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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의 평화철학평화, 우리 시대의 염원!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 승인 2019.01.06 22:49
새해 새로운 연재가 시작됩니다. 한국 철학계에서 하이데거 전문가로 손꼽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이기상 명예교수님의 함석헌 선생님의 관한 글입니다. 흔쾌히 연재를 허락해 주신 이기상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함석헌 선생님에 대한 글 뿐만 아니라 하이데거 철학을 해명하신 글들도 만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종교평화 없이 세계평화 없다.”(한스 큉)
“나눔 없이 평화 없다.”(마더 데레사)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구상에 전쟁이 없었던 적이 한 순간이라도 있었던가. 온갖 명분과 구실로 전쟁은 자행되어 왔고 지금도 평화의 이름으로 전쟁이 준비되거나 치러지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마저 전쟁은 일종의 필요악이라고 규정하기조차 한다. 인간의 탐욕이 존재하는 한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전쟁이 인간의 본성과 뗄 수 없는 연관 속에 있다고 생각하다 보니 평화 역시 이러한 전쟁의 관점에서 고찰되어 온 것은 어찌 보아 아주 당연한 셈이다. 그리스 사상가들은 평화를 위한 수단으로서 전쟁을 용인한다. 플라톤은 평화를 전쟁의 승리나 방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쟁의 목적은 평화라고 천명할 정도다.(참조 박종대, <평화>, 『우리말 철학사전 2. 생명 ․ 상징 ․ 예술』, 지식산업사, 2002, 331〜352.)

그러나 이렇게 평화를 전쟁의 대립개념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해준 사건이 이른바 1차, 2차 세계대전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무기산업은 무섭게 발전했고 그 파괴력과 살상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선진국들은 경쟁적으로 자국의 안정과 국제질서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한답시고 무기개발과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겁을 주어 공포심을 조장해 상대방이 아예 전쟁도발의 생각을 못하도록 그 싹을 원천부터 봉쇄한다는 일종의 ‘공갈작전’이다. 그렇지만 이런 공포조장과 협박도 생존이 걸리고 정치이념이 걸리고 종교교리가 도전받아 삶의 질서가 위협받으면 오히려 극단적인 반응을 유발하고 만다. 신의 이름으로 자기 한 목숨을 던져 신적 질서를 회복하려는 성스러운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온갖 전쟁을 겪고 인류공멸의 위기를 느낀 세계 정치지도자들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1981년 <세계평화의 날>을 제정하여, 해마다 9월 셋째 주 화요일을 그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도 지구상에는 온갖 명분과 구실 아래 전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돼왔다. 가장 무서운 전쟁은 신의 이름으로 펼쳐지는 ‘종교전쟁’이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들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 종교적 교리에 바탕한 이념의 갈등이 주된 원인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이 종교적 이념에 민주화라는 정치이념을 내세워 맞불 작전으로 맞서고 있다. 의로운 전쟁이든, 신이 원하는 전쟁이든 폭력과 살상, 파괴가 난무하는 전쟁이라면 이미 그 자체가 인간이 원하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는 평화를 전쟁과 연관지어 소극적으로 규정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평화를 인류가 원하고 바라는 목적으로 추구하는 그런 사상적 기조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평화문제에 대해 많이 고심해온 칼 프리드리히 폰 바이체커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과 같은 과학 기술 시대에 평화는 곧 삶의 조건이다.” 이제 평화문제는 지구가 파멸하지 않고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 꼭 필요하고 가장 절박한 ‘삶의 조건’이 되었다. 핵무기 사용의 위험은 개별국가나 민족의 존립과 생존뿐 아니라 전체 인류와 지구 생태계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평화문제는 인류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현안문제가 되었으며 평화는 이제 인류가 추구해야 할 ‘최종가치’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평화는 더 이상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쟁을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결과’로 보고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의와 절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욕망의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한 전쟁상태는 계속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예로부터 평화를, 폭력이나 전쟁이 없는 단순한 공존의 상태인 ‘외적 평화’와, 자신의 욕망을 다스려 얻는 마음의 안정과 평온의 상태인 ‘내적 평화’를 구분했다. 외적 평화가 주어졌다 해서 곧바로 내적 평화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내적 평화 없이는 외적 평화는 있을 수가 없다”. 인간의 욕망을 다스리는 ‘금욕의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한 평화는 요원한 신기루일 것이다. 인간이 권력지향의 의지를 억제하고 절제와 겸양을 아는 인간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이 땅에서 평화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먼저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져 새로운 인간관, 세계관, 종교관이 확립되어야 인류는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예비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의 징표를 읽고 함석헌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세계는 세계가 하나 되는 새 나라의 독립군을 부르고 있는 때다. 평화의 군대를 부른다. 이것은 무기를 드는 것 아니라 마음 하나를 든다. 사람을 죽이자는 군대가 아니라 살리자는, 살리기 위하여 내가 죽는다는 군대다.”(함석헌, <인간혁명>, 『함석헌 전집 2. 인간혁명의 철학』, 한길사, 1993, 105.)

지금 우리는 민족국가들을 넘어서 세계가 하나로 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동(복종, 통일, 되풀이, 지킴)의 역사와 서(저항, 자유, 발전, 진보)의 역사가 만나는 역사적 시점에 들어서 있다. 역사는 중도(中道)를 지키고, 한(韓, 큰 하나)을 붙잡고 밝히면서 “비폭력 평화주의, 세계국가주의, 우주통일주의”로(함석헌, 『함석헌 전집 1. 뜻으로 본 한국역사』, 297) 가야 한다고 함석헌은 외친다.

다음 글에서부터 나는 함석헌 평화철학의 큰 얼개를 살펴보도록 한다.

▲ 이기상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명예교수
이기상(李基相)은 가톨릭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독일 뮌헨 예수회 철학대학에서 철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4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2년 정년은퇴했다.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의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1992년 열암학술상을 수상했고, 1994년 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하이데거의 실존과 언어』(1991), 『하이데거의 존재와 현상』(1992), 『철학노트』(2002), 『하이데거의 존재사건학』(2003), 『쉽게 풀어쓴 하이데거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그 영향』(2010), 『콘텐츠와 문화철학』(2009), 『지구촌시대와 문화콘텐츠』(2009) 외 다수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F. W. 폰 헤르만의 『하이데거의 예술철학』(1997),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1998)과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2001) 외 여러 권이 있다.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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