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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진리에 대한 감수성을 가졌는가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 | 승인 2019.02.05 18:2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서 비롯되었다면 내 종들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도록 나를 위해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내 나라는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요한 18,36)

‘비롯되었다’는 말은 전치사 ‘에크’를 기원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내 나라’는 무엇일까요? 주님은 그가 ‘다스리시는’ 나라를 유대 나라와 구별합니다.

그는 ‘네 나라 사람들이…’ 운운하는  빌라도의 말에 이같이 대꾸하면서 양자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일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주님은 이 나라를 위해 태어나셨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목적을 ‘진리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서’라고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진리는 무엇보다도 자유, 거룩, 빛 그리고 생명과 관련됩니다. 그러고보면 주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와 같은 차원에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니 서로 정반대에 위치한다고 해야 합니다.

▲ 예수와 빌라도 ⓒGetty Image

그런데 흥미있는 것은 진리에서 ‘난’ 자입니다. 누가 그인지 처음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진리에 대해 증언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습니다’ 하고 맞장구칠 때 비로소 드러나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물론 우리가 최종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와 빛과 거룩과 생명으로 이끄는 진리를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진리를 증언하는 주님에게서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어서 입니다. 진리를 사는 주님에게서 진리를 볼 수 없습니다. 진리에 대한 감수성이 없어서 진리에 감동하고 진리를 따라 느낄 수 없습니다.

세상 나라의 원리는 이익이 첫째이고, 폭력이 둘째입니다. 그 결과는 사람의 사물화요 수단화입니다. 그러니 그 나라는 진리로 작동되고 진리를 실현하는 주님 나라와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는 늘 대립과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고통과 환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난’ 주님은 그 세상을 이기셨고, 이것이 우리 평화의 근원입니다. 세상이 침해할 수 없는 평화가 세상을 이길 우리의 힘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우리가 진리에 공명하는 이날이기를. 진리에 이끌리며 진리를 사는 기쁨 가득한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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