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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정신과 기독교신앙 개조 (3) - 교회론의 개조3.1운동 정신의 통합학문적 이해와 기독교 신앙의 미래 8
이은선(한국信연구소, 세종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3.09 20:58

교회론의 개조 - 성전교회를 파하라

앞에서 3.1운동 개신교 정신은 그 세 번째 특성으로서 ‘세계대동(大同)’의 이상을 품었다고 말했다. 오늘 한국 교회의 개혁과 기독교 신앙의 미래를 위해서 그 이상으로부터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묻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다시 언급하는 일조차 힘든 참혹한 사고가 또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 지난 12월 11일 태안화력발전소 사고에서 24살의 청년 김용균 군이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서 목숨을 잃었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있었지만 한국 사회는 달라지지 않았고, 또한 몇 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생이 반복되어 왔지만 희생자는 주로 젊은 청년들이고, 하나같이 밥 먹고, 잠자고, 낮에 일하는 인간 사회적 삶의 가장 자연스러운 길이 깨어진 상태에서 일어난 죽음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렇게 자연스럽고 기초가 되는 인간 삶의 기본조건조차도 누리지 못하는 삶이 오늘 우리 주변에 여전히 널려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의 사람들은 인간다운 삶, 건강하고 행복한 삶, 여유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날을 고대하면서 일제의 압제를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큰 희생을 치렀고, 해방 이후 동족상잔의 비극을 넘어서 산업화의 높은 파도에 쓸려 넘어가지 않고 안정된 주거와 학업과 직장을 얻기 위해 죽도록 수고해 왔건만 왜 여전히 그런 방식의 죽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더 만연하는 것일까? 참으로 답답하고 우리들의 삶을 무기력과 희망 없음의 나락으로 한없이 떨어뜨리는 현실이다.
   
나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제2의 독립운동

▲ 도산 안창호 ⓒGetty Image

도산 안창호는 3.1운동이 실제적인 성과 없이 끝나고 임시정부도 사분오열되는 상황에서 자신마저도 미국에 없자 실망한 재류 동포들에게 반복해서 역설하기를, 첫째, “독립운동은 장원한 것이니 이번의 실패로 낙심하지 말라는 것”과 둘째, “더욱 더 분투노력하여 각각 부력을 증진하고 인격을 수양하며 미국인에게 호감을 주도록 하는 것이 당면의 독립 운동이라는 것”, 셋째, “결코 분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한다.(1) 도산은 평생 “점진공부”(漸進工夫)를 주장했고, “나를 닦는 것이 곧 남을 다스리는 것”이며, “실천할 수 없는 이론은 먹을 수 없는 양식과 같다”고 하면서 무실역행(務實力行)이 그의 삶의 기초였던 것이다.(2)

그와 동시에 “조국을 망하게 한 것은 이완용만이 아니다. 나도 그 책임자다. 내가 곧 그 책임자다”라고 진정성 있는 자기책임을 강조했고, “우리 민족이 저마다 내가 망국의 책임자인 동시에 또한 나라를 다시 찾을 책임자라고 자각할 때가 우리나라에 광복의 새 생맥이 돌 때요”라고 밝혔다.

그는 처음부터 “광복은 내가 하기에 있다. 내가 하면 된다”라고 믿고서(3) 숨질 때까지 온 세계를 다니면서 가장 작고 하찮은 일에서부터 마지막으로 중국 남경 부근에 3.1운동 이후 더욱 더 많이 본국을 떠나는 동포들을 위해서 재외 한인들의 중심지를 만들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생각에 나라를 잃고서 해외에서 유랑하게 된 한인들이 그런 가운데서도 국혼을 잃지 않고, 인종적 압박을 심하게 받지 않으며 나름의 전통도 잃지 않으면서 생업에 종사하며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곳이 미국이 아닌 중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이상촌의 꿈은 그러나 일본의 만주침략(1931년 9월 18일)으로 좌절되었고, 도산은 그것을 제일 안타까워했다고 한다.(4)

