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을 즐겁게 하는 아주 흥미로운 책이고, 서양이 바라 본 동양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는 유익한 책이다. 저자는 서양이 어떻게 동양을 이해하였는가 하는 주제를 풍부한 자료에 근거해서 읽기 쉽게 서술하였고, 수많은 지명과 인명 때문에 복잡해 질수 있는 서양사를 잘 안내하였고, 책안에 적절하게 배치된 사진과 지도는 이해도를 높이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주제에 관심을 갖는 전문인들에게도 아주 유익한 책이다. 무엇보다도 미주와 인용문헌이 130여 페이지(403-532) 정도 되는데, 미주에서는 본문에서 깊게 다루지 못한 학문적으로 논쟁이 되는 부분을 여러 자료를 인용하면서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고, 인용문헌에는 참고한 논문과 책들이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야나가 노부미_彌永信美는 프랑스에 유학해 동양학을 공부하고 불교와 종교, 유럽문화사에 관련된 글을 써왔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가장 큰 동기”(6)는 전후 일본사회가 가진 “모순”된 모습을 비평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 1980년대 중반 일본은 서양에 속한 나라가 아니지만 서양을 대표하는 나라인 미국을 “추종”하면서 “서쪽으로 기울어진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진단하고 있다. 동시에 그 서구화된 일본은 자신의 문화와 사상이 “동양적 가치관에 근거한 문명”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이것은 일본의 자기모순이라고 비판한다.

서구 기독교, 서양의 동양 해석의 기초

책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책은 “환상의 동양”이라는 열쇠말을 가지고 서구 문화사를 통하여 형성되어온 “오리엔탈리즘의 계보”를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하는 오리엔탈리즘이란 개념은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와 사뭇 다르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되어지는 의미는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의 책인 『오리엔탈리즘』을 통해서이다. 그의 책은 1978년에 영어로 출판되었고, 일본어 번역판은 1986년에 출판되었는데, 이 번역판이 출판된 직후에 그의 책이 출판되었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밝힌 것처럼, 책의 부제를 “오리엔탈리즘의 계보”로 한 것은 사이드의 책 제목과 유사하게 하려는 “상업적인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5). 더욱이 저자는 자신의 책이 출판된 시점에도 사이드의 책을 읽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5).

▲ 일본의 이야나가 노부미 선생의 『환상의 동양: 오리엔탈리즘의 계보』(김승철 옮김[서울: 동연, 2019]) ⓒ에큐메니안

서양의 문명이 우월하다는 전제하에 동양을 서양 문명에 비해 열등하거나 야만적인 사회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 사이드가 주장하는 근대 오리엔탈리즘의 특징이다. 여기서 사이드가 다루는 서양은 근대 이전이 아닌 근대 이후의 계몽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의 변화를 겪은 이후의 근대적 서구이다. 이러한 서구적 관점에서 동양은 이성적이지 못하며, 문화적으로 야만스럽고, 정치적으로 전제적이며, 경제적으로 발전이 덜된 지역이다. 이러한 비문명적 동양은 문명적인 서구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관점을 비판하는 것이 바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다. 그러나 이 책은 사이드와 달리 근대이전에 좀더 집중하는 연구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책이 사이드 책의 “전사前史”를 그린 것으로 받아들여 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396). 이 책은 시대적인 차이뿐 아니라, 여러가지 면에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는 다른 결, 다른 강조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기본적인 관심사는 제목이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서양인들이 동양을 어떻게 바라 보았는가이다. 저자는 서양인이 바라 본 동양을 “환상의 동양”이라고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인에게 동양이라는 땅은 단일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여러 다른 의미의 측면들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엑조티즘”(이국 취향)의 대상(40)이고, “괴이함의 원천”(41)이고, “모든 괴물이 날뛰는”(201) 곳이고, 기괴함으로 가득찬 “땅 끝 세계”(53)이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는 동양은 황금과 풍요의 땅(56)이고, “철학의 이국기원” 신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지혜와 깨달음의 땅이다(74). 더 나아가 많은 기독교인들은 지상낙원이 세계의 동쪽 끝에 있다고 믿었고(200, 256), 또한 어떤 종말론적 천년왕국주의자들은 “종말의 예표로서의 땅”(198)이 동쪽 저 너머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동양이라는 개념은 역사가 흐름에 따라 그 지리적 범위가 확장되어 왔는데, 저자는 12세기 이후에야 동아시아에 대한 인식, 개념, 정보가 확립되기 시작하면서 동양이라는 개념에 동아시아가 들어가게 되었다고 설명한다(38-40). 이와 동시에 유럽에서는 “유럽-서양”이라는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한다(40).

