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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신으로‘만’ 만드는 것,
교회 적폐의 출발점
신인가 인간인가?(마 16:13-14)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19.01.20 17:37

교회 대학생 청년과 성경공부를 하다가 이런 질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신이 아니예요?”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를 이야기하다보니까 어쩌다가 그런 질문이 생각 났었나 봅니다.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신인가 인간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솔직히 저는 여러분의 신앙을 흔들어 놓을 생각도 없고, 목사가 성도님들의 신앙을 훼방한다면 그건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왜 신앙의 흔들림을 겪게 되는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성경의 예수님

먼저 성경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시는 장면입니다. 다른 본문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스스로에 대해 질문하시고 대답하시는 이야기이고,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동일한 본문들 중에서도 마태복음만이 예수님 스스로를 ‘인자’라고 칭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본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서가 예수님 승천 이후에 기록되었고, 복음서에는 이미 교회의 신앙 체계, 바꿔 말하자면 교리적인 측면이 삽입되어 있기 때문에 복음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점이나, 예수님을 신에 가까운 존재로 묘사하는 점이 후대 교회의 창작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그렇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또한 이미 우리 손에 놓인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를 우리가 읽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복음서에 적혀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다고 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메시아’, ‘주님’ 등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표현들은 예수님이 ‘신’이라는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미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랍비들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메시아’는 결국 같은 뜻인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묻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뜻하는 헬라어 ‘퀴리오스’도 로마 황제를 부를 때 사용했던 단어이기도 하고, 때때로 헬라 문화권에서 극존칭으로 상대를 부를 때 사용했다고도 합니다. 즉 이런 예수님에 대한 호칭이 예수님에게 신적인 권위를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어떤 표현을 사용하셨습니까? 13절에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인자’는 헬라어 ‘톤 휘온 투 안트로푸(τὸν υἱὸν τοῦ ἀνθρώπου)’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4복음서 전체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인자’라고 부르십니다. 물론 초대교회의 복음서 저자 또는 저작 집단이 다니엘 7장 13절과 10장 16절에 나오는 ‘인자’ 개념을 예수님에게 적용해서 구세주, 심판자의 이미지를 첨가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4복음서 전체에 고루 나타나는 점을 보았을 때, 예수님 스스로가 본인을 ‘인자’라고 칭하셨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또 자세히 살펴보면 다니엘에 나타나는 ‘인자’도 히브리어 ‘에나쉬(אֱנָשׁ)-인류’와 ‘베네이 아담(בְּנֵ֣י אָדָ֔ם)-사람의 아들’이고, 사용된 의미에서도 이 존재가 신이라는 뜻을 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니엘에서는 ‘사람같은 무언가’라는 의미로 ‘인자’를 사용합니다. 어쩌면 더 훗날의 교회가 종말론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다니엘의 이야기를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단어인 ‘인자’에 끼워 맞추며 해석한 결과가 우리에게 전해져왔기에 우리가 다니엘의 용어를 왜곡해서 해석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잡한 이야기 같지만, 간단하게 예수님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시면서 또한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셨다는 점입니다.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는 사람이다’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람들도 예수님을 ‘사람’에 빗대어 이야기합니다.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이들은 모두 사람입니다. 이후에 나오는 베드로의 고백 역시도 예수님을 ‘신’이라고 생각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그리스도’는 사람이 받게 되는 호칭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이미 ‘기름부음을 받은 자’,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자’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 호칭은 결코 ‘신’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베드로의 고백에서 중요한 점은 ‘살아계신’이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이 땅을 위해 수고하시며 은혜를 내려주신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사역을 위해 책임을 맡고 계신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신이여야만 하는가?

저는 오늘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의 논쟁을 이 자리에서 다시금 일으키려는 건 아닙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미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삼위일체라고 고백하기로 결정하였고, 지금까지 그렇게 신앙을 가져왔습니다.

▲ 밀밭 사이로 제자들과 지나가시는 예수님 ⓒGetty Image

제가 여러분과 생각하고 싶은 것은 지금 이 시대에 있어서 왜 예수님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셨다고 말하면 이단의 사상이 되고, 불신앙의 표본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입니다. 반대로 왜 예수님은 ‘신’이여야만 하는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시대의 교회들, 특히 보수적인 교회들의 이야기를 보면, 예수님은 분명 ‘신’이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힘들고 아프고 지치고 어려울 때, 기도만 하면 뚝딱 고쳐주시고 해결해주시는 분을 예수님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신’이어야만 합니다.