이러한 모든 일은 도산이 “나는 밥 먹는 것도 민족 운동이요, 잠을 자는 것도 민족 운동”이기 때문에 민족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나더러 죽으라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죽어도 혼이 있으면 나는 여전히 민족 운동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하게 한 그의 깊은 내면적 힘의 발산이었다.(5) 그는 우리 민족이 “서로 사랑하는 민족, 거짓이 없는 민족, 화평한 민족을 만드는 것이 곧 세계 인류를 그렇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6)

세계 신자유주의 경제시장의 한반도에서 다시 시작하는 같이 살기 운동

오늘 신자유주의 경제제일주의의 높은 파고와 한반도의 위기 상황 앞에서 촛불혁명 이후에도 상황이 그렇게 쉽게 호전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나도 도산처럼 말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우리 삶의 처지가 여전히 이러한 것도 결국 나의 책임이고, 또한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일도 나의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참된 자주와 독립, 주인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이번 화력발전소 김용균 군의 사망 앞에서 한 페친은 “우리가 아이를 삼킨 컨베이어 벨트입니다”, “이 사회가 컨베이어 벨트입니다. … 살아있는 자 모두, 이 비루한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아이를 삼킨 컨베이어 벨트입니다”라고 울부짖었다.(7) 그리하여 나는 이 상황에서 교회 건물 하나를 짓는데 1천억을 쓴 교회도 있다는, 내가 속해 있는 한국 개신교는 무엇하고 있는가를 다시 묻게 된다.

3.1운동 개신교 정신이 ‘세계대동(世界大同)’을 꿈꾸었다는 것은 이제 인간 사회가 갖는 인위적인 분리와 구획, 사유화의 담을 헐고서 어떻게 하면 그 기초적인 것이 보편적이고 두루 평등하게 모두가 나누어가질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일 것이다. 3.1운동 당시 그 운동을 이끌었던 천도교의 손병희와 교도들은 한민족에게 그러한 일이 가능하도록 하는 첫 걸음이 나라의 독립이라고 생각해서 큰 비용을 담당했고, 기독교 측에도 그것을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 경찰에게 더욱 더 심한 고초와 고문을 당했다.(8)

세계대동을 말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기본이 되는 기초와 토대에 대해 염려 한다는 것을 말하고, 그것을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배려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밥 먹는 것, 잠자는 일, 주거와 교육, 일자리를 얻는 것 등 그렇게 기초적이고 보편적인 일을 공동체 모두의 권리로 보는 일, 그래서 그것을 소수가 독점하지 않도록 하면서 사회적, 국가적, 인류적 삶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그 일을 위해서 운동하고 싸우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 일을 위해서 지금 한국 개신교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며, 그것은 특히 지금까지 쌓아올린 건물로서의 ‘성전교회’를 헐고 그 담을 낮추면서 더욱 세상을 향해 개방하고, 함께 나누는 일임을 말하고자 한다. 빚을 내어서라도 거대하고 화려한 자신들만의 성전교회를 짓는 일 대신에 그러한 외적 성장에 스스로 한계를 두면서 대신에 그 물질과 힘을 세상의 어려움을 위해서 내어놓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교회로부터 내침을 받은 세월호 유족들은 기성 교회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에서 제일 큰 예배당”을 마련했다고 언술되었는데, 그것은 안산 416생명안전공원이 들어선 자리에 매달 첫 주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세월호 유족들의 ‘세월호 교회’를 말한다. 이 교회 공동체를 보면서 한 신학자는 “세월호 가족이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고백했는바,(9) 당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기 위해서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시작한 것처럼 세월호 유족들은 사랑하는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을 기억하고 진실을 밝히는 ‘세월호 교회’를 이루어나가고 있는 것을 지시한 것이다.(10)

이웃 종교와 전통에서 배우는 세계대동의 길

오늘 점점 더 극심해 지는 빈부격차와 외적 성장에 한계를 두기보다는 스스로도 점점 더 큰 대형화와 외적 성장만을 추구하는 한국 개신교의 행태에 대해서 유교 전통으로부터 배우는 다음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이야기란 다름 아니라 19세기 영남 유림의 종장이던 안동 김흥락(金興洛, 1827-1890) 가(家)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이 집안이 어떻게 스스로 농사짓는 양을 한정하고 대신 더 알뜰하게 수확을 관리하고 계획적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자신의 식솔들을 안정되게 보살폈을 뿐 아니라 마을 공동체와 나라의 안위를 위해서 공적으로 살 수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이 가족은 19세기 중․후반의 농사를 20두락(마지기)으로 유지하면서 할 수 있었어도 더 많은 재산을 모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11) 연구자는 그렇게 한 이유를 유교 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려 했기 때문으로 본다.