콜론 (콜럼버스) 이후 동쪽과 서쪽의 방향은 상대화된다. 콜론이 동쪽으로 가기위해 서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이러한 상대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198). 그러나 16세기이후 지리적 방위가 상대화될지 모르지만,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의미의 동과 서는 좀 더 분명해 진다. 헤겔은 이것을 “절대적 의미의 동방이 존재”(160)한다는 말로 잘 표현하고 있다. 절대적 의미의 동방은 절대적 의미의 서방을 전제한다. 즉 동과 서는 서로 상호적으로 정의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방의 자기 정체성, 자기 인식위에 자신의 동쪽에 있는 지역을 동양으로 규정할 때 동양이 정의되어진다.

이 책은 서양인들에게 형성되어 온 “환상의 동양”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유럽 사회 안에서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어떠한 일들이 발생하였는지를 분석하는데 많은 분량과 노력을 들이고 있다. 자기정체성으로서의 서구인들의 서양됨을 결정하는 핵심요소는 바로 기독교 문명이다. 저자는 서구에서 기독교가 “유일한 진리”(77) 로서 어떻게 보편화되어 왔는지, 그리고 기독교 종말론이 정치사회관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분석하는데 논의를 집중하고 있다.

『환상의 동양』이 담고 있는 내용

“환상의 동양”은 이러한 보편주의적 성격을 갖는 서구 기독교가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비서구, 비기독교권에 대한 이미지로 형성되어 왔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1장에서는 기독교 세계 형성에 깊은 영향을 준 그리스와 이집트 문명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고, 2, 3, 4장에서는 유대-기독교의 “유일한 진리”라는 보편주의가 “헬레니즘의 세계주의”(288)와 유대교의 “융합”(266)을 통하여 형성되어 왔음을 설명하고 있다. 5, 6장에서는 기독교가 유럽의 “보편적” 종교가 되고, 유럽은 기독교 제국이 되는 과정을 서술하였고, 7장에서는 십자군 전쟁과 피오레의 요아킴 (Joachim of Fiore, 1135-1202)의 “혁명적 역사신학”을 분석했다.

8, 9, 10장에서는 프레스터 요한(Prester John ; Presbyter Johannes, 사제 요하네스) 의 전설이 12세기부터 16세기까지의 유럽에 미친 영향을 종말론과 그리고 “종말의 제국”과 연결하여 설명했다. 11장에서는 콜론의 신대륙 “발견”이 가지는 의미를  천년왕국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12장에서는 피렌체에서 활동한 사보나롤라의 묵시록을 기술했다. 13장에서는 스페인에서의 유대인 추방과 예수회의 탄생이 갖는 세계사적 의미를 찾고 있다.

14장에서는 저자의 나라인 일본에 전도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Francisco Javier; Francis Xavier, 1506—1552) 선교사의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동양의 땅끝 나라인 일본이 함의하는 동양의 의미를 분석했다. 15장에서는 “숨겨진 천사 교황” 기욤 포스텔 (Guillaume Postel, 1510-1581)의 “기호론적 신학”이 갖는 종말론적 의미를 설명했다. 16장에서는 포스텔의 종말론적 비전이 동양의 끝에 있는 일본에 대한 이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서양 역사를 해석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고, 그러한 관계속에서 동양에 대한 해석을 설명하고 있다.

