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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평화로운 사회를 위한 길라잡이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02.11 17:22
이것이 너희가 해야 할 일이다. 너희는 서로 진실을 말하고 너희 성문에서 진실과 정의를 따라 평화를 위해 재판을 베풀라 서로 악을 마음에 품지 말고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는 모두 내가 미워하는 것들이다 야훼의 말씀이다.(스가랴 8,16-17)

성전재건축을 독려하며 스가랴는 너희가 할 일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들을 대비시키는 이 말로 그의 격려사를 마감합니다. 다른 예언서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이 말이 성전재건 문맥에 나오다니, 놀랍습니다. 성전과 하나님의 명령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이 구절은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여기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양자의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성전은 수단이고 명령을 지키는 것은 목표입니다. 다시 말해 성전은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지키도록 하는 수단이요 장치로서 말씀/명령을 하위에 두거나 대체할 수 없습니다.

▲ 사랑, 정의, 공의에 기초한 평화로운 사회의 기본은 성전이었다. 교회는 성전의 이러한 기능을 이어받아야 한다. ⓒGetty Image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일이 종종 있습니다. 권력화된 성전이 말씀/명령을 사유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스가랴의 예언은 예전에 예레미야가 경고했던 대로 그러한 성전이 파괴되고 몰락했던 것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성전 권력과 그의 지지를 받는 국가 권력은 하나님의 명령/말씀 곧 그의 인애와 정의와 공의를 버렸습니다.

스가랴가 말하고 있는 것들은 이것들의 회복을 위한 첫걸음에 해당합니다. 이들 가운데 두 가지가 재판과 관련됨은 특별히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재판의 왜곡은 특히 약자의 한과 억울함을 양산하고, 악의 정당화와 일반화를 초래할 것입니다. 진실과 정의를 따르는 재판은 평화 사회를 이루는 조건이며 지키는 보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진실을 말하는데 별도의 용기가 요구되지 않고 진실을 버리도록 유혹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스가랴의 말은 이런 사회를 세우는데 성전이 기여해야 한다는 것 아닐까요? 그때에만 성전은 존재 의미가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때 진실을 말하는 것은 상식이 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이웃에게 악의를 품는 비열함은 금도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말한 사랑의 덕목들이기도 합니다.(고전 13,4-6) 사랑과 정의와 공의에 기초한 평화 사회가 성서가 그리는 사회상이며, 이를 향한 길라잡이가 성전 곧 오늘의 교회여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짠맛 잃은 소금처럼 버려지고 말 것입니다.

이땅의 ‘성전’으로서 우리의 과제를 받들고 함께 이루어가는 기쁨의 오늘이기를.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을 기뻐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거부하며 우리 삶터를 희망의 문으로 만들어가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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