즉 유교의 도는 재산의 확대재생산을 끝없이 추구하는 행위를 좋게 보지 않고, 분수에 넘는 지나친 재산증식과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재산증식을 삼가는 것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대신 김흥락  가는 자기 주변 사람들의 안민(安民)의 방식을 찾으려고 고민했고, 당시 나라와 인민이 위험에 처하자 구국의 길을 찾고자 애써서 가장 김흥락은 칠십 노구의 몸을 이끌고서도 을미(1895), 병신(1896)년에 단발령을 계기로 내려진 의병관련 통문 여러 건에 깊이 관여하여 안동 의병진에서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고 한다.(12)

이렇게 당시 농한기인 10-1월까지는 하루 2끼 식사로 만족해야 할 정도로 물질적으로 결코 풍족한 삶이 아니었지만, 그 가족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더 많은 재산을 모으려 하지 않았고 성인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려 했다는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매우 신선하게 들릴 뿐 아니라 생소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어떻게 그 당시는 그러한 일이 가능했었는지를 묻게 된다. 유사한 시기의 인물로서 대종교를 중광하기 전부터 나철과 더불어 을사오적을 처단할 비밀결사대를 구성하는 등 이미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구국운동을 함께 해왔던 해학 이기(李沂, 1848-1909)는 자신의 학문론과 교육론을 겸하는 정치사상으로 도탄에 빠져서 기울어져가는 나라와 민중을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치열하게 찾았다.

해학 이기는 “천하의 천하로서 일인의 천하가 아니다”(天下之天下, 非一人之天下)라는 만민이 주인이 되는 인민주권의 ‘공화지치’(共和之治)의 이상을 크게 품었고, 나라를 구할 여러 방도의 개혁을 구상했지만 그 중에서 제일 시급하고 중요한 일로 ‘토지제도’의 개혁문제를 들었다.(13) 그는 전통의 토지제도와 그동안의 여러 개혁 시도들을 살피면서 자신의 제안으로서 ‘토지 공전제’(公田制)를 주창했는데, 이것은 토지의 사적 매매를 금하고 국가가 토지를 매수하여 점차로 토지 사유제를 소멸시키는 법을 말한다.

그는 당시 “토지가 국가의 소유가 아닌 지 오래되었다. 비록 사세(私稅)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공세(公稅)보다 많게 하지 않아야 명분과 말이 제대로 올바르게 되어 신민들이 반드시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당시 전국의 토지가 부자 집에 집중되고, 민중들이 지주들에게 뺏기는 지세가 그 소출의 반이 되어서 1년 내 농사를 지어도 밥 한 그릇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사세를 내리고 공세를 올려서 그 차액을 2배로 조정하자고 했고, 소작농이 지주에게 내는 사세는 총 수확량의 1/9만 내도록 하고, 지주는 거기서 국가에게 1/18을 내도록 해서 결국 소작농의 입장에서 보면 실제로는 수확량의 1/18을 지주에게 사세로 지출하고, 1/18은 국가에게 공세로 지출하는 셈이 되게 한 것이다.(14)