서구 기독교의 폭력성, 서구 기독교 종말론이 원인

종말론적 역사관은 이 책의 중심주제 중의 하나이다. 저자는 르네상스 시대가 “지복의 황금시대 도래”를 노래하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다른 한편 르네상스 시대는 “강렬한 종말감각이 소용돌이”(470)치던 시대라고 설명한다. 근대의 형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이 “계시론적-종말론적” 세계관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므로 저자는 “근대는 종말(에스카톤 eschaton)의 징후 속에서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266)고 쓰고 있다.

저자는 두 가지 종말론적 세계관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피오레의 요아킴의 “혁명적 역사신학”이고 다른 하나는 기욤 포스텔의 “점성술적 역사신학”(472) 이다. 저자는 서구에서 천년왕국을 꿈꾸었던 “거의 모든 사상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요아킴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183).

세상을 지복의 시대로 인도하기를 고대하였던 포스텔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종말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위대한 개혁자”가 될 새로운 교황이 등장하여 부패하고 죄로 물든 로마교황청을 개혁할 것이고, 이와 동시에 프랑스 왕이 로마제국의 황제로서 “최후의 세계 황제”가(346)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 새로운 교황과 황제가 협력하여 이방인을 개종시키고,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세계를 정복하여 새로운 왕국을 건설할 것이며, 이 나라는 그들의 사후에도 1천년동안 지복의 평화속에 번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343-4). 또한 “천사 교황”이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교황은 다름 아닌 자신 포스텔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345).

저자는 서구 근대의 “이념적 세계관”을 “객관주의적 세계관”과 “드라마적 세계관”의 두 가지로 구분하면서, 요아킴과 포스텔의 강렬한 종말사상은 바로 그 “드라마적 세계관”의 뿌리라고 설명하고, 이러한 천년왕국적 세계관이 “서구 근대 생명력의 원천”(475)이고 동시에 “무한한 불안의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계시론적-종말론적 세계관은 종말론의 한 핵심적 요소가 되는 “땅 끝” 세계에 대한 관심을 동방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동쪽에 있는 지역에 대한 관심은 바로 종말론의 실현에 있어서 필연적 과제였다.

이러한 종말론적 관심이 콜론의 아메리카의 “발견”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콜론은 요아킴의 역사신학의 영향을 받아 세상의 역사가 7천년이고 1650년쯤 세상 역사가 끝난다고 믿었고, 자신의 지리 “발견”이 세계의 종말을 준비하는 기독교인의 의무라고 믿고 있었다(261-3; 389). 또한 종말론은 예수회 회원들이 전 세계에 걸쳐 있는 “땅 끝”으로 복음을 전도하게 추동하는 강력한 동기였다. 하비에르와 예수회 선교사들이 “동쪽 끝”이라고 믿는 일본 열도에 선교를 시작한 것에 대하여 예수회 수도사 로드리게스는 “동쪽 끝에 신의 영광이 비치기 시작”하였다고 적고 있다(309).

기독교의 보편주의가 기독교 제국주의로

기독교의 보편주의적 성격은 정치적인 차원에서 기독교 제국주의로 표현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298). 저자는 이 기독교 제국주의가 “혁명적 천년왕국”의 종말론적 역사관과 상호작용하면서 “중세후기 이래 유럽 역사의 틀”을(27)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기독교 제국을 정당화한 4세기 유세비우스의 전통이 중세를 거쳐 헤겔에게 이어져서 “세계제국정치”(161)의 시대로 나아간다고 보고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빼앗고 나아가 인도로 가는 항해의 길을 석권하려고 하였던 나폴레옹의 꿈은 12세기부터 대중화되고 있던 프레스터 요한의 종말의 제국이라는 환상을 “계승”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460, 462).

