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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되지 못한 오래된 미래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 | 승인 2019.01.27 19:38
형제들아 너희는 자유를 위해 부름받았다. 그러나 그 자유를 결코 육체의 기회로 이용하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에게 종이 되어라(갈라디아서 5,13)

바울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을 유대교의 전통 특히 할례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또 보호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할례는 언약과 (율)법의 상징이고 정체성의 확증이었기에,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들은 그후에도 이를 고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강요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유대화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해야 '이방인'이 자신들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적어도 성서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극복되기 시작한 낡은 생각입니다. 그들은 복음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서 그들을 율법으로부터가 아니라(!) 그러한 억압적인 관습의 굴레로부터 그리고 더나아가 사람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음을 충분히 알지 못했고 자신들의 행위가 이미 부정당한 전통으로 이 복음을 부정하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Getty Image

하나님께 부름받았다는 것은 과거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속박하기 위해 자유롭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속박’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광야로 내던져지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 속박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입니다.

정말 이게 속박인지요? 이는 예수께서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은 속박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자유의 선택이고 결정입니다. 우리의 ‘이익’을 꾀하는 기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에게 ‘매이는’ 자유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부름받았습니다.

바로 여기서 방향의 대전환이 일어납니다. 그 자유의 현재는 ‘서로에게’ 종이 되는 자유가 됩니다. 그것도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또 자유로 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에게 매임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종이 되는 자유는 ‘서로에게’로 국한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섬기는 자유인으로서 서로의 한계를 넘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강도당한 자의 편에 서서 그를 지지하고 그의 상처를 씻어주는 사랑을 우리의 길로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총으로 우리 사랑의 경계가 확장되는 오늘이기를.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우리 안에서 새로운 미래로 익어가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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