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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자녀의 완전한 자유, 민주주의세상속에 실현된 하나님 나라의 모습 1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 승인 2019.02.07 20:07

하나님 나라의 목표는 최상의 삶의 형태를 위한 국가의 폐지이다.

“그리스도의 영은 천천히 폭력의 정신을 밀어 제치고 돌진한다. 국가는 폭력의 국가에서 법치국가로, 법치국가에서 사회 국가로, 사회 국가에서 자유롭고 형제적인 인간 사회로 변화한다.”(1)

그리스도 안에서 가족 공동체

자유롭고 형제적인 인간 사회는 개인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자녀의 완전한 자유와 공동체의 삶을 위한 완전한 형제애가 성취되어진 사회를 의미한다. 따라서 라가츠의 이상적 사회 형태는 하나님의 아버지됨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됨과 인간의 형제됨이 성취되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가족 공동체”(2)을 의미한다.

라가츠는 하나님의 가족을 하나님 나라와 종교적-사회적 운동의 목표로 이해한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자유와 사랑에 의해서만  건설될 수 있다. 그것은 자유로운 조합이다. 그것은 통치가 아니라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의미에서 어떤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국가 즉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의 자유롭고 형제적인 가족이다.”(3)

가족 공동체는 라가츠의 사회학적 이해에 의하면 “자유로운 합일의 원리에 기초하고, 모든 계급 지배, 상호 착취와 폭행의 다른 형식들로부터 해방된 도덕적 공동체”이다.(미주 4) 그것은 중앙집권적 관료주의적 체제에 대립되는 “도덕적으로 조직된 민중공동체”이다.(미주 5) 그것은 자연주의적 사상의 기계론적 세상에 상응하는 현대적 중앙집권적 관료주의적 국가에 대립하는 “사회의 조합주의적 연방주의적 구조”이다.(6)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는 사회학적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형태로서 연방주의이다. 일치와 다양성, 공동체와 자유의 유기체적 결합 속에 있는 연방주의는 참으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적 원리를 구체화한다. 연방주의는 라가츠의 용어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에 완전히 상응하는 공동체 형태인 조합과 동의어이다.

가족 공동체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적 그리고 조합주의적 공동체이다. 그것은 정치적·경제적 영역에서 그러나 우선적으로 종교적 영역에서 공동체의 혁명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 그 혁명은 세 가지 중심원 속에서 일어난다.

그 세 가지 원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으며, 서로 밀접하게 기인하며, 서로 교차한다. 공동체 안에서 자유를 의미하는 민주주의, 자유 안에서 공동체인 사회주의(또는 그리스도의 사회주의) 그리고 공동체 자체를 의미하는 공산주의(또는 그리스도의 공산주의).(7) 라가츠의 이상적 사회 형태에 관한 생각은 그의 종교적·사회적 이상을 반영한다. 라가츠의 하나님의 가족에 관한 생각은 완전히 그의 하나님 이해와 하나님 인식에서 기인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그것은 그의 신정론적 인식에 기초한다.

“그 자신을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알고 있는 하나의 인류가 주와 아버지이신 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8)

하나님 자녀의 자유, 민주주의

공동체의 혁명은 그리스도에 기초한 정치적·종교적 민주주의로 인도한다. 민주주의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갈 5:1),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자녀의 찬란한 자유를 전제한다. 그 자유는, 루터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과 깊은 관계가 있다.

▲ 2016년 겨울, 한국사회는 완전한 자유에 기초한 시민들의 민주주의 열망과 성치를 경험했다. ⓒ연합뉴스

정치적 민주주의는 원칙적으로 인간의 무조건적인 가치 또는 인격성 그리고 유일하고, 거룩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개인의 가치를 토대로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치적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살아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직접성 아래서 인간의 하나님의 자녀됨에 근거한다. 인간의 무조건적 가치는, 즉 하나님의 자녀됨은 라가츠에게는 민주주의의 초석과 인간 본질의 변혁 원리이다.

