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건 하나는 유력 차기 대권 주자로 회자되던 안희정 충북도시자가 성범죄 혐의로 기소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안 지사는 피해자인 여 비서와는 단지 불륜 관계일 뿐이라고 일축했고 성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일체 부인했다. 결국 2018년 8월14일, 1심 재판부는 안 지사의 성폭력 혐의에 대한 무죄를 선고했다.

위력이냐, 위력이 아니냐

안 지사의 성범죄 혐의 사건만큼 이 판결은 또 한국사회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판결로 인해 한국사회는 법정 내외적으로 격론이 벌어졌다. 쟁점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위력에 의한 성범죄로 볼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점이었다.

1심 판결이 내려진 후 5개월이 지난 시점, 또한 검찰에 의해 항소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이 판결로 인해 쟁점으로 떠오른 부분에 대한 토론회였다. 토론회 제목도 이 쟁점을 정조준 하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안희정 성폭력사건 1심 판결을 중심으로’였다.

1월 14일, 오후 서울시 중구 프레스센터 19층에서 토론회는 개최되었다.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이하 민변 여성인권위)와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등 3개 단체가 공동 주최했다. 토론회는 세 개의 발제와 토론자 두 명의 토론문 발표로 진행되었다.

사회를 맡은 권인숙 원장(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인사말을 통해 또 한 번 1심 판결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발언을 이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성폭력 문제에서 우리가 풀어야할 가장 중요한 숙제이다.”

권 원장의 간단한 인사말과 발제자들에 대한 소개로 토론회는 시작되었다.

“위력” 개념에 대한 잘못된 판단

첫 발제는 차혜령 변호사(민변 여성인권위)로 주제는 ‘안희정성폭력사건 1심판결 평석(1) 위력 판단 등 판결의 전반적인 문제점’이었다. 차 변호사는 “기존의 대법원 판례와 최근 하급심 판결 판단에서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 죄 판단 법리와의 비교”를 통해 안희정성폭력사건 1심 판결의 부당함을 차근차근 밝혀나갔다.

차 변호사에 의하면 1심 판결은 세 가지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 먼저 위력의 ‘행사’ 여부 판단에 있어 오류를 지적했다. 1심은 피고인이 유력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사회적 지위나 영향력이 존재하는 것은 인정했지만 피고인이 평소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위력을 행사한 사실은 부정한 점을 오류라고 보았다.

▲ 사진 좌측부터 김혜정 부소장, 이호중 교수, 박인숙 변호사, 권인숙 원장, 차혜령 변호사, 장응혁 교수 ⓒ권이민수

그러나 차 변호사는 다른 판례들에 의하면 1심과 같이 위력의 ‘존재’와 ‘행위’를 구별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업무적 관계와 비업무적 관계의 구분을 통해 위력의 행사여부를 판단한 것 또한 1심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현실과 맞지 않은 근거 없는 판단이기에 이는 부당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두 번째는 “무죄 판결과 결정적으로 모순되는 사정들에 대한 판단의 부재였다.”고 지적했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폭로 직후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고 밝혔으며, 피해자에게 본인이 미투 운동의 대상이 되는 것인지를 질문하며 두려움을 내비친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정들은 1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고 그와 관련된 판시도 하지 않았다. 또한 4번의 간음 사실에 대한 피해자와 피고인의 주장은 상반되고 있는데 그와 중에 공통된 점은 “피해자를 먼저 부른 것은 언제나 피고인이며 피해자는 한 번도 적극적으로 먼저 피고인과의 성관계를 요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피고인이 관계를 주도했다는 사실을 1심은 고려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1심은 피고인의 진술과 피해자의 진술을 판단함에 있어 불공평한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성폭력 범죄의 경우 물리적인 증거가 거의 없고, 상반된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 중 하나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안희정성폭력사건 역시 피고인과 피해자, 양 측의 진술의 신빙성을 모두 살폈어야 했다. 그러나 1심은 피의자의 진술에는 맹목적으로 옹호를 하고 피해자의 진술에는 과도하게 의심을 하였다. 이런 점에서 1심의 무죄판결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종합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차 변호사의 발제에 이어 ‘안희정성폭력사건 1심판결 평석(2) 개별 공소사실에 대한 판단의 문제점’이란 제목으로 박인숙 변호사(민변 여성인권위)가 발제를 넘겨받았다.

박 변호사는 1심에서 판단한 4개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과 1개의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그리고 5개의 강제추행 건을 중심으로 살펴 본 것이다. 박 변호사는 1심 판결이 “성인지 감수성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에 성폭력 피해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 기반 한 중대한 오류를 여러 곳에서 범하였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에 의하면 “형법적으로는 각각의 행위가 별개의 범죄로서 개별적으로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하나” 이 사건의 경우 그래서는 안 되었다고 비판했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속에서 앞의 행위가 뒤의 행위 상황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점을 감안할 때에 각 행위의 맥락을 살펴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해석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심은 이를 분리시켜 판단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피해자가 2차 가해를 겪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과 주의가 필요함을 강조하며 발제를 마무리 하였다.

