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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환 선생님의 책, 『아리랑 고개의 교육』에 대해먼 길을 떠나신 문동환 선생님을 추모하며
이정훈 | 승인 2019.03.10 20:06

신학교육을 받은 필자에게 민중신학은, 좀 과장섞어 이야기 하자면, 필자가 아는 신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민중신학과의 인연은 대학에서 모시게 된 스승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자신이 한국신학대학(한신대학교의 전신)에서 민중신학의 산파이셨던 안병무 선생님께 직접 배움을 받으셨고, 후에 독일에서 신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셨다.

▲ 문동환 선생님의 살은 그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였다. ⓒ에큐메니안

책과 먼 곳에서만 뵈었던 문동환 선생님

민중신학은 거리에서 탄생된 신학이기도 하지만, 상아탑에서 연구된 신학이기도 하다. 특히 민중신학의 산파역할을 하셨던 문익환·서남동·안병무·문동환 교수 등은 모두 한국신학대학에서 교편을 잡으셨던 분들이다. 이렇듯 민중신학은 한국신학대학과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이다. 

그렇지만 한국신학대학 혹은 한신대학교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민중신학을 만나고 공부를 하게 된 필자와 같은 학동(學童)들은 마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던 것과 같이 책을 통해서만 민중신학 선생님들을 만났다. 필자와 같은 길을 걸어 온 친구들끼리 주고 받는 농담이 선생님의 옷자락도 만지지 못했다고 했다. 부러움이 묻어나는 이야기다.

3월9일 오후6시경 향년 98세로 별세하신 문동환 선생님도 그저 책으로만 알게 될 상황이었지만, 대학 스승님의 권유로 한신대학교 대학원 신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서울 살이를 하면서 먼 발치에서나마 문동환 선생님을 뵐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세 번 뵈었던 기억이 있다.

첫 만남 자체가 문동환 선생님께서 이미 팔순을 넘기셨을 때였다. 그럼에도 새로운 신학적 주제를 찾는데 주저함이 없으셨고 그 결과를 책으로 출판하시고 강연도 하셨던 때다. 온화한 미소를 품으신 얼굴과는 다르게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아리랑 고개의 교육』을 통해 만난 민중을 역설한 문동환 선생님

책으로만 뵈었던 선생님을 지근거리에서 뵈었을 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은 참 묘했다. 그럼에도 필자의 기억 속에 문동환 선생님은 선생님의 책과 겹쳐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문동환 선생님이 남기신 저서들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고 필자에게 충격을 주었던 책은 『아리랑 고개의 교육』이다.

감히 선생님의 책을 가타부타 평가할 능력도 없지만 선생님의 책 『아리랑 고개의 교육』은 기독교교육학자로서의 민중신학의 관점에서 교육을 논하고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책으로 남아있다. 필자 세대에 민중신학에 관심을 가졌던 분들은 다들 한 번씩 읽지 않았을까 싶은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선생님은 민중신학을 ‘한풀이 신학’이라고 정의하셨다. 민중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품고 넘어 가야하는 ‘아리랑 고개’라는 상징을 통해 민중교육이론을 펼치셨다. 민중이 그들의 역사적 사명을 다하도록 돕는다는 선생님의 교육철학에 따라 민중 스스로 역사를 개척하고 새 날을 열어 가는 민중의 이야기로 펼쳐 보이신 책이다.

이 책에서 선생님은 한 석공의 이야기와 농부, 살인범,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의 이야기, 곧 민중의 한을 통해 민중이 누구인가를 말씀하고 계셨다. 민중은 불의하고 악한 제도로 말미암아 갖가지 고난이 닥칠 때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인정을 나눈다고 하셨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억압하는 권력자들, 앞잡이와 지식인들을 향해 분노하고 저항할 줄 알며, 심중 깊은 곳에서는 그들도 사람답게 살아볼 수 있는 새 날이 오기를 간절히 고대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셨다.

민중은 버림받은 자들이 아니라 서로를 위로하고 더 나아가서는 스스로 새날을 꿈꾸고 창조해 나가는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강조하셨다. 이것은 또한 선생님에게 있어 민중교육의 목표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대학 스승님으로부터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열심히 들었던 이야기였으니 그렇게 학문은 이어지고 있었다.

▲ 민중신학자로서 기독교교육철학자로 문동환 선생님의 책, 『아리랑 고개의 교육』은 최고의 저술이 아닐까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이정훈

또한 문동환 선생님은 민중의 새로운 삶을 위한 최고점으로 아리랑 고개의 한을 말씀하셨다. 민중은 짓밟히고 빼앗기고 버림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넘어 민중 자신들이 당한 것에 대한 분노와 원한이 가슴속에 알알이 맺히는데, 그것이 아리랑 고개의 한이라고 하셨다. 민요를 생각하면 이 말이 무엇인지 금방 알 것이다.

선생님은 이 책에서 한국 민중의 한,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히브리인의 한을 통해 민중은 한의 정점에 서 있다가 다시 새로운 역사 속으로, 새 날을 창조하는 장을 열어간다고 강조하셨다. 한이야말로 민중 삶의 한 정점이라고 하셨다. 이 부분은 문동환 선생님의 친형이신 문익환 목사님께서 저술하신 『히브리 민중사』라는 책의 줄기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민중의 한을 만난 문동환 선생님

그러나 선생님은 그 한의 정점인 아리랑 고개는 한 고개가 아니고, 두 고개, 세 고개, 수십 고개, 수백 고개, 아니 민중의 삶, 전체가 아리랑 고개일 수도 있다고 하셨다. 넘어 가면 또 고개이고, 다시 넘으면 우뚝 솟아 있는 고개, 그것이 바로 민중의 삶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민중 스스로 한의 악순환을 통해 한의 고개를 만들고 다시 만들어 한의 악순환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보셨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민중의 각성이 요청된다고 하시며 그것은 한(恨)에 대한 단(斷)이라고 하셨다. 그것이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그리고 되어가고 있는 저들이야말로 탐욕에 대하여 단호한 '단'을 내려야 한다"는 강조하셨다. 이 일은 전 세계적이고 전 우주적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이렇게 한에 대한 단을 통해서 아리랑 고개를 넘어 마침내 민중의 부활이라는 새로운 역사, 새 날을 창조할 수 있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이 민중 부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해서 한 맺힌 무리는 하느님의 사랑의 영에 사로잡힌 무당(메시아)의 희생적인 도움으로 한을 풀고 그를 중심한 새 공동체에서 새로운 삶을 즐기게 될 뿐 아니라, 다시 한풀이 전사가 되어서 세상을 향하여 나가게 된다. 작은 신들린 자가 되어(메시아가 되어) 악령 추방의 길에 나서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중의 부활이다.”(216쪽)

문동환 선생님을 추모하는 한 방법

필자도 그러했거니와 이 책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이 요동치는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우리 시대에 민중은 없다고 민중신학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평가되고 사라져 간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에게 있어 민중신학은 아직도 필자를 요동치게 만드는 신학이다.

너무 비장한 어투일수도 있겠지만 민중신학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들과 책들이 있었기에 오늘 필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일의 필자도 민중신학 덕분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세상과 작별할 때도 그럴 것이다.

또 한 분의 선생님께서 먼 길을 가셨다. 그렇게 먼 길을 떠나신 선생님을 추모하는 방법은 선생님이 남겨두신 책 속에서 생각을 제련하고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짧게나마 선생님과 같은 시대를 살 수 있었음을 감사드린다.

영원한 안식 속에서 평안하시길 빌고 또 빈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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