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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피카소와 큐비즘> 전시회를 통한 다양성 찬양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 교회) | 승인 2019.01.26 19:20

1. <피카소와 큐비즘> 전시회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피카소와 큐비즘>(2018년 12월 28~2019년 3월 31일) 전시회가 열립니다. 피카소 탄생 110주년을 기리기 위해 기획된 이번 전시회는 20세기 미술의 보고(寶庫)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진품 명작 90여 점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단독 기획전입니다.

▲ <한가람 미술관>과 <전시구성>

큐비즘(Cubisme)은 입체주의를 말합니다. 1908년 마티스가, 브라크가 그린 <에스타크 풍경>이라는 연작을 평하면서 ‘조그만 입체(큐브)의 덩어리’라고 말한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말이 비판의 성격은 아니었기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큐비즘이라는 용어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 <세잔, 에스타크 풍경 1882-1885>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조의 모든 행위는 파괴에서 시작한다.” 피카소를 비롯한 입체파 화가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던 전통 회화 방식을 과감히 탈피해 추상 미술 등 20세기의 다양한 미술 창작 시대를 열었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현대 미술 역사 속 모험은 입체파(Cubisme) 화가들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말은 정확한 지적입니다.

입체주의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까요? 입체주의는 초기 세잔풍의 큐비즘(1907~1909년), 분석적 큐비즘(1910~1912년), 종합적 큐비즘(1912~1914년) 등의 3단계로 구분됩니다. 자연을 원추, 원통, 구에 따라 취급하는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을 시작으로 입체주의가 시작되었고, 그 후 피카소와 브라크 등을 통해 입체파의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이후 ‘분석적 큐비즘’으로 나가는데, 이 시기는 정물화가 주종을 이루면서,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잡동사니 등을 화면에 도입하여 사물의 실재성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특히 여러 개의 시점들이 동시성 이미지로 융합되고 추상화되어, 재현과 추상의 균형은 순수 추상의 토대를 마련하게 됩니다. 또한 분석적 큐비즘은 화면을 구성하는 데 있어 수학공식을 접목하거나 황금비를 이용하게 됩니다.

이후 화면구성에만 치우쳐진 분석적 큐비즘을 비판하며 ‘종합적 큐비즘’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림 안에서 문자와 단어들 그리고 숫자들을 발견하게 되며 때로는 그림에 실물을 도입시키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 종이를 풀로 붙이다는 의미이며 천이나 나뭇조각 드을 찢어 붙이는 회화의 기법으로 지금의 콜라주로 발전)가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즉 신문지나 벽지, 담배갑 등을 화면에 붙이는 방법 등으로 종합적 큐비즘은 다방면에 걸친 회화적 수단을 가지고 자유롭게 작업하면서 형태를 파괴하기 보다는 상징에 가까운 이미지들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굉장히 주관적이고 임의적인 방식으로 형태들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분석적이기 보다는 더욱 심화된 평면성, 단순성, 풍부해진 색채와 질감, 느슨해진 분위기의 개성적인 작품들이 종합적 큐비즘을 이루게 됩니다.

사실 피카소가 출생한 1880년대의 유럽은 격변의 시대이기도 했지만, 다양성이 분출된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럽은 18세기 후반부터 산업혁명, 근대화로 인한 과학,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삶을 가능케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역동적인 세상에서 피카소는 기존과 다른 전혀 새로운 예술을 개척할 토대를 얻었습니다.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를 회화 속에 담고자 한 것입니다.

아무튼 한가람 미술관의 <피카소와 큐비즘> 전시회의 구성은 입체 미술 운동의 탄생 배경에서 소멸까지의 흐름을 연대기적 서술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5가지 섹션을 한번 둘러볼까요?

2. 전시회 5가지 섹션

<1섹션 입체주의의 기원: 세잔과 원시주의>

1섹션은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 소장 아프리카 원시 조각 작품과 세잔의 풍경화를 소개해줍니다. 이를 통해 입체파의 태동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초기 세잔풍의 큐비즘’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입체주의의 기원은 아프리카 원시미술과 후기 인상주의 대가이자, 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세잔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피카소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잔! 그는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세잔이 입체파 화가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입니다.