이처럼 이기는 토지 공전제를 민족과 국가의 명운이 걸린 “생사가 걸린 기회”(死生之機)로 보면서 조선 후기 농민항쟁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치와 교화의 방책을 여러 가지로 모색했다.(15) 그에 따르면 인간의 원래 마음(性)은 ‘생(生)의 원리’(理)로서 우주의 무한한 생명원리이고, 이 생명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사회적 선으로 구현해 내는 ‘성(成)의 원리’(氣)로서의 의지(命)와 힘(精)도 보유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러므로 천하를 함께 나누고 혼자 독식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고 요절과 장수를 뛰어넘는 참된 자유의 삶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인상적으로 역설한다. 한국 기독교가 민족의 전통으로부터 다시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천하의 사물은 모두 나의 소유가 아니다. 내가 그것을 소유하고(留) 되돌리지(環) 않으면, 그것을 도적이라 한다. 선왕의 법은 소유법을 가장 엄하게 했다. ... 납과 수은을 다려서 장수(오래 사는 것)를 기대하는 것은 자연의 조화를 도둑질하는 것이요, 지위를 유지하고 총애를 굳히며, 그 탐애에 안주하는 것은 조정을 도둑질하는 것이고, 금전과 곡식을 축적하고 상품을 전매하여 이윤을 남기는 자는 백성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사치한 옷을 입고 미식을 먹고 가득 찰 때까지 탐식하는 것은 자손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기 소유라고 하여 반드시 보존하고자 하면, 사려가 있는 곳에 우환이 따르는 법이다. 결국은 그의 의지(志氣)를 억압하고 구금하게 된다. ... 세상에 혹 달관한 군자가 있어 옆에서 그것을 보면, 어찌 큰 슬픔이라 하지 않겠는가?”(16)

종교 간의 화합과 인류 문명의 독립선언으로서의 제2의 독립선언

한반도의 땅에는 3.1운동이 일어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종교 간의 소통과 대화, 함께 함을 강조하는 정신과 운동과 인물들이 있어 왔다. 고려 말의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은 고려가 망해가는 시점에서 유교와 불교, 선교(仙敎)의 ‘삼교회통’(三敎回通)을 강조했고, 그 연원을 신라 말의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908)에게서 보았다. 이색의 한 시에 보면 당시 절의 스님과 유도의 선비가 서로 만나서 말도 섞지 않는 현실을 통탄하는 구절이 있는데, 최치원도 그렇고 이색도 모두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 현실의 사대주의를 넘어서 나라 고유의 정신적 맥을 다시 찾는 일을 중시 했고, 그 민족사상에 유념하면서 종교 전통 간의 화합(和)과 그 사이에서의 같음(同)을 귀중하게 여겼다.(17)

최근에도 종교학자 이호재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던  ㅎ·ᆫ ㅂ·ㄼ(· 는 한글 아래아 표기) 변찬린(邊燦麟, 1934-1985)의 삶과 사상을 한국 기독교사와 종교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사상가로 소개하면서 그가 포함삼교(包含三敎)도 넘어서 ‘포함다교包含多敎’(유, 불, 도, 기와 현대학문)의 정신에 근거해서 기독교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고, 구체적으로 “새교회운동”을 시도한 것을 밝혀준다.(18) 나는 우리가 지금까지 탐색했던 1919년의 3.1독립운동도 이와 유사한 정신적 맥락에서 가능했던 일로 본다. 그것은 어느 한 종교의 역할이나 그룹, 여남(女男)의 한 성만이 아니라 함께, 그리고 그 참다운 정신의 실현은 당시에 한 번에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이제 곧 10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그 계속적인 실천과 수행을 요구하는 장기간의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 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길선주, 김병조, 유여대, 정춘수를 제외한 29명이 집결하여 오후 2시부터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는 모임을 가졌다. 3.1운동 당시 미육군 한 장병에 의해 촬영된 사진 ⓒGetty Image

아니 여기서 더 나아가서 이제는 한민족뿐 아니라 세계 인류가 함께 수행해 나가야 할 인류 문명의 일이고, 미래적 문명이 나아갈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면 그것은 한국 토착화 신학자 이신(李信, 1927-1981)이 말한 대로, “좌우간 하늘을 마시고 동시에 땅에 발을 딛고선 사람치고 누구나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웃으며 초현실의 평화와 자유를 갖자는 것이다”라는 “돌이 외치는 소리”라고 전해준 보편의 해방의 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19)

“좌우간 하늘을 마시고 동시에 땅에 발을 딛고선 사람치고 누구나 통할 수 있”는 보편을 지금까지의 소수 특권층의 독점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 그것을 민족적 신앙의 차원에서, 성(性)의 차원에서, 그리고 모든 생명의 차원에서 가능해지도록 하는 일, 그 일이 오늘 제2의 독립선언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 종교개혁연대가 맡아야 할 과제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이 일을 선언하고, 스스로 각자가 결기하고, 함께 이루어나가도록 서로 돕고 격려하고 협동하는 일, 3.1운동 백주년의 때에 남북분단의 고통 아래 여전히 신음하고 있는 한반도로부터 그 평화와 통일을 이루어 널리 온 세계로 퍼져나가는 인류 독립운동이기를 소망한다.

