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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경에 처한 기능불능의 가정으로부터외부인들이 내부인들이 되다 (2)
최성일 교수(한신대 신학부/선교신학) | 승인 2019.03.08 16:42

성서의 독자들인 우리는 세겜에서 그 날 여호수아와 함께 그 회중 속에 누가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 장로들, 수령들, 재판장들, 그리고 관리들이었다고 보도된다. 그밖에 다른 유사한 모임에서, 그 명단은 좀더 포괄적인,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신 31:12; 느 8:1-2 참조)이다.

이것은 광범위하고 총괄적이며 포괄적인 모임이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는 이런 양자택일의 기억의 제공이 주민 모두에게 긴급한 것이고, 모두에게 가능한 것이며, 모든 이들에 의해 사유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조상들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에 와서 그 모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주의를 집중할 수 없다. 대신에 나는 여러분과 함께 세 부류의 특별한 청중들, 여호수아가 행한 연설을 들은 청중들, 우리와 동시대에 있을 수 있는 청중들, 하지만 심지어는 그 당시에 조차도 아주 다르지 않았을 것 같은 청중들을 상상할 것이다. 내 해석 속에서, 본문으로부터 상상의 청중에게로 얼마나 이동하는지를 주목하라. 청중을 만들어내는 것은 본문이다. 여호수아는 창세기로 되돌아가는 암시와 함께 자신의 광범위한 연설을 시작한다.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데라와 그의 아들 아브라함과 나홀이-유프라테스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수 24:2b-4)

여호수아는 조상들의 아주 긴 계보를 택하는데, 그의 신앙이 깊게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와 함께 시작한다. 그와 그의 아들들은 다른 신을 섬겼다.

▲ Raffaello Sanziom,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연설하는 여호수아(Joshua Addressing the Israelites at Shechem, 1518)” ⓒWikimedia Commons

그러나 아브라함은 여행을 했으며, 그 다음은 이삭, 다음은 야곱과 에서가 여행을 했다. 이것은 모두 익숙한 자료이며, 출애굽에 대해 듣지 못한 세겜의 백성들에게 익숙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여호수아가 언급조차 하지 않지만, 정보를 접한 청중이 어쨌든 들었을만한 창세기 설화의 사이사이에 아주 많은 것이 있다.

조상들의 이야기가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인들에게

이 조상들에 대한 언급 속에서 우리는 그 같은 기억에서 되풀이하여 발생하는 두 가지 주제를 주목해야 할지 모른다. 한편에서, 사라의 뒤를 이어 나오는 레베카와 라헬이라는 어머니들과 함께 어머니 사라는 모두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이었다. 그들은 임신을 할 수 없었으며, 아이를 가질 수 없었고, 그래서 확실한 미래가 없었다. 대대로 계속해서, 마지막 순간, 때가 찾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을 행하셔서, 후손을 주셨으며, 아무 것도 가능해 보이지 않았던 미래를 창조하셨다. 그것은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기억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세대 속에는, 특별히 땅과 물을 둘러싼, 형제간의 격렬한 경쟁이 존재했다: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요셉과 그의 형제들의 경쟁이다. 쟁점이 미래의 안전과 안녕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싸움은 격렬했다. (그것은 땅 분쟁이 언제나 관계하는 것이다.) 두드러지게, 매 세대마다, 더 어리고 권리가 없는 아이가 권리를 주장했고, 유산을 받았다. 이것은 처음 된 자가 나중이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이 된다는 이야기이며, 세겜의 사람들은 바로 그 날 이 기이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지만 아들들과 형제들 사이의 긴장의 가운데에서, 우리는 여호수아가 언급하는 이 이야기 속에서 상반된 주제를 깨달을지 모른다. 땅과 물에 얽힌 이런 긴장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의미가 존재한다.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이스마엘과 이삭은 함께 그를 매장하고 유산을 공유한다(창 25:9). 이삭이 죽었을 때, 에서와 야곱은 죽음을 공유했다(창 35:29). 그리고 야곱이 죽었을 때, 아들들 사이에는 화해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있다(창 50:15-21). 충돌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서로를 돌보는 것을 멈출 수 없는 한, 가족은 이런 것이다.

두 주요 주제들, 즉 불가능한 출생들과 불가능한 화해들은 특별한 가족의 증거가 된다. 창세기는 심히 곤경에 처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설화를 통해서 그 곤경은 가족에게 이야기를 해서, 희망을 주고, 미래를 제시하며, 언제나의 방법에 따라 화해시키는 치유의 목적에 의해 조화를 이룬다. 창세기에 관한 여호수아의 간략한 이야기를 지배하는 것은 “주었다”는 단어의 세 번의 사용이다.

나는 그에게 이삭을 주었고...
나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나는 에서에게 산을 주었고...

수여자가 존재한다; 이것은 선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새로운 것을 주고, 불출산, 두려움, 소외, 그리고 적대의 악순환을 무너뜨리기 위해 작용하는 능력과 현존이 존재한다.

조상들의 이야기는 오늘 여기에서 되풀이 될 수 있다

확실하게 말해서, 우리는 세겜에서 그 날 누가 여호수아의 말을 듣고 있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착오의 행동을 범해보자. 세겜의 무경쟁의 지역에서 온 그 날의 청중들 중 하나는, 처음으로 그 기억을 듣게 되었던 자들 중 하나는 젊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곤경에 처한 기능불능의 가정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 가정에는 초지에 관한 끊임없는 전쟁과 논쟁들과 오래된 몰수재산들을 둘러싼 미해결의 계산이 있었다. 그녀의 가족은 전쟁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가족의 상황을 어찌할 도리가 없고, 희망이 없으며, 불가능한 것으로서 올바르게 인식했다.

그녀는 그것이 자신에게 희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형제자매들과 장차 있게될 자손들, 즉 3대와 4대의 자손들에 이르기까지 불가능한 운명임을 보았다. 그녀는 절망 속에서 살았다.

그날 세겜에서의-어찌할 도리 없이 곤경에 처한 가족과 또 다른 가족의 이야기 사이의, 동일하게 희망이 없지만 방문을 받은 가족, 침해당한 가족, 새롭게 이루어진 가족, 과분한 미래가 주어진 가족 사이의-상호전달의 수단을 상상해 보라. 그것은 이야기되고 다시 이야기되어지는, 아주 오래되었으며 지금은 여호수아의 입술 위에 있는, 세겜에서 지금 이야기되어지고 들리는, 양자택일의 이야기이다.

그 젊은 여인이 경청할 때, 그녀는 그 이야기를 자기 자신의 삶과 가족의 상응하는 이야기(counter-tale)로서 즐겼다. 그녀가 듣고 있는 중에, 그녀의 가족에게 수여자가 없지 않았으며, 선물이 없었던 것도 아니며, 새로움의 공공연한 행위가 없었던 것도 아니라는 것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여호수아로부터 그녀가 그 날 들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희망 없는 상태를 깨뜨리고, 형제자매들을 화해시키며, 미래를 보장하고, 안전한 땅을 주신다고 하는 가능성의 이야기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족이나 혹은 그 어떤 가족이 단독으로 행할 수 없는 것을 행하신다. 그녀가 경청하면서, 바로 그 절망에 대항하기로 결심함으로서, 그녀는 무거운 절망의 무게가 들려 올리는 것을 발견했다.

최성일 교수(한신대 신학부/선교신학)  sungildab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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