저자의 정치와 종교간의 관계에 대한 관점은 흥미롭다. 저자는 기독교 보편주의와 그 역사신학이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종교적 불관용의 정신을 만들어냈으며 배제의 논리와 폭력의 장치를 산출했다”고 주장한다(289). 또한, 자신이 이 글을 쓰고 배운것 중의 하나는 바로 정치사상 또는 “정치적 이마지네르 imaginaire(정신에 의해 위장된 이미지)”가 “신비사상 자체”라는 점이다(387).

이러한 입장은 그의 파시즘 이해에 잘 표현되어 있다. 요아킴과 포스텔의 열광적 종말사상은 19-20세기의 정치적 열광주의와 파시즘 그리고 나찌즘의 뿌리가 된다고 주장한다(382). 저자는 서구 기독교를 관통한 세계의 종말과 천년왕국의 꿈은 유럽 근대 역사속에서 “광기”를 뿜어 내었다고 진단한다. 종교개혁과 그 이후에 전개된 뮌처의 농민전쟁과 뮌스턴 봉기를 “근대의 여명을 피로 물들인 종교개혁 시대의 …광기”고 불렀고, 뮌처와 뮌스터 봉기의 지도자인 복켈슨을 “히틀러의 먼 선조”라고 명명하였다(349).

그러나 이러한 저자의 입장은 잡지에 실린 글을 책으로 출판하기 위해 편집하면서 다음과 같이 수정하였다: “극적 역사관을 비판하려고 쓴 이 책 자체가, 혹은 그 극적 역사관의 함정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391). 서평자가 볼 때, 정치사상의 형성에서 신비적인 사상이나 종말론의 영향도 중요하지만, 민족주의, 인종주의, 세계무역 갈등, 식민지 쟁탈등과 같은 요소를 고려하지 않으면 왜 그러한 정치적 열광주의가 발생하였는지 잘 설명하기 어렵다.

이야나가 노부미의 서구세계 해석, 문제는 없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기독교 종말론이 서구인들이 “동양”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결정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저자의 입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서평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 사진 오른쪽이 ‘이야나가 노부미’의 책 『환상의 동양: 오리엔탈리즘의 계보』에 대해 서평을 발표하고 있는 이병성 교수 ⓒ에큐메니안

첫째, 저자가 사용하는 “서양”이라는 범주에 대한 문제다. 여기서 상정하는 서구는 서유럽 중심의 서구이다. 저자의 논의는 라틴 세계의 기독교인 가톨릭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는 부분적으로 저자가 프랑스에서 공부하였고, 프랑스어 책들을 기본 자료로 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개신교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고 있지만, 16세기 정도에서 책의 논의가 거의 마무리되기 때문에 개신교가 근대 서양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깊게 다루어 지지 않는다. 더 나아가 서양의 큰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그리스 정교회나 러시아 정교회의 이야기는 거의 다루어 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이 상정하는 서양은 유럽전체를 분석하기 보다는 서유럽 중심의 기독교적 관점으로 제한되고 있다.

둘째, 저자가 이해하는 근대에 대한 문제이다. 저자는 근대 서구 사회를 이해하는데 핵심적 가치는 기독교적 가치라고 보고 있고, 이 가치위에 세워진 “서구세계”가 “16세기 이래 세계를 제패”하였다고 분석한다(388). 이러한 연속성이라는 입장에서 저자는 근대이전의 역사신학이나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근대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근대는 거의 모두 중세에 의해서 준비되고 있었다”(204). 이러한 맥락속에서 저자는 16세기쯤에는 “서구의 ‘환상의 동양’에 대한 인식론적 틀” 거의 대부분이 완성되었다고 주장한다(392).

