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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체제의 이해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한국교회
서보혁 교수(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승인 2019.01.08 17:25
지난 11월27일 생명평화마당이 한국기독교회관2층 조에홀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평화신학과 발선(發善)” 심포지움을 개최했습니다. 이날 주제 발표는 한완상 교수(전 통일부총리,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 위원장)가 맡았고, 논찬으로는 이은선 명예교수(세종대), 서보혁 교수(통일연구원 연구위원) 그리고 김희헌 목사가 참여했습니다. 
이번 글은 이날 논찬을 맡으신 서보혁 교수님의 논찬문입니다. 원고를 보내주신 생명평화마당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평화체제란 평화를 보호하고 달성하는데 요구되는 원칙, 규범 및 관련 제도를 통칭합니다. 예를 들어 주권 평등 규범,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 국제연합(UN)과 평화조약 같은 것이 평화체제의 구성 요소들입니다. 평화의식만 높고 이를 보장하고 실현할 관련국들 간 법제도가 만들어져 있지 않다면 평화를 회복하고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평화는 의식과 더불어 그 원칙, 규범과 제도가 어우러질 때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화체제 이론으로 그리는 한반도 평화

평화체제 논의에서 평화는 평화의 보호를 의미하며, 평화의 보호는 평화유지와 평화회복으로 구성됩니다. 평화유지와 관련한 조치로는 안전보장조약, 불가침조약이 있고, 평화회복과 관련해서는 휴전조약과 평화조약 등이 있습니다. 

6.25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한국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동맹국들과 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해 각기 평화를 유지해왔습니다. 또 다른 평화유지 조치인 불가침조약은 아직 남북, 북미 사이에 체결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냉전이 격렬하게 해체돼가던 1991년 말 남북한 사이에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면서 불가침 부속합의서를 채택한 바 있으나 이후 사문화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보면 평화유지(peacekeeping) 측면에서 한반도 상황이 안정적이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 지난 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휴전선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나누고 기념식수와 기념비를 세웠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큰 걸이라 평가된다. ⓒ청와대

한편, 평화회복 조치들 중 평화조약이 휴전조약에 비해 더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입니다. 1953년 교전 당사자들 사이에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지만 평화조약 체결 없이 지금까지 휴전체제가 지속되어 온 걸 보면 평화조약이 더 적극적인 평화회복 조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65년에 걸친 장기간의 휴전체제에서 빚어진 깊은 불신과 군사적 대치 상태,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가로놓여 있어 평화조약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에서 거론된 종전선언입니다. 종전선언은 한국전쟁 교전당사국들 사이의 신뢰조성과 비핵화를 촉진하고, 평화조약으로 나아가는 공동의 정치적 노력입니다.

평화조약은 교전 당사자들이 전쟁 종료를 목적으로 문서를 통해 취하는 명시적 합의를 말하는데, 국제법상 그 명칭에 관계없이 동일한 효력을 갖습니다. 평화조약은 전시상태를 평화상태로 변경시킨다는 점에서 현상유지 하의 불가침조약과 구별되고, 조약의 체결권자가 국가원수라는 점에서 체결권자가 군사령관인 휴전조약과도 구별됩니다. 제도적 측면에서 평화조약이 평화체제 수립의 최대 관문인 셈입니다. 평화조약의 당사자와 휴전조약의 당사자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북한은 한국이 휴전협정 체결 당사자가 아니며 체결 당사자였던 중국이 군대를 철수하고 적대관계였던 한국과 관계정상화를 했기 때문에, 평화조약은 자신과 미국 사이에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전쟁에 가담했고 더욱이 한반도 평화의 직접 당사자이기 때문에 평화조약 체결은 물론 평화체제 수립의 전과정에 참여할 권리와 책무가 있습니다. 평화조약의 내용은 조약 당사자들이 임의로 합의하여 정하는 것으로 특정 범례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대행위를 종료하고 평화상태를 회복한다”는 내용은 반드시 포함되는 사항입니다.

협정(agreement)은 관련국 대표들 사이의 공식 합의를 말하고, 조약(treaty)은 협정이 해당국 의회의 동의를 얻을 때를 말합니다. 협정은 해당국의 정권 교체로 이행이 중단될 개연성이 큰 대신 조약은 그런 우려는 없지만 의회 동의 획득이 쉽지 않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조약, 불가침협정과 같은 국제제도가 지속가능한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련국 국민들의 평화의식이 높고 과거 적대국가 간 관계가 정상화되어 상호협력이 높아질 때, 평화체제가 수립되고 지속가능할 것입니다.

