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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자를 먹으면야수성(野獸)의 극복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 승인 2019.03.06 19:02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먹힘을 당하는 사자는 행복합니다.  그 사자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자에게 먹힘을 당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그 사자도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제7절)

이런 난해한 구절은 읽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풀이될 수 있다. 아프리카 선교사로 갔던 사람이 사자에게 잡혔다. 이제 죽었구나 하고 엎드려 있는데, 사자가 자기를 먹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된 것인가 하고 살짝 눈을 떠서 올려다보니 사자가 식사 기도중이더라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이 선교사가 결국 사자에게 먹힘을 당했는지 모르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 선교사가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은 물문가지.

물론 이런 문자적 차원은 넘어서야 할 것이다. 이 절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우선 우리 속에 내재하는 ‘사자됨’과 ‘사람됨’이라는 두 가지 힘의 상호 관계에 관한 것이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서 ‘사자’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우리 속에 있는 길들지 않은 야수성(野獸性)-정욕, 무지, 탐욕 같은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 사람됨으로 살아갈지 야수성으로 살아갈지는 선택해야 할 문제이다. ⓒGetty Image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이런 야수성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를 잘 길들이고 극복하면 그 야수성도 결국 우리가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된 셈이고, 어느 면에서 우리의 일부로 동화된 셈이기 때문에 그 사자는 행복한 사자일 수 있다. 반대로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이런 정욕, 무지, 탐욕 같은 야수성에 잡아먹히면 물론 우리는 우리가 가진 인성이나 신성을 발현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셈이니 불행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전체 문장 구조로 보아서는 마지막 문장에서 사자에게 먹힘을 당하는 사람이 불행하게 되는 이유가 그 사람이 사자가 되기 때문이라 해야 할 것 같은데, 본문에서는 사람을 잡아먹은 “그 사자도 사람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이 되는데 왜 불행하다 하는가? 구태여 의미를 붙이자면 그 사자가 사람을 잡아먹고 사람 행세를 한다는 뜻이 아닐까?

다같이 사람의 모양을 가진 사람이지만 한 편에는 야수성을 이기고 참 사람이 된 사람이고, 다른 한 편에는 야수성에 정복당하고 껍데기만 사람 모양을 했을 뿐, 속으로는 아직 사자 같은 야수성을 그대로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계속 잡아먹으려 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사람도 사람이긴 하지만 아직도 사자 같은 사람으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기에 우리 속에 있는 신성을 완전히 발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그러니 불행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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