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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선(發善)의 복음’에 기초한 신학과 운동을 위한 단상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한국교회
김희헌 | 승인 2019.01.15 18:10
지난 11월27일 생명평화마당이 한국기독교회관2층 조에홀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평화신학과 발선(發善)” 심포지움을 개최했습니다. 이날 주제 발표는 한완상 교수(전 통일부총리,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 위원장)가 맡았고, 논찬으로는 이은선 명예교수(세종대), 서보혁 교수(통일연구원 연구위원) 그리고 김희헌 목사가 참여했습니다. 
이번 글은 이날 논찬을 맡으신 향린교회 김희헌 목사님의 논찬문입니다. 원고를 보내주신 생명평화마당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1.

현재 한반도에서 진행되는 탈냉전의 흐름을 하나님의 창조의 시간 ‘카이로스’로 인식하고, ‘발선(發善)의 복음’으로써 교회와 신학을 새롭게 하자는 한완상 선생님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증오와 대립을 부추기는 발악(發惡)적 분단신학을 떨쳐내자는 것입니다. 평화 구축의 어려움은 악에 대한 비판의 부족에 있지 않고 선을 행할 주체의 미비에서 비롯되듯이, 신앙공동체의 어려움 또한 그렇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존재를 구성하는 힘이 사랑 즉, 선(善)의 실행에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발선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평화를 모토로 삼은 신앙의 주체를 재탄생시키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발선의 복음으로 구성된 신앙의 주체는 ‘변혁적 평화’의 길을 열어가는 존재/공동체입니다.

성서의 평화담론에 담긴 복음의 ‘발선’ 즉, 용서와 사랑, 낮춤과 비움, 따뜻함, 겸손한 확신, 자상한 섬김, 평온한 초대 등을 동력으로 삼은 ‘선제적 사랑실천’이 가능한 평화운동과 평화신학을 전개하자는 한 선생님의 제안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2.

‘발선의 복음’이 오늘의 한국교회에 절실히 요청됩니다. 남한의 교회는 분단을 제도화시킨 ‘48년 체제’와 함께 성장해왔고, 안타깝게도 역사의 숙명을 반공/반북주의 편에서 살아왔습니다. 교회를 주도했던 신학은 ‘48년 체제’를 위해 고안된 이데올로기로 물든 분단신학이었기 때문에, 예수의 복음과 상관이 없는 반공주의가 기독교 신앙의 내면을 규율해 왔습니다.

그 결과, 많은 교회가 극우주의의 보루처럼 기능하며 분단시대의 적폐로 전락했습니다. 교회의 존재 자체가 기독교 선교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촛불혁명과 정권교체, 그리고 2018년부터 가시화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과정을 통해서 ‘48년 체제’는 빠르게 붕괴되고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정치지형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4.27 판문점선언>을 지지 선언한 한기총, 한교총, 한기연의 제스처와 극우주의를 부담스럽게 여기기 시작한 대형교회의 탈 이념화 현상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교회는 새로운 길을 찾고 있습니다. ‘발선의 복음’이 힘을 낼 때입니다.

3.

‘발선의 복음’은 분단시대를 접고 화해와 통일의 시대로 가는 한반도를 치유하는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남북으로 나뉘어 생겨난 지난 시기의 대립과 갈등은 단순히 서로 다른 체제나 사상의 격돌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뒤틀린 역사의 진통이요, 누적된 실패의 무능이며, 방향을 잃은 정신의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큰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담대한 정신을 그리워했습니다. 화해와 평화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우리는 역사의 이 은총이 지닌 뜻을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냉전체제의 꼴찌로 살아온 마지막 분단국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지어내시고, 돈이 생명을 지배하던 옛 문명을 끝내고 새로운 상생의 세계를 여는 첫 열매가 되도록 남과 북을 부르십니다.