2019 한반도 독립선언서(20)

만물이 새롭게 움트는 2019년의 봄, 오늘 우리는 지금부터 백 년 전 우리 집 지구의 한반도에 울려 퍼졌던 3·1독립선언의 포효를 기억합니다. 그 함성과 항거를 되새기며 우리도 오늘 새롭게 우리의 독립과 자주, 민주와 평화를 선포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일에서 우주의 대 기운과 세계 개조의 큰 뜻을 품고 일어섰던 3·1독립선언의 권위가 우리를 이끌고, 만세로 이어질 우리 염원과 신앙이 그 길잡이입니다.

1919년 3월, 2천만 대한의 민중은 남녀노소, 원근각처와 직업과 신분을 불문하고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일제의 잔혹한 탄압과 총칼 앞에서도 크게 일어나 대한민국의 독립과 자주를 외쳤습니다. 동양의 평화를 염려하며 도덕과 인의로 나아가는 인류 새 문명의 물결에 크게 화답하여 온 세상에 그 기상을 떨쳤습니다. 하지만 백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또 다른 식민과 억압, 비주체와 비인간의 현실을 목도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가 아직 표류하고 있듯이, 지난 식민지 시기의 악은 여전히 우리 삶을 옥죄고 있습니다. 오랜 분단 속에서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갔던 남북관계가 급진전되어 평화와 통일 이야기가 한껏 무르익기도 했지만, 이웃 강국들의 사욕과 간섭으로 언제 다시 전쟁과 식민의 이야기로 반전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남한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정치이념과 계급과 성, 세대와 종교와 역사적 신념 등의 차이로 갈등과 분쟁이 심각합니다. 종교마저 화해와 통합의 일군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분쟁을 부추기고, 왜곡된 이데올로기와 거짓뉴스의 진원지로까지 추락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떨치고서 다시 일어서고자 합니다. 백 년 전 이 땅의 종교 지도자들이 서로 화합하며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분연히 일어섰던 것처럼, 우리도 다시 일어서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남과 북은 갈라서 누구보다도 서로를 심하게 학대해 왔고, 외세에 매달리며 한편으로 패권적 민족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뼛속까지 근대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쫓아왔던 경제 제일의 신자유주의 제국은 한반도 삶의 모든 영역을 점령하여 우리로 하여금 끝없는 물질적 탐욕에 빠지게 했고, 여기서 종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한반도의 제 종교는 예전 3·1독립운동에서 ‘민족이 의지할 곳은 오직 종교밖에 없다’는 신뢰의 자리로부터 오히려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스스로가 물신주의에 빠져서 시대의 염려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모든 형국을 딛고서 다시 시작하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 종교인들은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어떠한 인간적인 조건에 종속됨이 없이 모두가 스스로 하늘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각자는 국적이나 외모, 성(性)의 구별이나 학벌, 재산의 여부에 상관없이 자신의 방식으로 이 땅 위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가지며, 일과 노동을 통해 자신의 존엄을 훼손 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갈 자격과 의무가 있음을 선언합니다.

종교와 국가와 직업과 학식과 신체의 건강 여부도 바로 이 인간다운 삶과 관련해서만 의미가 있고, 그 위에 어떤 형식적인 권위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밝힙니다. 따라서 오늘 현실의 종교적 삶을 위해서 각 종교가 두고 있는 성직제도는 그 자체로 절대적일 수 없고, 직분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며, 그런 뜻에서 오늘 많은 종교 부패의 원인이 되는 성직의 타락과 오용은 지양되어야 하고, 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구성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몸의 존재입니다. 몸과 거룩(聖/神)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 거룩이 현현되고, 몸이라는 한정이 곧 거룩의 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이 단순히 생명 없는 물질로 치부되거나 돈벌이 수단이나 쾌락의 도구와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한반도의 삶에서 우리 몸이 당하는 고통이 하늘을 찌릅니다. 수많은 노동자의 몸이 피로에 절어있으며, 열악한 식사와 주거로 심각한 병에 노출되어 있고, 성(性)의 상품화로 크게 병들고 있습니다. 거기서 여성과 아동과 청년은 차별당하고, 건강하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잃고서 권력가와 자본가의 소모품처럼 착취당하고 있습니다.

