기 위한 작지만 진정어린 노력이 모이고 모여 서로의 꿈을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현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다큐멘터리를 하고 있어도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다.”는 볼멘소리를 입에 달고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이는 결국 누군가의 꿈(삶)을 응원하기 위한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필자 역시 응원 받고 싶다. 서로의 꿈(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응원 받는 일. 비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만 그러하겠는가.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 더욱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의 꿈(삶)을 응원하고 응원 받는 존재임을 진정으로 깨닫고 기도하며 실천하는 일이 아닐까.

앞에서 필자는 ‘꿈’과 ‘삶’을 언급하며 같은 뜻을 가진 동의어로 사용하였다. 삶은 꿈꾸는 것이고, 꿈은 살아내는 것이기에 삶과 꿈의 경계는 모호하다. 하룻밤 사이에 삶과 꿈을 송두리째 강탈당한 7명의 주검을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에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꿈 앞에서 눈물짓고 있는 이들 곁에 하나님의 정의로운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간절하게 소망해본다.

이관택(평화교회연구소 연구원 / 다큐인)  peacechurch20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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