세계 어디에도 없던 판결

마지막 발제는 장응혁 교수(계명대학교 경찰행정학과)의 ‘형법 제303조 제1항의 비교법적 검토’였다.

장 교수는 먼저 1심 판결에 대한 비판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그는 먼저 1심 판결이 가진 성인지 감수성 부족을 지적했다. 더 나아가 성폭력 법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 아닌지 우려를 표했다.

▲ 평일 낮 시간에 진행된 토론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토론회를 찾았다. ⓒ권이민수

장 교수는 판결문이 성폭력 범죄 처벌의 체계를 3가지로 분류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으며 이런 분류 체계는 대다수의 학자들이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또한 ‘업무상 위력 등을 행사, 성적침해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의 경우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는 판결문의 주장도 정면으로 반박하며 영국, 미국, 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 대다수의 나라에도 이러한 처벌 규정이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형법해석의 문제를 지적했는데 그에 따르면 이번 안희정성폭력사건은 형법 제303조가 중심이 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형법 제303조 제1항은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하는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 법적용이 우리나라의 경우 아주 낮다는 점이다. 그는 이러한 범죄에 어떻게 대응하고 처벌해 갈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없이 오로지 처벌 강화에만 목매는 현실을 비판하며 스위스, 일본, 영국의 입법례를 비교 분석하며 형법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청했다.

통념을 넘었어야 했다

발제자들의 발제 후에 토론자의 토론문 발표가 이어졌다.

첫 번째 토론자는 이호중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였다. 그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판단기준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재판국의 성인지 감수성의 이해를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이 교수는 통념이란 “사회적 행동에 관하여 젠더권력의 영향 아래 오랜 기간 동안 사회구조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정형화된 해석양식”이라며 성인지 감수성은 이러한 통념을 깨기 위한 것이지 판결문이 말하듯 통념에 어긋남이 선행되는 것이 아니라며 1심 판결엔 여전히 이 통념이 건재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1심 판결의 업무상 위력이 존재했으나 업무 외적에서는 위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는 위력에 대한 해석도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권력관계는 업무 관계뿐 아니라 비업무적 관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법해석은 갑으로부터 부당한 압력에 시달려야 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결여된 해석이며 형법 제303조의 입법적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이 교수는 피고인이 담배를 핑계로 피해자를 방으로 불러들인 행위부터 이미 피고인의 지위남용이기에 그 방안에서 별도의 위력이 행사되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마지막 토론자는 김혜정 부소장(한국성폭력상담소)이었다. 토론문의 주제는 ‘지위, 위력을 이용한 성폭력에서 ’행위수단‘에 대한 판단 무엇이어야 하는가?’였다.

김 부소장은 여러 조사의 통계를 통해 위력 관계에서 폭행과 협박 없이도 실행된 추행이나 간음사례가 비가시화 되었을 뿐 매우 많을 거라 예상했다. “상당한 폭행과 협박을 요건으로 하는 강제력 중심으로 성폭력을 이해, 인식”해온 그간의 방식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김 부소장에 의하면 미투 운동은 폭행과 협박뿐만 아니라 권세, 지위 또한 성폭력의 행위수단이 됨을 드러냄으로서 성폭력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또한 김 부소장은 피해자의 성적인 동의의사는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 가능한지, 가해자들이 발의하는 수단이 유형, 무형으로 얼마나 다양하게 행사되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성폭력이 일어나는 불평등한 현실이 더욱더 불평등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사한, 너무나 유사한 교회 내 성폭력 사건

다양한 영역에서 미투 운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교회와 기독교단체도 마찬가지로,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의 가해사실이 지속적으로 공론화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내 성폭력 사건들에서 가해자가 내세우는 논리와 피해자가 겪는 2차 가해의 피해, 각 교단과 단체집단에서 사건에 내리는 판결은 안희정성폭력사건과 같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유사하게 닮아있다. 이는 교회내 성폭력 사건들이 대부분 위력에 의한 성폭력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토론회에서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이 입을 모아 재판국에 필요하다고 밝힌 성인지 감수성이 교회와 기독교단체에도 동일하게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교회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외침은 날로 날로 커져갈 것이다.

교회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성인지 감수성으로 기독교가 가진 통념들을 하나 하나 해체시켜 가야 한다. 이것만이 피해자의 미투에 올바르게 위드유 하는 방법일 것이다.

권이민수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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