예전 이 땅의 독립운동가들은 한 나라에 ‘국토’와 ‘인민’이 있으니 독립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하며 일어섰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바로 그 국토와 인민이 심각하게 병들어 있으니 위기는 더욱 중하다고 하겠습니다. 이에 우리 모두는 과감히 떨치고 일어나야겠습니다. 우리의 노동이 인간다운 노동이 되고, 우리 의식주가 다시 정도를 찾아서 생명을 살리고 삶을 살찌우는 영적 토대가 되어야겠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우리 국토인 한반도의 토지가 보다 정의롭고 공평하게 나누어지는 일이 긴요합니다. 이 땅에 몸으로 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공평하게 자신의 땀의 대가를 얻을 수 있도록 한반도 땅의 문제가 바로잡혀지는 일이 요청됩니다. 종교인으로서 지금까지 이 일에 힘쓰지 못하고 오히려 불의와 탐욕에 가담해 왔던 시간들을 반성하며, 이제부터라도 우리 신앙이 참으로 몸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질적으로 실천될 수 있도록 몸의 필요물들을 함께 나누고, 생산하고, 창조하는 일에 같이 할 것을 선언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참으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종교인이라고 말로는 되뇌지만 자기가족 이기주의와 지역 연고주의, 종교 패거리주의와 폐쇄적인 국가주의와 인간중심적인 반생태적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 모든 것을 회개하며 앞으로는 좀 더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살겠습니다. 물질적 성취만을 강조하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라나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자유와 자발성을 억누르고 죽여온 것을 반성합니다.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혀서 그 외의 ‘다른 것’들을 용납하지 못하고, 차별하며 혐오하고 소외시켜온 것을 회개합니다.

이 모든 일을 반성하며 3·1독립의 선언이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의’(正義)와 ‘인도’(人道)의 정신으로 신뢰를 저버린 일본을 탓하는 대신에 그 앞날까지도 걱정하면서 ‘세계대동’(世界大同)의 이상을 펼친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도 다시 그 이상을 우리 것으로 하면서 인류 공동체 집에서 우리의 선한 역할을 담당하고자 합니다. 오늘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놓여 있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바로 그 길로 가는 첫걸음임을 선언합니다. 3·1운동의 선인들이 잘 간파했듯이 오늘 한반도의 평화가 세계평화의 갈림길이 되는 것을 더욱 깊이 인지하면서 우리 종교인들이 밑거름이 되어서 큰 화합과 통일과 배려의 새 날을 열어가겠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거룩한 분노가 우리를 다시 일깨우고, 1919년 3·1독립선언과 상해임시정부수립의 결사가 새롭게 우리 귀에 울리고 있으며, 1960년 4.19혁명의 함성과 더불어 1980년 5.18광주항쟁의 자유와 용기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1987년 민주항쟁을 이어서 2017년 촛불시민혁명의 환한 빛과 진리가 우리를 계속 인도하니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단코 지금과 같이 사악한 물신주의에 빠져 있지 않겠습니다. 우리 자신을 잔혹한 이기주의의 먹이로 내어줄 수 없으며, 삶의 용기와 의지와 선함을 무(無)로 돌리는 소외와 외로움과 자기 멸시에 빠져 살지 않겠습니다. 과감히 그 질곡과 노예성을 끊고서 더욱 인간답게, 이 세상이 다시 사람이 살 만한 세상, 모든 생명이 자신의 자리를 얻는 세상이 되도록 힘을 모으겠습니다. 지금 온 인류 문명이 새롭게 찾고 있는 포스트휴먼의 길을 위해서 고난과 인내와 상생의 한반도 역사에서 배우면서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온 세상을 위한 책임과 주인의식으로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한반도 종교인 공약 삼장을 선포합니다.