▲ <작자미상, 웅크린 남자(콩고)>과 <세잔, 햇살을 마주 본 레스타크의 아침, 1882-1883>

<2섹션 입체주의의 발명 피카소와 브라크>

2섹션에는 피카소의 ‘남자의 두상’과 바로 옆에 조르주 브라크의 ‘여인의 두상’을 나란히 걸어 놓음으로 입체파의 거장으로 불리는 두 화가의 서로 다른 매력을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대상을 극단적으로 해체하고 재조합하고 있습니다. 역시 초기 세잔풍의 큐비즘의 자장 안에 놓여 있습니다.

▲ <브라크, 여인의 두상(1909)>과 <피카소, 남자의 두상(1912)>

<3섹션 섹시옹 도르(황금 분할파)와 들로네의 오르피즘>

3섹션의 섹시옹 도르(Section d’Or/Golden Section)는 ‘기하학 형태의 조화와 리듬을 중시한 입체파 화가들의 그룹’을 말합니다. 앞서 언급한 ‘분석적 큐비즘’에 가깝습니다. 자크 비용이 이끌었으며, 주요 회원으로는 로베르 들로네, 마르셀 뒤샹, 레이몽 뒤샹 비용, 알베르 글레즈, 장 메칭저 등이 있습니다. 이 그룹은 1912년 파리의 라 보에티 화랑에서 처음으로 공동 전람회를 가졌으며, 같은 해에 글레즈와 메칭저는 입체파 미학에 관한 최초의 책인 『입체파에 대하여(Du Cubisme)』(1912)를 출판했습니다.

▲ <장 메칭저, 레이스 옷을 입은 여인, 1916>

오르피즘(Orphism)은 1912년 로베르 들로네를 주창자로 하여 발족한 큐비즘의 한 분파를 말합니다. 이 명칭은 그리스의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에서 비롯됩니다. 전통파 큐비즘이 엄격한 기하학적 구성에 따라 색채를 망각하고 색채를 선의 종속적인 요소로 떨어뜨리는 데에 반대하여 색채야말로 회화의 본질적인 구성요소이며 그 다이내믹한 힘을 화면구성의 기본으로 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공간적 요소(형태)와 시간적 요소(리듬)의 동시성(同時性)을 가져 오게 하여 화면에 음악적인 즐거운 가락(諧調)이 생기도록 시도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종합적 큐비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점차로 구상적(具象的) 형태를 떠나 순수한 색채 형태만으로 구성(composition)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추상회화의 한 분야를 개척하게 됩니다.

▲ <로베르 들로네, 에펠탑(1926)>

<4섹션 1,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입체주의>

4섹션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1914~1945년)의 입체주의를 보여줍니다. 5섹션으로 가기 위한 몸부림이랄까요?

▲ <페르낭 레제, 파이프를 든 남자(1920)>

<5섹션 대형 장식화: 1937-1938>

5섹션은 전시회의 하이라이트입니다. 후기 입체파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전시장에 들어가면 관람객들은 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작품 4점에 압도됩니다. 높이 5m가 넘는 로베르 들로네, 소니아 들로네 부부의 ‘리듬’시리즈입니다. 1938년 당시 회화 작품으로는 드물게 압도적 크기와 화려하고 율동적인 색채 구성으로 입체파 회화의 절정기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왼쪽부터 소니아 들로네의 작품 ‘리듬’, 남편인 로베르 들로네의 리듬 n°1, 리듬 n°2, 리듬n°3>

3. 다양성 찬미

피카소의 사물을 새롭게 보는 방법을 저는 ‘다중시선’, 곧, ‘다양한 시선’이라고 부르는데, 회화에서는 ‘다중 초점’으로 부릅니다. 세잔의 화법이 그렇습니다. 가령 세잔의 정물화는 대상(과일과 같은) 하나하나에 시점들이 들어 있습니다.