‘발선의 복음’은 그 복음적 상상력을 통하여, 통일을 향한 이 민족이 경제지상주의의 빵을 서로 빼앗는 삶을 지속하기보다는 평화와 연대와 상생의 밥을 지어 서로먹이는 ‘발선’을 실천하도록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반도의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세계의 문제를 푸는 데 영감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4.

발선의 복음에 담긴 평화의 이상은 근대 문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가슴 뛰는 비전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긴 분단체제의 증오와 적대 속에서 생명을 위협 당하며 시달려온 한반도에서 ‘평화’는 인간의 ‘기본권’(종교, 사상, 교육, 평등, 자유 등)보다도 우선하는 ‘생명권’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자본과 무기로 맺은 안보동맹을 통해서 평화를 구축하려는 근대문명의 위선과 기만을 보게 합니다.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은 근대 이성은 아이러니 하게도 식민주의와 근대노예제도, 인종주의와 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새로운 문명은 ‘합리성이 삶에 봉사하고, 기술이 생태적 요구에 봉사하고, 부의 축적이 공통적인 것에 봉사하는 방식’으로 지어져야 할 것입니다.(A. Negri)

우리가 사는 카오스적인 세계에서 새로운 질서의 임계점에 이르는 길은 궤도운동과는 달리 창발적인 나비효과를 동반하는 운동입니다.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운동의 불규칙성이나 비예측성이 아니라 초기 조건의 민감성에 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프레임을 구동시킬 창발적 동력을 가진 운동의 아름다움이 중요합니다. 평화의 복음에서 시작된 ‘발선의 운동’이 그 일을 해낼 것입니다.

5.

‘발선의 복음’은 신앙공동체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나라 운동의 모체가 되고자 하는 것이 신앙공동체의 가장 오래된 꿈입니다. 따라서 역사 속의 모든 교회는 ‘적극적 샬롬 공동체’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변혁해갈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시혜적 활동에 만족하기보다는 평화와 연대의 터전을 형성해가는 가운데 교회는 존재 이유를 갖게 됩니다.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변혁의 공동체로 살아가는 교회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의무에서 당위로, 당위에서 동경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진보가 필요합니다.

발선의 복음이 운동으로 구현될 때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발선의 운동’을 통해서, 비판을 넘어 실험으로, 저항을 넘어 대안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도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운동이야말로 대립물의 투쟁을 영원한 유희로 남기는 심약한 유미주의적 태도를 극복하고, 해방의 주체를 새우는 믿음(피스티스)의 운동이 될 것입니다.

6.

에큐메니칼 운동은 평화를 위해 일해 온 소중한 경험과 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와의 협력관계 속에서 ‘도잔소 프로세스’를 전개하며 화해와 통일의 물꼬를 트기도 했습니다. 남과 북의 교회가 냉전시대의 침묵을 깨뜨리고 직접 만나 통일을 다짐했고, 그 교류와 연대의 경험을 힘입어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선언’(88선언)이 탄생했습니다.

올해에는 88선언 30주년을 기념하는 크고 작은 모임이 있었습니다. 제네바에서 열린 ‘한반도 평와와 통일, 번영을 위한 에큐메니칼 포럼’(EFK) 모임에서는 남북의 교회 대표를 비롯한 세계교회의 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여 한반도에서 일어난 화해의 물결을 축하하고, ‘도잔소 프로세스’의 정신을 계승하여 ‘판문점 프로세스’를 전개하자는 뜻을 모았습니다. 3월에 열린 ‘88선언 30주년 기념대회’에서는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체제’를 실현하기 위한 7개년 행동계획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좋은 뜻과 계획들입니다. 지역교회와의 연대를 확대하고 다수의 신앙공동체와 그 구성원이 함께 교감하는 평화운동을 펼치면서 분단시대를 이겨내기 위해 애써온 한국교회의 소중한 전통을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발선의 복음’과 ‘복음의 발선’이 ‘판문점 프로세스’를 이끄는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 ‘한반도 평와와 통일, 번영을 위한 에큐메니칼 포럼’(EFK) ⓒWCC

김희헌  kimhiheo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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