가장 단순한 이유를 들자면, 올해 1월 기준으로 전 세계 인구가 약 76억 7,513만 3,763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예수님은 이 모든 사람의 모든 일을 속속들이 알고 계셔야만 합니다. 또 이 모든 사람을 도우셔야 합니다. 인간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저 하늘 높은 곳에서 들으면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램프의 요정 같은 존재였습니까?

예수님을 ‘신’이라고 강조하기 위해서 많은 교회들은 예수님의 ‘이적’, ‘기적’에 집중합니다. 물 위를 걸으신 일, 오병이어 사건, 치유사건 등등,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셨다는 점에 집중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예수님의 말씀과 삶은 소홀히 여기게 됩니다. 가장 좋은 예로 사도신경에 예수님의 생애는 단 두 가지 사건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탄생과 죽음입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신앙인의 자세, 태도, 해야 할 일, 삶에 대한 책임은 빼버리고 신앙인이 누리게 될, 복과 은혜만을 강조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신’이여야만 했습니다. 그저 하늘 높은 곳에서 우리가 기도하면 복을 주시는 분이여야만 했습니다. 

예전에 마리아에 대해서 말씀드릴 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역시도 중세까지 그냥 ‘예수님의 어머니’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질병과 전염병들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을 치유해줄 존재를 찾았고, 예수님의 어머니라면,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께 우리의 기도를 전해주지 않겠냐는 생각들이 퍼졌습니다. 이는 민간에서부터 시작된 신앙이었습니다. 결국 가톨릭은 이런 민간 신앙을 정식으로 받아들여서 지금까지도 마리아에 대한 신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삶을 가르치신 분

솔직한 이야기로 ‘하나님’이라면 이러한 기도를 올리고,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리라 믿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릅니다.

삼위일체를 부정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숭배하면서 기도나 올리라고 오신 게 아닙니다. 우리와 동일한 육신을 가지고 인간 스스로도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본을 보이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단순하게 하나님과 동격이니까 하나님에게 하듯이 똑같이 ‘신’으로만 대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그리고 결국 십자가에 달리셨던, 하나님의 크고 은혜로운 사건 자체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전부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삶을 가르치셨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분명 그 분의 삶을 보고, 삶을 배워야하며, 그 삶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요즘 뉴스를 보다가 국회의원들 얘기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리거나 다른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스마트폰을 보거나 합니다. 정말 보기도 듣기도 싫은 이야기를 하는 정당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국회위원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들이 화가 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들 대부분은 문제의 본질적인 핵심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의 시선을 살짝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듭니다.

자신의 정당에 불리한 사항이 있으면 ‘우리 일 못해’ 하면서 국회를 보이콧하고, 상대방 정당에 불리한 사항이 있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특검을 해야한다하고, 청와대에서 뭔가 문제가 있다 싶으면 국감을 해야 한다고 하고, 요즘은 상임위 열어야 한다고 맨트를 약간 바꾼 것 같습니다.

이들이 민생법안을 위해서 빨리 상임위를 열자고 한다던가, 알츠하이머 중증이어서 하루에 10번도 넘게 양치를 하지만, 골프는 잘 칠 수 있고, 전 재산 29만원 밖에 없지만, 골프 캐디에게는 5만원을 팁으로 줄 수 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그 분에 대해서는 특검을 열어야 한다던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사람들의 눈을 실제적인 문제에서 돌려서 그저 지금의 정부 탓으로 돌릴 수 있도록, 여당의 탓으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여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모든 일이 야당의 탓인양 책임 전가만 하면서 모든 일은 적폐 때문이라고만 이야기합니다. 물론 적폐가 여전히 쌓여있고 모든 적폐는 청산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지금 눈앞에 놓인 현안은 외면하고 적폐청산만 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교회가 지금껏 해온 일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수 교회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신앙인의 책임으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돌려서 누릴 복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신앙인의 책임을 목사를 숭배하는 일, 교회에 헌금 바치는 일, 열심히 기도하는 일 등으로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고, 어떤 삶을 살아가셨는지를 깊이 생각하며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성도님들의 눈과 귀를 막아왔습니다.

예수님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표현도 교회에서 많이 썼던 표현입니다만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제대로’ 예수님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더 예수님의 삶을 생각하시면, 성경을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모습을 기억하시고 그 분을 따라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가 이 땅에 이루어지고, 온 세계에 퍼져나가게 될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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