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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왜?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 | 승인 2019.01.25 19:33
(요나에게) 너는 일어나 저 거대한 성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해 외쳐라. 그들의 악이 내 앞에(까지) 올라왔다(요나 1,2)

하나님 앞에서 도망쳤던 요나 이야기의 첫머리는 이렇게 명령으로 시작됩니다. 하필 왜 니느웨인지요?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앗시리아의 수도입니다. 요나서 끝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 성의 수많은 사람들이 멸망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셔서 이렇게 명령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의문입니다. 그들이 돌이키면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요? 요나는 그들이 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기에 도망쳤다고 하며 하나님의 결정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 야웨께서 준비하신 큰 물고기로부터 풀려나 요나가 당도한 곳은 니느웨 성 앞 바닷가였다. ⓒGetty Image

니느웨는 어쩔 수 없이 심판을 선언한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합니다. 무엇을 회개하고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하나님 앞에까지 다다른 악은 어찌 되었을까요? 악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가 없음은 우리에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까지 이른 그 악은 아마도 이집트에서 억압당하던 이스라엘의 탄식이 하나님에게 이르렀던 것에서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 악은 제국 앗시리아의 정복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앗시리아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적도 있지만 도구로서의 신분과 자세를 망각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며 군림했다고 비판을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까지 다다른 그들의 악은 바꿔 말하면 정복당한 뭇민족들의 탄식과 비명 소리가 하늘에 도달케 한 원인입니다. 니느웨의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가 이 악과 그로 인한 탄식과 비명과 무관할까요?

성서가 말하는 회개는 악을 멈추고 악의 희생자들에게 갚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이러한 변화와 회복을 목표한다면, 우리는 요나의 하나님 명령 거부를  안목이 짧은 탓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에도 악이 계속된다면, 요나가 옳았던 것 아닐까요? 요나는 어쩌면 그러한 변화와 회복을 어떤 경우에도 기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과연 역사는 어느 쪽이었을까요? 나중에 하나님은 분노한 요나를 달래고 설득하려 하십니다. 니느웨 사람들조차 아끼는 마음을 요나에게 보여주려고 애를 쓰십니다. 그러나 앗시리아는 나중에 심판 선언을 듣고 선언대로 망합니다. 용서는 멸망을 막지 못했습니다. 용서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악의 수레를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탄식과 울부짖음을 도처에 만들어내는 제국의 악은 용서로 제거되는 것이 아님을 니느웨의 실패는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탄식과 비명 없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노력은 계속됩니다. 악과 싸우는 사람들 속에서, 악을 멀리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

불편해하고 실망한 사람들을 이끌어내고 함께 가시는 하나님 안에서 위로와 웃음을 발견하는 오늘이기를. 악을 거부하고 진리 편에 서는 사랑으로 위로와 희망을 낳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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