그러나 서평자는 근대는 인식론적으로 근대 이전과 확연히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가르침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규정한 서구의 근대 이전 시대와 달리 근대는 “세속 시대 a secular age”(미주 1)이고 이 세속성이 근대를 근대 이전 시대와 확연히 구분 짓는다. 찰스 테일러 Charles Taylor가 잘 지적하고 있는것처럼, 과학혁명, 계몽주의 (그리고 이신론), 민주주의, 자본주의라는 근대의 변혁속에서 세속이라는 틀이 만들어 졌고, 이 세속이라는 조건 속에서 기독교의 사상, 윤리, 정치관, 세계관이 근대적으로 새롭게 재구성되어 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근대의 혁명적 변화를 잘 읽어내지 못하고 16세기 이전 사상이 근대와 그리고 오늘날까지 규정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러한 “세속 시대”속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서양의 시각은 근대적 차원을 가지게 되는데, 저자의 책은 이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다.

셋째, 근대 일본인에게 내재화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저자의 시각의 문제다. 저자는 동양 대 서양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이 일본의 19세기 후반 이후 정치와 사회사상을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밝힌다(6). (저자는 왜 한국의 근대에서 동양/서양이라는 대립이 일본처럼 크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한국어판 서문에서 적고 있다(6)) 그러나, 19세기 후반이후 한국사회는 동양을 서양으로부터 구원한다는 명분 속에 조선을 식민지화한 근대화된 일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민족적 과제 속에서 근대를 경험하였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은 근대의 길이 생존하기 위하여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나서, 서양의 근대를 이용하여 일제에 의해 이식된 근대, 즉 식민지 근대를 견제해 가면서 자신들의 근대적 사회를 만들어 가려고 투쟁하였다.

저자는 일본의 제국주의는 서구가 만들어낸 “환상의 동양”이 일본에 “역수입”되면서 발흥하기 시작했고,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은 그 사고에 “깊이 물들어” 있었다고 주장한다(382-3; 388-9). 이러한 역수입된 “환상의 동양”이 “팔굉일우八紘一宇의 대동아공영권의 지상낙원”(383) 같은 괴물을 만들어 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다. 모든 근대의 악한 것들은 서구적 환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논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재일 한국인 2세인 강상중이 밝히고 있듯이, 일본사회에게 “동양”이라는 관념이 “지정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질서”로 확립된 것은 바로 청일전쟁 이후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본격화한 이후였다. 일제에게 “동양”이란 다름 아닌 바로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의해 형성된 지역적 질서”라는 점을 강상중은 잘 보여주고 있다.(미주 2)

일본의 오리엔탈리즘은 이중성을 가진다. 한편으로 서양적 관점에서 열등하고 문명화되지 못한 동양의 한부분인 것을 일본 스스로 거부해야 한다. 탈아입구脫亞入歐는 이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일본은 동양으로 범주화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역사적 조건속에서 일본의 유일한 길은 동양의 지배자가 되어 서양 중심의 위계적 세계질서에서 서구적 제국주의와의 공존의 길을 택하는 것이었다.

일제는 일본적으로 재구성된 오리엔텔리즘의 시각으로 다른 동양의 나라들을 열등하다고 바라보면서 침략의 길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이 침략의 길, 제국주의의 길은 동양을 구원하고 문명화하는 사명으로 정당화된다. 이러한 이중성이 일본식으로 재구성된 오리엔탈리즘의 특징이다. 그러나 저자는 일본 스타일로 재구성된 오리엔탈리즘에 내재한 이러한 이중성을 간과하고 있다.

서평자가 제기한 여러 가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역사적으로 서양이 어떻게 동양을 바라 보았는지, 그리고 서양의 기독교 세계관이 그들의 동양관을 형성하는데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설득력 있고 흥미롭게 잘 설명하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을 연구하는 연구자이든, 서양이 바라본 동양에 관심을 갖는 일반 독자이든 모두에게 충분히 추천할만한 책이다.

이병성(연세대, 감신대 강사)  bslee73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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