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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모이>, 말의 효과화와 반-효과화 전략최병학 목사의 인문학으로 읽는 영화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19.02.09 18:18
▲ 영화 <말모이>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1. 양치기 소년

‘양치기 소년’이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늑대가 온다.”라는 거짓말을 즐기다가, 진짜 늑대가 나타나서 늑대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는 비극적인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흔히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벌을 받는다.’라는 도덕 교훈을 주기 위해 단골로 사용됩니다.

▲ <양치기 소년> ⓒGetty Image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심오한 언어철학적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부산대 이왕주 교수의 말입니다. “소년은 거짓말 때문에 천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말의 박해 때문에 복수를 당한 것이다. 소년의 입술에서 학대당한 ‘늑대가 온다’는 말이 복수의 칼을 휘두른 것이다. 그것은 두 가지 방식에 의해서다. 첫째는 말이 현실을 만들어내며, 둘째는 그 현실 안에서 말이 스스로 무력해져버리는 것이다. 늑대가 나타난 것은 첫째의 증거고, 사람들이 소년의 외침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던 것은 둘째의 증거이다.” 이왕주, ‘떠도는 말들의 복수’, 『소설속의 철학』 (문학과지성사, 1997)

소년의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말이 실재 늑대가 나타나는 현실을 만들고, 또한 그 말이 현실 안에서 무기력해져 도움을 받지 못한 소년이 늑대의 밥이 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기독교만큼 말과 말씀에 관해 중요하게 생각했던 종교가 있었던가요? 그리고 그 말(씀)에 논리(로고스)와 의미(예수 그리스도), 생명을 불어 넣어 세상을 변화시켜온 것이 기독교의 역사가 아니었던가요? 이처럼 말의 중요성을 알고, 그 말의 의미를 알았던 민족이 우리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은 우리말을 없애버리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비열함과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엄유나 감독의 영화 <말모이>(2019)입니다.

2. 문 둘레에 핀 꽃들

영화는 일제시대,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독립이 될 줄 알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정은 나빠져 조선의 독립은 거짓말쟁이 소년의 거짓말처럼 조선 땅을 찾아 오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많은 조선 사람들이 변절하고 친일파로 바뀝니다. 조선의 말과 정신을 그리도 강조했던 정환(윤계상 분)의 아버지인 교장선생 류완택(송영창 분)도 친일파로 변절합니다.

주인공인 까막눈 판수(유해진 분)는 조선어학회 대표인 정환을 우연히 만난 후, 새로운 삶에 눈을 뜹니다.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을 모으는 일에 가담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우리말 사전을 완성하는데 판수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보여줍니다. 판수는 배운 것이 없고, 자식들을 가르치고 먹여 살리기 위해 감옥소에 들락날락할 짓도 많이 하지만, 조선어학회 동지들을 만나며 글을 배우고, 말이 ‘정신’이며, 글이 곧 ‘민족의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판수의 변화는 영화의 재미와 더불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줍니다.

사실 3·1운동 이후, 일본은 “조선인은 잡초 같은 놈들이니 뿌리 채 뽑아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인의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조선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창씨개명을 시킵니다. 그러나 정환에게 있어서 “말은 정신이고,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 사전을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민족의 혼과 생명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판수가 베개 없이 잠을 못 자듯(물론 이것은 판수가 소매치기로 정환의 가방과 베개를 바꾼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 없으면 민족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닙니다. 언어는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제목인 ‘말모이’는 끝내지 못한 우리말 사전의 이름입니다. 우리말에 우리 글자로 뜻풀이를 한 사전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시작된 최초의 우리말 사전이었습니다. 따라서 사전을 만들려면 우선 말을 모아야 했습니다. 편찬자들은 ‘말을 모으다’라는 뜻으로 사전 이름을 ‘말모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는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인 김두봉, 권덕규, 이규영이 ‘말모이’ 편찬에 함께한 이들입니다. 그러나 원고가 거의 마무리되고 사전 출판을 앞둔 1914년, 주시경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김두봉은 상하이로 망명하게 되고 이규영도 세상을 떠나면서 사전은 출판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모이’는 우리말 사전의 기틀이 됐고, 이후 조선어사전편찬회의 사전 편찬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어사전편찬회는 취지서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문화의 발전은 언어 및 문자의 합리적 정리와 통일로 말미암아 촉성되는 바이다.”