▲ <세잔, 과일 쟁반과 유리잔과 사과, 1879>

세잔의 <과일 쟁반과 유리잔과 사과>(1879) 작품을 보면 사과 하나 하나에 초점이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단일 초점이 없어 그림이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시점들이 전체 정물화를 구성하여 완성된 작품은 시점들의 다양성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하나의 통일적 세계로 드러납니다. 

회화도 그렇지만 역사적 예수에 관한 다양한 시선도 존재합니다. 전시회의 5섹션으로 유비해 볼까요? <1섹션 입체주의의 기원: 세잔과 원시주의>은 예수를 ‘소작농 유대 견유학자’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가장 순수한 예수 해석의 시작입니다. <2섹션 입체주의의 발명 피카소와 브라크>는 종교, 사회적 개혁자로서 예언자적 예수로 이해됩니다. 예수의 외연을 좀 더 확장한 해석입니다. <3섹션 섹시옹 도르(황금 분할파)와 들로네의 오르피즘>는 현인으로 지혜자 예수와 기적 행위자 예수로 볼 수 있습니다. 학장 된 예수의 지평이 분석, 종합되어 새로운 문화의 지평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4섹션 1,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입체주의>는 묵시 예언자 예수로 볼 수 있습니다. 전쟁과 묵시가 잘 어울리지 않나요? 마지막 <5섹션 대형 장식화: 1937-1938>는 유대 민족 혁명가 예수, 혹은 헬라 영웅 예수로 그려볼 수 있습니다. 피날레적인 해석입니다. 

철학자 지젝은 포스트모던의 다양성을 ‘시차(parallax)’라는 천문학적인 용어로 설명하며 ‘역동적인 공존’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인간이 세계를 보는 관점이 다양한데, 이러한 인간의 조건을 획일적으로 통합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것입니다. 시차적 관점 그 자체를 인정해야 진리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 더 큰 맥락에서서는 하나의 통일적 세계관을 구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서가 보여주는 새로운 세상은 다양한 시선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4편의 복음서가 다양한 예수 그리스도를 그려주고 있듯이 다양성이야말로 진리입니다. 다양한 시선이야말로 사물, 혹은 진리에 대한 겸손한 자세인 것입니다.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서양 미술사』 (예경, 2003)를 정리하며 마지막 부분에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우리는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형태와 색채가 ‘제대로’ 될 때까지 그것을 조화시키는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드물기는 하지만 어중간한 해결 방식에 머물지 않고 모든 안이한 효과와 피상적인 성공을 뛰어넘어 진정한 작품을 제작하는 데 따르는 노고와 고뇌를 기꺼이 감내하는 뛰어난 남녀들이다. 미술가는 계속해서 태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미술이 존재할 것인지 아닌지는 적지 않게 우리들 자신, 즉 일반 대중의 태도에 달려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느냐 아니냐에 따라, 편견을 갖느냐 이해심을 갖느냐에 따라 미술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전통의 흐름에 끊이지 않게 하고 미술가가 과거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이 미술이라는 보물에 귀중한 것을 하나 더 보탤 수 있게 하는 것도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에도 적용됩니다.

“결국 우리는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역사적 예수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해석의 역사가 있을 뿐이다. 그들은 예수와 그리스도가 ‘제대로’ 될 때까지 그것을 조화시키는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드물기는 하지만 어중간한 해결 방식에 머물지 않고 모든 안이한 효과와 피상적인 성공을 뛰어넘어 진정한 예수상을 구현하는 데 따르는 노고와 고뇌를 기꺼이 감내하는 뛰어난 남녀들이다. 신학자는 계속해서 태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가 존재할 것인지 아닌지는 적지 않게 우리들 자신, 즉 일반 대중의 태도에 달려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느냐 아니냐에 따라, 편견을 갖느냐 이해심을 갖느냐에 따라 역사적 예수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전통의 흐름에 끊이지 않게 하고 신학자가가 과거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이 역사적 예수 연구라는 보물에 귀중한 것을 하나 더 보탤 수 있게 하는 것도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피카소와 큐비즘>전시회를 통해, 아니 회화사와 미술 작품을 통해 여러분의 고정관념을 벗어버리는 다양성의 축제를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의 모습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 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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