- 물질과 정신이 둘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 되어가는 물질이 있을 뿐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서 선하고 귀하며,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어떤 처지에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고, 존엄과 자유과 사랑의 담지자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 우리 몸은 거룩하다. 어느 경우에도 권력자의 폭력과 쾌락과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다. 몸에 대한 어떠한 속박과 폭력도 용납되어서는 안 되고, 우리 몸의 안녕과 건강과 생명감과 창조력이 보호받고 배려 받을 수 있도록 국가를 비롯한 이 땅의 모든 공동체들은 서로 힘을 합해야 한다.

-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지금 여기 우리가 서 있는 장소에서부터 시작한다.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날마다 더 선해지도록, 더 진실하고 아름다워지도록 결심하고 행위하는 그 지점으로부터 세계 평화와 인류 개조가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이 시대 종교인들의 참된 믿음(信)이며 신념이어야 한다. 그 한 걸음(一步, 日步)씩 나가는 일에서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홀로 절대화될 수 없고, 모두의 앞에 놓인 목표가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서로 손잡아 주고 격려하고 돕는 일이야말로 오늘 이 땅의 모든 종교 공동체가 주력하는 일이어야 한다.

2019년 2월 28일
3·1운동백주년종교개혁연대
경동현, 김권이, 김나리, 김미령, 김유철, 김춘성, 김항섭, 김현진, 김형남, 나지용,
민정희, 박광서, 박길수, 박병기, 박순희, 배병태, 선병삼, 손원영, 손은실, 심국보,
옥복연, 이미림, 이병성, 이원진, 이은석, 이은선, 이정배, 임종수, 정경일, 최명림,
최우혁, 황경훈, 황상희

 

미주

(미주 1) 안병욱, 안창호, 김구, 이광수 외, 『안창호평전』, 도서출판 청포도, 2001, 192.
(미주 2) 같은 책, 254, 255, 327.
(미주 3) 같은 책, 145-146.
(미주 4) 같은 책, 332.
(미주 5) 같은 책, 358.
(미주 6) 같은 책, 328.
(미주 7) Eduard Lee, https://m.facebook.com/
(미주 8) 이병헌, 『3.1運動秘史』, 시사사보사출판국, 1959, 50-51, 343.
(미주 9) 정경일 원장(새길기독사회문화원), m.newsnjoy.or.kr, 2018.12.03.
(미주 10) 이은선, “부활은 명멸(明滅)한다: 4.16 세월호 2주기의 진실을 통과하는 우리들”, 『세월호와 한국 여성신학-한나 아렌트와의 대화 속에서』, 동연, 2018, 129-164.
(미주 11) 김건태, “ “광작을 자제하라”: 19세기 어느 성리학자의 가작(家作)과 그 지향”, 미야지마 히로시,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 배항섭 엮음, 너머북스, 2015, 338.
(미주 12) 같은 책, 341.
(미주 13) 이규성, 같은 책, 236; 朴種赫, 『해학 이기의 사상과 문학』, 아세아문화사, 1995, 37.
(미주 14) 박종혁, 같은 책, 40.
(미주 15) 이규성, 같은 책, 237.
(미주 16) 이기, 「留還堂記」『李海鶴遺書』권8, 이규성, 같은 책, 235에서 재인용.
(미주 17) 崔英成, “牧隱 李穡의 歷史意識과 民族意識”, <牧隱學術大會-牧隱 思想의 再照明>, 2018.10.5, 목은연구회/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 성균관대학교, 21-24.
(미주 18) 이호재, 『프스트종교운동-자본신앙과 건물종교를 넘어』, 도서출판문사철, 2018, 55.
(미주 19) 이신 지음, 『李信 시집 돌의 소리』, 이경 엮음, 동연, 2012, 150.
(미주 20) 이 선언서는 지난 2월 28일  ‘3.1운동백주년종교개혁연대’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선포한 것이다. 본인이 초안을 작성했고, 여러 차례 함께 토론하고 수정보완하여서 지금의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특히 기독교 측 선언자의 한 사람인 이병성 박사가 영문으로 번역해서 영문 선언서도 함께 마련되었다.

이은선(한국信연구소, 세종대 명예교수)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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