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는 로마서 15:16의 석의를 통해 바울의 제사장적 자의식을 살펴보았다. 여기에서는 로마서의 성전·제의 언어를 간략하게 고찰하고자 한다. 먼저 살펴보아야 할 구절은 로마서 1:1이다.

성전 제사 폐지가 아니라 새로운 제의를 위해

로마서를 시작하는 구절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이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택정함을 입었다(άφωρισμένος)’이다. 이 단어는 분리, 성별을 뜻하는 말로서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선택되고 구별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1)

딜런(R. J. Dillon)은 이 단어를 거룩한 목적으로 구별한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technical term)’라고 보았다.(2) άφοριζειν(성별하다)은 ἁγιαξειν(거룩하게 하다)과 중첩된다.(미주 3) 이 두 단어는 아론이 레위인을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야웨 앞에 드리는 일을 묘사할 때(민8:11), 처음 태어난 것과 가축의 태에서 처음 태어난 것을 구별할 때(출 13:12), 첫 열매(민 15:20-21; 겔45:1,13; 48:9,20) 등에 사용된다.

로마서 1:9에서도 제의적인 맥락이 등장한다. 로마서 1:9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말씀 중 ‘내 심령으로 섬긴다(λατρεύω έν τῷ πνεύματί μοῦ)는 구절에서 섬김은 봉사의 맥락에서 이해되기 보다 제의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4) 로마서 1:9에서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은 바울이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자신의 영으로 제사드리는 그 분이다. 던은 이 구절을 주석하면서 바울이 유대교적 제의 용어를 영성화시켜 유대교의 제의 특성을 버렸다고 주석했다.(5)

필자는 이곳에서도 바울이 유대교의 제의를 영성화시켰다고 본다. 바울의 영성화는 유대교 제의를 폐기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연속성 가운데서 영적으로 이어나간 것이다.

새로운 성전, 새로운 제의, 새로운 제물

로마서 3:25에서 바울은 예수를 “속죄소”(ἱλαστήριον)라고 부른다.(레 16:16-17)

“속죄소는 광야에서 회막의(그리고 나중에는 예루살렘 첫 성전의) 지성소 안에 있던 언약궤를 덮는 덮개다(출25:17-22).”(6) 정중호는 속죄제를 ‘정화제사(purification offering)’라고 부른다. 그는 정화제 사(속죄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7)

“정화제사(속죄제)”는 정화시키는 기능이 있는데 주목할 점은 정화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성전이라는 사실이다. “정화제사(속죄제)”의 피는 성전의 부정을 청결하게 하는데 그 원리는 성전의 부정을 그 피가 흡수한다는데 있다.

▲ 이스라엘 남아 있는 제2 성전 ⓒGetty Image

로마서 3:25의 의미는 하나님이 예수를 속죄소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성전 제의의 맥락에서 이해한다. 여기에서 “세웠다”는 말은 ‘전시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공개적으로 죽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지성소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로마서에서, 제의 언어는 계속해서 등장한다. 로마서 8:3에서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περ ἁμαρτίας) 정하사”(롬8:3)라고 할 때, 여기에서 “죄에 관해서”(περ ἁμαρτίας)신는 “죄를 속하기 위해” 혹은 “속죄제물이 되기 위해”로 번역이 가능하다.

로마서 12:1은 전형적인 제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이 본문은 이방인의 제물을 드림(롬15:16)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씨프리드(M. A. Seifried)는 본문의 산 제물이 ‘감사제’를 상기시킨다고 주장한다(레 1:1-2:16; 시27:6; 50:14, 23; 96:8; 107:22; 116:17).(8)

이미 앞에서 중요하게 고찰하였던 로마서 15:16의 뒷 부분에 위치하는 로마서 15:20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 본문에서의 건축은 “성전”의 이미지를 암시한다. “믿는 자들은 단순히 제물에 불과한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또한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이다. 바울은 또한 개별 교회들을 하나님의 전의 구체적인 예로 이해한다.”(9)

바울의 사역, 성전을 세우는 것

이상 로마서 전체에서 성전 및 제의와 관련된 구절들을 고찰해 보았다. 로마서 전체에서부터 바울이 자신의 서신올 쓴 이유를 밝힌 부분인 로마서 15:14-21(10)에 이르기까지 성전 및 제의적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구절들이 발견된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복음의 제사장 사역으로 이해했다. 그의 복음 전파는 제사장적 사역이다. 그 자신은 제사장적 사역을 위해서 성별된 사람이다(롬1:1). 그의 복음 전파는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제사이다(름1:9). 그가 전파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성전의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이다(롬 3:25; 롬 8:3).

바울은 로마의 신도들에게 “자신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12:1)고 권면한다. 그것이 영적인 제사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전 사역은 이러한 제사에 집중되어 있다. 그는 복음의 제사장으로서 이방인의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사역을 수행한다(롬15:16). 바울의 사역은 궁극적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사역이다(롬15:20).

김재현 교수(계명대)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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