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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심판없는 용서란 없었다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 | 승인 2019.01.28 20:33
어떤 신이 주와 같겠습니까?  주께서는 그 기업의 남은 자들의 죄악을 짊어지시고 허물을 지나치십니다. 화를 끝까지 품지 않으시니, 참으로 인애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또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 죄악을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실 것입니다.(미가 7,18-19)

하나님을 다른 신들과 구별짓게 또는 구별짓는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성서는 무엇보다도 그가 창조주이고, 창조주이기에 ‘역사의 주’라고 하는 ‘사실’에서 찾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어떤 신이 이럴 수 있는가 하고 충분히 탄성을 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의 주란 말 속에는 하나님이 심판과 구원의 주라는 고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심판으로부터 구원으로의 전환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입니다. 미가는 이스라엘의 잔학상을 낱낱이 고발하고 철저한 심판을 선언합니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심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개인이나 집단이나 경고를 듣고 돌이키기 보다는 심판을 당한 다음에야 후회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닙니다. 심판 속에서 그들이 구원을 기다리며 떠올린 하나님은 제3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모습 때문에 앞의 두 하나님 인식은 그들에게 참으로 의미있는 것이 됩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우리의 허물을 못본듯이 비껴 지나가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으로 하나님을 우리 삶의 영역에서 쫓아냅니다. 본래 죄와 함께 있을 수 없는 분이기에 그렇습니다.

▲ 예언자 미가 ⓒGetty Image

그런데 바로 그분이 그 죄를 짊어집니다. 이게 가능한 일처럼 보입니까? 이것은 나중에 십자가 위의 예수로 형상화됩니다. 무엇때문에 저 하나님이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우리에 대한 사랑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짓밟고 바다 속 깊은 곳에 버리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용서일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심판없는 용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미래로 부르는 용서입니다. 값비싼 용서입니다. 이 용서는 미가가 고발했던 악로부터 하나님이 기대하는 대로 ‘정의를 실천하고 인애를 사랑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선으로 바꿔 살라는 요구입니다.

이 요구는 창조와 역사를 꿰뚫고 묶어주는 사랑의 요구입니다. 이 요구에 응하는 것이 용서가 이루어졌다는 표지가 될 것입니다.

불가능한 용서를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새존재와 새삶의 용기를 얻는 오늘이기를. 인애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인애로 여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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