하나님의 자녀됨은 이중적 사회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근본 가치와 근본 의미를 위반하는 ‘모든 노예 상태에 대한 투쟁’과 전 인류의 공동체로 되어지는 본성의 평등이 아니라 정신의 평등, 즉 타당성에 관한 가치의 평등으로서 ‘평등을 위한 투쟁’이다(갈 3:28. 5:1).(9)

종교적 민주주의는 종교적 영역에서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공동체의 혁명이다. 그것은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생각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관계의 직접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종교적 민주주의는 라가츠에 의하면 예례미아 31장 31절 이하 말씀 및 요엘서 2장 18절 말씀과 오순절 은사의 성취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민주주의는 소수의 선택받은 자만이 아니라 공동체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사(카리스마)들이 공평하게 분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위한 가장 의미 있는 표적은 종교적 사회적 차별성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는 말의 은사, 곧 방언의 은사이다. 공동체에 은사들의 분배, 특별히 방언과 예언의 은사의 분배를 통해서 예언자의 특권과 제사장의 특권이 폐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만인 제자장설이 제정되었다(벧전 2:9). 그것이 종교적 민주주의에서 평등이다. 그것은 최초로 사도적 공동체에서 구체화되었다.(10)

공동체 혁명의 민주적 요소는 라가츠의 역사적 숙고에 의하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무정부주의에 근거하는 세상 나라와 그리스도의 투쟁에서 처음으로 구체화되어졌다. 공동체 혁명은 그후 중세기의 신정 정치와 그의 변질에 대항하는 민중 운동, 특별히 앗시시의 프란체스코의 운동과 그의 정신적 친구 및 후스교도들의 성배의 상징에서 다시 계승되었다. 종교 개혁 운동은 기독교의 만인 제사장설의 새로운 선언과 그리스도인의 자유 속에서 민주주의의 갱신과 확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적 요소는 성직자 계급으로부터 해방된 신정 정치의 거부를 통해서, 영적 나라와 세상 나라의 분리를 통해서, 루터교의 자기합법칙성의 이론을 통해서 상실되었다. 그것은 개혁 교회의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신정 정치와 그리스도와 민중의 결합 그리고 종교개혁 운동의 이단적 형태, 특별히 재세례파에게서 다시 계승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적 요소의 패배는 라가츠에 의하면 루터교에 의해서 준비되어진 독일 정신의 토대 위에서 발전한 자연주의와 범신론적 관념론에 근거한다고 보았다. 그와 반대로 칼빈주의의 토대에서는 독립운동, 의회주의, 퀘이커교도, 인권 운동과 평화와 전쟁의 폐지를 위한 투쟁이 주장되었다.(11)

끝으로 종교적 사회적 공동체의 혁명으로서 라가츠의 민주주의에 대한 사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직접성과 그의 법에서 나오는 인간의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가치에서 근거한다. “법은 민주주의의 토대일 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이다. 또한 실제적인 법, 하나님의 법이 있는 곳에 민주주의가 있다.”(12) 우리는 이제 라가츠에게 있어서 민주주의는 하나님의 자녀됨의 종교적 정치적(또는 사회적) 적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주

(미주 1) L. Ragaz, Weltreich, Religion und Gottesherrschaft, Bd. 2, Rotapfel, Zürich/Leipzig 1922, S. 233. 칼 마르크스도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국가의 폭력을 비판한다. 국가는 그에 의하면 폐지되어 지는 것이 아니라 계급 모순의 폐지를 통해서 스스로 해체되어진다(ders., Die Entwicklung des Sozialismus von der Utopie zur Wissenschaft 1880, MEW Bd. 19, Berlin 1973, S. 223 f).
(미주 2) L. Ragaz, Die Geschichte der Sache Christi. Ein Versuch, Herbert Lang, Bern 1945, S. 50.
(미주 3) L. Ragaz, Politik und Gottesreich, Olten (o.J.), S. 25.
(미주 4) L. Ragaz u.a., Ein sozialistisches Programm, S. 113.
(미주 5) L. Ragaz, Der neue Weg der religiösen Bildung, S. 112.
(미주 6) A.a.O., S. 113. Vgl. Weltreich Bd. 2, S. 97.
(미주 7) Geschichte der Sache Christi, S. 47.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부유와 기쁨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Bibel 7, S. 129).
(미주 8) A.a.O., S. 25.
(미주 9) A.a.O., S. 23-24.
(미주 10) A.a.O., S. 25.
(미주 11) A.a.O., S. 28-34.
(미주 12) L. Ragaz, Die Bibel. Eine Deutung, Bd. 2, Diana, Zürich 1947–50, S. 84. 정치적 사회적 민주주의는 종교적 민주주의를 전제한다(S. 85). 그것은 종교적-사회적 운동의 근본 특징이며, 신정론적 인식이다: 먼저 종교적인 것에서 사회적인 것으로-시간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후에 사회적인 것에서 종교적인 것으로.

류장현 교수(한신대 신학부/조직신학)  jena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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