3단계·3차원 한반도 평화체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이론적 이해를 바탕으로 지금부터 한반도 평화체제의 비전과 추진 과제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한반도 평화체제의 비전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한반도 평화체제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전쟁을 막아 한반도 모든 구성원들이 평화롭게 살고, 나아가 인간답게 살아갈 환경을 튼튼하게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우선, 한국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교전 당사국들이 평화우호관계를 회복해야 하며, 북핵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상태가 평화체제 이론에서 말하는 평화회복입니다. 평화회복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당면 과제입니다. 이 문제는 마지막에 다시 다룰 것입니다.

평화가 회복되면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지속가능한 평화는 통일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지는데, 이를 평화통일, 통일평화로 구분해 말할 수 있습니다. 평화가 회복되면 우리는 평화통일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남북교류협력을 제도화 하고 협력 가능한 분야부터 남북공동기구를 만들어 통일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비핵평화 이후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원과 협력으로 경제발전과 사회 개방화를 통해 삶의 질을 높여갈 수 있습니다. 평화통일은 북한주민들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그 형태를 결정해 이루어져야 하고, 평화통일이 달성되면 한반도는 비핵평화에 이어 시장평화, 민주평화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면 한반도 평화체제는 최종적인 단계, 곧 통일평화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통일평화는 통일 이후 한반도의 모든 구성원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려는 제반 노력과 그 상태를 말합니다. 이때 ‘한반도의 모든 구성원들’에 난민, 외국인노동자, 성소수자도 포함되고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통일평화에서는 평화구축의 나머지 과제인 정의로운 평화, 우주와의 평화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한반도 평화체제는 비핵평화를 시작으로 평화통일을 거쳐 통일평화로 나아가는 3단계 연속 과정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런 평화체제 비전이 실현가능하려면 당면 과제를 해결하며 1단계 평화체제를 열어가야 하는데, 그 과제가 비핵평화입니다. 그렇지만 비핵평화를 북한의 핵포기로 축소해 이해하면 비핵평화의 목표 전부를 말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비핵평화를 달성하기도 어렵습니다.

4.27 판문점 선언과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은 비핵평화의 구성 요소와 달성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비핵평화의 구성 요소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 남북·북미관계의 발전입니다. 이들 세 요소들이 선순환할 수 있도록 병행 추진하는 것이 비핵평화의 달성 방법입니다.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평화 프로세스가 정체되어 있다는 지적이 높은데 그것은 비핵평화의 목표와 그 내용을 달성할 방법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행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목표만 반복하거나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남북미중 4자의 종전선언과 북한의 진전된 비핵화 조치가 필요하고, 남북, 북미 정상회담 개최도 비핵평화 촉진 차원에서 필요합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1단계 과제인 비핵평화는 다음 3차원의 접근을 동시에 전개하면서 달성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한반도 차원의 비핵화 노력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공약한 “완전한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대북 안전보장과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시해야 합니다.

두번째 차원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개선을 넘어 발전할 수 있도록 관계 지속의 모멘텀을 살려가야 합니다. 남북 간에는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해 논의하고, 정치는 물론 경제, 인도주의, 사회문화 교류협력 방안을 추진해나가면 될 것입니다. 북미 간에도 미국인 억류자 석방, 미군 유해 송환에 이어 미군 유해 발굴 작업, 재미 코리언의 북한고향 방문, 미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 북한 식량·보건 실태 개선 등을 위한 공동작업이 가능할 것입니다. 남북, 북미관계가 비핵화 문제에 종속되지 않고 자율적으로 개선되어 가도록 하는 것이 비핵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차원의 논의는 동북아 안보협력이 비핵평화를 촉진한다는 점입니다. 비핵평화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물론 동북아 역내 안보와 협력을 활성화 합니다. 과거 6자회담 참여국들이 비핵평화를 지지하고 비핵화를 역내 국가간 신뢰구축과 연결 짓는 노력도 유용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반도 평화체제를 북핵문제 해결로 좁게 보았지만 그것은 비핵평화-평화통일-통일평화로 이어지는 통일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된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비전을 가질 때 비핵평화에 더 적극 임할 수 있고, 관련국 정부는 물론 시민들의 이해와 참여로 평화체제의 길을 튼튼하게 닦아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서보혁 교수(통일연구원 연구위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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