그렇습니다. 한 민족의 문화는 언어와 문자가 합리적으로 정리가 되고 통일이 되었을 때 힘을 발휘합니다(그렇다고 사투리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양한 사투리를 인정하되 통일이 되는 표준어가 있어야만 사투리의 가치도 빛납니다). 영화에도 나오는 대사이지만, “한사람의 열 발자국보다 열 네놈의 한발자국이 낫다.”는 말이 바로 그 뜻입니다.

전국의 사투리를 모아 표준어를 정리해야 되는 정환은 어떻게 사투리를 모을지 난감해 합니다. 직접 조사하자니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지역의 조선어 선생들은 일본 순사들 때문에 쉽게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때 판수는 그의 감옥소 친구들을 모읍니다. 그리고 정환에게 소개합니다. 전라도 광주, 의성, 부여, 고성, 온양, 안동, 부산, 목포, 경성 등. ‘열 네놈’의 한발자국이 열 발자국으로 변합니다.

▲ 사진 왼쪽이 <조선어학회 사람들>, 오른쪽이 <판수 친구들의 등장>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조선어학회 일을 도우며 차츰 글을 깨우치던 어느날 책장을 정리하다 판수는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을 읽게 됩니다. 밤을 새어 다 읽고난 판수는 눈물을 찔끔 흘립니다. 말은, 언어란 그런 것입니다. 아무튼 공청회를 통해 표준말을 확정해야 되는데, 일본 경찰의 눈 때문에 공청회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자 판수는 자신이 관리하는 극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공청회를 열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공청회 중간 판수는 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니들 아버지라는 것이 미안, 좋은 아버지 밑에 태어났으면…. 내가 너들 아버지라는 게 덜 미안하다! 내가 공청회하자고 했다.”

▲ 사진 왼쪽이 <운수좋은 날을 읽는 판수>, 오른쪽이 <공청회>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러나 공청회가 들통 나서 정환과 판수는 일본 경찰 우에다(허성태 분)에게 쫓깁니다. 부상당한 정환 대신 판수가 말모이 원고를 들고 도망갑니다. 출판사가 있는 부산으로 가는 길에 들통 난 판수는 일본 순사들에게 쫓기자, 말모이 원고를 우체국에 몰래 숨겨두고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그 원고는 해방 이후 발견되어 사전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영화에 소개되었지만, 민들레는 ‘문 둘레에 핀 꽃’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입니다. 판수는 새 시대의 문은 아니었으나, 문 둘레에 피어 새로운 시대의 문을 아름답게 장식한 민들레꽃이었습니다. 아들 덕진(조현도 분)과 딸 순희(박예나 분)에게 조금도 미안하거나 부끄러운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 사진 왼쪽이 <판수네 가족>, 오른쪽이 <문 둘레에 핀 민들레꽃>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3. 양치기 소년들의 ‘효과화’와 조선 민중들의 ‘반-효과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 (한길사, 1999)에 잠시 등장하는 개념어 가운데 ‘반-효과화(counter-effectuation)’라는 말이 있습니다. ‘효과화(effectuation)’의 반대말로, 먼저 효과화란 ‘하나의 효과로 화하기’란 뜻으로, 가령 누군가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그것은 그가 그의 몸에서 일어난 숱한 변화들의 한 효과로 화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주체가 그저 한 효과로, 철저히 수동적인 존재로 그치지 않고, 효과화에 맞대응할 때 ‘반-효과화’가 성립합니다. 쉽게 말해 교육학에서 ‘반-사회화’를 들뢰즈의 ‘반-효과화’로 비유할 수 있겠고, 영화에서는 일제의 우리말 없애기가 하나의 효과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양치기 소년의 지속적인 거짓말도 효과화입니다.

