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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무정부주의하나님 나라와 이상적 사회 형태 (2)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 승인 2019.01.10 03:10

하나님의 무정부주의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관계에 속하며,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모든 노예 상태로부터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라가츠의 열정은 완벽하게 “공산주의적, 조합주의적 무정부주의”에(미주 1) 반영되어 있다. 또한 하나님의 무정부주의는 라가츠의 급진주의의 원천이다.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로부터 출발

라가츠는 우선 마티우(Jean Mattieu. 1874-1921)를 통해서 무정부주의적 사상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바쿠닌의 혁명적 이론을 알지 못했으며, 오히려 프루동의 비폭력주의적 무정부주의에 매혹되었다. 그러나 라가츠의 하나님의 무정부주의는 이들의 영향보다는 1903년 그의 하나님의 직접적 체험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재발견한 성서에 기초한다.

하나님의 무정부주의는 역사적 삶과 인간 공동체의 최상의 형태로서 살아 있고 현실적인 하나님의 현재성과 모든 세계 통치자-그들의 가장 거만한 형태가 절대 국가이다-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전제한다. 하나님의 무정부주의는 “하나님 아래서 자유”와 “하나님의 법”이 직접적으로 통치하는 것을 뜻한다. 즉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직접적 관계를 형성하는(삿 8: 23, 17:6) “하나님 아래서 직접성”을 의미한다.(2)

사사시대, 하나님의 무정부주의

라가츠는 하나님의 무정부주의를 위한 성서적 전거를 특별히 사사 시대에서 찾는다. 사사 시대는 “인류 역사의 바다에서 하나님의 섬”으로서(3) “하나님 아래서 직접성의 시기”(4)이다.

▲ 야코프 요르단스, <예수의 성전 정화>, 1650년경, 캔버스에 유채, 288 x 436cm. ⓒ프랑스 파리 루브르 미술관.

그러나 사사 시대는 일회적 역사가 아니라 모든 역사의 본질적 요소와 역사적 혁명의 요소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무정부주의의 시기에 직접적으로 하나님 아래서만 존재한다. 그들은 오직 자유로 그들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법에만 의존했다.

하나님의 법은 시민법과 모든 성문법을 능가한다. 그것은 정의와 인애의 기초적 요소들에 근거한 민족적 법이 되어진다(렘 31: 31 ff. 단 30: 11-14).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적으로 하나님 아래서만 존재하고 또한 하나님의 법이 직접적으로 그들을 통치하기 때문에, 그들은 왕이 아니라 사사를, 국가가 아니라 법을, 헌법으로서 인간의 법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있다.(5)

모든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통치

또한 하나님의 무정부주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직접적인 통치를 의미한다. 하나님만이 주이시며, 하나님과 그의 통치만이 하나님의 무정부주의에서 유효하다. 모든 세속적 통치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월권이다. 하나님의 무정부주의에는 폭력적 독재자, 합법적 왕, 본래의 귀족, 확고한 구성물로서 계급이 없다. 하나님의 무정부주의는 절대 국가의 폐지이다.

라가츠는 이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무정부주의를 모든 세속적 권력과 통치의 횡령에 반항하는 “민중 통치의 무정부주의”와 일치시킨다. 민중 통치의 무정부주의는 정치적 또는 사회적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민중 통치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통치에 근거하기 때문이다.(6)

하나님의 뜻으로만 통치되는 민중공동체

민중 통치의 무정부주의는 라가츠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으로만 통치되어지는 민중 공동체”이다. 민중 공동체는 모든 자유와 민주주의의 완성이며, 하나님의 통치가 민중의 통치가 되어지는 신정 정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다.(7) 민중 공동체는, 사회학적으로 표현하면, 완전히 밑으로부터 건설되는 “자유로운 민중의 조합, 결사 조합”이다.(8)

라가츠는 하나님에 의해서 자유롭게 결합되어진 “연방주의적 민주주의”와(9) 하나님의 직접성 안에서 자본주의적 소유에 대립하는 “사회주의적 곧 공산주의적 민주주의”를(10) 원한다.

하나님의 무정부주의는 요약하면 하나님의 직접성과 그로부터 나오는 “개인과 공동체를 가족으로 결합”하는 자유(11)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찬란한 자유”를(12)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정부주의는 신정 정치와 세상성을 통해서 변질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더 이상 현재적인 힘, 살아 있는 힘, 지배하는 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래서 직접성은 상실되었다. 종교와 국가가 하나님을 대신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적 관계를 위협하고 방해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학(또는 신학자), 성직 계급, 국가이다.

미주

(미주 1) L. Ragaz, Meine Weg. Eine Autobiographie, Bd. 1, Zürich 1952. S. 51; L. Ragaz, Bibel 7. Johannes Evangelium und Offenbarung, Zürich 1950. S. 103. 라가츠는 하나님의 무정부주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무정부주의”라고도 부른다(Bibel 5, S. 137). 그는 종교적, 기독교적 무정부주의를 하나님 나라의 무정부주의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Weltreich, Religion und Gottesherrschaft, Bd. 2, Erlenbach-Zürich; München; Leipzig 1922, S. 174).
(미주 2) Bibel 3, S. 47. 또한 S. 49도 참조하라.
(미주 3) A.a.O., S. 46.
(미주 4) A.a.O., S. 95.  E. 부에스는 공동체의 구조를 지배가 아니라 봉사 속에 있는 “초기 기독교적 무정부주의”로 이해한다(E. Buess, Gottes Reich für diese Erde, S. 147).
(미주 5) A.a.O. 또한 S. 49-50을 참조하라.
(미주 6) A.a.O., S. 76-77.
(미주 7) NW 1924, September, S. 349. 이러한 라가츠의 생각은 직접적으로 성서적 정신에서(mutatis mutandis) 유래한다. 그것은 또한 칼빈, 쯔빙글리와 프뤼의 니콜라우스의 신정론적 사상(vgl. a.a.O. Bibel 3, S. 77) 및 철학적으로 알렉산더 비네트와 키에르케고르와 관련되어 있다(vgl. Bibel 5, S. 137).
(미주 8) Bibel 3, S. 48.
(미주 9) A.a.O.
(미주 10) A.a.O., S. 76.
(미주 11) Bibel 5, S. 114. 하나님의 무정부주의는 “최후의 최상의 자유의 본질적 요소”이다(S. 137). 라가츠는 쿠터로부터 특별히 그의 “직접적인 것: 인류의 문제, 베를린 1902”란 저서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라가츠는 그 책을 벽돌공 파업의 날에 읽었다(TB IX, vor 3, Mai 1903). 그는 쿠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 “ 나는 솔직히 당신의 모든 개인적 사상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정서는 공유합니다”(Briefe Bd. 1, S. 203). “하나님의 직접성”이란 개념은 이미 쿠터와의 만남 이전에 형성되었다(Briefe Bd. 1, S. 137). 라가츠의 반군국주의와 반애국심은 바로 하나님의 무정부주의에서 기인한다 (vgl. Weltreich, Bd. 2, S. 104 ff. 164 ff).
(미주 12) Weltreich Bd. 2, S. 122.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jena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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