따라서 반-효과화는 효과화를 무효화하거나, 효과화에 맞대응하는 행위자의 효과화를 말합니다. 들뢰즈는 선불교의 선문답을 그 예로 들고 있습니다. 가령, 반-효과화로서의 기재로 ‘아이러니’, ‘익살’, ‘역설’이 있는데, 아이러니가 사변적 체계에서 마음으로 방향을 돌리게 하는 것이라면, 역설은 마음을 해체하게 하는 것이고, 익살은 형이상학적 표면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차나 한잔 하고 가시게.”라는 선문답은 아이러니로 진리에 대한 사변적 사고와 체계에서 마음(불교는 마음공부가 중요하죠?)으로 방향을 돌리게 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차의 만날 수 없는 역설에서 마음은 해체되고, 선문답 자체의 익살은 다시금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형이상학적 표면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형이상학적 표면은 탈성화 된 다의성을 뜻합니다.

익살에 대한 설명이 조금 어렵습니다.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 한 구절입니다. 이정우 교수의 번역인데, 읽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의미의 일의성은, 유일하게 표현된 것, 사건을 총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언어를 그 완전한 체계 내에서 포착한다. 그래서 익살의 가치들은 아이러니의 가치들과 구분된다. 익살은 표면들의, 두 표면 사이의 복잡한 관계의 기법이다. 지나치게 다의적인 것에서 출발해, 익살은 모든 다의성을 구성한다. 모든 다의성을 테두리 짓는 고유하게 성적인 다의적인 것에서 출발해, 익살은 탈성화된 한 다의적인 것(Univoque)을, 존재와 언어의 사변적인 다의성을 이끌어낸다. 즉, 한마디로 모든 이차적인 조직화를 이끌어낸다.”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이어 보수 언론과 유튜버들이 손혜원 의원, 김경수 경남도지사, JTBC 사장 손석희 앵커에 관해 일련의 ‘파렴치범 효과화’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친일파를 이은 극우세력들이 기존 극우의 담론이었던 ‘용공’, ‘반난민-반이슬람-반동성애’ 코드에 이어 상식적인 사람들을 ‘파렴치범’이라는 효과화로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효과화에 관해 맞대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반-효과화의 전략 세 가지가 있습니다. ‘역설(paradox)’과 ‘아이러니(irony)’, 그리고 ‘익살(humor)’입니다.

역설은 ‘자체의 주장이나 이론을 스스로 거역하는 논설’이며, 아이러니는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익살은 ‘남을 웃기려고 일부러 하는 우스운 말이나 행동’을 뜻합니다. 판수와 정환, 그리고 조선어학회 사람들은 일제의 조선말 없애기의 효과화에 관해 역설과 익살, 아이러니로 반-효과화를 만들어 내며 우리말 모으기와 사전 편찬 공청회를 실시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전을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 말을 지켜낸 것입니다.

만찬가지입니다. 손혜원 의원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효과화는 역설로(장제원, 송언석 의원),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적폐 판사들의 효과화는 아이러니로, 손석희 JTBC 사장에 대한 삼성의 공격은 익살로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손혜원 의원은 당당하게 싸움을 이어가야 하고, 김경수 지사는 적폐의 잔머리를 예상 좀 하고 대비해야 하고, 손석희 사장은 절대 뉴스룸 앵커 자리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에서 효과화는 양치기 소년의 ‘지속적인’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효과화에 대한 반-효과화의 전략의 결과는 늑대가 나타나 거짓말쟁이 소년을 잡아먹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짓말과 가짜뉴스는 그 속에 정신과 의미와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왕주 교수도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말에서 뜻을, 이름에서 실질을 박탈했는가. 누가 언어를 떠도는 유령으로 만들었는가? 바로 양치기 소년과 같은 거짓말쟁이들이다. 기억해두자. 우리가 해방되기 위해 진정 필요한 존재는 거짓말하는 똑똑한 지도자가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양치기 소년이라는 것을.”

손혜원, 김경수, 손석희 이 세 사람이 경기도지사 이재명과 같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적폐의 공격에 익살스럽지만, 무섭게 대응할 때 그들은 말(씀)의 위력을 깨달을 것입니다. 따라서 일제의 조선말 없애기라는 효과화에 관해 판수와 정환의 반-효과화로 조선말을 구해냈듯이, 우리는 불의한 거짓말쟁이들을 진실과 사실의 말로, 위에서 옆으로 휘갈기고 밑에서 위로 후려쳐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말로써!)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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